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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인들의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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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난 종교, 특히 하나님을 믿는 종교를 싫어한다. 그 이유가 뭘까? 왜 난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을 넘어 특정 종교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특정 종교의 배타성 때문이다. 난 미션 스쿨을 나왔다. 원해서 들어간 건 아니지만 난 매주 교목으로부터 종교수업을 들어야 했고 매주 강당에 모여 예배를 올려야 했다. 물론 수업에도 예배에도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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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난 종교, 특히 하나님을 믿는 종교를 싫어한다. 그 이유가 뭘까? 왜 난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을 넘어 특정 종교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특정 종교의 배타성 때문이다. 난 미션 스쿨을 나왔다. 원해서 들어간 건 아니지만 난 매주 교목으로부터 종교수업을 들어야 했고 매주 강당에 모여 예배를 올려야 했다. 물론 수업에도 예배에도 난 충실하지 않았다. 강제로 강요받는 종교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목이란 인간 때문에 난 더욱 종교를 싫어하게 되었다. 처음 교목을 접했을 땐 난 교목이 종교를 초월한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다. 대개 하나님을 신봉하는 종교인들은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기 마련인데 우리 교목은 그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교목은 우리와 첫 만남에서 분명 자기 입으로 자신은 불교를 비롯해 타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학교가 미션스쿨이긴 하지만 종교에 대해 얼마든지 열려 있으니 굳이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한 달 조금 지났을 무렵 교목은 갑자기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타 종교를 믿는 아이를 세워놓고 왜 그 종교를 믿느냐고 비난하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필시 이건 종교재판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처음엔 자신은 타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말해놓고 지금에 와서 다른 얘기를 지껄이다니 이게 무슨 타 종교를 존중하는 인간의 자세란 말인가! 불과 1달 전에 한 자신의 말을 망각해버려서 그런 것인지 아님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방심하게 해놓고 특정 종교를 믿는 아이들을 몰아붙이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교목이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는 반 친구 모두들이 의견을 모았다. 목사를 아버지를 둔 친구만 제외하곤 모두가 교목의 이중적인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이를 계기로 난 평소 강요적이고 배타적이라 꺼렸던 종교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종교가 배타적인 성향만 제거한다면 얼마든지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책이다. 저자는 유대교 성직자였던 앨버트 루이스기독교 목사헨리 코빙턴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만 버린다면 종교로 인한 분쟁도 사라질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처음 이 책이 종교에 관한 서적인 것을 아는 순간 난 구매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읽기를 망설였다. 종교에 관한 서적을 읽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 서적이 자신들의 종교가 옳고 타 종교는 그르다는 식의 주장만 펼치고 있어 읽는 것이 소모적인 시간낭비일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이란 점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에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어봤기 때문이었다. 모리 교수님의 가르침은 가물가물하지만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떠올라 난 수차례의 망설임 끝에 <<8년의 동행>>을 읽었다.

 

역시 미치 앨봄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저자는 종교인들이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만 철회한다면 얼마든지 서로를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있음을 두 성직자를 통해 보여주었다. 성직자들이 만약 이 두 분 같은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한다면 종교 분쟁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의 존재 이유가 타 종교를 비난하고 타 종교인을 죽이는 것에 있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도망치기의 유구한 전통’을 이야기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인간은 늘 신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라고 주장한다. 난 왜 저자가 왜 이런 단정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 종교를 믿지 않는, 아니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신에게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 아예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인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도 역시 신으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인간이 늘 신에게서 도망치려 한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자신이 강요된 모태신앙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고 해서 마치 모든 인간이 신에게서 도망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의미 있는 인생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잔잔한 감동까지 선사해주는 저자에게 있어서 이는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쓸 때 좀 더 이러한 점을 주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물질적 부’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랍비였던 앨버트 루이스가 자선기금을 모으는 것을 싫어했으며 성직자가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들려준다.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 못지않게 헌금하라는 말을 셀 수도 없이 해단다. 교회가 커야 하나님이 좋아하신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신도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과연 크고 화려한 교회에서 기도해야만 하나님이 신도들을 예뻐하고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인간을 비롯해서 세상 만물을 만들 능력을 지닌 창조주신데 왜 지상의 건물에 연연해하시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신의 세계에선 쓸모도 없는 돈이 좋아 자신에게 바치라고 하시겠는가! 돈은 성직자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건물을 확장하는데 쓰일 뿐 하나님에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헌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그들을 위해 건물을 지어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화려한 교회를 생각한다면 헌금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성직자들이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강요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앨버트 루이스처럼 자선기금을 모금하는 것도 싫어하고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하는 교회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헌금을 오로지 남들을 돕는 데만 썼다면 크고 화려한 교회 건물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보면 진정한 종교인이자 하나님의 아들은 앨버트 루이스 같은 성직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 분쟁은 종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의 태도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성직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타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종교 분쟁은 일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모든 종교인들에게 이 책을 읽길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모든 종교는 사람들을 신에게 더 가까이 이끌어 주므로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지 않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믿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

 



d****3 2010.04.30. 신고 공감 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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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부드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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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끔 나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를 알게 될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저 남의 일로만 여기며 외면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어쩌다 ‘하느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온 몸의 감각 막혀 버렸습니다. 정말이지 그때만큼은 투명인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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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끔 나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를 알게 될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저 남의 일로만 여기며 외면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어쩌다 ‘하느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온 몸의 감각 막혀 버렸습니다. 정말이지 그때만큼은 투명인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보고 연거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귀를 닫았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관계가 좋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말을 주일(主日)이라고 부르면서 하느님의 문을 두드린 것은 아내와의 잦은 감정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서로가 길을 잃어 헤매는 사이에 아내가 넌지시 성당에 가자고 했습니다.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계속 아내와 전쟁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것이 막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성당에 나갔으며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하면서도 머무적거렸던『성경』을 읽었습니다. 이런 작은 변화 덕분에 서로 간의 애증에서 ‘사랑한다’는 소리를 더 없이 청량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울 때 하느님을 찾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하느님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거대한 존재입니다. 거대한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내가 답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면서부터는 ‘하느님이 답이다’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됩니다. 나일까? 하느님일까? 라는 고민을 들여다보면 믿음의 정도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면서도 하느님을 조금 밖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나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미치 앨봄의『8년의 동행』은 하느님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선물 같은 책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딜레마는 이런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오히려 믿으면 믿을수록 하느님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동안에는 자신에게 불행은 비껴갈 것이라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느님은 우리의 뒤통수를 내리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원망하는 진짜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은 여전히 ‘십계명’을 내세우며 우리의 삶 구석구석 간섭하고 있지 않는가? 라고 불편하게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느님을 싫어하고 심지어 적(賊)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남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신(神)이기 때문일까요?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그 보다는『8년의 동행』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렙은 죽음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우리에게 너무나 어려웠던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그의 가슴 뭉클한 대답은 바로 ‘하느님은 가족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가족은 믿음으로 연결된 ‘케힐라 케도샤 즉 성스러운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과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렙이 말한 ‘두 번째 죽음’이 더 큰 슬픔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은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좀 더 사랑했더라면 혹은 자신의 못 다한 꿈을 좀 더 펼쳐봤더라면 후회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눈을 감으면 영영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 속에서 그렇게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덧없이 흐른 후 렙이 말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두려움을 되돌아보면 곧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에 발목이 묶여 삶을 허비하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렙이 말한 행복의 비결을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오래 기억하게 했습니다. 즉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만족할 줄 아는 것, 감사할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미치 앨봄의『8년의 동행』을 읽으면서 렙에게 감사했습니다. 비로소 하느님을 많이 좋아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추도사에 담긴 렙의 인생은 아름다웠으며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이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의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서 36장 26절)에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기를 그래서 삶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p******0 2010.04.30. 신고 공감 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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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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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의 저자인 미치 앨봄이 새로운 신작을 들고 나타났다.어렸을 적 다녔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인 렙으로부터 자신의 추도사를 써달라고 부탁받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추도사를 쓰기 위해 그 사람을 잘 알아겠다고 생각하여 렙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갖으면서 보낸 8년간의 이야기이다.렙의 이야기 중간 중간 헨리의 삶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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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의 저자인 미치 앨봄이 새로운 신작을 들고 나타났다.
어렸을 적 다녔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인 렙으로부터 자신의 추도사를 써달라고 부탁받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추도사를 쓰기 위해 그 사람을 잘 알아겠다고 생각하여 렙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갖으면서 보낸 8년간의 이야기이다.
렙의 이야기 중간 중간 헨리의 삶에 대해서 나오는데 헨리는 화려한 과거를 가진 기독교 목사이다. 
두 성직자의 삶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해준다.
미국의 종교사상은 우리나라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정서적으로 동감할 수 없어 미치 앨봄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냥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에 랍비인 렙의 삶은 그다지 특이한 것도 없는 것 같고, 헨리는 너무나 화려한 과거를 가졌는데 한 교회의 목사라는 사실이 도저히 나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어 어이없을 정도였다.
렙은 항상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말에 음을 넣어 흥얼거릴 정도로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항상 긍정적이고 회당의 신도들 개개인에게 신경을 써주는 친절한 랍비이다.
나는 렙보다는 헨리의 삶의 모습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느꼈다. 
헨리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위급했던 순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신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구해주었다.
그제서야 헨리는 신의 존재를 확실히 믿고 한평생 신의 대리인으로 살아간다.
헨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다른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줄 순 없지만 온 마음을 다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
이런 헨리의 모습을 통해서 믿음 하나가 사람을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구원의 확신만 있다면 죽음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비종교인들보단 종교인들이 읽기를 바란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런 감흥도 얻지 못할테니 말이다.


w******o 2010.04.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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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 그 아름다운 두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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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이제 봄이네, 한지도 벌써 2~3개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출근길은 너무나 춥다. 동료들도 만나기만 했다하면 날씨이야기로 먼저 말문을 튼다. 날씨가 미쳤나보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반팔입어야 할 거라네 등등 이상기온으로 봄다운 봄을 맞이하지 못한 이들의 투정이 곳곳에서 들린다. 나 또한 매번 출근길에, 퇴근길에 잠바를 입지 않으면 몸이 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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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이제 봄이네, 한지도 벌써 2~3개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출근길은 너무나 춥다. 동료들도 만나기만 했다하면 날씨이야기로 먼저 말문을 튼다. 날씨가 미쳤나보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반팔입어야 할 거라네 등등 이상기온으로 봄다운 봄을 맞이하지 못한 이들의 투정이 곳곳에서 들린다. 나 또한 매번 출근길에, 퇴근길에 잠바를 입지 않으면 몸이 으스스한 그 기분에 아직도 겨울옷들을 미처 다 정리해 넣지 못했다. 따끈한 전기장판은 벌써 방바닥에 한 몸이 되어 농에 들어갈 줄을 모른다.

하지만 두 달간, 마음만큼은, 난 봄으로 살았다. 꽃망울이 이슬을 머금었다가 후두둑 떨어지는 새벽을 맞이하듯 상쾌했고, 하얗게 피어오른 벚꽃 나무 사이로 눈송이 같은 꽃잎이 흩날리는 장관을 보듯 경이로운, 그런 봄으로 살았다. 몇 년 전 학생 시절에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작품을 만났었다. 그의 새 작품이 나온다고 했을 때 망설임없이 바로 인터넷 서점으로 향했고 클릭은 몇 번 걸리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봄같은 느낌을 주었다. 새롭게 살 수 있는 희망과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 수 있는 마음가짐을 주었다. 시간을 역행해 혹은 시간을 앞당겨 봄의 내음새를 맡을 수 있는 책, 그것이 바로 미치의 책이었다. 기대를 건 작품은 결코 실망을 주지 않았다. 미치의 모리 교수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혹은 조금은 비슷한 그 아련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나는 앨버트 루이스라는 어느 랍비를 만나기 시작했다.

 

앨버트 루이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어린 미치에겐 더없이 멀고 커보이기만 한 인물이었고, 그 중압감인지 뭔지 미치는 그에게서 도망쳤다. 얌전히 그의 앞에서 공부를 하고 성서를 읽고 청소년 대표로 사람들 앞에 나아가 제 몫을 했지만 그 순간이 끝나면 언제나 준비, ~~하고 뛰어 나갈 태세가 되어 있었다. 열심히 회당을 다녔지만 스스로 신실한 유대교인이라 말하기는 어려운 미치였다. 객관적으론 모두들 그를 모범적이고 착한 유대교인이라 말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너무 먼 존재였다.

 

저 멀리 미치와 비슷한 또래의 어린 헨리 코빙턴에게 하나님의 실체가 없듯이.

 

그런 미치에게 렙의 전화가 걸려온다.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만남의 시작이었다. 오랫동안 렙을 봐 왔지만, 알아 왔었지만 앨버트만을 위한 시간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은 최초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결국 렙을 위한 것이기 보다 결국 미치를 위한, 나를 위한, 우리를 위한 소중한 시간들이 되었지만 말이다.

 

어서 들어오오-게나, 들어와!”

노래하듯 렙이 미치를 맞이한다. 그의 야윈 다리 사이로 세월의 흐름과 늙음의 무상함이 느껴지지만 그의 노랫소리에는 그의 얼굴에는 환한 기쁨의 빛이 발한다. 전혀, 죽음을 예비해 신도에게 추도사를 부탁한 렙의 모습이라 하기 어렵다. 미치도, 그리고 나도 어리둥절해진다. 미치는 곧 나의 입장에서 렙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다. 처음엔 그의 간접화법과 앨버트의 직접화법 사이에서 당황했었지만 이는 곧 독자 스스로를 앨버트의 말을 듣게 함임을 알게 되었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미치처럼, 미치의 마음 속에 있는 것처럼 묻고 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렙은 말에 리듬을 넣어서 노래를 불러준다. 그것은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며 곧 그 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와 같은 위안과 느긋한 장담인 것 같다. 책을 집으면 책에 집중하려고 절로 긴장하며 책 끝을 지그시 누르는 버릇이 느슨해진다. 마음도, 몸도. 느슨하게 풀린 고삐 사이로 봄이 온다. 앨버트의 봄의 노래, 그가 말하는 따뜻한 사랑의 말들, 우리가 행해야 할 봄의 의식들, 이 온다. 그 모든 것이 온다.

 

편한 길을 돌아 미치가 편히 렙을 만나고 있을 때(물론 처음의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어린 헨리는 쥐들과 함께 잠을 잤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교회와의 인연은 쥐들을 쫓아 달라고 하는 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

 

렙의 추도사를 위한 장장 8년간의 만남. 그 만남 속에서 렙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가치관을 나누며, 믿음을 본다. 그의 스승 모리교수를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만남이 계속 될수록 죽음이라는 이별의 그림자는 짙어지지만 그와의 인연이 평생의 특별한 가르침으로 배움으로 내게 남아 그 빛을 전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오히려 말도 안 되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의 죽음이 희망으로 남다니! 렙이 해준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 모두가 언젠가 죽습니다.’ 그랬더니 앞에 앉아 있던 신도가 벙글거린다. 목사가 물으니, ‘전 여기 신자가 아니거든요. 오늘 사촌 집에 놀러왔다가 이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죽음이란- 한 발자국만 넘어서면 이토록 우스운 것이다.

그 우스운 죽음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다만 남겨두기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누군가를 위해 남겨둘 수 있을 것인가.

 

, 그거 만지면 안 된다!”

하나님의 목소리다. 어린 앨버트가 트럭의 물건을 건드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알자 천상에서 지켜보던 하나님이 어린 앨에게 경고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실은 그 목소리는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윗층에서 앨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렙은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이었을 거라고. 아주머니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거라고. 이렇게 우리를 사랑으로 아끼고, 관심으로 지켜보는 우리의 모든 이웃이 하나님이다. 유장한 노래가 흐르는 어느 회당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 윗층에서, 길거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 사소하지만 당연한 사실을 어린 앨은 알았던 것이다. 앨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이웃의 외마디 외침 때문에 말이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바로 그러한 때에 오는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학교로 나를 마중나온 어머니의 우산 속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대청 마루에 앉아 귀를 파주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그토록 무수하게 받아온 사랑의 정체를 갑자기 깨닫게 되는 그런 때가 온다. 갑자기 머릿 속에서 뱅- 하고 알아지는.

 

헨리 코빙턴에게도 그러한 순간은 왔다. 사춘기 소년이 지녔음직한 젊은 여자 선생님에 대한 동경과 그 은은한 향에 끌려 뭐든 그 분이 하자는 대로 기도도 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헨리는 기도를 올리고 다음날 비비탄으로 개구리를 쏴 죽인다. 결정적 순간이었지만 그 결정적 순간을 고이 간직할 만한 지속적이고 따스한 애정이 부족한 탓이었으리라. 가족 뿐 아니라 라는 존재를 둘러싼 그 모든 인물들이 중요함을 나는 고개 숙여 헤아려본다.

 

적이라니, 그게 다 뭔가. 그 사람들은 그냥 가족이야.”

렙은 중동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곳에서 무너진 잔해 속에 아랍어로 쓰인 교과서를 발견하여 고국으로 가지고 온다. 그 교과서 안에는 흑백 사진 세 장이 들어있었다. 낡고, 빛이 바랬으며, 먼지와 때로 얼룩져 있었다. 사진은 아랍인 부인의 사진, 젊은 아랍 남자의 사진, 그리고 귀여운 어린아이 둘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 등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낯선 사진을 렙은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있었다. 혹시 이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나 연고가 있는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서 말이다. 그걸 본 미치는 아무 생각 없이 적의 사진이 아니냐고 묻고, 렙은 그냥 가족이라고 답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종교와 종교 사이에 왜 우리는 벽을 세워 놓고 이 편과 저 편을 가르는가. 모두 같은 사람이고, 모두 존엄한 종교일진대.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껴안는 유대교인, 앨버트로부터 나는 내 종교를 믿고 따르는 것만큼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배웠다. 그랬다. 매 장마다, 매 순간의 그의 말로부터 나는 배우고 또 배웠다. 깨치고 깨쳐도 부족한 것이 많아 읽은 부분을 다시 읽으며 그의 말이 주는 여운과 감동을 혀 밑에 재워두었다. 적이 다 무엇인가. 그냥 가족이야. 가족. 부모를 사랑하고 자식을 아끼고 도란도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세상 어느 곳,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는 그냥 가족. 그가 유대교인이든, 힌두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사랑으로 함께 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하지만 헨리는 그 사랑의 공동체의 소중함을 모른 채 도박에, 마약에, 협박에 간음의 죄까지 저지르고 다녔다. 그에게 가족의 행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첫째 아이가 죽고, 가산이 기울자 그 슬픔과 시련을 그는 온전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순간의 약을 위해 그는 식료품도, 그의 가정도 내던질 수 있었다. 그가 약에 혈안이 되어 갱들과 한판 하고 집에 돌아온 순간, 비로소 그는 그의 가족의 신변에 어떤 위해가 끼쳐질지에 대해 불안해 하며 온 밤을 하얗게 새웠다. 그들이 쳐들어 올 순간을 대비해, 쓰레기통 뒤에 몸을 웅크리고 말이다. 밤새 하나님을 찾았다. 그가 저질렀던 악행을 생각하면 실로 뻔뻔함의 극치일 수밖에 없었지만 맹렬하게,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게다가 사람의 믿음이란 얼마나 얄팍하게도 쉬이 깨지던가.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은 정말 자신이 필요할 때 맹렬하게 찾아오는 배고픔처럼 본능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서로 부둥켜안는 그 모습...... 내가 보기엔, 그게 바로 천국의 또 다른 모습이야.”

두 사람의 8년간의 만남, 8년간의 이야기. 그 속에서 또다른 인생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돌고 돌아, 하나님의 교회 목사로 살게 된 헨리까지. 우리는 함께 걸었다. 때로 나무 벤치에 앉아 햇살을 쬐며, 때론 이불을 둘둘 말고 정오의 게으른 햇살을 피해다니며, 천천히 함께였다. 한번 책을 손에 잡으면 한 번에 대여섯 시간씩 쭉 훑고 내려가던 긴장의 독서 습관이 이 달은 예외였다. 나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길이 너무 빠르지 않게, 가뿐 호홉으로 쉬 스쳐가는 부분이 없도록 느슨하게, 그렇게 읽었다. 아껴 읽고 싶었다. 미치가 렙을 만나며 이따금씩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를 염려하듯,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이 두려웠다. 책을 덮고 나서의 그 공허함과 아쉬움이 두려워 나는 조금씩 천천히 씹었다.

하지만 결국 미치는 렙의 추도사를 읽게 되고, 나는 책을 덮었다. 헨리 목사가 사람들에게 레비 렙’(목사 앞에 붙이는 경칭) 이라고 불리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앨버트 렙의 사랑을 전도하는 인생의 역사가 헨리에게로 옮겨 간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앨버트의 죽음이 두 번째 죽음, 즉 잊혀지는 죽음이 되지 않기 위해 미치가, 헨리가,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사랑을 말하고 실천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5월 중순이나 되어야 봄같은 기운이 돌아온다는 뉴스를 들으며 긴팔 티에 외투 하나를 껴입고 출근했다. 하지만 여직 춥다-라는 불평대신 이제 곧 봄이라는 기대감에 출근길이 즐겁고, 행복하다. 천국은- 서로 부둥켜안는 그 모습이다.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이 인생길이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랴.

h*******5 2015.09.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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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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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 슈워츠'같은 스승님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받고, 이번엔 랍비인 '렙'과 목사인 '헨리'를 통해 또 다른 가르침을 얻었다.   8년의 동행은, 특정 종교를 떠나 신을 믿고 그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책이다.   미치 앨봄은 아직도 렙이 왜 추도사를 그에게 부탁했는지 궁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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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 슈워츠'같은 스승님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받고,

이번엔 랍비인 '렙'과 목사인 '헨리'를 통해 또 다른 가르침을 얻었다.

 

8년의 동행은,

특정 종교를 떠나 신을 믿고 그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책이다.

 

미치 앨봄은 아직도 렙이 왜 추도사를 그에게 부탁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만,

그의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렙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렙이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 하지만 난 늘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해.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믿어야 하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믿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여전히 종교 문제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고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h********5 2010.05.01.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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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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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을 떠올리면 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함께 떠오른다. 몇 번을 읽어도 그 때마다 가슴 먹먹한 감동을 전해주는 그의 책은 늘 똑같은 일상을 지겨워하는 내게 '사랑'과 '용서'를, 그리고 '삶'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붙박혀 떨어지질 않는다. 미치의 은사 모리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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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을 떠올리면 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함께 떠오른다. 몇 번을 읽어도 그 때마다 가슴 먹먹한 감동을 전해주는 그의 책은 늘 똑같은 일상을 지겨워하는 내게 '사랑'과 '용서'를, 그리고 '삶'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붙박혀 떨어지질 않는다. 미치의 은사 모리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것을 보며 나에게 가만히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가', 라고.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부끄러운 삶을 살았음을 깨닫게 되자마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떠난다면 나의 이 한 몸 어디 의탁할 곳이도 없으면서 말이다.
 
미치 앨봄이 쓴 "8년의 동행"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렙의 자서전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종교를 떠나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게 된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모습은 누구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힘을 가진다. '죽음'은 타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다가가지만 끝내는 '사랑'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황혼기에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는 길의 은혜일 것이다. 
 
원래 내가 가진 것보다 타인이 가진 것이 크게 보이는 법이다. 나의 허물보다 타인의 허물이 더 크게 보이듯이 말이다. 미치가 모리와 함께 한 시간들, 랍비 렙과 함께 한 8년의 시간을 지켜보면서 그가 얼마나 큰 행복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심과 함께 하염없이 부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인생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이 나에게 멘토와 같지만) 이렇게 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사랑'과 '용서', '삶'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미치는 랍비 렙의 이야기뿐 아니라 또 한 사람 헨리에 대해서도 들려줄 말이 많다. 자신처럼 믿음을 되찾아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까지 힘겨운 것은 똑같지만 자신이 살아온 길과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던 헨리를 통해 우리들에게 또 다른 교훈을 전한다. 랍비 렙의 이야기에 비해 헨리의 삶은 거창하지도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에게 닥친 수많은 불행에 신을 원망하며 나락으로 떨어져도 신은 다시 한 번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제는 예전의 삶을 모두 덮어버릴 수 있는 큰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가고 있다.
 
헨리의 살아온 시간을 들여다 보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행복을 가지고 있는지, 나처럼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헨리의 영혼이 그 누구보다 맑고 순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의 과거가 이제는 그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알게 되면서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된다.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라는 부탁이 미치의 삶을 변화시킨다. 헨리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헨리처럼 극단적인 삶을 살아가진 않았지만 분명 미치의 삶도 렙을 만난 8년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달라졌을 것이다. 가슴에는 사랑이 꽉 들어찼을 것이고 헨리 같은 사람을 보는 시선도 달라져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신은 과거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만을 지켜볼 것이라는 헨리의 말과 함께 이런 생각이 나의 기억속에 오래 머문다.
 
미치가 렙을 만나며 던진 수많은 질문들, 그리고 나에게도 던진 질문들에 나는 하나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 않아서? 아니,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진지하게 나에게 물음을 던져 본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저절로 주어진 삶이 아닌데 왜 나는 조금도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미치가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렙의 시선을 피해 다녔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아름답지 않은가?", "인생 말이야"라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듯 이야기 하는 렙을 보면서 "그렇구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제야 마음속에 등불이 하나 켜진 듯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죽음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세상을 앞서 떠나간 사람이 기다리는 곳에는 무엇이 또 날 기다리고 있을까. 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렙처럼 나의 죽음을 기다리며 "추도사를 써주지 않겠냐?"고 타인에게 절대 부탁하지 못할 것이다. 저 너머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해도 지금의 내가 이곳에서 잊혀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힘들다. 생각만으로도 분해서 울분이 끓어 오르고 눈 앞에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렙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를 통해 후손들과 어떻게 나의 삶이 이어질 수 있는지 말해줬다. 나에게서 이어진 끈은 내가 살아온 삶이 모두 헛된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삶이 다하여 죽더라도 그리 억울할 것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미치가 말하는 두 번 죽는다는 것. 사람은 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사람들에게 결코 잊혀지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미치, 그가 들려준 "8년의 동행"을 읽은 후 어떤 것들이 가슴에 남았는가. 그것은 아마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물음일 것이다. 렙이 나에게 들려주는 삶, 아름다운 인생말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주는 그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한다면 이 책을 읽은 후의 삶이 분명 그 이전의 삶과 달라질 것이다.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죽음이 가까워진 한 사람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한 문장이 사람들의 인생에 어떤 물음을 던져줄지 이 책을 읽는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삶? 그래, 정말 삶은 아름답다. 누구나에게 삶은 소중하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처음으로 깨닫게 된 교훈일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고, 그만큼 잃어버린 것들도 많지만 단 한 사람의 기억속에 내가 남겨지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행복일 것이다.  
y*****6 2010.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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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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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로 우리에게 유명한 미치앨봄. 나도 꽤 오래전 거의 7~8년전에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별뜻없이 구입해서 읽다가 마지막엔 눈물을 흘리며 책장을 덮었던 .. 모리의 죽음과 함께 여러가지의 깨달음을 얻었던 감동적인 책이었다. 그 후 미치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도 구입해서 읽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만큼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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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로 우리에게 유명한 미치앨봄.

나도 꽤 오래전 거의 7~8년전에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별뜻없이 구입해서 읽다가 마지막엔 눈물을 흘리며 책장을 덮었던 .. 모리의 죽음과 함께 여러가지의 깨달음을 얻었던 감동적인 책이었다.

그 후 미치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도 구입해서 읽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미치앨봄이기에 쓸 수 있는 담백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글이 참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정말 오랜만에 미치 앨봄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고 읽게되어 너무 좋다.

이 책은 약간은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 책이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며 읽다보면 어떤 특정한 종교에 국한하지 않는 우리 삶 전체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람의 믿음과 의지를 강조하는 것을 깨달을수 있다. 나는 종교도 없고 특히 기독교나 개신교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읽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이 책 역시 미치 앨봄이 직접 겪은 실화를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저자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유대교 회당에 나가고 성경학교도 다니는 등 종교활동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신앙심이 투철하지는 않은 아이였다. 유대교 회당에는 랍비인 렙이 있는데 성인이 된 미치앨봄에게 그가 어느날 한가지 제안을 한다.

 

" 내 추도사를 써주겠나?"

 

그는 지금까지 추도사를 써본적도 없고 추도사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예배드리기가 싫어서 늘 피해다녔던 렙의 부탁인데 .. 고민을 많이 하지만 한번 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 앨버트 루이스 - 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에 정기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 만남을 통해서 삶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또 그의 살아온 이야기 등등 많은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어느 새 만남의 횟수가 지속되고 시간이 1년.. 2년.. 이 흐르면서 그와 절친해진다. 그를 이해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에는 또 한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 주인공의 의미를 잘 몰랐다. 또 다른 주인공인 헨리 코빙턴은 어린시절 힘들게 자랐고 10살때 예수님을 받아들이긴 했으나 온갖 범죄에 빠져서 타락한 인생을 산다. 그러다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치사과실죄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신앙심이 투철하지 않았던 미치앨봄은 한 해 두해 렙과 만남을 지속하면서 모든 종교를 인정하고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떤 낡은 교회에 후원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그곳은 바로 헨리가 죄를 뉘우치고 운영하고 있는 교회였다. 처음에는 헨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던 그도 어느새 헨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시간은 흘러 렙과 만남을 갖게 된지 8년... 서서히 쇠락해 가는 렙을 보면서 미치앨봄은 서서히 추도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처음 추도사를 제안받았을 때에는 당장 써야하는 줄 알았다가 만남이 지속되면서 추도사를 최대한 늦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었는데 렙은 건강이 많이 악화 된다. 그리고 렙은 우리의 곁을 떠났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을 읽을 때처럼 렙이 떠나갈 때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가는순간까지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렙이 미치앨봄에게 해준 이야기 중 "오늘 하루도 선물" 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가 시작되면 "오.. 오늘도 저에게 하느님이 보내준 선물이군요. 즐겁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그 말은 내 가슴에 오래 기억될 것 같다.

l****j 2010.04.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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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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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 상당히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내가 읽은 자기계발서 중에서 유일하게 가슴 따스하도록 몰입하게 한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을 만큼 대단한 필력과 감동을 지녔다. 당연히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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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 상당히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내가 읽은 자기계발서 중에서 유일하게 가슴 따스하도록 몰입하게 한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을 만큼 대단한 필력과 감동을 지녔다. 당연히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가치관도 따스하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라는 인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더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정도가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 전부였다. 하지만 실은 그와 반대였다. 잘 나가는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방송 진행자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을 만큼의 화려함과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혹은 그에 집착하는 세속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또다시 책을 냈다. 한 명의 스승으로부터 연결된 또 한 명의 스승, 그러니까 두 명의 스승을 8년간 만나면서 서로의 인생관에 대해서 나누는 과정을 글로 옮겨 쓴 것이다. 한 명은 랍비 앨버트 루이스였고, 또 한 명은 헨리 코빙턴 목사였다. 여기서 미치 앨봄이 유태인이란 사실을 알았는데 그의 종교적인 관습을 이어내려가도록 돕는 랍비와 세상의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녔던 범죄자에서 개심한 빈털털이 목사가 된 그에게 미치는 무엇을 봤을까? 처음 시작은 단순했다.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라는 렙(유대교 성인 남자에게 붙이는 경칭, 여기서는 앨버트 루이스를 말함)의 질문에서 시작된 기나긴 동행은 처음에는 신앙심이 깊지 않은 미치에게 당혹스러웠지만 그 끝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심의 바람을 품게 될 정도로 렙을 존경하게 되었다. '앨버트 루이스'라는 랍비가 개신교 교회가 많은 뉴저지 주에서 어떤 독보적인 존재였는지는 떠나서 한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관용과 이해, 배려는 정말 다시 없을 감동이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미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대인 회당이 있는 뉴저지에는 성당이나 교회가 압도적으로 많아 유대인 회당이 들어오지 못하게 탄원을 들어갔을 정도로 유대인 세력이 미미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앨버트가 부임하면서 타 종교간의 오해와 불식을 없애기 위해서 신부님과 목사님과 돈독한 우애를 나누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셨다. 그저 제 신자가 잘 지내고 있는지 가정 방문을 한다거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등의 그 때 그 때 필요한 일에 전심을 다하여 행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미했던 유대인 회당은 많은 신도들을 끌어모으기도 했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에게 찾아와서 많은 조언을 부탁하기도 했다고. 항상 노래부르기를 그치지 않았던 렙은 죽어가는 마지막까지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감동스런 연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했던 것 뿐 아니라 존재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렙은...

 

반면 헨리 코빙턴 목사는 목사가 되기 전에 아주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 아버지가 마약상이었던 것도, 주위 환경이 그를 타락으로 몰아간 것도 그 이유가 있었겠지만 살인을 방조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는 등의 악행을 일삼던 그가 개심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살려주신 때였다. 쓰레기통 뒤에 앉아 총을 붙들면서 자신을 죽이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 절 살려 주시겠습니까?" 남은 인생을 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겠다고 절박하게 고백하는 그에게 그날 기적이 일어났다. 마약을 훔친 사람이 누군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그를 잡아 죽이려고 당연히 와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기적은 헨리를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노숙자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겨울이 되면 얼어죽을 수 있는 그들에게, 마약과 범죄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헨리 목사는 진리를 가지고 나타났다. 자신이 그렇게 몇 번이나 마약에 손을 댔던 사람이기에, '이번 한 번만~' 하며 범죄를 저질렀던 경험이 아주 많았기에 헨리 목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헨리 코빙턴 목사는 미치가 후원해야 할 단체를 물색하고 있었을 때 만났다.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만 하는 그에게 아마도 미치의 후원이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헨리 목사가 마약상이자 마약중독자였던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헨리 목사는 밝혔고, 악인이 개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 미치는 그에게 후원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러다 교회의 지붕이 뚫리고 그것을 보수하기 위해 8만 달러가 필요한 상황에서 미치는 작은 방수포 하나를 준비해준다.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그것밖에 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하지만 헨리 목사는 그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미치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선한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칭송받기를 바라기보다는 이제껏 저지른 많은 죄악을 회개하고 보상하고자 하는 선행이었기 때문이다. 죽고 나서 자신이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그것은 상관없다고 한 헨리 목사의 말에 미치는 움직였다. 그래서 쓴 목사에 대한 칼럼이 배부가 되자, 세상이 그들에게 갚아주었다. 노숙자들이 평생 입고도 남은 한 방 가득히 들어찬 옷가지와 전기 회사의 배려와 많은 사람들이 음식으로 그들을 섬기게 된 것이다. 작은 한 알의 밀알이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미치는 해냈다.

 

미치가 그런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게 된 것도 모두의 시작은 렙이었다. 렙의 끊임없이 샘솟아 나오는 긍정어린 힘, 밝고 순수한 마음, 깊고 신실한 믿음이 신앙을 버린 미치에게도 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신앙이, 종교가 없어지는 세상이 온다고 예측했던 것이 다 사라지는 요즘, 오히려 우리가 삶을 지탱하는 데는 신앙과 종교가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미워하고 못살게 구는 것은 어느 종교나 바라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교리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사랑을 말하는 종교가, 자비를 말하는 종교가 남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모든 생물에 대해 측은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조금 더 배려를 가지라고 조언할 것이다. 아무리 물질이 대세인 세상이라지만, 사람의 인성과 따스한 마음이 없어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그것이 정답이다.

j*****3 2010.04.0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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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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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너무 감성적이지 않나 싶을때가 있다.책 표지에 나온 짧은 글. '아름답지 않은가?''네?''인생 말이야.' 이 글을 읽고 한참을 감상에 빠져있었다.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을 감동깊게 읽어서 그럴까.저 짧은 글에도 왠지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할것 같고, 그냥 마음이 뭉쿨해진다. 인간은 늘 신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 는 구절을 읽을때는 왠지 모르게동감이 가면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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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너무 감성적이지 않나 싶을때가 있다.
책 표지에 나온 짧은 글.

'아름답지 않은가?'
'네?'
'인생 말이야.'

이 글을 읽고 한참을 감상에 빠져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을 감동깊게 읽어서 그럴까.
저 짧은 글에도 왠지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할것 같고, 그냥 마음이 뭉쿨해진다.

인간은 늘 신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 는 구절을 읽을때는 왠지 모르게
동감이 가면서 마음이 찡해졌다.
무엇때문에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늘 인간은 신앞에 있어서 죄인인것 같고,
왠지 도망가야할꺼만 같은 마음이 늘 자리잡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신 앞에서 인간은 작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보잘것 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나는 신앙이 아주 깊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신과 대화를 나누는 책이라던지. 신앙에 관한 감동적이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에 큰 감동과 눈물이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주고받는 대화와, 주인공의 감정변화나,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쉽게 이야기에 집중할수 있게 만들어준다.
신앙이 깊지 않아서, 책에 나오는 신앙적인 부분에 공감을 할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내용들 조차, 내 나름데로 해석하면서 받아드리면서 읽어 나갔다.

글을 읽으면서 가르침을 얻는 기분이였고, 마음에 무언가 가득차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눈물이 나지 않는 부분일수도 있는데 나는 눈물이 나오고 벅차 오르는
감동을 느끼곤했다.
책 내용속에 내가 너무 깊게 빠져들고 있다는걸 느꼈고,
그래서 더 감정 몰입이 심했던것 같다.

내가 평소에 생각해오던 나의 가치관과도 비슷한 책이였고,
많은 여운을 주는 책이였다. 나와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한 삶에 의미르
다시한번 느껴보는 책이였던것 같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 종교가 다르고, 나와는 다르지만 우리는 내 이웃을 사랑하고 감싸주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들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덮고서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고, 그 감동이 잔잔하게 깊게 오래가는 책이였다.

d*****4 2010.03.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8년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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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기독교, 천주교인 사람들은 믿는다.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길거리에서 외쳐도 사람들은 한 귀로 흘려듣는다. 이런 경험을 한 나에게 과연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을까? 종교라는 거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이 책은 좀 더 생각해보게 한다.   헨리 = 사회적으로 보면 전과자, 마약 중독자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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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기독교, 천주교인 사람들은 믿는다.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길거리에서 외쳐도 사람들은 한 귀로 흘려듣는다. 이런 경험을 한 나에게 과연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을까? 종교라는 거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이 책은 좀 더 생각해보게 한다.

 

헨리 = 사회적으로 보면 전과자, 마약 중독자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

이 사람이 목사님이 되어 사회에 봉사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적고 있다.

렙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처럼 인생에 있어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나가도록 도와주는 스승...

 

이 두사람을 통해서 믿음에 대해서 또 종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헨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실제의 이야기이므로 더 간증과 같은 이야기였다. 어릴 적 부터 하나님이 끊임없이 만나기를 원했던 헨리...하지만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아이.....나도 혹시 하나님이 끊임없이 나에게 기회를 주시고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데 나의 욕심때문에 다른 길로 가는거는 아닌지 생각해본다.

 

 

렙을 통해서 세상적인 욕심이 얼마나 쓸데없는것인지, 봄,여름,가을,겨울 8년동안의 미치와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도니다.

 

이사야 말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렙은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삶의 원칙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또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1.언제나 사람을 좋아했다. 2. 온화함을 사랑함

3. 인내심이 있음 4. 가르치는 일이 즐거움, 5. 나의 신앙과 믿음에 확신이 있음

6.과거나 전통과 연결된 삶을 살 수 있다.

 

-올바른 삶을 살고, 선한일을 해하고 축복받는 삶 하나님이 내 삶의 0순위의 삶이라면 헨리가 기도한 것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 채우기 바쁘고, 또 채우고, 채운 후 더 많이 갖고, 더 크게 이루고, 더 인정받고 , 더 잘나려고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과 비전을 가지고 사랑으로 가슴이 꽉 찬 삶을 살고 싶다.

c********k 2010.05.18.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