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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
(요한 볼프강 괴테)
숨 쉬기에는 두 가지 은총이 있으니
들숨과 날숨이 그러하다.
들숨으로 부풀고
날숨으로 도로 줄어드니
놀랍게도 삶은
이렇게 섞여 있는 것
신이 너를 밀어붙일 때도 감사하라.
너를 놓아줄 때도 감사하라.
요즘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막막하고 무기력한 날들 중에
무심코 집어든 책 속의 괴테의 시는
그 자체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제 조금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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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진즉 당첨된 책.
<저자는>
<시집 읽고 느낀 바> 시가 나를 안아 준다 라는 제목이 맘에 들었다. 위안이 된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라는 테마에서 편안함을 예상했다. 이 시집은 신현림 저자의 시집이 아닌 신현림 엮음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골랐을테니 시인의 감성을 울린 시들이겠다. 시들은 감성적이라기보다는 다짐같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단단하게 해주는 시, 감성과는 거리가 먼, 그렇지만 감정이 지나간 자리의 굳어짐 같은 것들 말이다. 감정이 격하다거나 한없이 작아진, 혹은 자기 비하가 든다든지 등이 아닌 분출한 후의 감정처럼 담담하고 차분한 느낌.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고마'와 '같습니다'가 하나된 말이다. 고마는 땅의 신으로 우러르는 신성한 동물, 곰을 뜻한다. 고운 여자의 '곱다'도 고마에서 온 거라 한다. 말의 뿌리를 찾아가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당신은 대지의 신처럼 은혜로운 사람' 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쓸수록 나 자신도 빛나고, 남도 축복하는 멋진 말이니 마르고 닳도록 써도 좋으리라.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면 서로가 더 단단하게 이어진다. 나 자신이 태어나길 잘했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내 아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일. 감사하고 기도함으로 내면에서 솟는 힘을 느껴보라. 감사와 기도는 진정 내가 낮아져 겸손해질 때 얻어지는 축복이다. 겸손해지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사하면 괴로움이 다 뒤로 물러난다. '감사'야말로 존재의 예술이다. 154~155 페이지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고맙습니다 의 어원을 알고 감사합니다 의 뜻을 알고 나니. 상황 따라 다르겠으나 고맙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를 적절히 잘 사용할지어다.
파스텔톤의 시집은 9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대개가 처음 보는 시들이다. 시집 안에는 시와 어울림이 되는 파스텔톤의 그림들이 또 멋지다. 이 그림들 역시 처음 보는 것들이라 눈길이 오래 머문다. 신현림 저자가 엮은 시집 안에는 한국 시인의 시도 있지만 외국 시들이 더 많다. 외국 시는 가끔 읽으면서 시라고 할 수 있나 싶은 느낌을 많이 받는데 이 안의 시들은 좀 달랐다. 단어를 대하는 순간 움찔하게 되는 '자살의 경고'가 특히 남았다. 강한듯 여리게 말이다.
자살에 대한 경고 /에리히 케스트너
이 충고는 자네를 위한 것이야. 만약 자네가 권총에 손을 뻗어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면 내 가만 두지 않겠네.
세상이 재미없다고? 가난한 자와 부자가 있다고? 이봐, 뻔한 소리를 되풀이할 거야? 자네 시체가 관 속에 있어도 난 자네를 가만 두지 않겠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잡스런 일이야 아무래도 좋아. 비 맞은 놈처럼 불평하는 건 집어치워. 세상이 그렇고 그런 것은 어린애도 다 알아.
자네 꿈은 인류를 개선한다는 것이 아니었나? 지금 자네는 그 꿈을 비웃고 있겠지 하지만 인간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어.
그래, 나쁘고 형편없는 놈들이 버글버글하다는 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개처럼 죽을 수야 없지.
최소한 오래 살아 놈들에게 약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어?
살자를 거꾸로 하면 자살이 되고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언어 유희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삶과 죽음은 글자 한 자 차이의 간격이지만 그 거리는 이승과 저승이라는 평생 알기 어려운 거리가 된다.
자네 라는 표현에서 친구나 자신보다는 연배 낮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자네/가 자살할 지 모른다는 느낌이 많았던 모양이지 싶다. 자살에 대한 경고 라는 시를 빌어서 이렇듯 준엄하게 꾸짖으며 당부하니 말이다.
내가 이 저자 이름을 기억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검색하니 알만한 책들은 없는데 마주보기 라는 제목이 낯익다. 그럼에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런 이 제목의 시집이 있네 ㅋㅋㅋ 언제 다시 꺼내 읽어봐야지 다짐하는 나.
가치들 /에바 슈트리트마터
삶에서 좋은 것들은 모두 가격이 없다 공기, 물, 사랑.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그저 주어지기만 한다면 삶을 귀하게 여기기 위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금방 시시해지는데.
어렸을 때 우린 맛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공기를 삶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을 탐하지 않는 사랑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젠 숨 쉬기도 힘들어하며 시간을 함께 들이마신다. 바쁘고 중요한 하루를 살아가며 물 대신 포도주를 마신다. 사랑에서 벗어나 의무와 부담으로 움직인다.
삶이란 가치가 낮다고 여기는 이에게는 너무 비싸게만 느껴지는 법. 241페이지
살다 보면 생각조차 못하고 살던 것들이 정말로 소중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합니다. 공기, 신선한 공기가 그렇습니다. 봄날=황사 가 세트였는데 미세먼지를 넘어 초미세먼지가 기승입니다. 이런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콧속이 답답해집니다.
소중한 것들은 잘 드러나지 않아서 진가를 알게 되면 높은 가치를 인정받지요. 공기마저도 캔으로 판매하는 사회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벤트에서 사람을 대신하는 경우도 봅니다. 결혼식의 부모님부터 모조리 대행였다는 것. 사랑도 팔고 사는/이란 노랫말이 현실이지요.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살고 싶었던 그 하루가 오늘일 수 있음을요.
잠자리에 누워 책을 보다 자는 경우는 일 년중 몇 번 되지 않는다. 자기 전에 책을 보다가 잘 때는 곧장 불끄고 잔다. 그렇기에 베갯머리에서 읽는 시집이라면 편안한 시집이라야고 편안한 시집이란 익히 알고 있는 시들이지 않을까. 같은 시를 읽어도 장소나 감정 따라서 뜻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단걸. 특히나 밤이라는 시간은 감성이 동한다. 모든 면에서 무장해제 상태니 받아들이는 감성이 다르다. 오죽하면 밤에 쓴 편지는 담날 읽으면 못 보낸다지 않는가. 그런면에서 이 시집은 베갯머리 시는 아니었다. 대개가 처음 보는 시들의 조합이었기에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잘 읽어야했다. 정신바짝 차리고 베갯머리에서 읽자면 잠이 오겠는가. 베갯머리에서 읽는 시로 내게는 적합하지 않겠으나 평소 손닿는 위치에서 꺼내볼 수 있는 시집이 되었음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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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할때 시 한 편을 읽고, 하루를 마감할 때 시 한 편을 읽는다면 우리는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을까. 지치고 힘들때 읽는 시 한 편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다. 짧은 시에서 가슴을 치듯 다가오는 느낌에 우리는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쓰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하다보면 시는 더 깊이 스며든다.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교감이 되어 스며드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최근 시집을 자주 읽게 되었다. 한 장소에 앉아서 한 권의 시집을 다 읽는게 아니라, 어딘가로 이동할 때 비행기 안에서 혹은 차 안에서 시집을 꺼내어 읽었다. 한두 편씩 읽다보면 어느새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한 시인의 시집은 시인의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반면, 여러 시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은 다양한 감성을 느끼게 된다. 엮은 시집의 대부분은 몇 가지의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다. 신현림이 고른 이 시집에서는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엄선한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시는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시의 느낌과 비슷한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준다. 그림을 바라보며 시를 읽는다.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몇 번이고 읽다가 장을 넘긴다. 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도 좋았지만, 내게 생소한 우리나라 시인의 시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 중 제일 좋았던 시가 김광규 시인의 「밤눈」이라는 시였다. 얼마나 좋던지, 몇번이고 다시 읽은 시였다.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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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왜 좋았느냐고 물어보면 특별히 대답할 말이 없다. 하지만 모든 시어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두근거릴 정도의 떨림이 있었다. 겨울밤의 그 시린 풍경이 가슴을 데워주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 시를 제대로 이해했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가슴을 채워주는 그 느낌때문에 김광규 시인의 다른 시가 궁금해졌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도 참 좋아하는데, 여기에 수록된 시는 「발작」이란 시였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는 시다.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奇蹟(기적) 아녀
누군가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장을 간다고 했다. 북적북적한 사람들 틈 사이로 걸어가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활기에 저절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시인은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장소인 터미널을 떠올렸나 보다. 삶이 무료할때, 쓸쓸할 때 훌쩍 떠났다 돌아오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시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기억으로 견딜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밤의 고요한 시간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사랑과 감사에 대하여, 그리고 희망에 대한 시를 보며 마음을 위안을 얻는다. 시를 읽으며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잠못 드는 시간, 여러가지 일로 마음이 어지러울때 읽으면 좋을 시다. 마음을 적시고 영혼을 적시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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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안아준다 신현림 엮음 편미동/2017.3.14.
엮은이는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의 성장은 공부와 신앙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믿는다. “내 마음의 도로표지판은 시였다. 신성함이 무너진 시대에 생활에서 잃어버린 영성을 되찾으려면 시가 절실히 필요하다. 좋은 시들이 지금까지 깊고 따스한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나를 안아주었다.(p.7)” 이런 시들을 골라 잠들기 전 베갯머리 시 하나로 매일 밤 자유로워지길, 그리고 조금 더 본래의 자신에 가까워지길 빌면서 이 시집을 엮었다고 한다. 91편의 시를,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 등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나비파 그림들과 함께 실었다.
사랑밥을 끓이며 신현림 내 눈물은 빚더미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내 발은 사막을 건너는 법을 익히고 내 길은 무엇을 잘못했나 살핀다
내 생의 반은 실수와 부끄러움으로 얼룩졌다 꿀이 흐르는 길을 잃고 일만 하느라 사랑도 잃고 나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내 손은 뒤늦게 일으켜세우는 법을 익히고 어두운 몸에, 새 봄을 지피고 있다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고 함께라면 누구도 부럽지 않게 꿈의 아궁이에 해를 넣고 사랑밥을 끓이고 싶다
내 마지막 사랑과 밥 당신들에게 다 나누어주겠다
“남에게 사랑을 주는 힘은, 고독한 시간에서 온다. 현대 사회에서 인정받고 찬사를 받으려는 노력이 지나쳐 속물주의가 판을 치는 기분이다. 이런 시대엔 누구나 힘들다. 잠시 멈춰보라. 베갯머리 시로 푹 누워 쉬시고, 안심하시라. 인생은 끝없이 자기를 내려놓는 일이다. 내려놓아야만 세상의 때를 벗은 순수한 자신을 만난다. 그 안에서 자신의 사랑관도 돌아보면 어떨지.(p.10)” 이런 뜻으로 위와 같은 시를 딸과 독자에게 소개하면서 세계인들의 시를 엮어낸다.
깊은 계곡 인디언의 노래 내가 걸어가는 길은 깊은 계곡이 있는 곳에서 끝난다 그 이상은 알지 못하고 나는 주저앉아 절망한다
계곡 위로 새가 날아오르면 새가 되길 원한다 절벽 저편에 꽃이 피어나면 꽃이 되길 원한다 하늘 위를 구름이 떠가면 구름이 되길 원한다
자신을 잊는다 심장이 가벼워진다 마치 깃털처럼 데이지 꽃처럼 부드럽게 하늘처럼 후련하게
눈을 들면 계곡은 한 번에 뛰어 건널 시간과 영원 사이일 뿐
기쁨과 슬픔 윌리엄 블레이크 기쁨과 슬픔은 섬세하게 엮여 있다 숭고한 영혼을 위한 옷으로
슬픔과 그리움마다 명주실처럼 엮인 기쁨이 흐른다
그래야 하는 것이 맞다
인간은 기쁨과 슬픔으로 만들어 졌음을 마땅히 알고 있어야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밤눈 김광규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숨 쉬기 요한 볼프강 괴테 숨 쉬기에는 두 가지 은총이 있으니 들숨과 날숨이 그러하다
들숨으로 부풀고 날숨으로 도로 줄어드니 놀랍게도 삶은 이렇게 섞여 있는 것
신이 너를 밀어붙일 때도 감사하라 너를 놓아줄 때도 감사하라
세월의 강물 장 루슬로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엮은이 신현림은 시인, 사진가. 디자인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아주대학교에서 ‘텍스트와 이미지, 시 창작’을 강의 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등이 있고, 그림과 사진, 텍스트 융합작업으로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나의 아름다운 창> 등 많은 글을 썼으며 세계시 모음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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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시절 시는 내게 위로가 되고 친구가 돼 주었다. 방바닥에 엎드려 떠오르는 대로 연습장에 끼적거리던 시들이. 그 후로 난 왜 시와 멀어졌을까. 시는 왜 시인이나 시인이 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 나는 다시 시를 만난다. 삶이 힘들고 사람들이 실망스러울 때,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비밀로 가득차 있어 내가 다 알 수 없다고 낙담할 때, 시가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될 수 있음을 중년의 나이가 되어 다시 깨닫는다.
<시가 나를 안아준다>에는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이란 다섯 가지 테마로 묶은, 국내외 시인들의 시가 고운 명화들과 함께 실려있다. 때로는 시만 읽으며 감상하기도 하고, 눈이 피로하거나 마음속이 복잡할 땐 곱고 편안한 그림만 들여다봐도 위로가 된다.
- 무릎 - 정호승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 ...... '밤'의 테마에서 내게 가장 와 닿은 시는 정호승 시인의 [무릎]이다. 살면서 역경에 부딪치거나 무언가 나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져 회의가 짙어지는 시간, 추락하는 시간이 있다. 그런 시간이 무릎을 꿇는 시간이 아닐까. 자신을 내려놓고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누구에겐 그 시간이 빨리 오고, 누구에겐 그 시간이 늦은 나이에 오기도 한다. 칼 융이 말하는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고 '중년의 학교'인 종교에 입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생과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꾸밈없는 나를 발견하는 그때부터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 풀과 물고기 - 고형렬
풀로 돌아가고 싶어 풀로 돌아오고 싶어
바람이 불고 싶어 풀에 불어가는 풀에 닿아 떠나지 않는 바람결의 그는 없는 나이고 싶어 ...... 하나의 인생은 그 풀줄기를 뒤따라간다
서로 스며 생이 되고 서로 스며 죽음이 되며
'고독'이란 테마에 실린 시들 가운데 무조건 끌린 시다. '풀'을 소재로 한 시를 나는 언제나 좋아한다. 운동삼아 뒷산에 오르내리며 가장 많이 접하는 생명체가 발밑에 있는 '풀'이다. '풀'이란 입말도 풀 못지않게 하늘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잠시 누웠다가 어느새 우뚝 일어서 있는 초록 풀의 모습은 기특하다. 여리고 하찮은 생명체조차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음을 문득 깨닫게 하는 풀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 사랑은 - 오스카 해머 스타인
종은 누가 울려 주지 않으면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불러 주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선 안 된다.
사랑은 사랑을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란 테마에 실린 시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짧은 시가 내게로 온 것은 사랑을 말로만 읊지 않고 행동의 필요성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은 가장 능동적인 마음이다. 마음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게 하는 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힘이 '사랑'이지 않을까. 사랑은 상대방에게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행동이다. 내가 나를 열어주기 전엔 내 안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우리는 진정으로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온전한 나, 더 큰 내가 되는 길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이유가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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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남에 대한 고통이 닥치기도 전에 미리 괴로워하면 삶이 망가져간다. 끝나기도 전까지 가능할 수도 있는 삶이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한 가지에 관한 것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관한 것
한쪽이라도 부정한다면 이는 삶을 부정하는 것 ......
[네]라는 제목의 주디 브라운의 시다. 기쁨과 슬픔이 한 가지라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면 기쁠 때 너무 기뻐하지 않고, 슬플 때 너무 슬퍼하며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다.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앞뒤처럼 항상 함께 다닌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젊음이, 내 아이들이 슬플 때 슬픔에 너무 빠질까 두렵다. 1등만 되라고 다그치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왔지만, 학교에서 우리 사회에서 들리는 소리로 이미 아이들의 마음엔 온갖 상처투성이임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슬프던지.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믿고 싶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문재의 [오래된 기도]는 기도가 매 순간 우리와 함께 있음을, 그래서 우리 일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앞으로 자주 떠올리며 읊게 될 듯한 시다.
-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의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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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밥을 끓이며 신현림 내 눈물은 빚더미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내 발은 사막을 건너는 법을 익히고 내 길은 무엇을 잘못했나 살핀다 내 생의 반은 실수와 부끄러움으로 얼룩졌다 꿀이 흐르는 길을 잃고 일만 하느라 사랑도 잃고 나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내 손은 뒤늦게 일으켜세우는 법을 익히고 어두운 몸에, 새 봄을 지피고 있다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고 함께라면 누구도 부럽지 않게 꿈의 아궁이에 해를 넣고 사랑밥을 끓이고 싶다 내 마지막 사랑과 밥 당신들에게 다 나누어주겠다 “남에게 사랑을 주는 힘은, 고독한 시간에서 온다. 현대 사회에서 인정받고 찬사를 받으려는 노력이 지나쳐 속물주의가 판을 치는 기분이다. 이런 시대엔 누구나 힘들다. 잠시 멈춰보라. 베갯머리 시로 푹 누워 쉬시고, 안심하시라. 인생은 끝없이 자기를 내려놓는 일이다. 내려놓아야만 세상의 때를 벗은 순수한 자신을 만난다. 그 안에서 자신의 사랑관도 돌아보면 어떨지.(p.10)” 이런 뜻으로 위와 같은 시를 딸과 독자에게 소개하면서 세계인들의 시를 엮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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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시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우리말로 된 시에서 기대하는 언어의 감각적 예술성을 외국 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번역 과정에서 원어의 발성과 함축 압축 비유 등등의 많이 의미가 희석되기 때문에 단순히 뜻만으로 시를 원어민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 같다. <플루언트>의 작가 조승현은 외국어를 아주 잘 하려면 그 나라의 시를 많이 읽고 이해할 때까지 읽는 것이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어로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잘 번역된 외국시를 먼저 읽고 원어를 보면 조금 나을 것 같기는 하다. 시가 주는 함축적 의미는 결국 그 시를 읽는 독자의 몫이다. 어릴 때부터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아온 내 세대에게 문학적 사고는 정해진 틀에 갇혀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릴 때 교과서에 나온 시들은 그 시들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볼 틈도 없이, 교사가 혹은 참고서가 알려주는 대로 시의 주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태였다. 그 시를 통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에 상관 없이, 그 시를 통해 받았어야 했을 감정에 동그라미를 쳐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대였다. 요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시가 시인을 떠나 독자에게 왔을 때, 독자의 어떤 주관적 해석에도 작가가 개입할 수는 없다. 누가 뭐라겠는가. 함축적 의미라는 말을 꺼낸 건, 이 책의 구조가 다섯 개의 주제 하에서 서로 묶였음을 주목해서다. 신경림 시인은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에 해당하는 시들을 고르고 추리고 번역해서 분류하였다. 외국 시들이라 번역 중 떨어져나가고 남겨진 의미들이 잠언집같은 느낌을 주었다. 잔잔하고 편안한, 주제에서 볼 수 있듯 격정적이지 않고, 피로를 잊을 수 있는 시들, 잠이 솔솔오는 시들이다. 한편의 시와 한 편의 그림이 짝지워져있다. 파울 클레, 헨리 마틴,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이 대부분인데, 다른 화가의 그림도 있다. 체로키 인디언의 노래 -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또 한 사람의 여행자가 우리 곁에 왔네 그가 우리와 함께 지내는 날들이 웃음으로 가득하기를 따뜻한 하늘의 바람이 그의 집 위로 부드럽게 일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의 집에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 이 시는 작가가 따로 있는 것 같지 않고, 체로키 인디언들의 노래를 번역한 듯한데, 갓 태어난 아기를 여행자로 노래하는 첫 구절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살면서 겪게될 그 모든 희로애락은 삶이 끝난 후 뒤돌아볼 때 하나의 여정으로 성찰할 수 있는 여행자로 보는 것이다. 삶의 여정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만, 그 작은 생명이 우리와 함께 하라고 주어진 만큼 인연을 소중이 여기고, 그 아기의 인생 여정이 축복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생명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 단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도 생각난다. 폴 짐머의 완다와 폭설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묶여있는데, 눈쌓인 풍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고, 아름다워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원어도 찾아보았다. 탄광 하면 검은 색이 떠오르는데 하얀눈과 대조를 이루며, 일탈처럼 찾아온 폭설에서 생긴 세상과의 고립이 완다와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눈도미 속에 굴을 뚫고 철조망 담을 넘어다니며 먹을 것이 떨어져 소라도 잡으려 했던 그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속에서 오롯이 사랑을 느끼지만, 눈은 그치고 제설차가 도착하고, 꿈결처럼 둘만의 시간은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마디, 요즘은 눈이 그렇게 오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일탈적 사랑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완다와 폭설 -폴 짐머 몇년 전, 타일러스벅 근처 노천광산에서 일했었거든. 하루는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두 시경엔 허리까지 내린거야 “집엘 가겠습니다.” 반장에게 말했어. “다섯 시까지 기다려보지 그래?: 하길래 “소들을 돌봐야만 해요” 둘러댔지. 완다가 집에 잘 있는지 봐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네 시쯤 집에 다다랐는데 그사이 눈은 가슴까지 쌓였고 내리고 또 내렸어. 완다와 나는 사흘 내내 아무도 만나지 못했지. 눈 더미 속에 굴을 뚫고 철조망 담을 넘어 다니며 눈을 녹이는 심장 소리에 얼마나 웃어댔던지. 먹을 것이 떨어져 소라도 잡을까 생각했었지. 그때 그만 날이 개고 사과알같이 달콤한 달이 떠올랐어. 다음 날 아침 제설차가 도착했는데, 슬프더군. 요즘은 눈이 그렇게 오지 않아, 다 그런거지 뭐. Lester Tells of Wanda and the Big Snow - Paul zimmer Some years back I worked a strip mine Out near Tylersburg. One day it starts To snow and by two we got three feet. I says to the foreman, "I'm going home." He says, "Ain't you stayin' till five?" I says, "I got to see to my cows," Not telling how Wanda was there at the house. By the time I make it home at four Another foot is down and it don't quit Until it lays another. Wanda and me For three whole days seen no one else. We tunneled the drifts and slid Right over the barbed wire, laughing At how our heartbeats melt the snow. After a time the food was gone and I thought I'd butcher a cow, but then it's cleared And the moon come up as sweet as an apple. Next morning the ploughs got through. It made us sad. It don't snow like that no more. Too bad. 마지막으로 로버트해스의 미술관이다. 매일매일 테러가 일어나고 고통이 일상이 되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시대에, 어느날 캐테 콜비츠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의 식당에서 젊은 남녀가 아기를 안고 아침 식사를 하는 풍경을 고스란히 시에 담았다. 몇년 전 여름, 미국 여행을 했는데, 여행의 성격이 약간 미술관 투어 비슷했다. 도시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의미있는 건축물이 대개 미술관인 경우가 많고, 그런 미술관에 교과서에서나 보았을짐한 예술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미국의 식당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는 미술관 내의 식당을 즐겼었는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비교적 깔끔하고 지역적인 음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미술관 답게 식당의 분위기도 개별적으로 모두 특색있었다. 그 때의 수많은 미술관 식당들을 떠올리게 하는 시였다. 콜비츠는 독일의 목판화가로 가난과 전쟁의 피해자들을 사실적으로 포착해서 굉장히 어두운 작품들을 주로 많이 그렸는데, 그 때문에 현실 속 평화로운 부부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마치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세부적인 묘사가 어떻게 될까,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하며 작은 긴장을 주는데, 아기를 서로 교대로 안으며 버터를 바르고 빵을 먹고 신문을 보는 하나 하나의 동작들 그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교대로 아기를 안으며 서로 눈길을 자주 나누거나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황이 평화롭다. 길지만 베껴쓰는 마음으로 전문을 타이핑해본다. 미술관 -로버트 해스 캐테 콜비츠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의 아침 젊은 남녀가 식당으로 들어선다. 여자는 아이를 안고 있고 남자는 일요일판 뉴욕타임스를 들고 있다. 여자는 등받이가 높은 버드나무 의자에 앉아 아이를 감싸안는다. 남자는 쟁반가득 신선한 과일과 빵을 가져오고, 흰 컵에 커피를 따른다. 남자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여자의 눈은 부석부석하다. 공기를 마시러 물 위로 솟아오른 잠수부처럼 잠 속으로 내동댕이쳤다가 순식간에 끌려나온 듯하다. 남자가 아이를 받아 안는다. 여자는 커피를 마시고 신문의 첫 페이지를 훑어본다. 태양 아래 조그만 그들의 자리에서 버터를 바르고 빵을 먹는다. 잠시후, 여자가 아이를 받아 안는다. 남자는 북 리뷰를 읽으며 과일을 먹는다. 여자가 과일 먹고 담배 피우며 신문을 뒤적이는 동안 남자가 다시 아이를 받아 안는다. 서로 눈길을 자주 나누지도 않는 두 사람,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저 공평한 풍경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기조차 잠에 빠져 돕고 있지 않은가. 주변엔 캐테 콜비츠의 목판화가 가득하다. 고통을 견딜 재능도 능력도 없는 얼굴들, 무감각해진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얼굴들, 배고픔, 가공할 테러, 그러나 이 젊은 부부는 햇살 아래서 일요일 신문을 읽고 있다. 아이는 잠들었고, 벗겨 놓은 멜론 겁질에서 푸른 싹이 돋기 시작한다.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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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게다가 불면은 오롯이 홀로 이겨내야 한다. 약이나 술에 의존하려니까 더 몸이 축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는 어떨까.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 역시 한때 죽음에 가닿았을 만큼 심각한 불면증을 앓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가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주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매일 밤 잠들고 아침에 새로 태어난다. 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다음 날을 위해 기도하듯이, 시를 읽으면 된다. 잠들기 전 읽는 시 한 줄에 잔잔한 물가를 보듯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시가 나를 안아 주니 얼마나 부드러운지, 부드럽고 따끈해진 내가 얼마나 좋아지는지. 시를 읽으며 하루를 정리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영혼도 성숙할 것이다. 사과꽃이 사과알로 자라듯이, 그렇게 신비롭게, 기특하게. 어떻든 인생의 시련과 외로움을 잘 이겨내, 조금이라도 더 지혜롭고 아름다운 자신이 될 것이다. ‘일상과 잠과 영성과 시’의 공통점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내 영혼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잠들기 전 베갯머리 시 하나로 매일 밤 내가 자유로워지길, 그리고 조금 더 본래의 자신에 가까워지길 빈다. 그리고 성숙해진 마음이 누군가를 따스히 어루만지는 사랑으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p. 8 머리말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에 관한 시 91편이 명화와 함께 펼쳐진다. 덕분에 홀로 이겨내야 했던 불면의 밤은 시, 명화, 그리고 감성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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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제인 케니언
건강한 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탐스러운 복숭아를 먹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개를 데리고 자작나무 숲으로 올라갔다 아침 내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들며 오늘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는 그러지 못하게 되리라는 걸 -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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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뿐만 아니라 저자의 토막글도 마음을 울린다.
시의 뿌리는 사랑이다. 시를 읽으며 사랑력을 키우다 보면 감정이 섬세해지고 호기심과 인내심도 커진다.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 꽃과 나무, 바람과 별의 정령들이 모이는 밤 시간. 이 속에서 사랑의 결을 어루만지고 헤아리고, 뜨겁게 달구는 시를 만나라. 영혼 밑바닥까지 가닿는 사랑, 그 숨결을 만나라. 진정 사랑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만난다. -p. 108~ 109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고마’와 ‘같습니다’가 하나된 말이다. 고마는 땅의 신으로 우러르는 신성한 동물, 곰을 뜻한다. 고운 여자의 ‘곱다’도 고마에서 온 거라 한다. 말의 뿌리를 찾아가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당신은 대지의 신처럼 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쓸수록 나 자신도 빛나고 남도 축복하는 멋진 말이니 마르고 닳도록 써도 좋으리라. -p. 154
다시 불면의 밤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각자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걱정 때문에, 누군가는 상사병 때문에, 누군가는 갈등 때문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유 때문에 잠을 못 이룰 것이다. 그때 잠들기 전 시 한 편이 그 잠 못 드는 이유를 안아 줄 것이다. 물론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황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과 마음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힘든 시대다. 또 다른 말로 시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베갯머리 시로 잠이라도 편하게 자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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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안으면. (이승훈) 너를 안으면 어둠이 사라지고 바람 불던 저녁도 사라지고 무슨 정신도 사라딘다. 너를 안으면 병든 거리도 소리 없이 사라딘다. 너를 안으면 불안도 사라딘다. 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 마흔 개의 어둠이 사라지고 너의 얼굴에 나를 묻으면 마흔 개의 감옥도 사라지고 우울도 사라지고 만성신경증에 시달리던 밤들도 사라진다. 너의 가슴에 손을 대면 나의 손도 사라진다. 이젠 네가 있으니까 이젠 네가 나이니까 너의 가슴에 덤벙 뛰어든다. 그래서 이젠 너의 얼굴도 볼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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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묻는다.
(휴틴)
땅에게 물었다.
땅은 땅과 어떻게 사는가?
땅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서로 존경합니다.
물에게 물었다.
물과 물은 어떻게 사는가?
물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서로 채워줍니다.
사람에게 묻기를
사람은 사람과 어떻게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스스로 한 번 대답해보라.
요즘 읽고 있는 시집에 들어있는 시 입니다.
볼때마다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