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키아벨리(Niccol Machiavelli, 1469∼1527)의 <군주론>은 흔히 '현실주의' 정치 사상의 태동을 연 고전으로 평가된다. 그는 기존의 정치 원리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 형태들을 논해왔음을 비판한다. 또한 군주는 당면한 실제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윤리와 정치간의 분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사상의 핵심이다. 이 저서에서 그는 자신이 연구한 그동안의 정치사, 즉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부터 최근의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정치적인 사건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순간들을 예로 들면서, 한 나라의 군주가 다른 지역을 정복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여러 덕목들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군주론>을 접한 필자에게 유독 흥미로웠던 점은 이러한 군주의 덕목들을 제창한 저자 자신이 사실은 '공화주의자'였다는 데 있다. 그는 평생을 공화정에 대한 확신과 동경 속에서 살았다. 그런 그가 군주의 나아갈 길을 밝히는 글을 집필하고, 복귀한 메디치 가에 이 책을 바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서두부터 메디치 가를 향한 헌정사로 시작되어, 말미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탈리아의 미래를 당부하는 대목은 간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군주론>만을 알고서는 마키아벨리가 공화정을 옹호했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힘들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정황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마키아벨리는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피렌체의 통치자로 등극하여 메디치 가의 황금기를 여는 첫 해인 1469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할 만큼 성장한 1490년대는 메디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공화정이 들어서 있던 시기였다. 1498년, 29세의 나이로 공화정에 몸을 담게 되면서 그는 주로 외교적인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불과 15년 후, 스페인의 공격으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가 다시 득세하게 되면서 그는 공직에서 추방되었고, 뒤이어 메디치 정부에 대한 음모 혐의에 연루되어 감옥 생활을 하기도 한다. 같은 해 교황 레오 10세의 사면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메디치 정부에 들어가서 일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해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꿈꾸는 공화정이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책에서도 나타나듯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가의 '통일'이라고 보았다.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그리고 교황령에 이르는 여러 분열된 공국들 간의 세력 다툼과 이 틈새를 이용하여 반도를 침범해오는 외세의 압력 속에서 어떠한 제도의 국가라도 평화를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인민들이 자유로운 삶을 누린다는 공화정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 자신이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던 공화정 시기도 스페인의 공격으로 막을 내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러한 외세의 간섭에 휘둘리는 원인에는 분리된 나라라는 현실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잠정적인 결론은 확고한 군주국의 성립이었던 것이다. 책에서 무엇보다 신생 군주국의 상황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것도,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sia)의 일시적인 성공 사례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목적을 확인시켜 준다. 외세의 압박을 막아내고 인민들의 신뢰를 받는 강력한 군주국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점차적으로 그가 꿈꾸는 공화정으로 이행해가길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이 책의 목적마저도 달성하지 못하였다. 메디치 정권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충고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탓일까? 재집권한지 7년만인 1527년, 역시 외세의 압박과 인민의 신임 상실로 메디치 가문은 영구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피렌체에는 다시금 공화정이 들어선다. 하지만 이미 노쇠한(그렇게 여겨지는) 마키아벨리가 새로운 공화정에 참여할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우여곡절 끝에 공화정이 재성립되기는 했지만, 마키아벨리가 추구했던 방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전히 외세의 압박에 휘둘리고 있었고,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계에서 밀려난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적인 성향을 극명히 드러낸 <전술론>, <로마사논고>등의 저술을 집필하고 끝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여겼던 이탈리아의 통일은 그 후로도 35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의 공화정에 대한 동경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 과거의 역사 속에서 가장 정복하기 힘든 국가 중 하나가 공화정이 시행되었던 지역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한 예들을 종합하여, 어떤 군주가 새로운 지역을 정복할 경우(또는 어느 지역의 새 군주가 될 경우) 맞게 되는 지역적 상황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다. 첫째는 강력한 군주와 그 가신들에 의해서 지배되었던 국가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국가는 정복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보통 다른 국가의 지배권을 넘보게 되는 때에는 그곳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진(그러면서도 약소한) 세력들의 협조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이런 국가에서는 지역의 관리나 정부의 신하들이 모두 군주가 직접 임명한, 군주의 사람들이기에 그와 같은 가능성에 기대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정복에 성공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군주 가문만 철저하게 제거한다면 더 이상의 큰 불안요소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인민들은 군주에 대한 복종의 습성이 남아있어 특별한 불만 사항이 없다면 어떤 군주에게라도 똑같은 충성을 보이게 된다. 물론, 인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변화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군주와 여러 세습 귀족에 의해 지배되어왔던 국가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는 군주가 직접 임명하지 않는 세습 귀족들이 각자의 영토를 지배하고 있고, 그 동안에도 군주에 반발하는 세력들이 드물지 않게 존재해왔기 마련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불만 세력들의 협조를 받아 비교적 수월하게 정복을 감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정복이 수월했던 만큼 반대로 유지하기가 힘들다. 언제든지 불만이 생기면 반란을 일으킬 역량을 갖춘 귀족 세력들이 있으며, 인민들 또한 각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귀족을 따라왔기에, 그들에 대한 충성도를 이끌어내는 것도 힘겨운 과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세속 귀족이 지배했던 피정복국의 인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과거의 기억을 잊게 된다. 그 때까지 정복을 유지했던 강대한 로마는 끝내 스페인, 프랑스(갈리아) 지방 사람들을 완전히 로마 인민화할 수 있었으며, 후일 자신들 내부의 혼란 속에서도 기존 세습 귀족들의 부활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한 가지가 바로 공화정을 경험한 인민들이다. 한 번 자유를 누려 본 이들은 결코 그 자유를 잊지 못한다. 첫 번째 예의 (복종 습성을 가진) 인민들과 달리, 그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새로운 통치자가 보다 나은 이득을 가져온다 해도 예전 자신들이 누렸던 자유의 정신과 제도를 끝까지 기억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공화정을 경험한 국가를 정복할 때는 아예 그 공화정을 멸망시켜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반대로, 공화정이야말로 외부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을 유일한 제도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군주론>은 변혁을 꿈꾸는 책이다. 우리가 후일 마르크스의 저작들에서 쉽게 발견했던 것처럼, 마키아벨리는 정치사상가로서 국가와 사회의 모습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정치권력의 행사에 개입하거나 관여하고자 했다. 정치사상가의 이러한 일면은 사실 플라톤을 선두로 하는 역사 속의 수많은 인물들에게서 조금씩은 발견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와는 또 다른 독특함이 있다. 우선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내용상의 호소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 책을 권력자에게 바침으로써 정치권으로 자신을 받아들여 달라는 호소이기도 했다. 그의 변혁에 대한 열망은 정치사상가의 자리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점은, 앞서 언급했듯 <군주론>에서의 그의 주장이 사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혹자는 공화주의자라고 자처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는 글을 쓰고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는, 그리고 정작 공화정이 복귀했을 때도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아 그 포부를 펼치지 못하게 되는 노(老)사상가에게서 비열한 지식인의 면모를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뒤이어 집필한 <로마사 논고="">에서 공화정에 대한 확신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과, <군주론> 자체에서도 그에 대한 애정이 흐릿하게 발견되고 있다는 점등을 근거로, 그는 죽을 때까지 확고한 공화주의자였으며, 그런 점에서 본 저서는 지극히 전술적인 의도를 지녔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앞선 공화정의 외무 관료를 지냈고, 공직에서 쫓겨난 뒤로는 줄곧 지난 정치사 연구에 몰입했던 그는, 현 시점에서의 공화정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테고, 그러한 고민 끝에 강력한 군주에 의한 국가의 통일과 안정이 불가피한 선결 과제라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격한 현실주의 정치관은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투구한다는 기본 사상에 따라 그는 정치란 종잡을 수 없는 변화로 가득한 속성을 지녔기에, 보편적인 윤리 의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는 너무나 다르다." 라는 표현이 함축적으로 잘 말해주듯, 그의 정치관에 있어서는 필요한 경우라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보편적인 도덕을 위반하는 정치권력은 이미 실패한 것이라는 기존 정치사상가들의 주장을 뒤집는다. 인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위장'과 '속임수'를 써야 할 때도 있으며, 동맹국간에 신의를 져버리는 행위도 그리 주저할 바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잔인한 행위가 불가피하다면 오히려 이를 '단번에' 해치워서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이 말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잔인한 숙청을 과감하게 실천하지 못했을 경우, 오히려 이후로도 인민들에게 그런 행위를 계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몇 명의 불가피한 희생을 치르고 인민들이 그 일을 잊게 하면서 인민을 위한 보다 생산적인 일에 그 시간을 보내라는 충고였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 사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민에 의한 신뢰를 얻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역시 시민을 죽이고, 신의를 배반하고, 무자비하며, 반종교적인 것이 덕이 될 수 없으며, 그러한 행동으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영광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그가 역설하는 '외양'의 정치 권력이란 결국 그 영광에 흠집을 지닌 채로 성립될 수밖에 없는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군주론>은 저자의 궁극적 목표를 향한 전술적 선결 과제라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마키아벨리가 독자를 당혹시킬 만한 과격한 변혁 사상을 이처럼 쉽사리 언급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현실적인 정치관으로 강력한 군주에 의한 조속한 통일과 안정을 꿈꾸었던 정치가이다. 그에겐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정치 일선에 뛰어들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고, 더 나아가 자신이 최상의 정치 제도라 믿은 통일되고 안정적인 공화정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과격한 현실주의 정치 덕목은 대부분 인민에 대한 신뢰를 최고 상위 덕목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공화정은 현재 우리가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그는 공화정이 인민이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자의 정치력으로 인민들을 속일 수도 있고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는 말로 그들을 폄하한 셈이다. 결국 인민에게 자유를 주는 권력자, 또는 권력 집단은 있어도,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는 인민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그가 지금부터 500년 전의 세상을, 그것도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인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그는 500년 후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가 주창한 '외양'의 정치 사상은 논자의 사후에야 빛을 발할 수 있었지만 그 빛이 너무나 크고 왜곡되어, 한편으로 무수한 후대 권력자들의 정치선동, 국민기만, 우민정책 등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대변자 역할을 하고 말았다.군주론>군주론>로마사>군주론>군주론>군주론>군주론>로마사논고>전술론>군주론>군주론>군주론>군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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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군주론]에 대해서는 과거에서부터 읽어볼 생각이 있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주저했던 이유는 첫째, 일반적으로 '고전'을 좀 어렵고 두꺼울 것이다라는 선입관과 둘째, 서점에 존재하는 수많은 번역본들 때문이다. 하지만 [군주론]은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전쟁론]이나 [과학 혁명의 구조] 등에 비할 바가 아니며 본문 내용은 '고작' 177쪽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점에 존재하는 수많은 번역본들은 과연 어떤 책을 고를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군주론]은 아직 완역본이 존재하지 않으며 전부 영역본을 중역한 책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군주론]이 여러가지 면에서 가장 뛰어난 번역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이른바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읽기도 힘들지만 서평이나 요약하기에도 쉽지 않다. 특히 이미 많은 분들이 읽고 연구하는 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다는 점이 굉장히 낯 뜨거운 일이며 자신의 지적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서평 쓰기에 주저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이 책을 비록 읽었지만 모든 '책'이 그렇듯이 이 책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나 글쓴이의 처해진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고서는 고작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정치외교학이나 이탈리아 역사를 공부한 적이 전무하기 때문에 [군주론]을 온전히 소화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운 책이라도 계속 되풀이하여 읽다보면 글쓴이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싶어하는 속내를 알 수 있다. 나도 계속하여 이 책을 읽으므로하여 이 책을 집필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먼저 [군주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상황과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래 마키아벨리는 1498년 피렌체 공화정에 발탁되어 14년 동안 많은 외교적 임무를 띠고 외국에 파견되었으나 1512년 갑작스런 피렌체 공화정의 붕괴와 더불어 그의 공직생활도 끝나게 되었으며 1513년 2월에 불발로 끝난 정권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로 투옥되어 고문받은 끝에 자신의 농장에서 은둔하게 되었으며 1513년 후반에 [군주론]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글쓴이가 [군주론]을 집필한 이유는 현재 피렌체의 군주인 메디치 가에 자신의 정치적 식견과 능력을 입증하는 책을 헌정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었고, 나아가서 공직에 복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군주론]은 군주제가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역설하는 내용일 수 밖에 없었으며 하지만 공직 복귀가 불가능해진 이후에 집필한 [로마사 논고]에서는 군주제 이후에는 공화제로 정치체제가 바뀌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결국 [군주론]을 이해할때도 이런 글쓴이와 시대 상황에 대해 잘 고려해보면 행간에 숨어있는 진실로 마키아벨리가 말하고 하는 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군주론]을 통해 드러나 글쓴이의 정치사상은 대표적인 현실주의를 지향하며 정치역역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근대 정치사상의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특히 그는 현실주의적인 시각에서 공적인 윤리와 사적인 윤리를 구별하면서 군주에게는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 비정하고 냉혹한 행위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혼의 구원을 원하는 자는 차라리 정치영역에 들어서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욕'에 못이겨 정치영역에 발을 내딛다가 그동안 쌓아 왔던 명성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던가? 이를 보면 '정치'라 함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돈이 든 성배'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이어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있어서 '외양'(appearanc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통치자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 및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역자의 해제를 참고하자면 역자는 '서구에서 민중의 지속적이고 끈질긴 투쟁을 통해서 확보된 현대의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에서 인민주권론과 민주주의를 이름뿐인 허울에 불과헤 만든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정치적 선전과 상징조작 - 곧 외양의 조작 -에 근거한 대중정치라는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보면 역자는 최소한 '외양'에 대해서 만큼은 마키아벨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즉, 과거 군주제 아래에서는 군주가 보여주는 '외양'이 정치를 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면 현대 민주주의 아래서는 '외양'이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어 '대중정치'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어서 당시 시대에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군대'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자. 당시에는 용병을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어떠한 군주도 자신의 군대를 양성하지 않는 한, 훌륭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이야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신민들에 의해서 사랑받는 군주라면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결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주론]은 이와 같이 현실주의를 지향하며 정치역역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주장하여 이른바 기독교적 윤리가 정치영역에서는 오히려 '나쁜 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주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9.11 이후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된 세계 정치 역학관계에서도 이런 점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자 후기에 수많은 오역으로 가득찬 번역본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특히 글쓴이는 이런 번역본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오역본이 가득한 이 상황이 독자들의 무감각과 지적 풍토 일반의 책임이며 이러한 책이 널리 보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의 이른바 '고급문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들어내는 단면처럼 보인다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에 자신이 번역한 "이 책은 이탈리아어에 능숙하고 정치사상사 일반은 물론 마키아벨리 사상에도 정통한 번역자가 [군주론]에 대한 탁월한 번역서를 낼 때까지, 잠정적이고 과도기적인 가치를 지닐뿐이다"라고 다시 한번 제대로된 번역서가 나오기를 기원하고 있다. 나 또한 비록 이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완역 [군주론]이 나온다면 당장 구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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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98년 29세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주로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러다가 1512년 스페인의 공격에 의해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513년에 마키아벨리는 (실패로 끝난) 메디치 정부에 대한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같은 해에 메디치 가의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로 즉위하자 특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석방되자마자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정부의 공직에 참여하려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군주론’을 1513년 말경에 집필했으나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낙심한 그는 결국 피렌체 교외에서 칩거생활을 하게 된다. 메디치 군주정은 1527년 프랑스 군의 로마 약탈, 이로 인한 교황의 도주, 인민의 신임 상실 등을 이유로 마침내 붕괴되고 공화정이 복원되었다. 이는 공화주의자인 마키에벨리에게 기쁨으로 작용하여 그에게 예전처럼 활동적인 공작에 복귀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게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새로운 공화주의자들에게 마키아벨리는 한낱 늙고 하찮은 메디치 가의 가신(家臣)에 불과한 인물로 비쳤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를 예감하고 낙담한 탓인지 마키아벨리는 병을 얻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대표적인 현실주의 사상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것은 영광과 권력을 추구하는 군주에게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규범에 구애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나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모두(冒頭)의 헌정서가 설명하듯이, 메디치 가에 자신의 정치적 식견과 능력을 입증하는 책을 헌정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었고, 나아가서 공직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열망은ㅡ‘군주론’을 끝맺는 메디치 가에 대한 ‘권고’에서 명백히 서술하듯이ㅡ만약 그들이 그의 조언을 따른다면, 영광스러운 그들의 가문에는 명예를, 이탈리아인들 모두에게는 이득을 가져오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항상 최고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군주상과는 대조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해 나가는 군주의 모습ㅡ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악행을 저지를 준비도 되어 있는ㅡ을 그리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런 현실주의적인 면에서 후대 저술가들에게 도전을 제기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현실’ 속에서 ‘이상적인’ 군주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의 지침들과 정치 철학이 상당히 호소력을 갖을 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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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알았던 마키아벨리즘은 뭔가 냉정하고 비열하기까지한 정치술에 관련된 것 같았던 기억이 어렴풋해. 그런데 정작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전혀 그게 아닌거야.
군주론을 선택할때는 이 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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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실의 지도자에게 필요한 하나의 기술서이다. 현실의 조건에 어긋나는 맹목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지도자나, 현실의 군중이 추구하는 이상적 비전은 완전히 무시한채 오직 권력유지와 부의 축적에만 혈안이 된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 할것이다. 이 책을 윤리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이 책은 그런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이 책은 마치 바이올린을 켜는 요령을 가르치는 교본과 같은, 행동에 관한 일종의 기술서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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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군주론을 찾으면 판매지수는 3위정도에 있는 책이다. 리뷰들을 보다가 괜찮은 듯 싶어서 구매했다. 오프라인에서 책을 훑어보더라고 빠른 시간안에 판단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샀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출판사가 너무 날로 먹는다..번역은 쉽고 매끄러운 편인데 편집내용과 구성은 엉성하기 짝이없다. 다음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다른 책을 사보고 싶을 정도이다. 번역자의 말에 의하면 마키아벨리가 쓴 책중에서 여기저기서 발췌해서 껴맞추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알만할것이다. 번역은 참 괜찮은데...구성이 영..시원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