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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속에서 빛나는 단단한 희망- 주용일의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
"소멸 속에서 빛나는 단단한 희망- 주용일의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 내용보기
소멸 속에서 빛나는 단단한 희망- 주용일의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     주용일 시집『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문학과경계, 2003)를 지배하는 정조는 소멸의 정조이다. 소멸은 사라짐을 의미하지만, 그의 시에서 소멸은 다른 존재들의 “밑거름”이 되는 소멸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사라짐의 상태를 넘어선다. 표제작인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에 나타나는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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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속에서 빛나는 단단한 희망

- 주용일의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

 

 

 

주용일 시집『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문학과경계, 2003)를 지배하는 정조는 소멸의 정조이다. 소멸은 사라짐을 의미하지만, 그의 시에서 소멸은 다른 존재들의 밑거름이 되는 소멸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사라짐의 상태를 넘어선다. 표제작인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에 나타나는바,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정신들푸석이는 한줌 재로 감나무의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불타는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 정신의 종착지이면서 새로운 정신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소멸에서 생성을 발견하는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은 주용일 시에 드러나는 선()의 정신이 시대적 유행과는 무관한 것임을 입증한다.

 

시절 만난 연꽃 피었다

그 연꽃 아름답다 하지 마라

더러움 딛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오욕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삶 어디 있으랴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음부에서 피어난 꽃송이다

- 팔월 연못에서부분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일반의 인식세계와 비교해 보면, 이 시는 그러한 보편적 인식의 너머를 지향하고 있다. 더러움이 없이 아름다운 꽃은 피지 않는다는 것, 요컨대 더러움은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특성일 뿐이라고 시인은 강조한다. 따라서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하여 그 꽃이 다른 꽃보다 더욱 아름다워야 할 이유는 없다. 깨끗함과 더러움을 판별하는 기준이 인간의 이성이듯, 더러움과 아름다움을 가르는 것도 인간의 이성이다. 꽃은 그대로인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이성에 따라 꽃의 외연(의미)이 변한다. 인간 스스로가 부여한 의미를 꽃의 본질로 착각하는 데서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주용일의 시는 이러한 가치 판단의 세계와는 다른 시적 직관의 세계와 맞물려 있다. 이성은 시인에 의하면 욕망에 다름 아니다. 욕망의 벌레가 알을 낳고/ 이성의 벌레가 새끼 벌레를 키운다/ 언제나 어디서나 지칠 줄 모르고 꿈틀대는”(몸속의 벌레) 것이 욕망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은 끊임없이 확산되는 지배의 욕망이다. 이성이 시를 규정하는 한, 시가 지배 욕망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성의 눈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현실을 시화함으로써 시인은 인간의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시적 직관의 세계를 노래한다. 직관은 현실 너머를 바라보되, 그 현실을 초월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과정을 주용일의 시적 직관은 보여주고 있는바, 형상을 짓는 마음을 향한 시인의 비판의식은 무엇보다 이러한 직관의 힘을 경유하여 표현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마음이 형상을 짓는 것일 뿐 형상은 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가에서 만난 막돌 속에 부처가 가부좌 틀고 앉았는 것도, 새가 날고 있는 것도, 칼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돌 속의 부처를 보고 새를 보고 칼을 봅니다 그리고 손톱이 닳아가며 물가에 쭈그려 앉아 선사 시대 조상 흉내를 내며 돌을 갑니다 한 나절을 갈자 그럴듯한 칼이 하나 만들어집니다 칼은 이미 없던 것인데 마음이 칼을 지었습니다 잘 다듬어진 돌칼로 마음을 주욱 찢어버립니다 마음 속의 칼도 동강나 버립니다 눈 앞에는 오직 무심한 돌칼 하나 던져져 있을 뿐입니다

- 돌칼전문

 

시인이 지향하는 시적 세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시다. 돌 속에서 부처를 보고 새를 보고 칼을 보는 것은, 그리고 그 돌을 재료로 칼 하나 짓는 것은 실상 무심한 돌칼의 입장에서 보면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물의 외면만 변했을 뿐, 돌이라는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형상을 짓는다는 옹골찬 깨달음이다. 마음이 형상을 짓는다면, 실제의 형상은 실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무심한 돌칼은 분명 던져져 있지만, 다시 말해 형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형상이 인간의 이성을 거치는 순간 형상은 사라지고 그 형상의 의미만 남는다. 형상의 의미를 형상으로 착각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주욱 찢어버리는 순간은 형상에 부여된 의미를 넘어서는 시적 직관의 순간을 나타낸다. 마음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돌칼은 다만 무심한 돌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존재해야만 돌칼은 -로서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대상의 본질을 타자성의 맥락에서 되묻고 있는 돌칼의 시적 세계는 실로 주용일 시 전반을 통어하는 핵심적인 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붐비는 시장 좁다란 골목,

어쩌다 홀로 나왔는지

아장아장 아기가 걸어갑니다

찬거리 담긴 봉지들이

묵직한 시장바구니들이

아기 곁을 조심조심 지나갑니다

아기를 에워싸는 저 훈훈한 공기막,

비린 잇속을 발빠른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오늘

재래시장 좁다란 골목 안에

아기 연꽃 한 송이 피워냅니다

- 아기 한 분전문

 

지리산 실상사 극락전을 들어서는데

인적 없는 고요 속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를 맞이합니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자

쪼르르 달려와서는

큰왕방울 눈을 굴리며

, 어라 못 보던 얼굴인데 합니다

다람쥐 마음을 눈치 채고

내가 먼저 인사합니다

그래, 그래, 실상사 다람쥐가

생불 다람쥐가 두 손 모으며

내 서툰 합장 인사를 받습니다

- 다람쥐 합장전문

 

인간의 이성-욕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기 연꽃이고 생불 다람쥐이다. 아기가 저잣거리에서 피워내는 저 훈훈한 공기막을 연상해 보라. 아이가 있음으로써 저잣거리의 사람들은 비린 잇속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다. 아기의 모습은 큰왕방울 눈을 굴리며시인을 쳐다보는 다람쥐의 형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질서의 세계에서 보자면 작은 부분을 이루지만, 그들이 없는 질서의 세계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아기가 연꽃이 되고, 다람쥐가 생불이 되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 시인은 새로운 세계의 형상을 본다. 그것은 있어야 할 세계이지만 지금은 부재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시 속에서만 존재하는 세계일 수도 있다. 모든 존재들이 공명하는 세계란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가. 시인의 말처럼 그곳에서 살아 있다는 건 느끼는 일/ 온몸으로 서로를 나누는 일”(저 키 작은 회양목이)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부재하는 세계를 향한 꿈은 내일은 집을 지어야지/ 내일은 집을 지어야지”(힐던새는 집을 짓지 않는다) 읊조리며 서글프게 운다는 힐던새핏빛 선율 울음과 다를 수 없다. 부재하는 세계를 향한 꿈은 미래의 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을 위해 핏빛처럼 서럽게 우는 것을 힐던새-시인은 감당해야 한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은/ 제 몸 속의 욕을 날마다 저리/ 허공으로 날려보내기 때문이 아닐까”(욕을 하고 싶다)라는 시구는 그래서 시에 대한 시인의 자기고백으로 읽힌다. 자신의 맑은 시는 제 몸 속의 욕을 날마다 허공 속으로 날려보내기 때문에 생성될 수 있다. 그것은 돌려 말하면 몸 속의 캄캄한 어둠”(가자미)을 빛의 세계로 방출하는 것이다. 하여,

 

자본의 땅에서, 무기의 땅에서, 소비의 땅에서, 불에 그을린 검은 얼굴의 대장장이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전기 풀무에 가스불에 무쇠를 걸어 그가 내리치는 것은 괭이 낫 도끼 같은 한물 간 것들이지만 과거도 텅텅 두들기다 보면 날이 서고 단단해진다 찬물에 차르륵 제 가슴의 불덩이까지 식히며 내리치는 망치 소리, 무쇠가 물과 불 사이를 오가며 벼리듯이 우리 생의 절망들도 저리 녹여 두드리면 단단한 희망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오늘도 현대식 대장간 앞을 지난다

- 희망을 두들기는 대장장이전문

 

라는 시인의 진술이 그 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제 가슴의 불덩이를 망치로 내리치는 대장장이의 모습은 시인의 형상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흔적을 거추장스러운 삶의 꼬리”(封人)로 의미화하는 시인의 시간인식은 이 시에서 과거도 텅텅 두들기다 보면 날이 서고 단단해진다는 진술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삶에 대한 내 사랑의 반어”(같은 시)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그것은 세상의 삶에 대한 염결성의 표현일 수도 있다.

 

우리 생의 절망속에서 희망의 빛을 사유하는 주용일의 시는 이처럼 단단한 희망의 정서와 마주하고 있다. 그 희망은 그렇지만 작은 것에 대한 사유에서 움트는 희망이다. 대장장이-시인의 길은 불에 그을린 검은 얼굴만큼이나 지금 이곳의 사람들과는 이질적인 존재의 길이다. 그 이질성이 무엇보다 주용일의 시를 규정하는 특징이겠지만, 그 낯선 존재의 시를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시인의 낯선 시 속에는 빗방울들 스스로를 열어/ 서로서로 꼭 껴안고 하나 되”(빗방울들의 투신)는 낯설지만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또 다른 세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o*****s 2017.12.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