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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젊은 작가 하성란을 꾸며주는 말들이다. 화려하다. 화려한 그녀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 정확히 12년 전으로. 1998년에 출간되었던 하성란의 첫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은 촌스러운 토큰과 함께 2010년 서점에 등장했다. 그런데 화려한 꼬리표를 단 작가 하성란의 '식사의 즐거움'에 화려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투박하다. 식사의 즐거움도 온데간데 없다. 오히려 소설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그들의 식사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입'이라는 구멍에 싸구려 음식물을 퍼넣는 성가시고 천박한 '의무' 일 뿐, 그 과정에는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한다. 그런 일상의 식사 속에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에게는 이기적이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폭력에 무기력해지고 주눅 들어 알콜중독자가 되어 버린 어머니가 있다. 물론 그들은 대학물 먹은 남자의 '친'부모가 아니다. 남자의 친부모는 점잖고 높은 교육을 받은 중산층으로 자신들의 아들과 뒤바뀐 여자를 가족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남자는 어릴 적 자신이 그들과 함께 살았던 집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들과의 해후와 행복한 삶을 꿈꾸며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남자의 머리맡에는 93,5 메가헤르츠에 맞춰진 라디오가 있다. 구식 라디오는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아직도 잠들지 못한 그대에게'라는 프로그램으로 남자의 자명종이 된다. 학창 시절 누군가가 보낸 쪽지에 쓰인대로 남자는 오늘도 새벽 2시에 '아직도 잠들지 못한 그대에게'를 듣는다. 그 '누군가'를 알려줄 힌트를 얻기 위해서. 아니다. 남자는 이미 쪽지의 임자를 알고 있다. 남자와 같이 뒤바뀐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 '재경'. 재경도 어린 시절 한적한 동물원에 그녀를 내다버린 그녀의 '진짜' 부모를 다시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자신을 데려다 키우는 인심 좋은 쌀집 내외와 살고 있다. 남자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친구이자 첫 사랑 재경이 목을 매단 후에도 남자는 매일 새벽 라디오를 듣는다. 재경의 사연을 코맹맹이 목소리를 내는 진행자가 읽어줄거라 믿으며. 남자는 진짜 부모를 만나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보상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남자에게 그들과 함께 즐겁게 식사할 날은 과연 올 것인가? 하성란의 '식사의 즐거움'은 한 남자의 우울한 가족사다. 남자와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과 함께 살아간다. 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지만 거기에 맞서 싸울 용기나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그는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낸다.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반듯한 밥상에 모여 앉아 즐거운 식사를 할 그의 진짜 가족을 만들어낸다. 남자가 꿈꾸는 '식사의 즐거움'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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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즐거움은 11년전에 출간된 책을 이번에 다시 재출간한 책이다.
그런데 제목을 읽었을때는 가족간의 단란한 식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책일거라 짐작했다.
첫장은 신생아실에서 간호사의 고단한 하루와 신생아의 뒤바뀐 사건등이 나온다.
다음장부터는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남자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나로 쓰지 않고 그남자라는 인물로 묘사한다.
그남자는 새벽두시에 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을 11년째 듣고있다.
그는 어김없이 새벽두시가 되면 한물간 텔런트가 진행하는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에게라는 프로를 듣는다. 그남자는 백수다 딱히 하고싶은 것이 없는 그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하자고 종용한다.
이 가정은 바람앞의 촛불같은 아슬아슬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무슨 식사의 즐거움인가. 아마도 이 들이 꿈꾸는 것이 그것일까 이제부터 좀더 심도있게 책을 살펴봐야겠다.
그남자의 아버지의 역활은 제목에대한 역설적인 인물이다.
그남자의 아버지는 밥을 먹으며 끊임없이 말을한다.
입안의 음식물은 총알의 파편같이 밥상을 날아다니고 자신의 기분내키는 데로 호마이카밥상을 집어 던진다. 한마디로 호마이카밥상은 자신이 이 집안에서 가장큰 권력자임을 나타내는 부산물중 하나이다.
아들을 자신의 방역사업에 투입시킨다.
그남자가 기다리는건 무얼까 그남자가 의지대로 하는건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에게”라는 라디오을 듣는것과 자신과 무관한 골목길의 어는 한집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가 첫눈에 반한 여자의 집인가 보다. 이게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책이 끝나기까지 그가 짝사랑하는 그녀는 그림자조차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 그남자는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집을 뛰쳐 나와서도 찾는 곳인데 작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너무도 불친절한 결말이다.
이제 이렇게 글이 끝나는가 나는 다만 그남자가 새로운 밥상을 구입하려는 생각속에 행복을 꿈꾸려고 한다는 것과 자신의 친부모가 따로 있다는걸 알고 있다는것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끝이난다.
다행이다 나의 궁금증은 작가후기에서 대부분 풀리고 작가의 의중까지 확인할수 있었다.
글속에서 다 읽어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길라잡이를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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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나만 혼내? 진짜 내 엄마 맞어?" 어릴 때 엄마한테 혼이 난 뒤면 다락방 구석에 쳐박혀서 한동안 식구들의 눈을 피하곤 했다. 분명히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섭섭함부터 셋째 딸이라는 이유로 늘 허름한 옷을 입어야 하고 낡은 가방에 학용품을 물려 써야 했던 서러움 등 그동안 쌓여왔던 억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럴때면 달콤한 사탕의 유혹처럼 나를 낳아주신 진짜 부모님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같은 날 태어난 두 아기가 간호사의 실수로 뒤바뀐 인생을 살게 된다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진짜 부모님이 엄청난 부자라는 설정은 당연한듯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품는다는 유년의 허황된 상상... 그 땐 왜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식사의 즐거움>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도 '업둥이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다. 누군가와 뒤바뀐 인생을 산다고 믿는, 어디엔가 자신을 낳아준 생물학적 친부모님이 계실거라고 철썩같이 믿는 남자다. 하지만 남자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스물 여덟의 건장한 청년이다. 때문에 남자의 믿음은 유년에 잠시 겪는 상상의 차원을 넘어 '확신'이자 '진실'로 인식되었다. 남자에게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삶의 힘겨움을 술에 의지하다 알콜중독자가 된 어머니가 있다. 그런 요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번호를 잘못 보고 탄 버스는 남자를 낯선 동네로 데려다 주고,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힌 남자는 그곳에 자신의 친부모가 산다고 생각한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가족과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것 처럼 보이는 남자... 설정이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책장을 넘겨봤자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할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남자는 학창시절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여학생이 자살했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자신과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그늘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소설에 대한 편애가 있는 나로서도 최근들어 우울한 소설들을 연거푸 접하다 보니 그 여파가 유쾌하지 않던 차라 결과를 읽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였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초반의 기대와는 다르게 책을 덮은 후에야 비로소 뿌듯해지는 작품이 있다. '식사의 즐거움'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남자의 '친부모 찾기'는 엉뚱하고 무모할 뿐 아니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한 인간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에게 드리워진 패배자라는 낙인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 것은 우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남자의 행동' 이었으며, 그에 앞서 '확고한 의지' 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식사의 즐거움'은 남자가 그토록 원하던 '가족의 사랑'에 대한 반어법이자 '다가올 희망',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진다.
<식사의 즐거움> 사심을 담아 말하자면 개인적인 취향과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다. 한국소설 특유의 세심한 묘사를 기본으로 주인공 외에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에피소드가 양념 역할을 잘 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에서 약간 일본 소설 느낌이 나기도 했는데 첫 출간이 12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이름 한번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고 끝까지 '남자'라고 칭했던 자유로운 시점부터, 슬프지만 울 필요가 없고 아프지만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전개가 맘에 든다. 덧붙여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현실에서의 에피소드가 보이지 않는 짚으로 엮어놓은 굴비처럼 맛난 냄새를 풍긴다. 요즘은 할 말이 많으면 입이 아픈게 아니라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던데... 됐고,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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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즐거움 - 하성란 지음 한동안 부산 사상구의 한 여중생 사망사고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리고 용의자가 잡혔는데, 이름이 ‘김길태’ 라고 했으며 그전의 강력사고와는 달리 사진도 공개되었다. 나도 딸을 키우는 입장이라 참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의 양부모가 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길태’ 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삐딱하게 어긋난 시점도 그가 버려진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가 받은 충격과 상실감 또한 분노가 꽃다운 한 여중생의 목숨까지 가져가게 한 것이다. 우연찮게 읽은 하성란 작가가 쓴 ‘식사의 즐거움’ 에 등장하는 28살의 건장한 ‘남자’는 ‘김길태 사건’ 과 약간 비슷한 경우이다. 암기력이 특출하게 좋은 그는 1살 때 다른 누군가와 바뀌었다고 믿는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자머리의 손잡이 청동상과 나이든 감나무 등으로 기억의 내용이 비교적 사실적이다. 그런 그가 고등학생 때 또 한번의 녹녹치 않는 ‘재경’이라는 여학생과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포마이카 밥상을 화날 때 걷어차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때문에 술로 비대해진 몸을 지탱하는 헌신적인 어머니에게서 구토 할 것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포마이카 밥상이 두동강 날려고 할 때 그는 공장으로 도망가게 되고 거기서 알게 된 ‘박미옥’ 이란 여자공원과의 관계로서 11년간 지속되는 재경과의 기억을 놓게 되고, 아버지와의 죽음으로써 이제 새로운 밥상을 준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가족소설이라 해도 될까? 아니다, 이것은 가족소설이 아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는 한 남자에게 거의 모든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가족소설이다. 그 남자의 이야기가 마침내 새로운 식구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12년 만에 새롭게 독자와 만나는 ‘식사의 즐거움’이 참신하게 읽힐수 있고, 읽혀야 하는 지점을 여기서 찾으면 어떨까. 요컨대 이 소설은 이 시대 새롭게 요청된 우리들의 가족소설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가족은 더 이상 핏줄, 문서, 운명 등에 속박된 가계가 아니다. 교감, 밥상, 만남 등으로 연결된 공동체가 우리에게 필요한 가족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선언이다. 가계의 굴레는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무력해지고, 공동체의 유대는 언제든 (우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었으므로.” - 백지은 문학평론가 어찌 보면, ‘김길태’ 와 소설속의 남자와 나의 인생이 참 많이 닮아있다. ‘김길태’ 는 자신의 분노와 노여움 상실감을 범죄를 져 지르면서 회피하려고 했고, 소설속의 남자는 자신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자신이 믿는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면서 새로운 밥상을 찾으려고 했다. 자신이 실제로 바뀌어졌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찾으려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나도 정말 폭력적이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헌신적인 어머니도 안계셨다. 이 남자처럼 어지러운 환경을 벗어나려는 용기도 정작 나는 갖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눈물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헌신적인 어머니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지만, 하루하루 그럭저럭 열심히 잘 버틴 덕분에 이제는 나만을 바라보는 한 여인과 토끼처럼 예쁜 딸, 그리고 불같은 성정이 조금 누그러지신 아버지와 함께 식사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누구나 과거의 기억이 좋을 수만은 없다.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 분명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쁜 기억들로 하여금 현재를 속박한다면 밝은 미래를 열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진실일 것이다. 나쁜 기억들로 하여금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든지 아니면 나쁜 기억들 때문에 일그러진 현재를 묵묵히 견디어 내든 지는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절대로 분노하거나 노여워해서 미래까지 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개인적인 삶을 한번쯤 반추해보는 좋은 기회였고, 우연과 필연의 동일성, 상상과 현실의 인과관계, 그리고 사실과 진실은 드러낸 것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더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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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함께하는 식사의 즐거움, 그것의 절실함을 일깨운다! 아마도 어릴 적에 이런 상상 한번쯤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모님께 꾸중 들을 때 어쩌면 친부모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은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사달라고 했는데 우리 부모님이 사주지 않을 때 친구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어른이 될 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남자의 아버지는 집집마다 돌아디니며 해충 잡는 일을 하며, 욱하는 성격에 밥상 뒤엎기가 특기다. 게다가 남자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중독 수준까지 돼 살이 찌기 시작한다. 남자가 집을 나온 날도 어머니가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아버지에게 들켜 밥상이 뒤엎어졌다. 남자는 자신이 병원에서 한 여자와 뒤바뀌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날 잘못 탄 버스에서 우연히 창 밖을 바라보다가 기시감 같은 것을 느낀 남자는 미친듯이 어떤 집 앞으로 향한다. 그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며,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여자라고 믿고 있다.
진짜 남자는 그 여자와 운명이 뒤바뀐 것일까? 아니면 폭력적이고 절대 화목하지 않은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자가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남자가 중학생 때, 그에게 다가왔던 재경이라는 친구가 있다. 친구들은 재경이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보며 부잣집 딸이라고 했지만, 사실 재경의 아버지는 쌀집을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질까봐 두려웠던 재경은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재경이 남자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이 하나 있는데, 재경이 어릴 때 동물원에서 울고 있는 재경을 데려다 키운 것이 지금의 가난한 부모라고 한다. 남자는 재경의 비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그와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사실처럼 굳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식사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은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즐겁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한번도 즐겁게 식사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하성란 작가가 1998년에 발표한 것을 최근 새롭게 펴낸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1998년의 상황을 기억하리라. 1998년은 착실하게 살아가던 아버지들이 무너지고 급기야 그 아버지들의 가족들까지 거리로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때다. 당시 그들에게는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을 공간이 가장 절실했을 것이다. 한때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그것의 절실함을 새삼 깨우치게 하는 이야기다.
2010-0125. 『식사의 즐거움』 2010/03/30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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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의 백미는 단연 식사시간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간식시간, 아니면 야식시간이 아닐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정겨운 장면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집도 있으리라. 바로 이 소설 《식사의 즐거움(2010.2.26. 현대문학)》에 등장하는 남자의 집의 식사시간은 공포의 시간이다. 그리고 두려움의 시간이다. 언제 아버지의 비위가 뒤틀려 밥상에다가 발길질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기에 위태롭고 위험해 보인다. 포마이카 밥상에 삼시세끼를 차려 먹는 남자네 집은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기에 눌려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 자신의 부모가 바뀌었다고 믿는 남자, 이렇게 세 식구가 산다. 어머니는 식사를 준비하면서 몰래 술을 마시다 알코올 중독이 되었고, 남자는 자신의 친부모를 찾기 위해 집을 나와 버린다. 아버지가 걸핏하면 밥상을 엎는 남자네 집은 포마이카 밥상의 네 귀퉁이 중에서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이 상처투성이다. 개개인의 상처 속에서만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각기 제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세 사람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미 가족이 아니다. 새로운 가족을 찾아 나선 남자는 자신의 부모를 찾았다고 믿고 새로운 포마이카 밥상을 꿈꾼다. 《식사의 즐거움》은 이상하리만치 가족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뒤를 쫓는다. 그 남자는 ‘기억과잉증’이라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로 한 살 때의 기억,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바로 어제 일처럼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다. 바로 그 기억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고 불안했던 남자는 그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또 다른 기억을 갖게 됨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된다. 《식사의 즐거움》은 작가 하성란이 1998년에 출간했던 소설이다. 그리고 꼭 12년 만에 이전의 소설을 수정하여 새로이 출간하였다. 포마이카 밥상, 바퀴벌레 등 12년 세월동안 사라져 버린 낯선 풍경들이 이 소설에서 펼쳐지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이 소설은 과거에 쓰여 진 소설이지만 꼭 미래를 내다보고 쓴 것만 같은 느낌이다. 과거보다 현재에 더 중요해진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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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즐거움이란 뭘까 가지런한 네켤레의 신발과 된장찌개 보글보글.. 밥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함께 먹는것. 맛있는 음식과 푸근함 안정감, 따뜻한 집안 가득한 온기
"식사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받고 이런 분위기를 예상하며 읽었다.하지만..밥상을 뒤집어엎고 밥그릇을 걷어차고 아들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아버지와 뜨거운 라면 그릇을 뒤집어 쓰고 머리에 화장을 입으면서... 눈물을 훔치면 싱크대에 서서 몰래 소주를 마시며 점점 몸이 비대해져가는 어머니와 이제는 너덜너덜 귀퉁이에 흠집투성이 포마이카 밥상...그리고 그 밥상이 두동강이 나기전에 집을 나가리라는 다짐을 하는 스믈여덟의 남자.그 남자의 이야기다. 기억과잉증이라는 특별한 선물 덕분에 한살때 집을 잃어버렸다고 기억하며 진짜 부모가 사는 집을 찾는 남자.한때는 주파수가 맞았던 고등학교 동창 재경이와의 일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했던 바퀴벌레 방역일..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와 다니게 된 통조림공장 그리고 건너편 기숙사에서 만난 최미옥.최미옥과 함께 간 동물원에서 만나 재경이같은 처지의 버려진 계집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밥상을 차리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식사의 즐거움을 모르고 자란 남자가 이제는 새로운 가족을 꾸려 네귀가 반듯한 밥상에서 식사의 즐거움을 나눌 희망을 엿볼수 있어 마지막이 참 마음에 든다.어쩌면 굉장히 평범한 이웃집의 이야기같은 소설이다.그렇지만 평범하지 않은 느낌은 뭘까?읽으면 읽을수록 등장인물들이 반전을 가져다 주는 부분들이 있다.특히나 남자의 아버지는 밥상을 뒤엎고 폭력적인.. 생각도 하기싫은 아버지의 모습인데 세례까지 받은 기독교 신자였다니...그리하여 죽은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다니...
아마도 평론가의 이말이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싶다 '사람의 일이란 언제나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겹을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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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지 않으나 식구들의 밥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식사의 즐거움>이란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내가 만든 음식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일은 즐겁다. 어린시절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을 때는 몰랐던 기쁨이랄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을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식사의 즐거움>, 끈끈한 가족애를 담고 있을까?
소설의 화자인 남자는 자신이 병원의 실수로 여자 아이와 뒤바뀐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느 날 우연하게 잘못탄 버스로 인해 도착한 낯선 동네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낀 남자. 익숙한 골목의 목제 대문집이 바로 자신의 진짜 집이라 확신한다. 걸핏하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알코올 중독의 어머니를 보며 남자는 기필코 집을 나오리라 다짐한다. 무의미한 일상에서 남자가 위로를 받는 대상은 바로 라디오다. 고등학교 시절 날라온 쪽지를 통해 듣게 된 새벽 두 시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 일은 남자에게 중요한 일상이다.
술에 취한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은 날, 남자는 집을 나와 통조림 공장에 취직한다. 그 뒤로 목제 대문집을 서성이다 급기야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자신의 집 인양 마당에서 놀다가 그 집의 가족들이 오기 전에 빠져 나오며 그 시간을 즐긴다. 남자의 뛰어난 상상력이 아닐까 싶었던 마음은 내심 놀라운 반전을 기대했다. 정말 남자는 운명의 장난에 의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런지.
공장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여전하게 라디오를 듣는 남자는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쪽지로 만난 재경 때문인지 모른다. 동물원에서 길 잃은 자신을 데려다 길러준 가난한 부모가 아닌 진짜 부모가 어디선가 자신을 찾고 있을 꺼라 믿었던 재경은 끝내 자살한다. 재경이 믿고 있던 기억, 과연 정확한 것일까. 가난한 부모 대신 잘 사는 부모 밑에서 살았다면 재경인 행복했을까.
갑자기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죽고 남자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남긴 트럭과 방역 일을 대신하며 살아간다. 남자는 동물원에 갔다가 길 잃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오며 새로운 밥상을 꿈꾼다. ‘남자는 아이의 손을 꽉 잡은 채로 중얼거렸다. 포마이카 밥상을 하나 사야지. 반듯한 걸루다가. 남자의 머릿속은 온통 밥상 생각뿐이었다.’ p 203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었던 부모와 가족. 뒤바뀐 운명 같은 건 없었다. 아니 그랬더라도, 이제 남자는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갈 것이다. 반듯한 포마이카 밥상에서 남자와 아이가 제대로 된 식사의 즐거움을 만끽하리라 믿고 싶다.
<식사의 즐거움>은 이미 1998년 출판되었던 소설로 12년만에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1998년은 IMF 금융사태로 인해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져 사는 가족이 많았다. 해서, 소설을 통해 어떤 때보다 핏줄이 아닌 함께 밥을 먹는 식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12년이 지난 지금 과연 식사의 즐거움을 아는 가족은 얼마나 될까. 아니, 가족의 와해가 심각한 요즘 우리에게 식사의 즐거움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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