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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Z 건담, 짧게 줄여 <제타> 시리즈 소설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1편 후반부 티탄즈의 모빌슈츠 건담마크투를 훔쳐타고 우주로 달아난 주인공 소년 카미유 비단이 반-티탄즈 단체인 에우고로 귀순하는 과정에서 콕피트의 공기가 새어 곤란을 겪는 장면이다.
실제 TV에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상에서는 굉장히 짧게 처리되어 있는 부분이지만 소설책 속에서는 제법 몇 페이지를 할애하여 다루고 있는데 작가가 꽤나 그 부분에 신경을 써서 묘사를 하고 있는 듯하다. 넓고 넓은 우주로의 첫번째 이동 게다가 타고 있는 기체 역시 주인공 소년이 처음 몰게 된 실물 모빌슈츠로 민간인 신분이 모빌슈츠를 이렇게 조종하는 것은 1년전쟁 당시의 아무로 레이 이후 처음이지 않나 싶은 일이다. 공기가 새는 좁은 콕크피트 속에 혼자 앉아 앞일을 알 수 없는 항해를 계속하는 주인공 소년의 심정, 그 공포감은 제법 실감이 나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건담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체험담(?)이 섞인 것인지 그 와중에서도 소년 카미유의 머리 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엉킨다. 질식해 죽은 여자 시체의 사진, 잠수함에서 공기가 없어 죽어가는 병사의 불룩 튀어나온 음경, 여자친구 화의 다리 사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부질 없는 허세 등등이 카미유 비단의 머리 속을 떠돈다. 산소부족으로 죽어가는 자의 부질없는 음경발기처럼, 공기 새는 콕크피트 속에서 죽음의 공프를 느끼는 그 순간 소년의 머리 속을 떠도는 것은 여자친구의 다리 사이인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지옥을 겪은 전쟁 세대와 '전공투'라는 과격한 투쟁의 시대를 겪은 잔인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담겨 있는 것인지 불쑥불쑥 등장하는 소설 속 잔인하면서도 실감나는 묘사들은 애니메이션과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맛은 권선징악을 다루고 있는 단순한 소년 취향의 로봇 만화를 벗어난, 씁쓸하면서 속이 뒤틀리는 맛이다. 겉만 보면 로봇의 전투장면이 나오고 변신합체가 나오고 완구와 플라모델이 불티나게 팔리는 성공한 로봇 애니메이션의 소설판이건만 부분부분 따져서 혀를 대고 핥아보면 현실의 시멘트 콘크리트 맛이 느껴진다. 어른의 좌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야 어찌 되었든 기동전사 제타의 스토리, 적어도 소설 속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소년 카미유는 우주를 건너 에우고에 몸을 담고 티탄즈에 맞써 싸운다. 티탄즈는 한국의 <하나회>를 연상하면 되는 권력을 탐내는 정치군인 세력이다. 티탄즈 일당은 '5월의 광주'와 같은 30번치 학살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조직의 리더는 대머리 남자 바스크 옴이다. 우주로 뛰어든 소년은 반군부 민주화 세력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만 것이다.
소년이 좁은 콕크피트에서 상상하던 남자와 여자의 죽음은 이후에 소년과 만났던 또는 소년과 대적했던 이들의 죽음으로 현실화된다. 소년의 부모 역시 비참하게 사망하고 만다. 공기가 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엉뚱하게도 소년이 떠올리는 것은 여자친구 화 유이리이의 다리 사이다. 강화인간 포 무라사메, 로자미아 바담 등 뭇 여성들을 만나 사랑을 나눈 뒤에도 결국 그때 망상의 대상이었던 화 유이리이의 품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 소년의 운명인 것이다.
그때 그 공기가 새는 좁은 콕크피트 안에서 공포감에 질려있던 소년이 끝내 미쳐버린 장소 역시 그 좁은 콕크피트 안이었다. 부모의 죽음, 동료의 죽음, 애인의 죽음을 연이어 목도해야만 했던 소년은 끝내 제 정신을 잃고 만다. 마지막 전투를 마치고 좁디좁은 콕크피트 안에서 멍하게 정신을 잃고 자아상실 상태가 되어버린 소년을 안아주는 것은 여자친구 화의 따뜻한 품인 것이다.
어쩌면 소년이 미쳐버린 것은, 그 미쳐버림의 씨를 잉태한 것은 첫번째 우주 항해에서의 공포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며 책장을 덮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질식의 공포에 미쳐버린 소년의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첫번째 우주비행의 심리적 압박과 새어나가는 공기 속에서의 질식의 공포는 소년에게 여러가지 환상을 심어준다. 소년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브라이트 노아 함장과 1년전쟁의 영웅이었던 아무로 레이를 만난다. 연방군의 악몽이자 스페이스노이드들의 희망이기도 한 샤아 아즈너블을 만나 왜 정체를 숨기느냐 따져 묻기도 하고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변신 로봇에 탑승하여 적을 무찌른다. 쭉 이어지던 소년의 꿈은 끝내 해피엔드가 되지 못한다. (마크투에서 제타로, 탑승하고 있던 모빌슈츠만 바뀐 채) 소년은 미쳐버린다.
몇 번의 전투와 몇 명의 여자를 거쳐왔던 그동안의 시간은 소년이 질식해서, 우주의 압박감에 시달린 끝에 '미쳐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좁은 콕크피트에 공기가 새어나가듯 그렇게 우리 인간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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