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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에 있는 출판사로 편집을 배우러 다닐 때 제목에 낚여 산 시집입니다. 제가 ’기억’ 관심이 많기 때문에 기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보통 시집의 제목은 그 시집에 담은 시 중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송재학 시인의 <기억들>에는 표제시가 없습니다. 기나마 기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가시이다’가 유일합니다. 쉼표는 있지만 마침표가 없는 산문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가시이다’에서도 기억이라는 단어는 딱 한번 나옵니다. 마침표가 없으니 의미를 따져 끊어보면 “시황제의 진흙병사처럼 잠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물 아래는 혼탁하고 들끓는 페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을 기억하는 가시연꽃의 먼길을 예감하겠습니다(66쪽)”이라는 부분입니다.
내용을 보면 가시연꽃의 특성을 담아낸 시라고 하겠습니다. 가시연꽃은 1년생 수생식물로 수련과에 속하며 1속1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닮은 식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자는 가종피에 싸여 물위를 떠다니다가 썩거나 터지면 물밑으로 가라앉아 싹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온과 수압이 맞아야 싹이 트기 때문에 오랫동안 볼 수 없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500년 만에 싹이 튼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7월에서 9월 사이에 4cm 크기의 자색 꽃이 핍니다. 그런데 물이 찬 경우에는 꽃을 피우지 않을 수도 있고, 해걸이를 하기 때문에 꽃을 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재학 시인이 가시연꽃을 볼 수 없다고 서운해 하신 것 같습니다.
기억에 관한 내용은 없었어도 저의 또 다른 관심사인 눈물을 담은 시를 두 편이나 감상한 것은 의외의 선물이었습니다. ‘눈물이라는 영혼’이라는 제목의 산문시를 먼저 소개합니다. “어떤 눈물에도 영혼이 드나든 흔적은 없다 하지만 슬픔에서 낙하하는 바로 그 순간이 눈물이 물방울에서 영혼으로 바뀐 때! 그 단순한 순결에 무슨 3·4조의 음보나 손발이 필요하랴(27쪽)” 단 석 줄에 불과하지만 깜짝 놀랄만한 의미를 눈물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눈물은 체액이기 때문에 단순한 물방울이라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눈물도 슬픈 감정이 북바쳐서 쏟아내는 눈물이 있는가 하면, 기쁨이 넘칠 때도 쏟아질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파를 썰 때처럼 안구점막을 자극하는 물질에 노출될 때도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런 눈물들 가운데에서 유독 슬픔 때문에 쏟아지는 눈물에는 영혼이 들어있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입니다. 슬픔이라는 영혼을 가지는 눈물방울이 되겠습니다.
‘수법사는 없다’라는 시에서 또 다른 눈물의 의미를 읽었습니다. ‘수법사는 없다’면서 ‘어머니의 발걸음이 뭉게구름에 세운 절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수법사는 시인의 어머님이 품은 한을 뭉게구름에 실어 세운 절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수법사는 없지만 눈물이 이룩한 절터는 있는 법, 다시 강물이 도도해지면 단청은 수면에 비치리라 눈물 따라 다른 눈물을 만난다면 연꽃 피는 수법사도 있다’라는 희망을 담아냈습니다.
시인은 ‘이 땅에 이 나라 넓이만 한 황무지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느리게, 스멀거리며, 자꾸 움푹 패는 내 정신의 황무지는 헤아릴 수 없는 무효용성으로 인해 나에게는 시의 반대쪽이면서 가장 시적인 영토이기도 하고, 그 원시성으로 인해 시의 영혼 그 자체이기도 하다’라는 것입니다. ‘황무지에로의 접근’이라는 시에서는 시인이 말하는 황무지가 시집의 속살이라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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