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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라는 책의 이름과 저자 헤르만헤세라는 이름은 익숙은 하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 읽어보질 못했다. 30대를 넘어선 지금 이 책을 읽고 나니, 학창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겪은 내면의 균열과 동경하는 인물의 등장 등의 상황이 딱 그 학창시절 나이에 가질만한 고민과 상황들이기에 그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조금 더 풍부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가 생각해본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렸을 때엔 밝은 세계의 테두리 안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 속에 자라난다. 가족은 모두 도덕적이고 선한 삶을 바라보며 살고 있고 싱클레어 역시 그 안에 속해 있다. 하지만 크로머라는 인물의 등장, 데미안과의 만남에서 접하게 된 카인과 아벨에 대한 새로운 시각, 예수와 강도이야기 등을 통해 그는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영원히 속해있을거라 생각했던 그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원래 있던 곳에서의 세계 밖으로 튕겨진 싱클레였지만 그의 옆에 있어야할 데미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데미안에게 지구에서 날아오르려고 하는 새를 그려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책 사이에 꽂혀있는 쪽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이 책의 이부분에서 아프락사스라는 신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아프락사스는 빛과 어두움의 공존, 선신이면서 동시에 악신으로 이 답장을 통해 선과 악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자신의 고뇌에 대한 답을 찾는다. 데미안이 사라진 이후 그의 방황은 더욱 심해진다. 이후 그의 흔적을 찾으며 방황을 계속해나가던 어느날 그는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 만나게 된 데미안의 어머니를 보고 싱클레어는 그가 항상 꿈꿔오던 여성상이 그녀임을 깨닫고 사랑에 빠진다. 엔딩은 전쟁터에서 데미안의 키스를 받은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 밑바닥에서 데미안의 모습을 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깊은 울림이 있는 책. 결코 한번 읽어서는 책이 주는 의미와 감동을 모두 느낄수 없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의 자아가 데미안을 만나면서 고뇌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담긴 책. 누군가가 나에게 말한다. 갈길을 잃었다고 생각이 들때마다 꺼내어 읽으라고. 중간중간 들어가있는 홍성덕 작가의 사진은 책속에 빠져있는 동안 마치 복잡한 내면을 대변하듯 어지럽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한 느낌을 준다. 명작인 만큼 데미안은 여러곳에서 여러 스타일로 번역이 되어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온 데미안을 모두 읽고 싶어지는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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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데미안>이다. 읽으면서 어렵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전체적인 흐름과 줄거리야 어느 정도 파악을 했지만 헤세가 이 책에서 다룬 건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내용들, 특히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과 니체의 사상이 이곳저곳에 담겨 있어서 툭툭 막히는 곳이 적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래도 여타의 번역본들보다 청년정신에서 출판한 <데미안>이 훨씬 가슴에 깊이 와 닿은 건 책에 곁들인 홍성덕님의 사진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에 걸맞은 사진이 곁들여져 읽는 이의 부담감을 확 줄여준다. 책에 대한 내용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더욱 쉽게 느낄 수 있었고.
이번에도 여전히 나의 마음을 뒤흔든 구절은 유명한 그 구절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p.148)
예전에는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나온다는 점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알을 깨고 나와도 여전히 또 다른 알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부모라는 커다란 알을 깨고 나왔더니, 누군가의 부모라는 또 다른 알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 그렇지 않나? 무언가를 깨고 나와도 여전히 무언가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는 삶이지 않을까?
명작은 명작이다. 읽고 또 읽어도 늘 새로운 느낌, 새로운 생각을 품게 한다. 딸아이와 함께 읽을 때, 그땐 어떤 생각이 들까? 알을 깨고 나오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리라는 기대감이 다시 새로운 느낌에 빠져들 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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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에서 방영된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참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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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Apraxas다.’(p.148)
데미안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나의 학창시절에도 이
문장이 정말 유명했었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함께 거의 필독서와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데미안의 말이 어려우면서도 있어 보였다. 이런 표현이 이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도 몇 번 더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빛과 어둠속에서 방황하던 에밀 싱클레어처럼,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데미안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조금씩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일기장을 보면 데미안의 말을 옮겨 적은 것들이 꽤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 책이 대표적인 성장소설로 손꼽히는 것이 아닌가 했다.
그리고 요즘 다시 읽은 <데미안>은 조금 독특한 형태였다. ‘사진과 문학적 상상력의 행복한 만남!’이라는 ‘소설 사진을 만나다’의 시리즈로 만나게 되었다. 사진작가 홍성덕의 작품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나에게 데미안은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수채화 같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홍성덕의 사진은 추상화 같은 느낌이 아주 강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덕분에 줄곧 데미안에게 고정되어 있던
나의 시선이 싱클레어에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사진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번을 읽었던 책이라 쉽게 넘어가던 책장이 사진에서 번번히 멈췄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으리라. 그래서 이번에는 일기장에 이런 문장을 옮겨 적었다. 언제쯤 나도
데미안 같은 내 모습을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만날 수 있을까?
‘그러면 이제 완전히 데미안과 닮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데미안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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