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고전 중에서 [노자]는 단연 짧은 텍스트이다. 단 5000여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의 학자들은 [노자]의 단어 하나, 글귀 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내고자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자]에 나와 있는 내용을 요약문이라 생각했기에 그 행간에 숨어있는 내용을 복원하려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읽는 [노자]의 주석이나 혹은 [노자]를 해설한 책을 보면 여느 고전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분량을 가지고 있다. 과연 노자는 후세 사람들 생각마냥 텍스트에 자신이 유세한 사상을 요약하여 쓴 것일까? ‘중국고전을 읽다’ 시리즈의 하나인 [노자를 읽다]는 시리즈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노자]를 해설하기보다는 노자가 살았던 시대의 문화와 텍스트인 [노자]가 쓰여진 배경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고 있다. 텍스트를 읽기에 앞서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안다는 것은 텍스트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보았을 때, 이 책 역시 [노자]를 읽기에 앞서 먼저 읽어보아야 할 책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도가라 부르며 노장사상으로 묶어서 말하는 노자와 장자는 둘 다 도(道)를 근본으로 삼았다. 그들은 모든 현상과 변화의 이면에는 일체의 자연을 움직이는 법칙이 있고, 도가 그 법칙의 주재자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도의 존재를 명확히 이해하고 도의 규율을 탐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것이 노자와 장자의 유일무이한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도를 이해함으로써 장자는 편협한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외부기준 속에 자신을 함몰시키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 반면, 노자는 그렇게 이해한 도의 목적을 처세와 권력에 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즉, 장자의 도가 출세간(出世間)의 道였다면, 노자의 도는 입세간(入世間)의 道였던 셈이다.
저자는 도가가 처음부터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나라 초기의 도가는 황로(黃老)가 존승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도가는 정치와 통치에서 무위(無爲)를 중시하며 백성과 함께 휴식한다는 사상에 중점을 두었고, 대표인물로 노자와 선사시대의 황제(黃帝)를 꼽았다. 그러다 한나라 말기에 이르러 혼란의 난세가 계속되자 백성의 고통과 불안을 가라앉혀줄 새로운 철학과 지혜가 필요하게 되면서 황제가 폐기되고 장자가 노자와 동급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는 도가가 정치철학 또는 통치원리에서 벗어나 인생철학을 중시한 난세속의 세계관으로 바뀜을 의미했다.
텍스트로서의 [노자]는 여느 고전과 달리 가장 권위적인 문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논어]처럼 묻고 답하는 대화 없이 오직 답안만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정황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맹자]나 [장자]처럼 논쟁이나 변론이 없고 오직 설교만 있다. 이는 받아들이든 아니든 읽는 본인 스스로에게 맡긴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그런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으며 텍스트는 이것을 반복하여 말할 뿐이라고 한다. 하나는 만물에 앞서는 道의 존재에 대한 것으로, 도는 영원불변하며 어지럽게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만물의 변화를 관장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有)와 무(無),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등의 분별을 통한 道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위해 노자는 분별을 버리고 혼돈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분별이 생기기 전의 혼돈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도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자]는 어떻게 하면 도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군왕 또는 지배층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노자는 신비에 쌓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텍스트로서의 [노자] 또한 현묘하거나 요약문처럼 인식되면서 심오한 수수께끼가 숨어있다고 오해받아왔다고 한다. 그러한 환상과 오해를 걷어내면 [노자]는 전쟁에 지친 백성들에게 인생철학과 처세법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고, 군주에게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통해서만 권력을 더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음을 역설한 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전국시대 후기 혼란스럽고 매일같이 계속되는 전쟁 상황을 고려해야 이해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노자]가 反지혜, 反문화적 성격을 띠고 있더라도 당시의 시대상황과 함께 읽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유용한 삶의 지혜를 찾아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서 [노자]를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동양고전의 경우 앞으로 새롭게 읽게 되면 저자가 말한 고전의 틀과 시대적 상황을 생각하며 읽겠지만, [노자]의 경우는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혹 환상과 오해에 있었던 것이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어찌되었던 저자의 ‘중국고전을 읽다’ 시리즈는 내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시리즈의 다른 책을 찾아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