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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와 아나키스트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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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카프카는 단독자, 혹은 현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독과 소외, 불안의 재현자 따위로 그려져 왔다. 이런 초상은 인간의 삶은 사회에 대하여 숙명적이고 수세적으로 표상된다. 저자 박홍규의 불만은 거기에 있다. 카프카가 한국 독문학계의 자폐적이고 순응적인 성향과 맞물리면서 실존주의적 우상으로 등극한 듯 하여 실망스러워 한다. 그 외에 유태 시오니스트들에 의해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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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카프카는 단독자, 혹은 현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독과 소외, 불안의 재현자 따위로 그려져 왔다. 이런 초상은 인간의 삶은 사회에 대하여 숙명적이고 수세적으로 표상된다. 저자 박홍규의 불만은 거기에 있다. 카프카가 한국 독문학계의 자폐적이고 순응적인 성향과 맞물리면서 실존주의적 우상으로 등극한 듯 하여 실망스러워 한다. 그 외에 유태 시오니스트들에 의해 유대 신비주의 작가로 민족 종교적으로 해석되거나 섯부른 동서양 이분법을 전제로 카프카가 동양과 서양이 만나 형성되었다는, 또 다른 형태의 유사 신비주의적 해석에 대해서는 카프카가 본래 지니고 있던 사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증으로 들면서 해석자의 "반사회적" 태도를 카프카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한다. 덧붙여 마르크스주의 일각에서 카프카를 부르조아 모더니스트로 일갈하여 폄하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박홍규의 카프카에 대한 해석은 에른스트 피셔나 질 들뢰즈의 해석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박홍규에 의해 그려지는 카프카는 좀 더 지적으로 명석하고, 사회적으로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자로 그려진다. 그는 어떤 뚜렸한 정치적 행동으로 그런 저항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권력, 국가, 정부, 쁘띠 부르조아적 관료주의에 저항했으며, 그런 일관성을 통해 저자는 그를 아나키스트라고 불릴만하다고 평가한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여타 해석들, 예를 들어 문학주의자적 해석이나 철학적 해석, 맑시스트들의 해석, 유사 오리엔탈리스트들의 해석들이 점점 억지스럽게 들리게 되었다. 또 하나 이 책의 미덕은 카프카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내부에서 독일인들과 함께 체코인들 속에 뭍혀 사는, 독일어권 유태인들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사회적 복잡성과 역동성, 입체성 속에서 카프카를 제대로 위치시켰을 때 우리는 카프카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상식적 인상 - 어둡고 폐쇄된 연민스런 인간이란 인상 - 은 사라지고 좀 더 역동적이면서 저항적이고 쾌활한 인간을 보게 된다. 역시 내가 알고 있던 카프카는 독일문학 전공자의 어두움 정신 세계가 영향을 미쳤던 탓이었을까? ^^ 여하튼 이 책은 카프카에 대한 박홍규라는 개인의 확고한 주관이 뭍어나는 힘있는 책이다. 일독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에 서너 권의 전기를 동시에 출간하는 다작의 작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책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비문과 오탈자가 난무한다. 그리고 책 초반의 맹렬함에 비해 종결은 좀 졸렬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리뷰 총점 종이책
카프카. 그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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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카프카를 읽는 까닭은 무엇일까? 카프카는 예술적이고 환상적이며 또한 지극히 사실적인 작품들로 우리에게 많은 충격과 주제를 던진다. 그를 수식하는 키워드를 고독, 불안, 자기학대, 권력과의 투쟁 등으로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음으로써 해석해낼 수 있는 의미들은 깊히 파고들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카프카의 작품세계는 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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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구성과="" 의미=""> 오늘날 카프카를 읽는 까닭은 무엇일까? 카프카는 예술적이고 환상적이며 또한 지극히 사실적인 작품들로 우리에게 많은 충격과 주제를 던진다. 그를 수식하는 키워드를 고독, 불안, 자기학대, 권력과의 투쟁 등으로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음으로써 해석해낼 수 있는 의미들은 깊히 파고들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카프카의 작품세계는 단적이고 명료한 사실적 묘사에 기초하여 문학의 관점을 문학성이 아닌 민중의 차원으로 현실에 가깝고자 한 반면, 쉽게 이해될 수 없는 혼돈과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추론의 여지를 남기는 미결성에서 큰 의미를 시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 가을 박홍규님의 카프카평전을 접하고 그의 의미가 새롭게 변신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카프카의 모습은 ''카프카적''(kafkaesque, kafkaesk, kafkasch)인 단면만을 상징하고 있던 것이었음을 일깨워 주었고 ''카프카적''인 측면에서의 불안, 고독만으로 해석해선 안되는 복잡다양한 이해의 관점들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카프카에 대해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상식과 역사를 이채롭게 조명시키고 새로운 인식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며 카프카 ''친구''로서 카프카를 ''알고싶은 자''를 독려하는 애정어린 취지를 남긴다. 카프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카프카적 유행만 있고 실제 카프카는 없는 세상속에서 단조롭고 이상하게 낙인찍힌kafkaesque로서의 만연된 현실의 선입견들은 불안과 고독의 작가로만 카프카를 상징한다. 이런 것을 걷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해석의 다의성에 의해 전문가적 비평에 긍정하기 쉬운 만큼 소설작품을 읽는 것 보다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시작이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이 평전은 비평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인 해석에 의해 카프카를 인식하는데 참신한 발상과 전환점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작가가 이 책에서 카프카를 상징시키는 주제어의 요지는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 즉 ''아나키즘''(anarchism)으로서 카프카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점이다. 아나키즘에 대해 잘 몰랐는데 카프카를 통해 갖는 이 단어의 의미는 합당한 구실로서 설득력있게 부각되는 것 같다. 익히 알려진바 대로 어릴적 아버지의 가부장적 억압에서 성장한 카프카는 권력이 상징하는 위압적 공포로부터 죽을 때까지 오랜동안 시달림을 겪었고 그것은 강하게 거부하고 싶은 투쟁적 반항심의 요인이었다. 그 악의 관습으로부터 가지게 된 현실초월의 절대적 욕망은 세상속에서 카프카를 불안하고 고독하게 만들었으며 권력과 맞설 수 밖에 없는 투쟁가로서의 아나키스트로 변신시킨 것이리라. 아나키스트로서의 견해는 카프카의 단적인 불안과 고독의 상징성을 배제하여 권력 거부자로서의 카프카를 우리의 의식에 새롭게 이양시키는 것이며 비판적 관찰자로서 자본주의를 비롯한 권력악습의 거부에 대해 한 치의 갈구도 없이 카프카에 대한 고독과 불안을 함부로 말해선 안되는 것임을 강하게 지적해 간다. 다소 격해진듯한 저자의 주장은 권력의 상징을 통해 느끼는 카프카의 불안과 고독, 소외와 부조리들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의식으로서 다를 바 없는 공감형성 차원이며 그것이 항변이 되길 갈구하는 구실로서의 애정일 것이다. 카프카는 무엇이? 도대체 왜? 그렇게 불안하고 고독한가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강박증으로서 정신불안정자로 취급되는 경향을 가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무심히 지나치는 것에 대한 세심한 관찰자였고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우리와 다른 철저히 보고 느끼는 삶에서의 극단을 치달리며 겪던 일종의 고뇌였음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 평전은 인물성에 밀착한 사실성에 기인하여 카프카의 아나키즘에 의한 권력투쟁의 단면을 느낄 수있으며 카프카의 작품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던 의미들을 이해하는 주석으로서 충실한 교본이 될 것 같다. <에필로그 :="" 카프카로의="" 입문과="" 결말=""> 작품만을 파고 들었을땐 카프카의 키워드인 불안과 고독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힘겨운 일이었다. 작품속 등장인물을 통해서 카프카의 인물상을 조망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받아들이려는 카프카는 전문가들의 비평으로 규정되는 의미안에 갇히고 싶은 건 아니었다. 전문가의 비평이 오랜 세월 세심한 연구에 의한 것이긴 하나 그것만으로 카프카는 정의 내릴 수 없는 깊이와 광대함을 가진다. 수십년을 카프카 연구에 바친 전문가들도 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작품의 상징성과 카프카의 심리를 해독하는 것은 아직도 큰 미결점으로서 전문가들마다 제각각인 것이다. 카프카를 접하는 것은 자유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이토록 쉽지 않음에 나름의 돌파구로 나는 박홍규님의 카프카평전을 접해 보았다. 난해하게 분열되던 ''작품에서의 카프카''는 평전을 통해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카프카''로 거듭났다. 이것은 작품을 통해 형상되던 것과는 분명 틀린 것이었고 나는 카프카를 진정 의미심장하게 마음속에서 해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깊은 밤 고단한 체력으로 그의 ''일기''를 필사해 보았는데 그 속에선 카프카라는 한 인간의 결백한 감정과 진취적 행위들이 결코 불안과 고독으로만 채워진 것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공통의식의 소명으로서 관찰되었다. 카프카가 지닌 이 의식의 무거움과 솔직함은 훗날의 현실위에 서있는 내게 반항할 수 없는 주제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카프카의 불안, 고독은 끝없는 자기폭로와 자기비판의 감정들이었고 나는 그 반항의 주제들을 나의 내면에 솔직히 기입하고 싶다. 언제나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라며 현실의 이 불안과 고독이 깔린 시간속에 나를 침묵시킨다. 현실의 우리를 지키는 숭고하고 엄숙한 정령으로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우리의 의식속에 늘 깨어있는 작가로 남겨질만 하다.

[인상깊은구절]
"빈틈없이 거듭거듭 높이 치솟아 망원경으로조차 꼭대기를 보기 어려울만큼 드높은 그런 생애를 조망할 때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양심이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으로써 양심은 온갖 자상(刺傷)에 대해 보다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내리쳐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무엇때문에 책을 읽겠는가? 당신 말대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도록? 맙소사, 책을 읽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라면 아쉬운 대로 자신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해주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없는 숲 속으로 추방 당한 것 처럼, 자살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