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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배 고팠다! 모든 음식이, 스페인에서 지내다 보면 어디에도 안 빠져 결국에는 눈에 띄기만 해도 싫어하게 되는 강낭콩조차도 맛있는 것 같았다. 얼마 안되는 물은 몇 킬로미터 거리에서 당나귀나 노새등에 싣고 극심하게 부려 먹으면서 운반했다.'
조지 오웰은 민병대원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 점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어니스트 헤밍웨이하고는 다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여행자로서 스페인에 들어갔다. 물론 전투의 한 가운데로 들어 가기는 했다. 수 년간 스페인을 여행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정신과 스페인의 과거와 현재를 누구보다도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헤밍웨이도 1920,30년대에 스페인 곳곳을 여행했다. 전쟁 중에는 통신원 자격으로 스페인에 들어 갔다. 스페인을 체험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앞선다. 조지 오웰은 무정부주의자 진영에 들어 갔고, 헤밍웨이는 공산주의자진영에 들어갔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파시스트진영에 들어 갔다.
오합지졸, 총을 쏠 줄 알기는 커녕 총을 본 적도 없었던 사람들, 형식적인 대강의 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생을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사회주의에 끌리고 사회주의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거는 "신비한 매력"은 평등사상이다. 대다수사람에게 사회주의는 계급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게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민병대에서 보낸 몇달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스페인 민병대는 해체당하기 전까지 계급없는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환멸이 아니라 그윽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사회주의 사회를 갈구하는 욕망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구체적으로 자라났다. 내가 이런 확신을 지닌 건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이들은 기회만 된다면 타고난 품위와 변함없는 무정부주의기질로 사회주의를 굳세게 실천할 거란 사실을온 몸으로 확인하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오웰은 파시스트 저격병에 의해 목을 관통하는 총상을 입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인민전선이 사기일 순 있으나 프랑코는 시대착오다. ... 우리가 프랑코외 외국인 용병을 바다로 몰아낸다는 건, 설사 스페인 전체가 숨막히는 독재에 시달리고 훌륭한 인물은 모두 감옥에 갇히는 사태가 벌어진다해도, 국제정세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려놓는 엄청난 승리일 수 있다. 이것 하나만 해도 이번 내전은 이길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지만 뜻밖의 사태가 일어나서 두 개로 가르지 않는 한, 내전 이후에 들어설 정부는 파시스트 경향을 띨 수 밖에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의견을 다시 한번 밝히니, 시간이 지나서 모든 예언자가 한 말처럼 내 말도 들어 맞는지 한 번 보자.'
파시스트경향을 띤다는 의미는 프랑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화파진영의 조직이 잘된 공산주의 진영까지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오웰은 파시스트와 공산주의를 그 실천적인 측면에서 쌍둥이로 보고 있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