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정말 야마모토 후미오 인가? 후반부로 갈수록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라니!
[아카펠라]는 세 개의 단편을 묶어놓은 작품이다. 단편들 각각의 제목은 '아카펠라', '외로움', 그리고 '네롤리'인데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사랑이 있다]라는 소제목처럼 3개의 단편 모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은 아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사랑, 사촌 간의 사랑, 남매의 사랑. 각 작품을 짧게 표현하고 있는 문장만 봐서는 자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 문장들이 나타내고 있는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뜻과는 다르다. 뭔가 차원이 다른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올해 9월, 나는 [울게 될거야]라는 작품을 통해서 야마모토 후미오라는 작가와 처음 만났다. 소녀감성의 표지그림과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게 되었고 시작 부분의 첫 문단도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니 결국 끝부분에 가서는 '이건뭐지!?'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불편함.
'울게 될거야'를 시작으로 '연애중독', '플라나리아'까지 읽으면서 내가 야마모토 후미오라는 작가와 그녀의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할 때가 없었다. 항상 긴장과 불안감, 뭔가 어긋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느낌이 들면서도 계속 읽어서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작품을 읽고나면 또 다른 작품이 읽고싶어진다. 그녀의 글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는 듯하다.
생각하건데, 그러한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글이 우리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그냥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싫어하고 내치고 싶어하는 모습을 말이다. 우리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글 속의 주인공을 통해서 마주보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글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고 화와 짜증을 내게 되는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불편함을 느끼면서 결말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그 주인공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즉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
이처럼 야마모토 후미오라는 작가는 나에게 있어서 아직 어려우면서도 계속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작가였다. 거의 비슷한 배경과 비슷한 느낌의 위태위태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그녀의 글들을 보면서 가슴께가 따끔따끔하기도 하고. 가끔은 공감하면서 감동하기도 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어떤 반전이 나올까 기대반 걱정반이 되기도 하고. 어떤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끝까지 보려는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만난지는 얼마되지 않지만 짧은 기간내에 우리는 (쌍방향이 아니고 일방적이긴 하지만) 벌써 애증관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읽어 온 작품을 통해서 그녀의 작품은 항상 불편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나였기 때문에 이번에 읽은 [아카펠라]라는 작품은 나름 충격이었다. 불편함으로 시작했으나 끝은...치유였기 때문이다.
'아카펠라'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의 초반에는 '역시 야마모토 후미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불편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현실적이고 똑부러진 여학생과 자신의 의지도 없이 타인에 휘둘려서 교사가 된 그녀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문화적 차이 (더 나아가서는 충격)도 있었고 자신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여학생과 대조되는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하는 걱정도 들어서 많이 힘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넘어간 두 번째 이야기 '외로움'. 이 작품은 십대에 고향을 떠나서 도시생활을 하다가 다시 도시생활에서 도망쳐 고향으로 도피해 간 중년남성의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항상 외로움을 달고다니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다. 그가 십대에 가출을 한 이유도 사촌과의 사랑에 있어서 자기 혼자 너무 많은 책임을 지려하다가 그 책임감을 회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본가로 돌아온 그에게는 과거에 남겨두고 간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훤칠한 일반인처럼 보였을지라도 말이다. 다행히 본가에서 생활을 하며 여러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그는 조금씩 깨달음을 얻는 것 처럼 보였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것 같다. 글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에게 뭔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등화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 '네롤리'였다. 39세 남동생과 50세 누나의 이야기였는데, '네롤리'에서의 남매의 모습은 흡사 함께 오래 살아 온 부부같은 느낌이 든다는 구절이 책에 있었다. 그 말처럼 우애가 너무 좋은 남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동시에 일반 남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그들에 대해 선득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부모님은 안계시고, 동생은 병때문에 일은 하지 못하고, 대신 누나가 가장이 되어 동생을 돌보면서 그동안 결혼을 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 거기에 코코아라는 이름을 가진, 남동생을 따라다니는 여자아이까지. 어떻게 보면 요새 유행하는 막장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에는 감정선이 살아있다. 제목인 '네롤리'처럼 자그마하고 조금씩 따뜻한 느낌이랄까. 완벽히 이해는 할 수 없지만 느낌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 반전이랄 것 까지는 아니고 숨겨져있던 이야기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이 반전을 통해서, 그리고 코코아를 통해서 우리는 이 남매가 후에 행복해질 것이라 어림짐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코코아 그녀도 행복해 질 것이라는 것을.
초반에는 언제나와 같이 '야마모토 후미오' 스타일의 불편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놓구선 마지막에는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재생(再生)의 이야기라니! 옮긴이 후기에 따르면 [아카펠라]는 야마모토 후미오가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며 쓴 글이라고 한다. 아카펠라 전에 내가 읽었던 그녀의 작품들을 다시 생각해보면...어쩌면 지금까지의 글들이 하나하나 모두 그녀만의 치유 방법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들과도 비슷하지만 작가와는 더 많이 비슷할 등장인물들에게 작가는 자신을 투영하여 글을 쓰면서 치유를 해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아카펠라]라는 작품으로 나름의 작은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놀랍게도 남성과 여성의 시선을 모두 묘사하는 것이 가능한 대단한 작가이다. 글 속에서 두 명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는 현대 여성들의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하기도 한다. 그녀가 지금까지는 우울함이라는 늪의 바닥에서 조금씩 떠오르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아카펠라부터는 그 늪을 빠져나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이야기속의 캐릭터들은 절대 일반적이고 평범한 소설의 캐릭터들은 아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가장 평범한 캐릭터들이다. 야마모토 후미오 작가는 글을 통해서 진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그녀가 다음에는 어떤 글을 들고와서 우리를 놀래켜줄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