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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서툰 삶이 반드시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 그러나 사회 생활에 서툴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세상이다.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정글 같은 현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삶 자체가 고단해진다. 이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책 <인간 실격>의 내용이다.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이라는 단어로 사회 부적응자를 지칭했다. 그러나 서툰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고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빛을 발한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공책 세 권과 사진 세 장을 접했다. 그것이 소재가 되어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삶도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사회생활 적응에 서툰 점이나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한 점이 닮았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가정, 학교, 사회에 적응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일부터 남의 눈에 들기 위해 튀는 행동을 했지만 주인공 자신의 진심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사람들과 호흡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점차 사회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가족 특히 아버지는 주인공을 방치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3류 잡지에 만화를 그려주는 일로 밥벌이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모르핀(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되어 갔다. 지인들이 주인공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지가 위궤양으로 사망한 후에나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시작했다. 27살인 주인공은 마흔 살이 넘어보일 정도로 폐인이 되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지난해 이맘때쯤 읽었던 <참 서툰 사람들>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만화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작가 박광수의 에세이이다. 이 책도 독자에게 비슷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사회는 여러 인격체가 모여 사는 동네임에도 획일성을 강조한다. 법, 정치, 교육, 돈이 사람을 하나로 만든다. 하나 되는 사회에 잘 적응해야 훌륭한 인격체라는 소리를 듣는다. 때가 묻는다는 말이 있다. 순진했던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회에 적응해가면 때가 묻었다고 표현한다. 사회가 그렇게 지저분한 곳이라면 순진함을 간직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더러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만큼 순수한 사람이 되도록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런 고민거리를 던진다. 모르긴 해도 저자도 이런 고민으로 다섯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첫 키스의 설렘이 남아 있는가? 서툴면서 서툴지 않은 척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 사람은 서툰 티가 나는 사람을 비난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첫 키스마저도 능수능란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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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만났을때 왠지 무거운 표지에 기분이 우울했고, 제목을 보고 있자니 그냥..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기를 2번째... 지난번에 읽으려고 했다가 무거움에 눌려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기필코 읽고야 말리라 다짐했었다. 제목이 가진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며 생각보다 쉽게 읽혀진 게 놀라웠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선뜻... 기쁜 마음이 되어 리뷰작성을 할 수 없었다. 어제부터 몇번을 생각했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지만 그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아 답답했다.
부잣집 막내 도련님이라 부르는 요조라는 청년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어린시절부터 그는 익살이라는 가면으로 사람들을 상대해 왔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단념하지 못해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겉으로는 끊임없이 미소를 짓고 마음속으로는 위기 일발의 두려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진실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항상 인간에 대한 공포로 떨고 또 인간으로서의 내 언동에 눈꼽만큼도 자신을 갖지 못하고 내가 가진 고민은 가슴속에 숨기고 그 우울과 그 소심증을 철저히 숨기고 또 숨긴 채 오로지 천진하고 낙천적인 체하면서 점차 익살스럽고 별난 아이로 완성해 가는 요조...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인양 모두들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했던 요조에게 어느날 백치 다케이치가 한마디 한다. "일부러 그랬지?" 자신의 가면을 모두 알아버린 것 같은 불안과 공포.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간파당했다고 생각하니 불안해서 미쳐 버릴것 같은 요조의 삶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 세상이라는 곳, 이 사회라는 곳. 인간과 인간이 어울리는 그 안에는 우리가 미쳐 모르는 사람들의 감정과 말이 섞이고 뒤엉켜 있다. 요조의 아버지 앞에서 웃고, 아부하고 살랑거리는 사람이, 아버지의 재산이 없어지고 더이상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상태가 되었을때 차갑게 변해가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요조는 점점 자신만의 세계에 살게 된다. 흔히들 우리가 말하는 개차반의 인생... 어린 나이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나이 많은 여자와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인생... 그 이후로도 요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다시 자연스럽게 학교에 다니고 자신의 꿈을 꿀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도 그에게 손 내밀어 준 이 없고 그의 진정한 속마음을 알아주는 이 없다. 또 그렇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지지부진하게 자신의 목숨을 이어간다.
모두가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한 사람이 있고 독립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존적인 사람이 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깊이 대화를 했다면 자신을 감추는데만 급급하지 않았을텐데... 왜 자신을 감추고 표현하지 못했는지... 요조의 삶이 아프다.. 어쩜 요조와 지금의 현대인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하지만 누구하나 진정으로 날 알아주지 않는 곳 또한 바로 이곳이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나를 무시할까 늘 칼을 품에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자신에게 인간 실격이라 표현한 요조는 그렇게 사회와 융합되지 못하고 자신의 벽을 깨지 못한채 병들어 간다.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입니다. 이제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내가 단 하나 진리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입니다. 나는 금년에 스물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흰머리카락이 너무 많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이 세상. 거짓과 가면이 난무하는 이 세상..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였다면. 흐르듯이 받아들였다면, 그 안에서 작은 행복도 맛보고 웃음도 맛봤다면 저리도 아프지 않았을텐데..
"나의 또 다른 나"라 생각 했던 친구와도 이별하는 세상이다. 어제는 내 앞에서 간사하게 웃다가 내일은 다른 이의 얼굴앞에서 웃는게 이 세상이다. 누가 누구에게 인간 실격이라 말 할 수 있을까? 점점 외로워지는 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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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다섯 번째로 자살을 시도하다 서른 아홉 살에 사망한 다자이 오사무. 그의 움푹 패인 볼우물과 어울리는 제목과 내용이다. '기준 미달이나 기준 초과, 규칙 위반 따위로 자격을 잃음'을 뜻하는 실격. 그의 초라한 자아상은 [인간 실격] 후반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는 금년에 스물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흰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서 대부부의 사람들은 나를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175p)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머리말이다. '일본의 위선을 증오한 연약한 청년'이라는 제목으로 묘사된 이 머리말은 저자의 삶이 '실격'임을 단번에 알게 한다. 고리대금업으로 성공한 자신의 집안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축적되는 부의 치부, 농민들의 원망을 자신의 문학의 뿌리로 만든다. 귀한 도련님으로 성장하지만 결국 몸도 마음도 너무 약했기에 인간 실격 판정을 받는다. 위선이 싫은 어린 청년에게 기성세대의 삐뚤어짐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나는 그 사내의 사진 세 장을 본 적이 있다'(11p)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또 다른 '나'로 설명된다. 색마 혹은 파탄자로 불리는 나는 익살꾼이다. 뭐든지 간에 그냥 웃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 실없이 익살을 부리고 인간들을 즐겁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난 공포로 떨고 있고, 우울과 소심증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 내게 사회는 꽤나 이율배반적이다. 그래서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니 도덕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난 그저 익살꾼이다.
미술을 하기 시작한다. 사회 운동 단체에 가담한다.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의지, 유물론을 받아들이는 자세 따위는 없다. 그저 나는 그들의 익살꾼 '동지'. 익살을 부릴 뿐인데 여자와 술이 따라온다. 여자들은 이상하리만치 내게 무언가를 갈구한다. 술의 유혹을 뿌리쳐 약방을 두드린다. 처음엔 귀신같이 일어서던 약방 아내가 언젠가부턴 날 보면 눈물을 흘린다. 나도 운다. 점점 미쳐간다.
폴오스터가 침소봉대 스러운 말투로 긴장감을 준다면 다자이 오사무는 남의 얼굴에 자신을 투영해 가슴이 졸아드게 만든다. 책 뒷면 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구보다 인간이기를 원했으나 끝내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한 인간 실격자의 처절한 고백'. 후기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나(요조)의 이야기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얘기다.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평생 동안 부끄러움을 느껴 좌익운동을 하기도 했고 극심한 정신적 공황을 겪었던 그의 이력은 요조를 빼다 밖았다. 결국 fiction의 모양을 한 non-fiction인 게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자신의 부와 평온한 위치를 철저히 사회주의 입장에서 돌아볼 수 있는 - 말하자면 남 얘기 하듯 할 수 있는 - 다자이 오사무란 사람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무섭기도 하다. 그만큼 인간실격은 솔직하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죽기 전까지 그는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는 고백을 대체 몇 번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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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가 한창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완전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되더군요. 그렇게 떨어지고 떨어져서 밑바닥에서, 전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인간실격을 읽고 난 후 이런 소감과 함께 추천해 주었다. 가수 '요조'도 이 책의 주인공인 요조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그러고보니 왠지 이미지가 비슷하다) 읽기 전 부터 명성으로 인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었다. 너무 감정이입 해버리는건 아닐지 하는. 최근 위선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었다. 위선과 함께 모순에 대해서도 많이 느낀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한 입으로 두 말 안하는 사람 없고, 언행이 완벽히 일치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인간은 너무나 모순적이고 위선적이다. 사소한 어긋남에, 나도 위선자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종종 있다. 당당하지 못하고 찜찜하다. 부끄럽고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주인공 요조는 너무나도 순수한 존재였다. 너무나 순수해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현실에 사는 인간들과 어울릴수가 없었다. 문학이라는 예술이 의미를 갖는 여러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순수한 인간은 이렇게 소설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현실에도 존재한다. 소설에서는 '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다가 떠난 많은 순수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생각 할 때마다 안타깝고 경외의 감정이 든다. 요조는 인간실격자가 아니다. 만약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셈친다면, 요조는 신이 원하는 창조물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사람들은, 요조를 인간이 아니게 만들었다.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되었으며 적반하장도 이런 유분수가 없다. 아니다. 요조는 인간실격이 맞을 수도 있다. 신이 의도 했든 안했든, 이미 세상은 요조같은 사람을 실격자로 만들고 있다. 모든 것은 바뀌고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위선과 거짓과 불신이 판치는 현재 사는 세상에서 요조는 실격 될 만한 '가치'가 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조는 신에게 묻는다. 제가 틀린 건가요? '때묻지 않은 신뢰감은 죄일까?' 아무리 생각하고, 사색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록 깊은 수렁으로만 빠져간다. 자신의 속을 숨기고 항상 남에 맞춰 살아간 요조는 거짓말쟁이이다. 솔직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며 소심의 극치를 달리고 의도치 않게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게 죄일까? '감옥에 가게 되는 일만 죄는 아니야. 죄의 반의어를 알게 되면 죄의 실체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느님.., 구원.., 사랑.., 빛.., 그러나 하느님에게는 사탄이라는 반의어가 있고, 구원에게는 고뇌라는 반의어가 있어. 또 사랑의 반의어는 미움, 빛의 반의어는 어둠이지. 선에는 악, 죄와 기도, 죄와 회개, 죄와 고백, 죄와.. 아, 모두 유의어로군. 도대체 죄의 반의어는 뭘까?' 짧은 평생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안타깝게 떠난 가엾은 요조를, 위로하고 공감해주고 싶다. 넌 죄인이 아니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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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인간 실격, 달려라 메로스, 잎, 역행, 어릿광대의 불꽃,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
모든 작품을 읽어 보고 나니 역시나 인간 실격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인간 실격외 다른 작품은 조금,,,,기대치에 못 미쳤다. 하지만,,,인간 실격과 비교해보면 다른 소설들은 좀 편히 읽을 수 있긴 했다. 인간 실격 탓에 어두워졌던 마음이 조금 회복되었다고 해야 하나?
각설하고 아무튼,,,, 인간 실격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책값을 하고도 남는다. 시간을 일부러 내서라도 한번 쯤 읽어볼 만하다는 뜻이다.
그런데,,,그러나,,,오늘 같은 날엔,,, 혹은 우울증에라도 빠진 사람이 있다면,,,, 인간 실격 같은 소설은 읽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허무해지거든,,,, 상실감을 참아 낼 수 없는 사람은 일단 책을 덮고 기분이 좀 나아지면 그때 읽기를 권한다.
인간 실격을 읽고 나서 지금 나는 사는 것이 뭐 이따위지? 하는 기분에 빠져 있다.
지금 글을 쓰는데 눈이 오고,,,바람이 불고,,, 사방은 고요하다.
뭐지? 이 느낌은? 오늘은 날씨까지 대체 왜 이러는데? 아!!
인간 실격을 쓴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39살에 죽었다. 그는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다마 강 수원지에 뛰어들었는데 운 좋게 성공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
나?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부터 자살을 생각하지 않고 지낸 날이 거의 없었다. 이유? 나도 모른다. 정말 모른다. 단순히 기질 탓이다.
안나 까레니나를 읽을 때도 그랬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안나도 브론스키도 아닌 자살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레빈의 끝없이 이어지던 독백이었다. 결국 레빈은 종교에 안착하면서 평화를 얻었지만 무신론자인 나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만약 내가 자살이라도 한다면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사람들은 인간 실격의 요조에게 그랬듯이 날 비웃겠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연기를 하기도 한다. 천진하고 낙천적인 체하면서,,,,
요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요조만큼 유머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기 때문에 나의 연기는 어설프다.
그러니 난 요조처럼 살지는 않을래. 요조안에 숨어있는 나를 죽이는 대신 그냥 내 속에 요조를 감추고 살아가련다.
그런데,,, 지금 왜 이리 쓸쓸하지? 눈물이 난다.
요조 대신 캔디가 되어야겠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천진하고 낙천적인 체하면서,,,,,
진짜 오늘 날씨마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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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력을 보니 <인간 실격>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었다. 그의 마지막 소설이었으며, 책에서의 내용과 같이 여러번의 자살시도 끝에 연인과 함께 자살하는 것이 소설에서의 내용과 같아 내면의 솔직함을 드러낸 소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간이 어디까지가 남들에게 솔직하게 거절해야 하고, 어떤 부분은 남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면서 나의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남들에게 비위를 맞추어가며 익살을 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 따끔하게 이야기를 못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즉 거절못하는 자들의 안타까운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문장에서의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쁘다는 말에서, 가족과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가족들이 잘 챙겼더라면 소설가는 죽지 않고 잘 살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 보지만, 가족의 사랑이 있었더라면 달라졌을 것 같다.
독서 릴레이 5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