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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생계에 도움을 주던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흉측한 벌레로 변신해 가족들에게 갖은 냉대를 받으며 설 자리를 잃어 스스로 파멸해 가는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왔던 소설 변신이 떠오른다. 즐겁게 일하며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전 회복불능의 상태로 전락하고 만 주인공의 모습이 가공스럽기만 했다.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으며 살기보다는 아무런 의미조차 띠지 못한 채 인생ㅇ르 소모하며 지내게 되는 지도 모른다.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 열심히 생활하는 제자가 20대 중반에 동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와서는 동유럽 여행을 강권한 적이 있다. 시간이 멈춰 선 듯 고풍스러운 체코 프라하의 풍경이 지금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어 세월이 흘러도 다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라 전했다. 미지의 공간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마다 체코는 흥분과 설렘으로 미래의 나를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여행은 자신의 본질을 찾아 나서는 일 중 하나로 지금 자신이 내딛고 있는 공간이 허허로워 새로운 생활로 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일이기도 하다. 부모가 가정을 비운 틈을 타 봄이는 새로운 여행에 나섰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해도 가면을 쓴 채 위장된 모습으로 치부하는 반 아이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무단결석으로 일관하며 다수의 아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강구하였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결석이라 여기던 담임은 그 옛날 시기의 대상이었던 친구의 결혼 소식을 접하며 설상가상의 심경에 놓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릴레이 소설 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봄이의 사랑 이야기는 상상 이상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또 다른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체코에서 체류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냈던 봄이의 사랑 이야기는 그림부터 그려지지 않는 뜨악함을 줬다. 외모지상주의로 치닫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늠조차 힘들었던 일이 봄이에게는 준비된 우연이 빚어낸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 셈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데다 공부도 잘하지 못하는 봄이와 잘생기고 멋진 대학생 진하와의 사랑이 격에 맞지 않는 차림을 한 어색함이 곳곳에 배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감과는 거리가 멀기에 더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랑 이야기는 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때가 많다. 그나마 봄이와 친하게 지냈던 혜나까지 그녀를 냉대했을 때 봄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교실 안은 그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혜나는 한때 진하를 과외 선생으로 만나서는 한눈에 반해버리고서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려고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체코로 볼일을 보러 떠났던 부모가 고국으로 귀환한 뒤 잘생긴 오빠와 등장한 봄이는 지금껏 자신이 털어 놓았던 연애 담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좀 더 나은 관계를 모색하려는 용기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밀쳐내던 봄이였지만 시선을 달리하면 누군가에게 충분히 사랑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외양만을 관계망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부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봄이 역시 한 인격체로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그냥 너이기 때문에 좋다던 진하의 말대로 봄이는 맑은 영혼을 간직하고 살아 누군가에게 기쁨과 설렘을 주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 진하의 가슴 속에 이상형으로 자리한 봄이와 조우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쁘고 행복했다는 진하의 말은 사랑의 본질을 가늠케 한다.
봄이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이 자아낸 공백을 메워 나가기 위해 수련회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밝혔지만 그녀에게 날아온 것은 아이들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뿐이었다. 황폐화로 치닫는 현실이지만 가슴이 말랑말랑하여 물상의 변화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며 몽상을 꿈꾸는 청소년이 다수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한다고 이들을 이단아처럼 내몰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학급의 효율적인 경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담임은 자신이 맡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을 내리 누르며 쉬운 길을 택하려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급우들 스스로 서로를 반목하며 또 다른 불화를 초래하기보다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누구나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소생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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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사라졌다"반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한 아이(봄이)가 무단 결석을 하며 담임선생님의 급관심이 집중되었다. 봄이 초등학교때 외국(프라하)에서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외국으로 나갔다 5년만에 귀국,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된 아이다. 봄이는 부모의 장기간 출장을 계기로 작정하고 계획적인 무단결석을 시도한듯 보였다. 봄이는 왜 그렇게 무단결석을 해야만 했을까? 봄이가 왜 결석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아이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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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상처가 있어도 전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쿨한 성격, 아픔을 아프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 쿨한 태도, 소수의 결론을 찬성하면서도 다수의 선택을 따라가는 쿨한 사람.. 어쩌면 우리들은 이 "쿨 하다"라는 단어에 그리고 결론에 우리가 솔직해야할 진실과 따뜻함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꾼"이란 이금이 작가는 "쿨"함에 밀려가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바로 푸른책들에서 나온 <우리반 인터넷 소설가>란 책이다.
성장소설을 참으로 현실있게 써내려가는 작가의 글이기에 또 어떤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줄까라는 기대감을 갖어본다. 배경은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쓰고 첫사랑과, 밀려오는 입시라는 압박감에 알아야 하는 여고 1학년들의 생활이다. 요즘 여고생들은 한마디로 어른보다 더 어른인척 하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의 밑바탕으로 깔려버린 그리고 그것이 아주 당연시 되어버린 외무지상주의에서 우리 여고생들은 흔히 떠올리는 풋풋함의 여고생이 아니게 변해버렸다. 터질듯한 교복과 방과후 변해버리는 어른과 학생을 구분하지 못할정도의 외모와 오히려 성인들보다 더 아슬아슬한 이성간의 교제를 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이런 여고생들의 이야기속에 뚱뚱한 여학생 봄이가 있다. 아이들은 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외모에서 밀리는 뚱뚱녀의 넋두리쯤으로만 여기고 있다. 뚱뚱한 여학생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면 안된다. 공부를 아주 잘해도 안되고, 남학생들과의 교류가 있어서도 안된다. 더구나 대학생들과의 만남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어도 안된다.
이런 영악하고 살벌한 반아이들 사이에서 봄이는 진실하다. 하지만 그 진실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변명하려는 거짓말로 보여지고, 어떻게든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로 전락할까 두려워하는 표현으로 밖에 보여지질 않는다. 봄이는 그저 뚱뚱하다는 이유로 반에서 찌그러져 생활해야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악하지 못하고 그저 순진하게 진실을 말하는 봄이가 현대라는 시간에 적응을 못하는 것일까? 진실을 오히려 왜곡으로 해석하는 반아이들은 지금 이 시간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편향의 한 모습일까? 질문을 하게 된다. 소설의 여학생들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는 그 길목에 이 사회가 주최가 되어 던진 외모지상주의라는 덫에 걸린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봄이를 통해 자유로운 사랑을 해보고 싶으면서도 긍정적 결론에는 인색함을 보이고 만다. 또한 그들의 세계에서 함께라는 공동체를 갖기 위해 또 하나의 왕따를 만들고 그것을 행하는 자가 되어버린다.
외모지상주의의 폐단을 알면서도 현대의 모든 여자들은 그것을 쫓고 있다. 그런 결론으로 이어가는 남자들의 여성 상품화란 인식과 또한 그런 바탕을 만드는 사회의 압력이 문제이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외모지상주의에 동참을 하지 않고는 자신을 자신있게 여기지 못하는 여자들 스스로의 나약함이 우선의 이유가 아닐까. 봄이는 결론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긴다. 진실 그대로를 보여주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리에서 스스로 떠난다. 다독거리고 용기를 주는 봄이의 사랑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반대의 무리는 그것조차 눈으로 보면서도 절대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소설속에 또 다른 소설이 있다. 아마도 말하지 못하는 여학생들의 속내를 대신 소설로 이어준다. 봄이를 향한 결론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용기있는 해석, 용기있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봄이의 의견을 독자인 나도 존중한다. 하지만 박수까지 보내기에는 봄이를 둘러싼 다른 여학생들과 현대인들의 생각이 안타깝다.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봄이가 받았을 그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쓰라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여기에 한사람 더. 입시에 사회적 인식에 밀리는 아이들의 진실보다는 문제점이 있으리라 결론부터 내리고 해결을 찾으려는 선생님의 상황이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나의 여고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처럼 독한 마음도 없었거니와 반아이들이 어긋난 결론에 함께 동조해버리는 일도 없지 않았나 싶다. 외모지상주의라는 주제를 놓고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이 소설은 결국 여성을 상품화 시킨 어른들의 상술을 다시 꼬집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반 인터넷 소설가>란 성장소설로 뭐 이렇게까지 거창한 결론을 표현하느냐란 비평도 있겠지만 교실안에서 웃고 떠들고 나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아이들이 외모와 진실을 왜곡하는 마음과 심리적 집단 따돌림을 하는 소설의 전개는 독자들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앞에서 언급한 "쿨하다"라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사실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쿨하다"가 아닐까. 봄이의 사랑을 상큼함 그대로 인정하고, 봄이의 생활을 그대로 바라보는 그런 1학년 3반의 아이들이길 나만의 결론을 내려보고 싶다.이런 생각을 아이들도 공감하고 어른들도 함께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에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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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온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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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선생님의 신작인 청소년 소설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는 일단 표지부터가 눈길을 끄는 표지였다. 표지와 제목의 언밸런스가 의아해서 이건 뭘까 하고 펼쳐 들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넘기는 페이지가 바로 책의 중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별 뜻없이 대충 넘겨보려고 했다가 그만 책을 놓치 못하고 계속 읽게 된 것이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책상에 놓여진 원고 한 뭉치를 읽어가면서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계속 결석 중인 봄이의 소재지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선생님이 화자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화자인 선생님을 통해 동시에 독자인 나도 그 원고 뭉치를 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글은 누가 쓴 것일까? 학급의 일련 번호가 한 꼭지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소설 속의 소설은 정말 누가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 인터넷에 연재되었을 때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이 "도대체 이 원고는 누가 쓴 것인가요?"였다는 것만 봐도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다 나같은 맘이었던 것 같다. 화자인 선생님이 되어서 이렇게도 추측해보고, 저렇게도 추측해보고.. 정말 어떤 아이가 쓴 것일까를 궁금해하면서 소설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아하.."하고 무릎을 칠 때가 나온다. 그때가 바로 결말이다^^(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이 책을 사서 읽어보실 분들을 위해.... 이야기 다 하면 재미없어짐! ) 이금이 선생님은 이 글에서 진실을 말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진실은 찾지 않거나 보는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리는 것은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오랜 시간 걸쳐 축적되어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졌을 때 고통당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편견을 만든, 고정관념을 만든 사람들이다. 단지 봄이만 희생자가 아니라 아이들 각자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희생자가 될 수도 있음을 또한 느낄 수 있었는데, 진실이 왜곡당하지 않는 사회, 진실이 진실로 대접받는 사회, 어떤 사회적 통념이 진실을 규명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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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우리때는 인터넷도 없었지만 글을 쓴다기보다 멋을 내며 쓴 시를 나누는 일이 종종 있기는 했다. 예쁘게 삽화도 그려넣고 해서 연습장 한권을 예쁘게 꾸몄던 기억과 친구들과 나누었던 기억 등...그때는 왕따도 없었고, 아이들 간의 마찰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가 되긴 했다. 그래도 사실 소외감을 많이 느끼며 힘들게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금이 작가님의 '첫사랑'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생생한데 이번에 제목부터 뭔가 흥미를 끄는 '우리반 인터넷 소설가'로 만나게 되어 기뻤다. 지난번 첫사랑이 초등학교 고학년 동주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이야기에서는 고등학생 봄이와 반 아이들, 그리고 담임을 맡은 선생님의 이야기로 한층 그 연령대가 높아졌지만, 초등 고학년부터 읽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구성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구성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날 갑자기 아주 평범한 반학생 '이봄'이 무단 결석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소에 문제가 없어 보였던 봄이였기에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그런 가운데, 부모님이 해외에 계신 상태라 일탈을 꿰한 봄이의 단순가출로 여겼던 선생님은, 봄이가 곧 돌아오리라 생각했지만, 결석이 길어지자 봄이의 가출이 단순 가출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반 아이들이 뭔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봄이의 가출 나흘째,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는 등 좀 날카로워져 있다. 그러다 교무실에 누군가가 놓고 간 원고뭉치를 발견하게 되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원고들에는 반 아이들이 쓴 듯한 아이들 자신과 봄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전개되는데 가감없이 써 내려간 그 글을 처음에는 반 아이 은성의 작품으로 생각했던 선생님. 그러나 읽어내려가는 동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이 책 속에서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 뜻밖이어서 너무 놀라웠다. 외모 지상주의를 살아가는 요즘, TV마다 날씬한 연예인들은 물론 날씬한 몸매를 위한 다이어트 상품들이 쏟아지고 뚱뚱한 몸을 지니면 마치 죄라도 되는 양 다루어지는 것을 자주 접하다보니 아이들 스스로도 외모에 대한 편견과 그에 따른 집단 따돌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그러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 봄이를 통해서 다른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즉, 책 표지의 봄이 같은 외모의 아이가 집안좋고 학벌좋은 멋지고 잘생긴 왕자님같은 남자친구가 있을리 없다는, 진실인데도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그러한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준다.
진실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진실이 묻혀버리는 외모에 대한 편견. 그런 편견에서 아이들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해 진실을 보고도 거짓으로 왜곡해버리는, 실은 진실을 믿고 싶지 않았을 그러한 복잡미묘한 마음들까지 느껴볼 수 있는 그런 구성이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주는 이면의 무시무시함도 함께 느껴본 것 같다.
살짝 동화같은 느낌도 들지만, 이야기속에 또 이야기가 들어있는 독특한 전개가 흡인력있는 전개로 읽는 내내 손에서 놓치 못하고 몰입하여 읽어보게 된 책이다. 아이들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섥혔던 왜곡된 우월감, 질투심, 편견, 허영심, 그리고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진실을 진실로 바라보지 못했던 진실 등이 담임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의 인간관계와도 오버랩되면서 짙은 여운을 안겨준다.
<책 표지 이미지의 저작권은 푸른책들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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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이 상황이였다면 봄이의 이야기를 믿었을까?... 선생님이 이글을 처음 읽을때는 소설가가 꿈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