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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취미 중 하나가 야구였는데 10년 정도 활동하던 야구 동호회가 작년 말에 해체를 했다. 코로나19 팬더믹이 결정타였지만 예전에 비해 회원들의 야구에 대한 열의가 사라져서 그런 것 같다(야구에서 골프로 전향한 회원들이 많다). 이제 내게 남은 취미는 남들한테 내세울 만한 것은 못 되지만 클래식 음악 듣기와 독서다. 그래서 가끔 블로그에 클래식 도서 리뷰를 올리거나 클래식 음악을 포스팅 하고 있는데 블로그 이웃인 흙속에저바람속에님께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재작년 11월쯤 클래식 도서를 선물해 주셨다(흙속에저바람속에님의 가을시험 아차상). 선물을 받은 후 바로 독서를 했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완독 후 리뷰를 쓴다(흙속에저바람속에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홍승찬 교수의 <오, 클래식>이라는 클래식 에세이다. <오, 클래식>은 월간 「객석」에 연재한 음악 칼럼을 중심으로 엮은 책으로 단순히 클래식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저자와 인연이 된 인물이나 사건, 클래식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하고 따뜻하게 전해주고 있다. 저자 홍승찬 교수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 의정부 국제 음악극 축제 예술 감독, KBS교향악단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 전공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술경영입문>,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 등이 있다.
우선 180쪽의 작은 판형이 눈길을 끄는 <오, 클래식>은 휴대성이 좋아서 틈틈이 독서하기에 좋은 책으로 지난 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회고전 「에드워드 호퍼 길에서」 를 다녀오면서 이용했던 지하철에서 완독을 했다. 책은 야사 하이페츠, 소콜로프, 라벨, 비트겐슈타인,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푸치니 등 주요 음악가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조성진, 임동혁, 김선욱 등 국내 음악가들의 아야기를 더하고, 영화 '쇼생크 탈출', '인생은 아름다워" 속 음악 이야기, 작가와 인연이 있는 금호그룹 박성용 회장, 소설가 최인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 이강숙 선생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1994년에 개봉했던 영화 '쇼생크 탈출'을 관람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를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책에서는 영화 '쇼생크 탈출'과 관련된 음악 이야기로 따스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쇼생크 감옥에 갇힌 앤디는 감옥 생활 중 교도소장과 다른 간수들의 신임을 얻은 후 동료 죄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간수의 방에서 뜻밖에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녹음한 음반을 발견한 앤디는 허락 없이 음반을 틀고(음악을 멈추라는 간수들의 독촉에도 모르는 척 문을 잠근다) 스피커를 통해 교도소 전체를 음악이 흐르게 한다. 그 결과 벌로 흠씬 두들겨 맞고 2주 동안 독방 신세를 지게 된 앤디는 창백하고 초쵀한 몰골로 독방에서 나오고 앤디를 본 동료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본다.
앤디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놀라서 녹음기를 가져갔냐고 다시 묻자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에 있어. 그것이 음악의 아름다움이야.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지."라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 20쪽
영화 <쇼생크 탈출> 하면 마침내 탈옥을 한 앤디가 자유의 환희를 느끼며 비를 맞던 장면이 떠오르는데, 클래식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교도소 전체에 흐르게 하는 장면은 다시 영화를 보게 된다면 놓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따라 움직인다. 어느 토요일 오후. 몸담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경상남도 어느 농촌의 마을회관으로 내려가 음악회를 열었는데, 하필 농번기라 청중은 코흘리개 다섯에 할머니 두 분 총 7명이었다고 한다. 맥이 빠져 공연을 못하겠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여기 있는 한 사람마다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가자며 7명의 청중에게 넋이 나갈 정도로 멋진 연주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와 연결해서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스트 야사 하이페츠의 일화를 소개하는데 1923년 일본 공연을 불과 몇 주 앞두고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폐허가 된 일본을 방문해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예정에 없던 자선연주회를 열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선의 병사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앞장섰는데 연주회 도중 폭격을 받아 대피하는 위험을 겪고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밖에 모리스 라벨과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피아노 협주곡 이야기, 푸치니의 오페라 <토란토르>와 관련된 안타까운 사연, 모차르트 음악 이야기, 소설가 최인호 작가의 인생 충고, 저자의 아버지 홍춘선과의 일화 등에서 보통의 클래식 에세이와 다른 잔잔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오랫동안 클래식 분야에 몸담으며 후학을 양성하고 음악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그저 클래식이 좋아서' 쓴 <오, 클래식>은 바쁜 일상 속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윽한 커피향처럼 잔잔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다채로운 클래식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는 책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책 읽기가 버거운 사람이라도 출퇴근길 틈틈이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180쪽의 <오, 클래식>은 클래식 이야기에 빠져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칠만큼 클래식의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글이기에 앞서 말이지만 그 말과 글이 하나 되는 기적입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섹시합니다. 짜릿하고 아찔하여 소름이 돋습니다. 살갗에 닿기도 전에 이렇듯 곤두서니 생각이 미칠 겨를조차 없습니다. 닿을 듯 말 듯 밀고 당기며 들었다 놓았다를 거듭하니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본능입니다. - 모차르트 음악이란,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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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승찬교수가 월간 <객석>과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이라고 합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클래식이 그저 좋아서..” 쓴 글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들은 작곡가, 음악, 연주가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감상법, 어떻게 그 음악들이 작곡되었고 연주되었는가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선입견을 과감히 탈피하고 홍승찬 저자의 마음
가는 대로 쓴 클래식 음악과 예술 경영, 그리고 그가 일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야기가 많이 나오며, 저자의 느낌과 생각이 가득한 에세이 입니다. 물론, 작곡가와 음악들은 당연히 나옵니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가 빗속에서 단 한 명의 병사를 위해서 연주한 이야기, 조국 소비에트가 무너진 그 순간에도 내한공연에서 흔들리지 않고 <비창>을 연주했던 지휘자 페도세예프와 페테르스부르크 방송교향악단 이야기, 라벨이
전장에서 돌아와 작곡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음악이 정교한 틀을 비집고 나오는 가슴 시린 슬픔 같은 것을 뿜어내고 있다는 이야기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음악에 대한 재미를 일깨워주는
에피소드들이지요.
모짜르트 음악에 관한 저자의 표현은 매우 낭만적입니다. “섹시하고 짜릿하고
아찔하여 소름이 돋는”, 그리고 마치 “살아서 숨 쉬는 듯
자연스럽게 꿈틀대는” 모짜르트의 음악은 제가 알고 좋아하는 모짜르트의 음악에 대한 느낌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천재였던 모짜르트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의 다른 세계가 있었지요.
예술은 공동체 문화의 봉우리이며 예술도 적당해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피력한 글들도 있습니다. “왜 사는지를 묻는 것이 철학이라면 왜 하느냐고 묻는 것이 경영이다… 경영은
잘 꾸리자는 것이지 많이 벌자는 것은 아니다” (119쪽) 라는
표현은 저자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경영학을
전공하고 평생 경영분야에서 일한 저는 공감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예술경영 분야에서는 통용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로 밥을 먹고 사는 일은 정말로 고달프며 예술하는 사람보다 곁에서 돕는 사람이 더 서글퍼지는 것이 예술이라는
표현은 공감이 많이 갑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예술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예술 경영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슬프기까지 하네요. 우리나라에서
순수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녹녹하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저자의 표현은 때로 따뜻하고 때로 시니컬 합니다. 아쉬운 점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고 음악을 사랑한 우리 관객 또는 독자들의 느낌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우 새로운
관점이나 평가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다만, 예술경영이나 리더십에 관한 글들은 제외하고 말이지요. 아쉬운 점이라면
<오, 클래식>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고 싶으셨다면 좀 더 주제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가에 대한
본인만의 특별한 인연이나 해석도 좀 많이 포함했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주관적인 관점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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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읽은 음악 관련 교양도서는 대부분, 작곡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해설을 위주로 하는 책들이었다. 대부분 내용이 거기서 거기라... 음악 관련 책을 좋아하면서도 틀에 박힌 구성들이 슬슬 재미없어지려던 차에 조금 다른 접근을 하는 책을 찾게 됐다. 이 책은 홍승찬 교수가 잡지 [객석]에 연재했던 칼럼을 중심으로 묶은 것이다. 교양서라기 보다는 음악을 소재로 한 에세이에 가까운 형식인데, 삶과 음악에 대한 통찰과 예리한 비평이 담겨있다. 지금 이 시대의 클래식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룬 것이 이 책의 특징.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외에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예술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책 내용 중에서 한 사람의 병사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한 연주를 한 하이페츠, 전쟁 중 한 손을 잃었지만 왼 손만으로도 연주한 불굴의 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 리흐테르의 츤데레 매력, 꼬장꼬장하지만 올곧은 고집쟁이 므라빈스키 등 연주자와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가 작곡가의 삶을 다룬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아마 작곡가 이야기는 더 이상 내게 신선하지 않아서인가보다. 라벨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비발디 브람스 베르디 푸치니 스트라빈스키 등을 이야기하지만 새로운 부분이 별로 없다는 생각. 다만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를 비중있게 다룬 점이나 강정호와 스트라빈스키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한 것이 흥미로웠다. (음주운전으로 MLB 복귀가 불투명해졌지만 좋은 타자임에는 틀림없는데 ... 조금은 씁쓸했다. 왜 그랬나요 king kang) 므라빈스키와 하이페츠의 이야기 외에 이 책에서 감명 깊었던 것은, 연주자나 작곡자를 길러내고 서포트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공연기획자, 기업 후원자, 교수, 음악대학 총장 등... 한 사람의 뛰어난 연주자가 무대에서 빛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가. 민주적인 독재를 했다는 한예종 초대 총장 이강숙 선생,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기업인 박성용 회장, 참 교육자 소콜로프 교수,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내한공연을 직접 챙긴 독일 대사 이야기는 내가 아이들 마음 속에 어떻게 음악을 심어주고 아이들의 음악성을 어떻게 길러주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소박하게 바라자면 나때문에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아이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가끔 제목인[오,클래식]에 맞지 않는 글도 몇 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일탈은 큰 줄기를 해칠 정도는 아니니 약간의 양념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아무래도 작곡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는 보통의 음악교양서보다 적다. 하지만 정보만 나열한 교양입문서가 아니라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클래식 에세이.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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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짧은 에세이 형식이다. 그런 만큼 부담 없이
한편 한편 읽어낼 수 있도록 한다. 다만
불행히도 그 짧은 한 편의 글을 읽는데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음악가들에 대한 얘기는, 이미 알던 내용이라도 재미있었고 모르던 내용은
더 재미있었다. 하이페츠도 베르디도 김선욱도 다.
또
글 중간 중간에 찔러주는 음악 상식은 그런 것들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꽤 유익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들이 끼어든다.
내가 읽고 싶었던 것, 혹은 이 책에 들어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은
고전음악에 대한 얘기들이었지 리더십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도 분석되지 않은 채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감성적인 리더십을 논하는 것은 이 책의 지향점과도 다를 터이다. 젠체하는, 나이든 교수의 자뻑을 읽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나, 예술경영 교수야 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예술경영-솔직히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얘기를 하고 싶으면 그런 류의 글들만 모아서 따로 펴내는 것이 타당한 자기 주장 방식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깨달은 삶의 지혜를 전달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냥 잘난 사람의 자기 자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업의 CEO를 다루는 얘기를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음악 사랑 등의
감성적인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본질인 기업경영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자신이 CEO로 있는 기업의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존재였는지를 먼저 평가하고 그에 덧대어 음악 사랑이니 식물 사랑이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는 게 타당하지 않았을까? 히틀러가 그렇게 바그너를 좋아했다는데 그거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다 아는 사실인 것처럼. 물론 그 CEO가 히틀러 같은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책 제목에 합치되는 내용으로만 꾸렸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내용이 되었을 것 같은데 자꾸 덮어둔 척하면서 드러내는 자의식이 느껴져서 불편하다. 내 돈 주고 산 책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글을 주제 별로 구분한 것도 아니라서 글이 실린 순서의 개연성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일종의 감점 요소.
글쓴이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겠으나 표현 상으로도 읽기에 불편했던 몇 가지가 있어서 표기해둔다.
- 흑인 죄수 레드
(p.10)
앤디를 표현할 때 백인 죄수라고 하지 않았으니 흑인이라고 특정한
것은 명백히 차별적인 표현이다.
- 출산하고 다시 나타난 지금은 불어난 몸매가 아쉽기도 하고 (P.42)
출산하면 몸이 불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로답지 못하다고? 성차별 의식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 그래서 경제학이 경영학에 밀렸습니다. (P.120)
잉, 이게 무슨 말이지? 이런 얘기를 하려면 뭔가 명확한 근거를 대어야
할 텐데 그냥 주장한다.
- 작곡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의미가 없는 일이었기에 지휘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P.123)
므라빈스키와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작곡을 했던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같은 작곡가들은 바보였던가?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띄우려고
부지불식 간에 다른 이를 무시하는 표현은 버겁다.
게다가 네트렙코를 다루는 장에서는 네트렙코를 그루베로바라고 잘못 표기한 것도 옥의 티다.
시의 내용을 그대로 책에 옮겨 놓은 경우가 여러 번 있는데 해당되는 시인들의 양해를 구했거나 저작권료를 지불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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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멀게 느껴진다. '클래식'하면 특별한 시간에 굳이 생각해내서 들어야 하는 음악이다. 클래식이 나온 시대와도 멀고, 우리 생활 속에 흔히 접하지 않으니 마음에서도 멀긴 하다. 하지만 좀더 알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것도 클래식에 한 걸음 다가가고 싶어서였다. 이 책《오, 클래식》을 읽으며 클래식의 세계로 초대받는다.
이 책의 저자는 홍승찬.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예술경영입문》과《예술경영의 이론과 실제》,《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등이 있다. 이 책은 월간 <객석>에 연재한 음악 칼럼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현재 저자는 <채널예스> '클래식 대가를 만나다' 칼럼에서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주는 세상의 모든 클래식과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예전의 나는 음악을 참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잊고 지내던 것을 슬슬 끌어올려주는 책이다. 클래식에 닫혀 있던 마음을 살짝 열어주며, 관심을 갖고 찾아 듣도록 유도한다. "이전에 작곡한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한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 <투란도트>,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등의 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기회가 되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 찾아봐야겠다.
총 37가지의 에세이가 담긴 책이다. 클래식과 고전음악가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있다.
세월이 흘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 클래식 음악의 묘미는 오래 묵은 장맛과 같아서 단맛과 쓴맛, 신맛과 짠맛이 치우침 없이 골고루 어우러져 단 듯 달지 않고 쓴 듯 쓰지 않으며 신 듯 시지 않을뿐더러 짠 듯 짜지 않아 담백하고 은근하여 뒷맛이 오래 남습니다. 덕이 있는 이들이 서로 그러하듯 좋은 음악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 또한 전혀 다르지만 서로 잘 어울려 하나인 듯 여럿인가 하면 어지럽게 흩어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하나가 됩니다. 덕이 쌓여 한결같은 이들이 풍기는 멋은 소박한 듯 단순하여 편안하며 친근한 것이고 잘 익은 장맛과 같은 클래식 음악의 감칠맛은 싱거운 듯 담백하여 은근하여 물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_129쪽) 클래식의 맛과 멋에 대한 글이다. 클래식 음악의 묘미를 맛으로 표현했는데, '담백하고 은근하여 뒷맛이 오래 남는' 맛이라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일화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음악가들의 이야기는 물론, 시, 연극, 발레, 춤 등으로 영역 확장이 되고, 예술경영이나 CEO이야기,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까지 무한한 소재를 부담없이 풀어낸다. 이 책을 읽으며 잘 모르던 세상을 엿보는 시간이다. 얇고 부담없이 읽으며 클래식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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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클래식의 세계란 어떤 선망이다. 평소에도 자주 듣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직접 찾아가 관람하는 것도 즐기지만 그 분야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건 전혀 아니다. 어떤 음악가나 연주자들에 대해 알려고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마냥, 나는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해 알려고 해도 알아지지가 않더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짐으로 느껴지면서 오히려 클래식을 즐기는 것이 부담으로 변하자 나는 알려고 노력하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듣게 되었다. 그냥 아무 욕심 없이 그 선율을, 그 느낌만을 즐기게 되었다. 오히려 이렇게 아무 욕심도, 생각도 없이 음악 자체만을 즐기게 되니 홀가분하다. 이게 어느 음악가의 협주곡 몇 번이니, 이건 어떤 연주자의 어떤 공연이니 따위 모르면 좀 어떤가. 클래식이란 존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나는 음악이란 그리고 예술가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우주인지를 느끼게 되는데.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야에 대한 순수한 (어쩌면 백치미라고 표현해야 더 어울릴 법한) 애정 덕분인지 클래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책에 대해서도 순수한 흥미가 돈다. 지식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서,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해 더 유식해져야지 뭐 이런 욕심이 전혀 없다보니 책을 다 읽고 난 후 머리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다. 읽는 그 순간에 느꼈던 감동이면 족하다. 그리고 읽는 순간에 느꼈던 그것은 마치 편지처럼 고이 접혀 있다가 언젠가 그 이야기와 관련된 클래식을 읽다 보면 아련히 머리에 떠오르게 되더라. 그래서 요즘은 클래식 관련 서적도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읽는다. (읽다가 중간에 멈추든 아예 접어두든 그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독자에게 부담 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된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나 깊이를 전달하려고 하는 책은 그 책 나름대로 좋지만, 나처럼 깊이 없이 그저 선율을 즐기는 정도의 사람은 너무 깊은 클래식의 세계가 부담스럽다. 잘못 발을 넣었다 빠져서 헤매게 되면 어떡할까 싶어서. 홍승찬 한예종 교수가 월간 ‘객석’에 연재한 칼럼 등을 엮어 출간한 [오, 클래식]은 위에서 이야기한 몇 가지 이유로, 나에게 너무 재미있고 좋은 책이었다. 표지도, 두께도 부담 없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안나 네트렙코의 라트라비아타 공연을 유튜브에서 찾아보았고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의 일대기를 검색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클래식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유산이자 예술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신념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되는 클래식. 그리고 나 같은 범인에게는 꿈이자 낭만인 클래식. [오, 클래식]을 읽는 동안은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경의를 함께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 책에는 클래식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예술 경영에 대한 이야기 등도 있다. 음악과 함께 생과 사람에 대한 저자의 따듯한 시선과 통찰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클래식다운 책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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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을 전공하는 교수님이 서양 클래식에 얽힌 얘기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내용은 크게 서양 음악가들 이야기, 클래식과 관련된 자신의 개인적 체험, 예술 경영과 리더십 등등. 꽤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한 편의 글이 너무 길지 않아 좋았다. 방만하게 늘어지지 않고 할 얘기만 간결하게 꽤 지미있게 풀었다. 그 중에 아는 얘기들도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저자의 개인적 체험들이다. 독일 대사관 한스 울리히 자이트 대사와의 인연이나 대구 시민회관 연주전용 콘서트홀과 얽힌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자기 삶에서 소중한 한 부분인 예술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인물이나 지역 사회가 그려져서 좋았던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잘 알지는 못 한다. 나이가 드니까 이상하게 좋아진다. 좋으니까 궁금하고 알고 싶어진다. 가끔 아는 얘기나 그렇게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길게 써 놓는 경우가 있는 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예술경영을 전공하는 사람의 시선이 가끔 드러나 좋았다. 너무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있어 생기는 산만함 때문에 아쉽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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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리라 기대했는데 그런 글은 아니다. 저자가 월간 <객석>에 기고한 칼럼을 엮어 낸 것으로, 한예종 교수라 학교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아무래도... 소콜로프도 한예종 학교 얘기였고, 기대했던 라벨과 비트겐슈타인 얘기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에서 그친다. 푸치니 <투란도트>에 대한 비극이 새로운데 전달하는 톤은 별로다. 예술성으로 포장된 피해 사례가 숭고한 희생으로 여겨지는 듯 했다. 클래식 음악계에 공헌한 금호 박성용 회장과 한예종 이강숙 총장의 이야기가 실린 것을 보며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생각났다. 손열음의 에세이에서도 볼 수 있던 그들만의 세계 그런 것... 이 책과 비교하면 손열음의 글이 더 좋았다. 재미있는 것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이야기인데 이 책에 실린 안나 넵트렌코에 대한 글과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칼럼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조성진에 관한 글에는 그의 쇼팽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1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준 필립 앙트르몽 이야기가 나온다. 앙트르몽의 약력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그이의 평가를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옳은 말씀으로, 앙트르몽 연주를 들어보면 조의 해석과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차에선 좋은 점수를 주었고 2차, 3차에서 최하점을 주었다는 것 같은 정황 때문에 더 화제가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은 3대 콩쿠르, 3대 교향악 같은 이야기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나온다며 리즈콩쿠르 우승자 김선욱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온 나라의 눈과 귀가 조성진에 쏠려 있을 때, 김선욱은 조용히 연주회를 마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갑자기 김선욱은 왜?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한 피아니스트이다. 안드라스 쉬프를 마스터 클라스에서 만난 후 거장이 직접 루체른 페스티벌에 초청하기도 했다. 최근 베토벤과 브람스 앨범을 냈고 영국 왕립음악원의 지휘자 과정을 마치고 활발히 활동하는 예술가다. 그런데 왜 여기서 김선욱 이야기가 나왔을까. 조성진에게만 눈이 쏠리는 현상이 안타까워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조와 김은 비교하기엔 좀... 안타까움을 표하려면 2006년 리즈 콩쿠르 우승자가 아니라, 쇼팽 콩쿠르와 같은 해 열린 2015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이야기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대도 같고, 퀸 엘리자베스와 차이콥스키 콩쿠르 얘기도 같이 나오곤 했는데 부조니는 잘 나오지 않더라고... (문지영도 쇼콩 예선을 통과했지만 부조니에 집중하기 위해 기권했다.) 저자도 한예종 교수이고 김선욱(손열음, 문지영)은 한예종 김대진 교수 제자다. 아주 순수하게, 젊은 거장의 좋은 연주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야속했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런 면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약간 연관되기는 하는데 안나 넵트렌코에 관한 글에서 저자는 연예인과 예술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음악적 역량보다 사생활, 도발적 무대로 더 알려지는 것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한창 이미지도 그렇고 여성 예술가에게 특히 더... (르 몽드 기사에도 불구하고) 조성진의 이미지는 오히려 저자가 쓴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글에 나오는 처세에 능한 예술가에 가깝다. 아직 20대 초반인데도 처음부터 그랬다. 예술이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거리를 두는 타입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건 일단 음악가의 국내 공연이 많지 않아서다. 저자가 얘기하듯, 우리나라는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도 거의 없는 나라다. 일본은 투자한만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투어 할 때 보니까 작은 도시에도 전용 홀이 있더라. 기획사 재팬 아츠도 얼마나 일을 잘 하나? 클래식 잡지는 얼마나 많은가요? 시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기도 하지만 러시아, 유럽에 대한 일본 특유의 로망을 완성시키는 서양 문화의 총체인 클래식... 유럽이나 북미 위주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을 때 투어하기도 좋고, 애호가들은 멀리 원정 안 가고 집 앞에서 들으니 좋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동호인이 증가하고 장르에 대한 이해와 감상이 결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 인프라를 누리고 하는 이런 선순환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결국은 돈이다. 예술을 향유하려면 누군가는 경제적인 부담을 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를 보면 전기세, 가스비 이해를 못하고 소련 시절을 추억하는 세대가 나오는데, 문화 예술도 당시에 국가적으로 투자하고 누릴 수 있게 해줘서 이쪽도 문화 자부심이 높다. 저렴한 티켓에 수준 높은 공연... 차이콥스키 콩쿠르 부문을 모스크바랑 상트페쩨르부르크로 나누어 개최하자 사람들이 왜 우리의 권리를 빼앗느냐, 원래대로 모스크바에서만 볼 수 있게 하라 항의하던게 놀라웠다. 작년인가 뉴스를 보는데 그 많던 피아노학원들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학생들 수 자체도 많지 않지만 가계 경제 사정도 그렇고 결국 다른 과목 위주로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 부터 꾸준히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야 자연스럽게 문화를 누릴 터인데 국가가 지원하지 못하는 것을 가정에서 알아서 하던 것도 이젠 안 되는 상황이다. 광고에서, 일상에서 알림이나 배경음으로 익숙한 클래식 음악들이 시장에만 나오면 대중음악보다 부담스럽다. 이 책을 읽으며 불편했던 건 바보들이 하는 것이 공연 기획이라는 자조에서 묻어나오는 엘리트의 자부심 때문이다. 음악계 원로가 이런 말도 못 하랴 싶긴 하지만 무지한 대중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것... 보통 클래식 음악에서 우리는 음악가의 해석을 즐긴다. 그 발전 정도가 아마추어의 눈에 잘 뵈지도 않지만(또 봐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중 음악처럼 확 와 닿지가 않는다. 배경지식의 부재, 글로벌 이런게 아니라 문화의 근간이 되는 정신적인 면이 우리 문화랑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클래식 음악도 예전에는 대중적인 음악이었고 어떻게 인기를 얻었는지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대중들의 무지나 변덕을 탓하기엔 대한민국 자체가 이런 여유를 즐기기엔 불모지는 아닌가 하는. 독서 인구가 줄어든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 또한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심적 여유가 없다, 심적인 여유가... 문화, 예술을 누리는 것은 일종의 복지이자 권리이며 우리나라도 차차 나아지리라 본다. 험난한 길이지만 자리가 잡히면 음악계에게도 호혜적일텐데 글쎄, 전문가라서 그렇다해도 예술경영 글들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별로였다. 지휘자 므라빈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에서는 「망명 음악, 나치 음악」이 떠올랐는데 나치 관련 푸르트뱅글러와 카라얀 이야기, 망명한 스트라빈스키가 나와서였다. 스탈린의 눈 밖에 난 쇼스타코비치를 감쌌던 므라빈스키지만 교향곡 13번은 정치적이라며 연주 부탁을 거절했단다. 공산당 입당도 하지 않았다는데 저런 환경에서 정말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전해지는 스탈린 일화들을 무시한다해도 말이다. 시대를 외면한 것(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혹은 휩쓸리지 않은 것이 과연 칭찬 받을만한 일인지... 한예종 이강숙 총장이 우리나라 음대 과정에 음악학을 넣은 장본인이라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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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클래식이라고 하면 지겹고 잠오는 옛날 사람들의 고상있고 품위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단어 자체는 오직 음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뜻이 방대한 만큼 모든 분야에 쓰이는 단어이다. 클래식으로 지정(?)되어 있는 제품들은 대부분 아무리 세월리 흘러도 유행에 상관없이 고상함과 품위를 자랑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현재에 사용해도 전혀 유행도 타지않고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클래식을 음악으로 한정한 책이다. 지겹고 졸리기만한 클래식 음악이라고 여겨졌던, 오직 듣는 사람들만을 위해 한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던 클래식을 보다 대중적인 요소도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게 의도된 책이다.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독자들을 클래식의 세계로 이끌게 한다. 흔히 클래식을 들으면 작곡가나 표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어디선가 언젠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기 때문이기지만, 그저 딴세상 오래된 옛날 음악이라고 여겨지는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들의 삶의 이야기가 스며 들어있는 음악이다. 그들의 생활과 가치관, 사회풍습이나 시대상을 반영한 음악이라는 이야기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클래식 음악이 다시 보이거나, 들리는 것도 이 책에 담긴 내용들 덕분이다. 그저 나랑은 아무 상관없다고 여겨졌던 클래식이, 작곡가들의 생애를 통해서 그들도 과거에 살았던 따뜻한 피를 가졌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유행가로 치부되는 팝이나 가요들도 각기 그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이내 촌스러워지고 잊혀지게 되는데 반해, 클래식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않는 감동을 전해 준다. 이는 듣는이의 식견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클래식을 사랑하는 독자는 물론, 클래식에 입문하고 싶은 독자들도 함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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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 캐럴 음악이 사라지고 말았다. 길에서 크리스마스 때면 들려오는 캐럴이 사라지면서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과거 캐럴만 들으면 멈춰 서서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들었던 그 기억조차 이젠 추억이 되고 만다. 우리에게 있어서 변화는 나에게 새로움을 느끼게 해 주면서,한편으로는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조차 사라지고 지워질 때가 있다, 요즘 들어서 클래식에 관심가지는 건 내 마음 언저리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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