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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정부가 선언하던 날. 나는 고3을 앞두고 있었다. 여기저기 쏟아지던 명예퇴직자들에 놀란 어머니는 내게 대학에 가는 대신 9급 공무원 시험을 보길 권하셨다.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안정된 직장을 갖는게 제일이며, 9급 시험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가 가장 확률이 높다는 얘기였다. 자식을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려는 세상에서 '고졸'을 권유하게 된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것이 내게 다가온 '위기'의 모습이었다.
나라가 국민에게 바라던 것도 어머니의 바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졸'에서 '고졸'로 기대를 낮추듯이, 나라는 정년보장과 정규직에 대한 기대를 낮추라고 했다.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대량의 해고자가 발생했고,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에겐 이기적이라 몰아세웠다. 바야흐로 참고 견뎌야 할 때였고, 서울역은 붐벼만 갔다. 그리고 2001년. 대통령은 'IMF 졸업'을 선언했다. 위기는 극복된 것이었다. 그런데 '위기 극복'은 '위기 이전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았다. 해고는 더욱 자유로워졌으며,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났다. 오늘날 비정규직은 800만에 육박한다. 위기는 우리 삶을 직격하되, 위기 극복은 우리 삶을 복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알게된 진실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공무원에 대한 미련을 드러낸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볼 때 처방이 옳다면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기'에 대한 우리의 처방은 옳았을까. 정부가 '위기 극복'을 선언했으니 처방은 옳았던 것이고 회복이 되어야 했다. 분명 수치로 표시되는 경제는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서민들의 삶은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이 된 것이 결국 '수치'였다면, 우리의 처방은 딱 그만큼만 옳을 뿐이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세계적으로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 국내적으로는 제2의 IMF라며 떠들썩했다. 하지만 실제로 위기에 대한 처방은 특별하지 않았다. '기업에는 자유를, 파업에는 진압을!'이라는 구호는 익숙했고, 금리를 낮추고 외환보유고를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10년 전의 그 처방과 유사했고, 역시나 정부는 수치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서민의 삶은 회복되지 않는다. '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너무 예상대로여서, 위기 극복 후의 삶에 희망을 걸진 않는다.
그래서 이 책 『세계금융위기 이후』는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세계 금융위기가 가져온 충격과 그 극복의 방향을 '수치'가 아닌 '삶'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일이었고, 높은 수치의 경제에서 이익을 보는 이들은 관심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입바른 소리 하다가 더욱 가난해진 경향신문 기자들이 나섰고, 이들이 거의 1년 동안 전세계로 발품을 팔았다. 이 책은 바로 그 기획연재물을 모은 책이다.(당시에는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라는 제목으로 연재)
기자들은 금융 자유화로 1인당 GDP가 6만 달러에 이르렀으나 세계금융위기로 폭삭 무너진 아이슬란드를 방문하고, 세계금융위기의 진앙지 미국을 방문한다. 또 이 위기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북유럽권 나라들도 찾았다. 금융세계화로 하나로 묶인 세계에서 어느 한 곳 금융위기의 파장은 비켜가지 않지만 나라에 따라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히 달랐다. 장기 실업자가 넘쳐나는 아이슬란드와 집을 뺏긴 사람들로 넘치는 미국과 달리, 지방정부가 끊임없이 고용을 창출하고 보육-의료 서비스와 노년연금까지 보장되는 북유럽은 위기 속에서도 '안정된 삶'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양쪽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밀착취재한 부분은 '위기가 삶을 직격한 사회'와 '위기 속에서도 삶이 회복되는 사회'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더욱 눈여겨 볼 것은 아이슬란드와 미국의 경우 금융 및 제반 경제활동에 규제를 최소화하고 감세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축소한 공통점을 보인 반면, 북유럽의 경우는 국가와 지방사회가 고용 및 공공서비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세금을 많이 부과해 사회안전망을 탄탄히 마련한 공통점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탄탄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 시스템의 해체시도를 봉쇄하는 '정치적 억제력'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북유럽의 특징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느쪽에 더 가까울까. 답은 명확하다. 위기가 삶을 직격한 우리 사회도 미국, 아이슬란드와 동일한 길을 택해왔다.
수치를 회복하려는 이들은 오늘도 나름의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리지만, 여전히 가던 길을 가려고 한다. 세련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말하고, 선진화를 외치지만 '삶의 질' 선진국들을 배울 생각은 없는 듯 하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꿈꾸는 우리들 자신이 우리 사회를 개선할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사실 북유럽도 강력한 노조의 힘을 통해 오늘날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진단을 할 지위도, 처방을 할 힘도 없었지만, 이제는 분명 목소리를 모아야 할 때다. 이 책은 그 작은 시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오늘의 어려움은 어디서 왔는지, 더 나은 내일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지. 튼튼한 미래, 삶이 회복되는 사회를 설계하고 싶다면 눈 여겨 봐야 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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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참고도서로 샀습니다. 내용 구성은 연대기순으로 나열되어 있고 전문적내용을 풀어써서 한번 읽고 또 읽어본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간 우리가 알던 내용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평범한 책입니다.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20대 실업자층 및 비정규직은 나날이 늘어간다. 각종 규제 완화 및 공기업 민영화 추진, 금융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유연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힘을 얻는다. 시장만이 최고라는 시장만능신화는 여전히 그 지위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금융위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현재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이 책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덫에 걸린 우리 사회의 현실과 그 대안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