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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유일한 가족들의 추억이 있는 장소, 대관령. 항상 어딜 가더라도 그곳은 스쳐지나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차로 운전을 하시며 가끔씩 쉬시면서 전해주시던 이야기들. 그래서 대관령은 그 의미가 저에게는 특별하였습니다. 유일하게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곳......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가 사진과 함께 아포리즘 형식으로 풀어낸다기에 괜스레 기대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싶었는지...... 이 책에 제 감성을 묻으며 책장을 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자는 수년간 SNS에 <세계여행이야기>와 <대관령 통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던 것은 대관령 통신에 대해서 였습니다. 저 역시도 그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내내 작가의 의도와는 조금은 다르게 제 의미도 부과되었기에 조금은 과장되게, 조금은 퇴색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저자는 귀농 일기는 아니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 대관령에 묘한 매력을 느꼈었고 그로 인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이렇게 우리들에게 직접 가지않아도 대관령에 대해 느낄 수 있게 책으로 집필을 해 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함축적인 시가 되어, 때론 사진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저에게는 시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기에 그 의미를 해석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하였습니다. 책에는 4계절이 담겨 있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다른 색, 다른 의미를 부여해 주는 대관령을 바라보면서, 그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를 이 책을 통해 바라보면서, 읽는 독자로써 많은 생각이 오가곤 하였습니다.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던 대관령. 그 자연의 위대함과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 그 의미를 파악하기엔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서 또 하나의 책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책에서 인상깊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에선 사진과 함께 진정한 나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포장된 모습은 아닌지...... 또한 <아주 가끔>을 통해서 현재 우리 가족들에게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내가 보는 걸 너도 봤으면,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느꼈으면, - page 166 이 책을 덮으면서도 만감이 교차되곤 하였습니다. 내가 알던 대관령과 저자가 말해준 대관령의 모습...... 그 속에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들...... 저자 역시도 책의 뒷장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늘도 책상에 앉아 새벽을 맞는다. 내 글 어딘가에는 여전히 오자들이 잠복해 있을 것이다. 눈 밝은 독자들이 가려 읽어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이는 그가 휴양지로만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관령의 본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오자를 잠복시킬 것이며 우리들은 그것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는 것, 작가를 통해 다시금 듣게 되는 이야기들...... 하나같이 외면할 수 없지만 다 받아들이기엔 아직은 그릇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자연으로의 메시지를 담고는 조금은 벅찼습니다. 아마 조금씩, 다시 되새긴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더불어 살아감을 배우는 것. 아무리 복잡한 IT시대라고 하여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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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추억의 기억들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의 글들이다. 대관령 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고냉지 배추, 삼양목장, 그리고 양떼목장 커다란 하얀색의 풍력기. 황태덕장...겨울에 내리는 많은 눈...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여행을 해 보아도 그 지역만의 특색이 있고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대관령 하면 왠지 모르는 마음들이 움직여진다. 도시를 떠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시간들을 갖고 싶기도 한다.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에 푹 빠져 버린다. 같이 공감하고 왠지모를 마음 편안해져 온다. 그냥 자연스러움이 좋아지고 그 풍경들이 좋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느끼게 해 주는 주변 풍경들은 사진을 통해서 보는 재미를 주기도 하고 온화한 마음을 갖게 한다. 시골 생활은 많은 불편을 주기도 하지만 그 불편한 만큼 보람도 느끼고 자연과 더블어 사는 행복함을 맛 본다. 대관령에 가끔씩 머물면서 그날 그날 그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을 엿 보는 즐거움을 준다. 태어나는 순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얼마만큼의 사랑과 이별 눈물과 시련을 예약받는다.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고통이나 죽음은 분노할 대상이 아니라 저 산길에 홀로 피었다 지는 망초꽃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걸 몸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p.96 망초꽃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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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과 올림픽이 열릴 평창군의 경계에 있는 해발고도 832m의 고개로 평범한 아줌마에서 작가로 탄생한 저자는 대관령 소식을 전하는 대관령통신에 도시로 도시로 몰려만 드는 사람들의 악다구니 같은 고통의 소리들은 저자의 저자의 글귀마다 아련한 듯 떠오르는 고향의 아스라한 기억들은 훌쩍 시간을 대관령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사랑이라는 완성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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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여러가지 주제 아래 에세이 형식을 통해서 아름다운 사진도 함께 실어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이 의인화되어 따뜻함을 선사하고자하는 저자의 글 속에서 저자의 일상을 그려봅니다. 주제를 약간 벗어나서 저자의 글솜씨는 글을 잘 쓰고자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이렇게 써야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한글자 한글자를 읽어나가면서 글 속에 담긴 에너지를 확인하였습니다. 저자는 세밀한 관찰을 통해서 글 속에 저자의 감정을 실어 맛있게 엮어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에 몇 줄 되지 않는 글이지만 저자의 글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저자의 고백과 감정은 고스란히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의 마음을 적실 정도의 감정선을 건드립니다. 저자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저자는 때로는 글을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자의 글을 통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저자의 삶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삶과 저자의 실제 삶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책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감성을 같이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책에 실린 저자의 사진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사진은 프로사진작가가 찍은 것 같은 예술성이 엿보입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어찌나 잘 찾아내는지 사진을 통해서도 저자의 관찰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해서 저자는 본인의 컬렉션 중 어떤 사진을 선택해야하는지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요. 비록 책에는 실리지 못했지만 저자의 감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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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싶었다.. 삼양목장이 있는 대관령.. 그곳의 흔적 하나 하나 내 두발로 다니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 우리나라에서 제일 험난한 마라톤대회 코스가 대관령 코스였으며 42.195 km 흙과 산길을 두발로 뛰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당시 어떤 이유로 참가하지 못하였으며 그 대회는 1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였던 기억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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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삶이 바로 여기있다. 서울에 집이 있어서 살아가고 있지만 세컨드 하우스로 내가 원하는 곳에 자연이 가까운 곳에 언제던지 떠날 수 있는 그 곳에서 사는 멋진 삶이 말이다. 사실 처음 꿈꿔왔던 곳은 제주였는데 제주 여행을 다녀온 후로 마음을 접었다. 오히려 언제던지 떠나기엔 제주는 불편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대관령에 오시려거든 책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녀의 삶이 그렇다는것을 듣고 대관령이라니 참 멋지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그곳에서 지내는것은 어떤지 제대로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관령을 가본것이 언제였더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꽤 시간이 지난듯 했다. 의외로 속초는 가까운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자주 다녀왔는데 대관령은 그렇게 자주 가지 못했던것 같다. 하지만 지난 시간 내가 다녀온 그곳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계절감이 느껴지는 봄 이야기는 방금 지나친 그 계절이기에 더욱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나 노을을 보며 밥을 준비하는것도 멈추고 사진을 찍는 그 마음이 느껴지고 그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대관령이 참 아름답구나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봄이 오는 소리와 꽃망울이 터지는 싹이 올라오는 그런 소리들이 들리는듯 생생했고 얼어있던 땅이 녹듯 스르르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봄을 이야기 하는것이 턱없다며 이야기하지만 왠지 난 이만큼 계절감에 취해 이야기를 읽어본적이 없었던것 같았다. 정말 한국의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봄바람이 부는듯 했고 싹이 피는 봄내음이 나는듯 했다. 4월에 만나는 폭설에 눈맞은 꽃을 만나는것도 대관령이어서 가능한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봄 이야기였다. 책장을 넘기며 나 자신도 언제 봄에서 여름이 되는구나를 모르는채 순간 여름이 다가와 있듯 여름 이야기가 다가와 있었다. 한창 햇빛이 쨍쨍한 요즘 때맞추어 대관령의 여름을 만나다보니 정말 자연을 내 귀로 내 눈으로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더 많이 생겼다. 겨울에는 눈축제가 있고 여름엔 음악축제가 있다는데 나도 음악과 자연을 만나러 곧 떠나봐야하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 훌쩍 쨍쨍한 이런 날씨에 그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 곧 다가올 쓸쓸한 가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곧 나도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가을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가을이 되면 날씨때문에 쓸쓸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은근 수확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건 또 그렇구나 싶은 생각이 맴돌았다. 쌀이 나오는 계절 그리고 맛있는 과일들을 수확할 수 있는 시간이다. 소박하게 시간을 보내는듯 보이는 대관령의 일상은 참 멋졌다. 안반덕이라는 곳을 처음 사진으로 보고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우리 나라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푸근하구나라고 저절로 감탄하게 되었다. 겨울이 되니 이별의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과도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니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것은 늙는다는 것이고 그 과정이 꽤나 중요하다는것을 깨달았다. 사랑과 계절에 대한 이야기는 참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녀의 글과 이야기는 엄청나게 마음을 흔들어 두어 설레이는 대관령이 되게 만들어 주었다. 대관령에 가게 된다면 그 근처를 지나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떠오를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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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다. 오랜만에 내 취향인 가슴 뛰는 이야기를 만났다. 요즘 연애물은 좀 너무한다. 언제부턴가 멘붕물이 유행하질 않나, 애인이 되지 못한 하렘물 떨거지(...)들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나, 그것도 아니면 사랑 가지고 장난질하는 게 넘 많음. 물론 토라도라 같은 것도 좋았는데 후속작이 너무 독자들 의식해서 미연시처럼 나왔어 ㅠㅠ 나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오네가이 티쳐같은 로맨스 애니가 한 번만 더 나왔으면 하는데 안 되나... 너무 큰 걸 바라나.
산문 겸 시라 해서 에세인가 하고 그냥 들춰봤더니 글의 수준이 꽤 높다;;; 이건 그냥 산문시라고 봐도 될 듯. 근데 책 두께도 꽤 두껍다 ㄷㄷ?
대관령의 자연을 사진으로 찍어서 글과 사진이 같이 나오는데 사진은 상상 속으로 남겨둔다. 가격도 싸서 직접 사도 괜찮을 것 같다.
페친이 독서모임에 가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말인 즉슨 어떤 친구가 중독이라며 가지 말라고 추천했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에고 높은 나는 '아니 니가 무슨 가라 가지 말라 난리냐'부터 생각하겠지만, 나도 학창시절 꽤 긴 시간 책을 읽지 않았던 적이 있다. 수능 붙고 대학 가서 2학년 때 까지였나... 과제 때문에 보는 책도 중요한 구절 몇 읽고 후딱 덮었으니 꽤 긴 기간이다.
서평을 쓰는 게 무슨 죄는 아니다. 다만 그것을 하면서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만 하는 게 좋다.
결국 사람이 죽고 싶다 죽겠다 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 말의 뜻은 죽음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를 재고 다시 돌아왔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르시소스가 얼굴을 비춰 본 호수가 나르시소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결국 모 애니에 나온 인물처럼 눈을 빼서 포르말린에 넣어 보존한 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싶고. 결국 실행에 옮기지만 않았음 된 거다. 아직 로봇이 우리의 뇌 속을 들여다보면서 생각만으로 죄가 성립된다고 할 때가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왜 엄마 젖가슴 같은 고봉밥같은 표현을 굳이 넣는지 이해가 안 간다. 뭐 굳이 잦이 같이 우뚝 솟은 고봉밥이 어쩌고 같은 말은 왜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요리도 못하고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할 의욕도 없는데 굳이 신경을 써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짜증도 나고 피곤하다. 어머니가 무지 요리를 못 하는 분이시지만 난 그렇다고 어머니에게서 모성을 느끼지 못하진 않았다. 그냥 아이의 영양을 신경써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걸 가지고 여성성이 어떻다느니 강조해서 여태 여성들 힘들게 하는 게 요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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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만났던 인터넷 집단에 대한 추억 하날 말해보자면, 양꼬치 내가 사주기로 하고 가서 만났더니 "와 팔자주름 있네 역시 나이 먹었나 보다." 처음 만나자마자 그 말을 하는데 덕분에 그 후부터 인터넷 사람들을 만나기가 꺼려지게 되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으나 후폭풍이..) 앞으로도 만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음. 직접 말하던 자기 담벼락에서 말하던 속내 보이니까 실례되는 내용은 마음의 소리로 말하길 권장. 니가 여자친구가 있던 나랑 바람피는 게 아니던 뭔 상관임. 난 처음부터 동생에게 술 사준단 느낌으로 나온 건데 지 혼자서 상상 오진 케이스였음. 그것도 사실 어릴 적 어른이 안경 쓴 채로 뺨때려서 생긴 흉터였는데 말해도 의심하고 사람 말 못 알아 쳐먹던.
나는 인터넷에서 사귄 사람이던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이던 간에 똑같은 강도로 마음을 여는 사람이라고 할까. 전자 후자 구분해서 친구관리하는 거 진짜 피로하고 머리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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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걸 보면 넷상에서 봤다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막 해대면 안 된다는 내 말이 더 검증되었을 텐데. 그런데 딱히 국회의원 등
유명인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스튜디오가 불에 타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악플을 달며 자신의 애국심을 과시하려는 사람들도 치가 떨리긴 마찬가지다.
우연일까, 그 스튜디오에서는 여성 디렉터가 유달리 많았다.
그래서 난 악인을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건장한 청년 남성이거나 덩치가 커 몸집 작고 왜소하고 어려보이는 여성이 겪는 일을 잘 모른다. 차라리 침묵이 몸에 좋다는 거짓 위로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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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폼 잡으려는 의도가 강한 거 아닌가 싶지만, 내가 여태껏 본 에세이 중 훌륭한 마무리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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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환상이 있다. 대관령. 이곳도 마찬가지다. 안개가 드리운 산이 아닐까. 눈꽃이 가득한 멋진 모습? 그 환상이 얼마나 채워질까. 그 곳을 느끼고 적응하고자 하는 저자를 통해 대관령을 느껴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멧돼지를 만났다는 글에 적잖이 놀랐다. 얼마전 가까이에 있는 도심에서도 멧돼지가 출몰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 산길을 걷다가 멧돼지 식구를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놀랄까. 다행히 저자의 모습이 자연의 한 부분인것처럼 아니면 멧돼지 역시 자기 식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유유히 피해갔는지도.. 나라면 정말 많이 놀라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다. 나물류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산나물을 획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흔한 도라지,시금치 같은 것도 껍질이 정리되고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형태에 대해서만 알고 있지.. 아이들도 아는 그런 나물 이름을 제외한 나물류는 알지 못한다. 그런 나물들도 저자처럼 이제는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반찬으로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부럽다. 좋아하지 않는 반찬일지라도 알고서 거부하는 것과 눈 앞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도 그것이 잡초인양 모르는 것은 큰 차이인거 같다. 일단 저 어떤 풀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못 먹는 건지 알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보는 능력인것 같다. 두릅이라는 것도 한번도 안 먹어봤는데, 그걸 가져온 양이 많아 장아찌까지 해먹었다는 글을 보면서 이런 것이 그저 모든 걸 내어주는 자연의 선물에 받아줄 수 있는 기쁨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주 가끔 산길을 걷는다. 특히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나 비가 막 그친 이후에 산길을 좋아한다. 그 때는 비를 맞이한 모든 생명체들이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싱싱한 내음을 마음껏 내뿜는 것 같다. 그런 내음을 맡으면 절로 건강해지는 것처럼 몸이 즐겁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그런 느낌이다. 정리가 된 것과 날 것 그대로의 느낌도 어우러지니, 지루하지 않다. 어쩌면 내 성격과 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으니 조만간 대관령에 꼭 가족과 함께 가보고 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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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바람의 빛과 온도 책을 만나는 통로는 다양하다. 동네 서점에서 인터넷 서점으로, 추천에서 찾아보기로, 꼬리를 무는 책과 책사이로 거기에다 sns의 화면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을 추가한다. 어쩌면 요사이 주요한 통로는 오히려 sns로 그 중심이 옮겨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에 꾸준히 글을 올리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 작가의 책 역시 그런 경로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Ji Won Kim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에서 만난 김인자이 ‘대관령에 오시려거든’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페이스북에 ‘대관령 통신’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들의 모음이다. 제법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좋아했던 글들이라서 종이책으로 다시 읽은 새로움을 만난다. 대관령 통신은 저자가 대관령에 거처를 마련하고 반 도시 반 농촌의 삶을 시작한 이후 대관령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깨달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글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하기에 자연의 변화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봄부터 겨울까지 시간의 흐름에 중점을 둔 짜임새로 엮어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이야기가 귀농일기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정상 반 도시 반 농촌 생활을 하며 여행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써의 대관령의 이국적인 자연과 삶을 기록한 글로 앞부분에는 사계를 다뤘고 뒤에는 연가(戀歌)로 채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여, 계절의 특징적인 이미지를 스스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사고의 과정을 거친 이야기들이 담겼다. 저자가 계절을 만나는 방식은 여느 사람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지만 저자의 시각을 통한 계절이 주는 성찰의 결과는 사뭇 달라짐을 느끼게 한다. 이는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변화는 어떤 숙성의 과정을 거쳤느냐에 따라 결과가 사뭇 달라지듯 저자의 성찰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하여 짧은 한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린다. 그만큼 되새겨야 할 이야기들로 넘쳐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가 자연과 스스로를 돌아본 성찰의 결과가 확실히 달라져 보이는 부분은 ‘사랑, 그 미완의 문장’과 ‘너에게 간다는 말’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스스로와 세상을 보는 저자의 깊이 있는 시각은 지극정성으로 스스로를 돌보며 사랑한 결과물로 보인다. "세상에 옷은 널려있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은 드물다. 나는 수년을 아끼고 애용해 내 몸에 딱 맞는 옷 하나가 대관령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걸 의심하지 않는다." 누구든 일상이 꿈과 직결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여, 꿈은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잘 맞는 옷을 입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꿈과 현실 속에서 현실에 방점을 둘 때 저자처럼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이 입고 아주 단순한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보내는 ‘대관령 통신’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슴에 담긴 세상이 어떤 빛과 온도를 가졌는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