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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승우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책이었다. 그동안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체가 길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라 고민이 많이 되었다. 작가님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독서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이 부분은 이상한 욕심이었다. 얼마 전, 자취하는 집에 책을 가지러 가는 길에 눈에 띄어서 가지고 오게 되었고, 바로 읽게 되었다. 소설에는 크게 세 사람이 등장한다. 형배와 선희, 그리고 영석. 이 세 사람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형배는 대학교 시절에 후배 선희의 고백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결혼식장에서 선희의 모습을 발견한 후 사랑에 빠진다. 형배는 선희에게 고백했지만 불쾌하게 반응한다. 그녀에게는 이미 영석이라는 애인이 있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사랑을 바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언급했던 것처럼 문장이 길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심지어 내용이 다 이해가 된다. 문장 하나하나의 통찰력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적어도 사랑이라는 주제로 고민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크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일에 나누어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준호라는 인물이 꽤 인상적으로 남았다. 준호는 주인공에서 약간 벗어났다. 형배의 친구로서 두세 번 등장한다. 처음은 술자리에서 사랑에 대한 자기 관점을 전하는 내용이다. 준호는 자유연애 주의자로 결혼과 가장 먼 편에 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민영이라는 이름의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다. 종교를 믿는 혼전순결주의자인 민영과 스킨십 하나 없이 결혼하게 된다고 형배와 친구들에게 선언한 것이다. 초반에는 준호의 이야기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양다리 합리화를 시키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었던 폴리아모리 에세이가 떠오르면서 그의 부정적인 예를 그대로 따르는 듯했다. 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인간에게 제정신이 박힐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악감정이 들었는데 민영과 결혼을 약속하는 순간 물음표가 들었다. 여전히 그의 논리는 당황스럽지만 이렇게 사랑이 가능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뻔한 사랑 소설이 아니어서 만족스러웠다. 읽는 내내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는 관계보다는 그들이 보는 사랑의 관점이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 잘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저 왜 그들 각각 사랑에 대한 이런 시선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 초반에는 관전자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중심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모습을 거울 삼아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었던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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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편소설로 분류되지만 그보다는 사랑에 관한 에세이, 혹은 사랑에 관한 언어유희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 싶다. 책은 분명히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형배, 선희, 영석이라는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설 안에서 저마다의 사랑을 한다. 책 속 인물들이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이 책의 메인 서사다.
하지만 이 책에서 서사가 갖는 힘은 약하다. 인물들의 사랑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일종의 로맨스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른 로맨스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 사랑을 하는 과정 등이 상세히 묘사된다. 그게 독자가 로맨스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의 생애>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은 다소 급박하게, 순식간에 이뤄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몇 페이지를 넘겼을 뿐인데, 인물들의 시간은 훌쩍 넘어가 있기도 하고, 인물들 간의 사랑은 이쪽에서 금새 저쪽으로 가 있기도 하다. 어찌 보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친절한 전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의 서사를 추구하기 위해서 이 책을 펼친다면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싶다는 소망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과거의 자신이 내린 탁월한 결정에 감탄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은 그저 곁들 뿐이고, 그들의 사랑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면서 작가가 사랑을 성찰하고 정의하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메인 요리다. 저자가 개입하여 사랑을 사색하는 부분에서 독자의 손은 아주 바빠진다. 거를 문장은 하나도 없고, 문장 하나 하나를 전부 다 머리 속에 박아 넣고 싶다는 욕망이 손을 바삐 움직이게 한다.
당신이 구입한 <사랑의 생애>는 밑줄로, 형광 표시로, 포스트잇으로 뒤덮일 것이다. 내 책이 그렇게 되었듯이. (참고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 한 종을 다 써버렸다. 책에 포스트잇으로 표시한다면 가급적 넉넉히 준비하시길)
살면서 종종 사랑에 빠지고는 했다. 이미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난 다음에서야 나는 자문했다. 나는 어쩌다가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지? 사랑에 있어서는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랑에 관해서는 늘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낭만 빼면 시체인 사랑을 숙주로, 다소간의 혐오감과 불쾌함을 일으키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가는 그걸 해낸다. 그는 숙주와 기생체 같은 용어를 사용해서 사랑을 정의하지만, 그가 내린 사랑의 정의는 여전히 낭만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또한 이 문장은 사랑 앞에만 서면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를 깨닫게했다. 사랑은 내 선택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의 이유를 항상 잘 모르는 상태로 사랑에 빠져들고는 했던 것이었다. 작가는 사랑이 사랑하는 주체의 선택이 아닌, 사랑이라는 기생체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기생체의 마음을 알 길은 없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수도, 인간이 아직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면모. 그걸 기가 막하게 표현한 문장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랑을 할 적에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를 주저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 책은 이런 멋진 문장으로 표현한다. 사랑한다고 말한 뒤에 사랑하지 않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해라는 말은 우리의 사랑에 확실한 낙인을 찍는 일과 다름 없다.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사랑을 진지하게 여길 수록 증세는 뚜렷해진다.
작가는 사랑이 이런 것이라고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주인공의 물음처럼,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게 작가가 사색 끝에 내린 결말인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사랑이 워낙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랑을 한다. 함께 높이 오르는 사랑도 있고,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랑도 있다. 모두 다 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결말을 내고 싶어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사랑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알쏭달쏭한 기분을 떨쳐내고 싶었다. 명료하고 깔끔한 정신 상태로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 덜 상처주고, 덜 상처받을지 모르니까. 그에 대한 깔끔한 답은 결국 얻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사랑 앞에 늘 어리둥절한 내 자신을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구나. 사랑하는 중이구나. 사랑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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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덮친다......사랑하는 자는 자기속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는 어떤사람, 즉 사랑을 속수무책으로 겪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자기 호감의 표현이 홀대를 당하고 버려지는 사태를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암시는, 이성을 끌어들이는 데 있어, 그 사람을 둘러싼 외적조건들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외적 조건들은 이 조건을 이길 수 없다.
책을 읽은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내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여져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자는 곧 나이고 어제 만난 너였고 상처주던 나이며 상처받았다고 하는 너였다... 밑줄 긋지 않은 곳을 찾는게 더 쉽겠다. 되새김질 해도 그가 나는 경이롭다. 지금이라도 이승우라는 작가를 만나서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2017년 5월 16일- |
| 오케이 제대로 읽은 소설 등장... 근데 이거 읽고 이승우 작가 글은 내 취향 아니라는 걸 깨달음 일단 글은 매우매우 굉장히 잘 쓰시지만 너무 현학적? 이랄까 추상적이랄까... 뭐 그게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일상적이고 별거 아닌 사건들에 대해 사랑을 주제로 심오 있게 통찰한 부분들이 엿보인다. but 잘 기억은 안나는데 걍 뭔가 여자가 엄마처럼 구는 부분? 남자가 모성애 갈구하는 부분? 이 좀 싫었던듯 기억은 잘 안나긴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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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 이승우 이 책이 과연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차라리 사랑학 개론 혹은 원론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소설로서의 요소, 즉 스토리와 주인공들은 사랑학 개론을 설명하는 예시처럼 등장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묘하고 당황스러운 현상들을 탐사”하는 소설이라고 아예 선언을 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된다. 옳고 그름이나 동의 여부를 떠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속속들이 그 속성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속성이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대하여 흥미롭게 쓸 수 있다니. 이승우 작가는 언어를 참 잘 다루는 작가이다. 미묘한 글의 변형의 반복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히 하는데 아주 능하다. 때로는 그 미묘한 변형의 차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다시 읽어야 할 정도인데, 이해만 하면 그 의도하는 바가 아주 선명해진다. [책속으로] 제목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일 뿐이고, 사랑이 그 안에서 제 목숨을 이어간다는 뜻으로 ‘사랑의 생애’라고 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묘하고 당황스러운 현상들을 탐사하는 데 할애된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사랑이 들어와 사는 것이다.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체가 숙주를 선택하는 이치이다.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위악적으로 해석하자면, 그까짓 자격, 일부러 갖추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 것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격을 얻을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그러지 않는다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그 자격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높이는 방법. 자격보다 우위에 자기를 놓는 태도. 못해서가 아니라 하기 싫어서라는 포즈. 사랑하는 자는 알아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는 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앞으로 알아갈, 모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잘 알던(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 숙주 안에 깃들어 생애를 시작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는 자기 가슴속에 그녀가 가득 차서 거의 자기 자신이 그녀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거처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그의 내부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가 살도록 허락했다는 말이 아니다. 사건은 계약이 아니다. 허락이나 동의가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마치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사랑은 덮친다. 덮치는 것이 사건의 속성이다. 사랑하는 자는 자기 속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는(물론 허락을 구하지 않고) 어떤 사람, 즉 사랑을 속수무책으로 겪어야 한다. 그는 사람들의 관계, 특히 애정 문제가 결부된 남녀 관계에 대해 일종의 원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당사자 해결 원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 관계에 끼어들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사자들이 아니고는 그들 사이의 사연의 골과 감정의 주름들을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삼자에게 알려진 것들은, 설령 거의 다 알려졌다고 해도, 실은 아주 조금밖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다 알리려고 해도 알려지지 않는 것, 알려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알려지지 않는 것, 알려질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알아야 할 것이다. 제삼자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것들은 알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했다. 두 번의 약혼과 파혼은 한 여자와 한 것이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세 번의 약혼은 사랑에 대한 그의 갈망을 시사한다. 그는 이성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여성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와 동시에 세 번의 파혼은 사랑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랑을 갈망했지만 사랑에 붙잡히는 것을 무서워했다. 사랑을 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했지만 사랑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그는 여성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원하면서도, 또 원하는 만큼 사랑하지 않기를 원한다. 사랑하라, 그러나 빠지지는 말라. 그것이 그가 내미는 충고였다. 사랑에 빠질 뿐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이 아닌지 돌아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원리는 대개 비슷한데, 어떤 일의 성취에 있어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노력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숨겨진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일반적인 주장과는 달리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슬픈 일이지만, 노력 없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도대체 왜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일까? 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기적 같은 어리석음을 실천하는 것일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랑(즉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거나 어떤 이유에 의해 억압되었거나. 둘은 무관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일 테니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거나, 거짓이 아니라면 아예 사랑이라는 것을(기대가 없어서든 억압되어서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결혼과 사랑은 다른 층위에 위치해 있다는 주장, 결혼은 사랑과 전혀 상관없거나 아주 조금만 상관있다는 주장이 되풀이되었다. 결혼은 인간이 발명한 매우 유익한 제도이지만 그 유익함은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의 완성이나 사랑의 성취를 위해 고안된 제도가 아니라는 것. 결혼을 할 사람은 하라. 그러나 그것을 사랑과 연관시키지는 말라…….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정말 참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버릴 것인가. 가슴은 취하고 다리는 버릴 것인가. 그럴 수 있는가. 가령 잠들기 전의 달콤한 키스는 취하고 그 사람이 코 고는 것을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과의 키스를 즐기려면 그 사람의 코골이도 용납해야 한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한 사람과 코를 심하게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감정과 감각에만 의존할 때 사람은 키스의 달콤함만을 기대하고 바라게 된다. 감정이나 감각이 아니라 그보다 강제적인 어떤 것, 이를테면 의지에 기반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의지에 입각하지 않은 사랑은 일관성 유지가 힘들다. 결혼 제도는 장치로서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이성을 끌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접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세를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지 않을 때 이성이 다가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성의 접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표시는, 그 또는 그녀에게 다가갈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금방 띄게 된다. 다가갈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잘하고, 늘 하고 있는 것이 예의 주시니까.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현하(려)는 사람은 자기가 한(하려는) 표현이 맞이할 운명에 민감하다. 닫고 있는 사람은 닫혀 있는 다른 사람을 여는 데 자신이 없고, 그래서 시도를 하지 않는다. 한가지 취향을 고수하게 되면 각기 다른 개인들의 매력을 무시해야 되는데, 그것은 주어진 자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손실이고,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개인들에 대한 모독이다. 손실이든 모독이든 그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세계는 다채롭고 풍부하고 다양하다. 세계에 퍼져 있는 다채롭고 풍부하고 다양한 매력을 감지할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특정한 취향에만 반응한다. 능력의 부재를 특별한 개성인 양 위장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어떤 순수는 때로 순수하지 않은 행위를 통해 증명된다. 강요당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니까 모든 사랑의 고백은 강요된 것이지만, 거꾸로 사랑한다는 고백에 의해 사랑이 이끌려 나오는 일도 일어난다. ...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을 어떤 소설가는 자기 소설집 작가의 말에 쓴 적이 있다. ... 기본적으로 이 문장은 말의 주술에 대한 것으로 읽힌다. 말이 가진 힘에 대한 말. 그러면 자극을 가한 주체에게는? 말을 들은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한 사람에게는? 말의 영향은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나타나지 않을까. 말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나타나지 않을까. 왜 아니겠는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한다. 더욱 겨냥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하는 사람은 하면서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하는 사람, 하면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사랑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은 신비였다. 말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랑도 그러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의 삶보다 문제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달라고 구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의 삶이다. 대개의 경우 무엇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과 무엇을 달라고 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동일인이다. 원하는 것을 받은 경험이 없는 것보다 원하는 것을 달라고 구해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이 사람의 내부를 더 심각하게 충격한다.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한 경험이 아니라 원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경험이 더 근원적이고 더 뿌리 깊다. 선희를 만나면서 그가 정말로 원한 것은 사랑한다고 해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험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자기를 겪는 일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듯 그는 또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하는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그의 요구를 받아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가 아니라 자기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할 때, 그런 요구를 하는 자기를 보고 그런 요구를 하는 자기 목소리를 들을 때, 그는 흥분했다. 제각기 다르게 사랑하면서도 누구나 ‘사랑한다’는 한 가지 표현을 쓴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같은 말을 하면서 다르게 사랑한다. 행복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행복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상태를 동경하고, 그렇지만 행복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행복한 상태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자각하지 못한다. 행복해도 행복한 걸 모르고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은 걸 모른다. 그러면서도 행복을 갈구하는 것은 행복이 있다는 것을 여러 경로의 풍문을 통해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실은 자기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간절하고, 간절하지만, 간절하기만 할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떻게 하지 못한다.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 ‘사랑하기’라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랑이다. 이 기적의 주체는 사랑이다. 연인들은 사랑이 기적을 행하는 장소이다. 사랑이 사랑하게 한다. 이는 마치 존재가 존재하게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철학자에 의하면 존재는 모든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근거이다. 의도를 넘어서는 표현들, 동기와 상관없는 결과들, 원문에서 달아나는 번역들이 삶에 신비를 더한다.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지만, 어떤 이에게 약함은 치명적인 무기이다. 의도와 상관없는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인생이다. 결과로 의도를 유추해내는 것은 의도로 결과를 예측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잘 보이기 위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는 점에서 우정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을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이상적인 관계이다. 보르헤스는, 사랑과는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정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말속에는 증명해야 할 불편한 의무(우정에는 없는)가 사랑에는 주어져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의심하는 사람은 무엇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기 의심이 오해에서 비롯한 것임이 밝혀져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왜냐하면 의심하는 동안은 몹시 괴롭고 혼란스러우니까)과 자기 의심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마음(왜냐하면 의심하는 자기에 대한 확신, 근거 없이 의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의심하는 동안의 고통과 혼란을 일정 부분 상쇄시켜준다고 믿으니까)이 그것이다. 의심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만족이 아니라 의심이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사람의 의심은 확신하는 사람의 확신보다 언제나 확고하다. 의심하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말하는 사람의 말을 다르게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무슨 말을 해도 다르게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말은 맥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매우 불완전하고 비자족적인 신호체계라서 듣고 싶은 데에 따라 달리 들리는 속성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 의심에 사로잡혀 무슨 말을 해도 말 그대로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사랑이, 대체 뭘까?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다. 냉장고가 무엇인지, 삽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 냉장고와 삽의 정의를 묻듯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 사랑의 정의를 묻는다. 냉장고와 삽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를 원하는 사람과 냉장고와 삽을 이용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잘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혹은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과 사랑(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같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혹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관념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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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의 네번째
'사랑'만큼 다양하게 표현되는 말은 없는 듯 하다. 그런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사이의 감정 중의 하나로만 생각했지 그것 자체에도 생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도 시작이 있고 성장, 성숙을 하다가 쇠퇴하고 소멸되기도 한다는 것..
이 소설이 등장 인물들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러한 사랑의 생애를 설명하기 위한, 쉽게 예를 들기 위한 소재라는 생각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을 통해야지만 설명이 될 수 있고 그래야지만 우리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느끼는 감정,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알고는 있는.. 그런 것들이 인물의 관계와 갈등속에서 표현되면서 맞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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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이승우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고, 필력이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일 뿐이라고 표현한 점, 누군가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그 감정의 변화를 낱낱이 밝힌 점, 사람마다 다른 사랑의 가치관 등을 제시한 점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모두가 사랑을 해야만 한다는 전제로 글을 써내려간 점, 그 상대를 이성으로 한정한 듯한 어투 등은 다소 불편했습니다. (108p, 객관적으로 얼굴이 예쁘다는 평가를 받는데도 남자들이 다가가지 않아 외로워하는 여자도 있고 몸매가 좋고 유머가 있음에도 여성에게 인기가 없어 혼자 지내는 남자가 있다는 건 어쩐 일일까) 작가가 신학과를 나오셔서 기독교적 관점으로 쓰신 것도 있겠지만,, 저와는 다른 생각이네요. 사랑의 복잡한 심리를 다룬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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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님의 입문책으로 추천하는 <사랑의 생애> 이 책응 시작으로 이승우 작가님의 모든 책을 구매하는 중이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이 책은 독특한 소설일 수 있는데, 그 부분이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다. 사랑과 삶을 이야기 하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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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듯 소설아닌 책 처음에는 조금 갸우뚱했다 이게 무슨 내용이지 ? 하지만 뒤로 갈수록 흡입력이 상당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이승우 작가님의 문체가 좋다 어떤 문장들에서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뭐였나 내가 했던 그리고 하고자 하는 사랑이 대체 무엇인가를 다른 시선으로 생각할수있게됐습니다 남는게 많았습니다 중요한것은 아는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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