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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고귀한 가치이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어느 사회에서 건 크고 작은 저항을 통해 쟁취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불편한 진실 하나는, 기득권을 잡는 자들의 욕심 의해 투쟁의 명분이 퇴색되고 결국 투쟁 이전에 심판 받은 권력과 다를 게 없어진다는 것이다. 씁쓸한 역사의 반복이다. 동물농장은 동물들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결의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지능이 높은 돼지들이 기득권을 갖게 되고 권력욕이 있는 돼지 나폴레옹은 역사의 왜곡과 공포정치를 수단으로 라이벌을 제거하고 절대권력을 갖게 된다. 무지한 민중과 같은, 낮은 지능의 동물들은 막연한 미래만 기대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하지만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원칙이 왜곡되고 기억조차 모호하여 혁명 전의 삶에서 나아진 게 없는 가운데 돼지들이 인간과 같아 보이는 요상한 광경을 보고 끝난다. 동물농장을 읽으며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지한 민중의 정신을 지배하는 방식, 일명 가스라이팅 하는 내용이 소름 끼치게 인상적이었다. 역사와 사실을 입맛 따라 교묘하게 왜곡하고, 거짓된 통계로 과거보다 삶의 수준이 나아지고 있음을 주입시키며, 절대권력자에게 대항하는 반동분자들은 거짓 자백하게 하여 공개 처형하는 시스템, 모든 공은 절대권력자에게 돌려 우상화하고 모든 과는 적에게 돌려 증오심을 유발시킨다. 이런 사회 속에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기억조차 의심하고 무엇이 옳고 그런지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일용할 양식만 채워지면 되는 존재로 무지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내용은 후작 <1984>에서 더 자세히 그려진 것으로 보아 작가는 무지한 민중의 각성을 절실히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내게도 정신차리라고 외치고 있는 거겠지? 동물농장의 사회는 조지오웰이 경험한 러시아 혁명이나 소련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지금도 저 북한은 리얼한 동물농장이 운영되고 있는 곳이고, 한민족이라는 남조선 사람도 이 냉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동물농장의 천태만상의 구성원일 것이다. 현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내게 나라를 위해, 후대를 위해 큰 희생의 요구가 없음에 소심한 감사를 할 따름이다. 추후 언젠가 인간성이 상실된 불합리한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 자문한다면 지금으로서는 부끄럽지만 현실도피자가 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조지오웰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자신이 가진 글빨로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그의 연보를 보면 첫 직업이 인도제국 경찰로 식민지 관료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행태에 깊이 혐오하여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와 런던 빈민가 생활을 한 후 글을 쓰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과 맞서 싸우고 스페인 내전을 보도하고자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참 실천적인 용감한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에세이에서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동기를 설명한 것을 통해 조금 더 조지오웰을 알 수 있었다.
조지오웰은 스스로 처음 세가지 욕구가 네 번째 욕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지만 스페인 내전 등을 겪으며 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의도가 빠진다면 생명력이 없는 무의미한 글이었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의도를 갖고 쓴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동물농장>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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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동물농장》을 다시 읽었다. 10대 시절에 볼 때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머리가 큰 탓이 적지 않겠지만, 번역 덕도 상당하다. 비꽃에서 출간한 《동물농장》은 책소개에 언급된 대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보여준다.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 번역서 가운데서도 원 텍스트 고유의 결과 느낌을 잘 살린 번역서랄까. 일례로, 작품 초반에 나이 많은 수퇘지 메이저 영감이 농장 동물을 상대로 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을 보면, 원 텍스트의 간결한 리듬감이 한눈에 쉽게 전해진다. (여타의 번역서에서 같은 대목을 찾아 비교해 보면 이 번역서의 미덕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만드는 것 하나 없이 소비만 하는 유일한 존재요. 인간은 우유도 못 만들고, 인간은 알도 못 낳고, 인간은 힘이 없어서 쟁기도 못 끌고, 인간은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달릴 수도 없소. 그런데도 모든 동물을 지배하오. 인간은 동물을 부려 먹고, 인간은 동물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먹을 걸 돌려주고, 나머지는 자기네가 전부 가져가오.” (11쪽) “Man is the only creature that consumes without producing. He does not give milk, he does not lays eggs, he is too weak to pull the plough, he cannot run fast enough to catch rabbits. Yet he is lord of all the animals. He sets them to work, he gives back to them the bare minimum that will prevent them from starving, and the rest he keeps for himself." 담백하고 힘찬 원문의 느낌을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번역 덕분에, 모처럼, 원문과 번역문의 거리에서 빚어지는 껄끄러움 없이 단숨에 책을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동물을 착취하고 제 배만 불리는 악덕 농장주를 쫓아내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꿈꾸었던 농장 동물들. 그러나 처음의 이상은 퇴색, 왜곡되고, 혁명의 꿈은 독재 신화로 탈바꿈한다. 농장 동물들에게 혁명의 이상을 고취하는 수퇘지 메이저 영감, 혁명 이후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며 빼어난 연설 솜씨로 동물들을 선동하는 눈뭉치, 적당한 때를 틈타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나폴레옹과 돼지들, 독재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는 꽥꽥이와 독재자 나폴레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양들, 지도자 나폴레옹을 믿고 따르며 혁명의 대의를 위해 성실히 복무하는 충직한 복서, 혁명의 이상이 변질되고 왜곡된 현실에 이따금 의문을 느끼면서도 어영부영 일상에 복귀하는 클로버, 부당한 현실을 간파하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당나귀 벤자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동물들과 혁명의 성쇠를 함께하며 그 끝에서 실패한 이상 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마주하는 순간, 텁텁하고도 씁쓸한 뒷맛을 곱씹게 된다.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혁명의 실패와 스탈린 시대를 동물농장에 빗대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촛불의 염원은 큰 성과를 빚어냈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지속적인 관심과 고민, 냉철한 문제의식, 비판적인 성찰과 모색이 따르지 않는 한, 꿈과 이상은 어느 틈에 휘발되고, 집단적인 광기와 포퓰리즘의 회오리 속에서 제2, 제3의 나폴레옹이 득세하게 될 수도 있을 터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걸음을 걷고 있는가. 복서와 클로버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결여한 채 일상의 과제를 묵묵히 수행하는 데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벤자민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간파하면서도 냉소와 패배주의의 감옥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양들처럼 특정한 세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건전한 비판과 대화, 통합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진 않는가. 《동물농장》은 이 같은 의문을 일깨우며 나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고전이다. 다시 읽어도 그 힘은 여전하다. 아니, 어쩌면 더 크다고 해야 할까. 여러 번역본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이 번역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원작의 정수를 명료한 우리말로 마주하며 끝까지 거침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