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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첫 문장은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여기에서 새삼스럽게 다시 읊을 필요는 없다.
'손바닥소설'이란 이 야스나리의 소설집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본에서는 흔한 소설의 형태인 '장편소설(掌篇小說)'을 번역한 말로, '손바닥에 써질 정도로 짧은 이야기'를 일컫는 일반명사라고 한다. 특히 "종종 가와바타의 '손바닥소설'은 한 줄짜리 시에 우주를 담아낸다는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俳句)에 비견되곤 한다"는 역자의 표현에 공감한다.
심지어는 두쪽도 되지 않은 짧은 소설에 우주가 담겨있다. 이건 하이쿠에 비견할 만하다.
대개의 글이 연인관계 (혹은 부부관계) 이따금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감각적인 면에 먼저 반하고, 그 안에 감추지 못하는 시니컬한 시선에 한번더 반한다.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옛애인에게 편지로 전하는 [카나리아]와 진정한 처녀를 빼앗는 것에 대한 [적]이 무척 좋았고 "자매"라는 코드에서 [버선]이 좋았다 ([여동생의 기모노]보다 훨씬 더) 어딘가 전래동화같은 느낌이 있는 [오신 지장보살]이나 [변소 성불]도 무척 재미있었고 삶의 끈을 이미 놓아버린 듯한 [댓잎 배]도 좋았다.
여기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그 어떤 길거나 짧은 단편도 모두 각자의 존재이유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요컨대 100편이라면 100편 모두 명작인 그런 소설집인 것이다.
이것은 실로 노벨문학상을 탈 이유가 충분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 자체이다.
이 소설의 작품 대부분은 이십대에 썼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만, 나는 시 대신 손바닥소설을 썼다. 무리하게 설정된 작품도 있으나, 또한 절로 물 흐르듯 씌어진 좋은 작품도 적지 않다. 이제 와서 보건대, 이 책을 '나의 표본실'이라 하기에 부족함은 있지만, 젊은 날의 시정신은 꽤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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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분과는 그닥 내 취향이 맞지 않는듯...... 단편을 퍽 아끼고 좋아하는 나란 독자에게 이 작품들은 그닥 와닿지 않았다. 시대적, 정서적 차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호시신이치 같은 작가분은 SF적인 요소를 대입시키고, 시대상을 반영시키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도 독자가 괴리감을 갖지 않게 작품을 쓴 반면 이 작품속의 이야기들은 그 시대의 정서와 배경들을 모르면 이해할수도 없고, 그닥 감흥도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무난하게 여러 독자에게 읽히기엔 무리가 있지 싶다. 해당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지극하거나, 일본의 당시 시대상황이나 정서에 대해 어느정도 사전 정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겐 나름 읽었을때 흥미를 일으키고, 감흥을 줄수 있는 작품일지 모르겠지만, 암튼 내겐 좀 버겁고, 다소는 지루하고, 그닥 감흥을 느낄수 없는 작품이었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