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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담임을 맡아 올 한해 힘들게 보냈다. 담임교사에 대한 감각을 잃었나보다. 후반기 되면서 두 세 명의 드센 아이들이 튀어오르는데 그간 부드럽게, 타이르고 달랬던 나의 지도 방식을 지켜보다가 이제쯤 기어 올라도 되겠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 선생은 화내지 않아, 무서운 선생 아니야. 하는 식의 흔한 계산. 아이들을 초장에 잡아야 끝까지 말을 잘 듣는다던 원칙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게 싫었을 뿐이다. 군대도 아닌 학교, 그것도 이제 열 다섯 살 열 여섯 살 아이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부터 가르친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변명이 되어버릴 꼴이지만 내년에 새로 담임을 맡게 된다면 조금은 더 엄격하게 할 것 같긴 하다. 대신 지난 1년 덕분에 경계를 넘나들던 몇몇 아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는 됐다. 어떤 가정 환경이며 부모의 육아 방식은 어땠는지, 아이의 기질과 환경을 동시에 들여다보려고 애를 썼고 학부모와 자주 전화하며 파악하다보니 비록 나를 힘들게 하여도 아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커질 수 있었다. 덜 상처받고 더 보듬게 되었다.
아이들 생일마다 책을 한 권씩 선물한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1월에 생일이 있다. 우리반 아이들 중 마지막 생일이다.(역으로 우리반 아이들 중 가장 일찍 태어난 아이) 마침 읽은 『아몬드』가 이 녀석의 생일 선물로 딱이겠구나 싶었다. 주는 내겐 의미 있어도 받는 녀석에겐 의미없는 선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이후의 일은 내 몫이 아니다.
아몬드 만한, 정상적인 크기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편도체를 가진 아이 손윤재. 그는 편도체가 작은 만큼 편도체가 해야하는 감정 기능이 없다. 슬픔, 기쁨, 분노, 행복, 두려움, 설레임..... 인간이 가지는 여러 감정의 면면들을 말과 글로써 배워나간다. 엄마와 외할머니의 절대적 사랑 안에서 감정 기능의 부족분을 이론으로 배워나간다. 경우의 수를 늘려 가며 예상되는 대화를 만들어주는 엄마. 이마저도 나이를 먹을 수록 복잡다양한 반응을 해야하게 되자 힘들어지긴 하지만. 괴물이란 소리를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아해서 다행인 건가, 윤재는 나름의 적응방식으로 침묵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표정에 말까지 없는 아이. 자신의 생일날 엄마와 할머니는 칼부림을 당하고 윤재는 그 순간에 느낀 것이 놀라움, 공포가 아니라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라는 이성적인 생각 물음이었다.
혼자가 된 윤재는 스스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곤이와의 우정이 큰 줄기이다. 자기 방어로 강함을 택한 곤이는 깽판 치고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자기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 곤이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윤재는 우정이라는 것을 감정적으로 느끼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친구가 되는 것일까.
윤재의 시선을 따라 인물이 묘사되고 상황을 설명한다. 윤재가 감정이 없는 아이이기 때문에 문체도 사실적이고 건조할 것 같지만 툭툭 뱉는 언어들이 만들어낸 적확한 묘사들은 되려 많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여백을 풍부하게 메꿔주는 역할을 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245쪽)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위의 내용이라 생각한다. 편도체가 작은 윤재에겐 이성적 판단이 우선이다. 결론의 형식은 뇌의 명령에 의한 이성적 판단에서 나온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윤재의 가슴에서 나온 말같다.
윤재의 편도체는 부풀어 오를 수 있을까. 윤재 곁에 있는 사람들, 눈만 깜박이는 엄마, 십년 동안 무조건 윤재 편이었지만 지금은 없는 할멈, 윤재의 임시 보호자 심박사, 유일한 친구 곤이, 끝없이 달리고 싶어하는 도라. 윤재의 아몬드는 깨질 수 있을까.
손원평 작가의 이름 석자를 눈여겨 본다. 평론가였구나, 그러다 소설가로 전향한 분이구나. 문장의 아름다움보단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강하다 싶었는데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구나. 이 분의 작품이 기대된다. 신간 [서른의 반격]도 얼른 만나고 싶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50쪽)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에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51쪽)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내게 그 지나한 교육을 시킨 것도, 내가 그 희생양이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할멈이 사라진 지금 엄마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88쪽)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132쪽)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152쪽)
이른 가을이 오면서 내게도 묘한 변화가 생겼다. 설명하기 힘든, 변화라고 하기도 힘든 변화들. 알고 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쉽게 쓰이던 단어들이 혀끝에서 꺼끌꺼끌하게 맴돌았다.(175쪽)
도라가 올 때가 되면 등줄기가 욱신거렸다. 지진을 미리 느끼는 동물처럼, 폭풍우가 치기 전 땅 밖으로 기어 나오는 벌레처럼.(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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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버스 등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코로나19가 시작된 후 3년 만에 일상 회복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코로나19 시대에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면서 감기, 독감 등 감염병은 줄어들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사람간 정서적 단절은 더욱 심화되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과의 관계가 예전에 비해 사무적으로 변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코로나19 이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 요즘 읽어볼만한 소설을 만났다.
이번에 읽은 소설은 얼마 전에 읽은 <페인트>에 이어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다.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후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로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이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 후에는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둘과 경찰 한 명이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그 남자 자신이었다. - 12쪽
소설은 첫 문장부터 강렬하게 시작한다. 예전에 읽은 레일러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 첫 문장이 생각나는 강렬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열여 섯 살 생일날 소설의 주인공 윤재는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는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혼자가 된 윤재는 소설의 제목인 '아몬드'라고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다. 기쁨, 공포, 분노 등 평범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느끼지 못한다.
- 할멈. 사람들이 왜 나보고 이상하대? 할멈은 내민 입을 집어넣었다. - 네가 특별해서 그러나 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질 못하거든. 에이그. 우리 예쁜 괴물. 할멈이 나를 으스러져라 안는 통에 갈비뼈가 아렸다. 전부터 할멈은 나를 종종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단어는 적어도 할멈에게만은 나쁜 듯은 아니었다. - 21쪽
소설은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가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업 실패 후 3년 간 은둔생활을 하던 남자의 증오 범죄로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게된 후 겪게 되는 이야기다.
비극적인 사고 후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 건물의 집주인인 심박사의 도움으로 헌책방을 운영하게 된 윤재의 인생에 어두운 상처를 갖고 13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온 곤이가 나타난다. 어릴 때 엄마의 부주의로 실종된 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소년원을 들락거리다가 13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온 곤. 바르게 자라지 못한 곤이를 병이 들어 임종을 앞둔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아빠 윤교수가 곤이 대신 윤재를 아들 대역으로 엄마를 만나게 하면서 곤이와의 악연이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윤재와 곤이는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데...
(중략) - 마지막엔, 마지막에는 뭐라고 했냐 - 마지막엔 날 안아 주셨어. 꽉. 곤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간신히 속삭이듯 내뱉었다. - 따뜻했냐, 그 품이. - 응. 많이. - 170쪽
타인들은 윤재와 곤이를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감정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괴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상처 받고 마음과 달리 사회를 향해 반항을 하는 곤이를 이해하고 친구로 다가가는데 감정 표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는 타인의 아픈 감정들에 공감을 하고 있는지... TV 뉴스에 나오는 타인들의 슬픔과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그래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와 어두운 상처를 가진 곤이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며 한 뼘씩 성장하는 소설 속 이야기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상대방을 향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해준다. 밀리언셀러로 이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 자세한 줄거리는 쓰지 않았지만 소설을 읽는내내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윤재가 내뱉는 담담한 어조들은 역설적으로 윤재의 마음에 공감하며 슬프고 시린 마음을 느끼게 했다. 이번 독서는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타인에 대한 감정의 깊이와 공감 능력을 곰곰이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와 출판사의 문제로 <아몬드>는 곧 절판된다고 하니 아직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더 늦기 전에 읽어보기를 추천해 본다.
새벽녁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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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나 전개되는 방식이나 내용 등등 개인적으로 모두 별로인데 왜 인기가 있는지...모르겠네요. 더구나 왜 청소년 추천도서인지 이해가 안가네요. 청소년 추천도서에다가 베스트 상위권이라 기대하고 아들 주려고 사긴했는데... 제가 기대가 너무 커서인건지 아들 학교간 사이 제가 궁금해서 먼저봤는데 재미도 없고 폭력적이라 애한테는 안주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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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학교에서 학생들이 많이 보길래 어떤 책인지 궁금함에 구매했던 책!! 도서관에서 대출할까도 했지만..늘 예약도서였던 그래서 더더욱 궁금했는데..이제서야 읽었네요
코로나로 인해서 집콕중인데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최근에는 책이랑 친하게 지내지 못했었는데.. 늦은 밤..바로 열독을~~!! 아몬드..왜 아몬드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읽고나서 보니..잘 지었다는 생각이!!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이네요
선윤재..이런 학생이 있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까지..저는 학교현장에서 접해본 적은 없지만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려주는 메세지가 아닐지.. 윤재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어려 상황들..
예전에 듣고 봤던 최성애박사의 '감정코칭'책과 연수가 생각난다. 학교현장에서도 늘 싸움이 되었던 아이들의 감정표현 나의 불편한 표정, 즐거운 표정 상대방의 불편한 표정, 즐거운 표정 서로 같은 모습이면 싸움이 되지 않을텐데.. 서로의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생기는 불통으로 인한 오해들 함께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
그런데..윤재는 그런 소통의 도구에 문제가.. 그래서 여러가지 상황들에서 생기는 오해와 그로인한 불편함..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완전 공감~~!! 새벽녘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조금씩 변해가는 감정의 불꽃들.. 불행하지만..완전 불행하지는 않은.. 물론, 여러가지 힘듦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고등학생들이 읽기에 좋을 것 같은 내용.. 공감하기보다는 이럴 수도 있다는 소설의 상상력.. 다양한 생각을 하게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많이 읽고, 도서관 대출 예약이 늘 대기중이였던 이유를 알것 같다.
학교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지만 어쩌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만드는 물론, 영화같은 요소도 보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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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몬드 - 손원평 지음 # 알렉시티미아(감정표현 불능증)2017년에 이른바 "공감장애"라 불리는 "알렉시티미아"에 대한 이야기가 책과 드라마의 소재로 나온다. 드라마는 TVN 에서 방영된 [비밀의 숲]이고 도서는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이다. 드라마 '비밀의 숲"은 주인공인 조승우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 검사 "황시목"을 맡아 열연한다. '비숲매니아'를 양산할 만큼 드라마의 인기는 좋았다. '황시목'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 같다. 왜 우린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는 '황시목'에 열광했던 것 일까? 아마도 감정에 좌우되는 '검사'들이 '이중성'에 질려있는 시청자들에게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검사 황시목에게 진정한 검사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는 당시에는 읽지 못했다. 워낙 책을 멀리하던 시기었다. 그러다 [비밀의 숲 시즌2]가 방영된다는 기사를 읽다가 '아몬드'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길래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차에 바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2020년에 들어서 책을 의무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생겼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한 권 한권 책을 해치워나가는 게 나를 증명해가는 길 같았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읽어가는 책들이 지겨워질 때쯤 [아몬드]를 만났다. [아몬드]는 그런 나에게 책을 다시금 읽는 재미에 빠지게 만들어 준 책이다. 책의 첫 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 책 속에 푹 빠져 버렸다. 공감능력이 없는 '윤재'의 이야기에 이렇게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왜 이 책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을까? '특별함'이 없어 보였는데 책을 덮고 나니 생기는 이 특별한 마음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긴 여운에 [아몬드]에 대한 생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단어가 잘 떠올르지 않았다... 아! 이 책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되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책이 왜 특별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세상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그 행간을 해석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구나...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나에게 미칠 영향을 재면서 살아왔구나..."윤재"가 바라본 인간과 세상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았구나... ![]() # 나에게는 "아몬드"가 있다."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더디다. 윤재의 엄마와 할멈이 감정에 대해서 하나하나 사례를 통해서 가르치지만 늘 한계에 부딪친다. 세상에 남은 윤재의 유이한 지지이자 감정선생님인 할멈과 어머니가 크리스마스이브날 괴한에 의해서 할멈은 죽고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슬픔은 느끼지 못한다, 왜 괴한은 할멈과 어머니를 죽이고자 했고 그 자리에서 자살했는지 궁금하며, 주변에 사람들은 왜 도움을 주지 않은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홀로서기를 한 윤재에게 세상을 향해 적개심이 가득한 '곤이'와 달리기는 좋아하는 '도라'가 나타나면서 '우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나에겐 아몬드 하나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윤재의 독백 속에 '아몬드'가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윤재는 자신의 아몬드는 어딘가 고장이 난 것 같다고 고백하면서 '감정'을 느낄 수 없음을 덤덤하게 말한다. 책을 읽다가 마지막 장면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된다. 비로소 윤재의 '아몬드'가 깨졌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고통도 기쁨도 사랑도 아픔도 느낄 수 없었던 윤재가 비로소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달되어 버렸다.... 내가 가진 아몬드는 뭐였을까? 그건 나만 느끼고 있는 거겠지... 264P의 많지 않은 분량으로 2시간이면 충분히 읽는 책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영어덜트"소설이라는 장르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참 좋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니까... 곧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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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는 희극일까 비극일까? 처음 책을 펼쳐 읽을 땐 주인공의 삶이 안타까워 비극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를 향해 갈때는 윤재의 변화가 오히려 희극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가슴속에 바람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보다 약간의 감정이 다치더라도 느끼며 웃고 울며 사는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몬드를 늦게 읽게 된 이유 독서 책을 고를 때 언제부턴가 베스트셀러 책을 쫓아 읽은 적이 있었다. 어쩜 시대에 흐름에 내가 쓸려 간 건지 아니면 베스트셀러 정도는 읽어 주어야지 하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자꾸 떠밀려 읽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에 의해 떠밀리듯 그렇게 읽고 싶지 않아졌다. 그러면서 책 읽기 의식의 흐름이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 책으로 독서 목록을 수정하게 되었다. 고전을 찾아 읽고, 오래도록 스테디셀러에 머문 책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서점에 갈 때마다 매번 아몬드가 눈에 띄는 책이었지만 시간을 갖고 인연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몬드 책은 실망시키지 않았고 오래도록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책도 만나는 독자와 인연이 닿아야 빛을 바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 아몬드 책을 만나다. 아몬드는 손원평 작가가 매우 공들여 쓴 작품이다. 초고는 아기가 4개월이던 2013년 8월에 한 달 동안 썼다. 그 뒤 2014년 말에 한 달, 2016년 초에 한 달 집중적으로 고쳤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꼬박 삼 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인고의 시간을 들여 나온 아몬드는 첫 장부터 매우 빠르고 흡입력 있게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쉴 새 없이 읽게 만들었고 그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면서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휘잡았다. 손원평 작가는 윤재와 곤이를 통해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말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표지의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무표정한 얼굴을 표지로 사용했을까? 제목이 왜 아몬드일까? 의문은 책을 읽으며 풀리기 시작했다. 윤재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진 아이이다. 의학명으로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은 1970년대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이다. 아동기에 정서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는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공포, 불안감 등관 관련된 편도체의 일부는 후천적인 훈련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윤재는 곤. 도나를 만나면서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 그런 윤재에게 변화가 주는 것은 희극일까 비극일까?를 작가는 말하고 있다. ▶ 책 속 필사 나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세월이 깊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으니까. 어떻게 달랐느냐 하면, 나는 웃지를 않았다. (p22)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러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p29)
튀지 말라는 엄마의 소망도 이루어진 셈이다. 대부분은 그저 잠자코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침묵은 과연 금이었다. 대신 '고마워'와 '미안해'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 두 가지 말은 곤란한 많은 상황들을 넘겨 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P39)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p40) 사랑은 누가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는 결재 서류가 아니다(p42) 늘 한가지 정답을 제시하던 엄마의 가르침에는 좀 위배됐지만 나는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p75)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만 제가 정상적으로 살기를 원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 평범…… . 내가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 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상 가장 이루기 어러운 가치란다. 생각해 보면 할멈이 엄마에게 바란 것도 평범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사의 말대로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입에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는 더욱 어려운 일일 거다. 나도 평범함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으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평범해지는 것에. (p90)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p162) 엄마, 어쩌다가 그 단어가 나올 때면 곤이는 갑작스러운 침묵에 빠졌다. 어디서 건, 그러니까 책에서건 영화에서건 지나가던 사람들의 입에서건,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면 곤이는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하던 말을 멈췄다.(p167)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p172) ☜가족의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 엄마 근데 사랑이 뭐야? 예쁨의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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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각에도 공감능력은 존재한다.' '고난 속에도 성장한다.' 이 책을 읽고 이 문장들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학생 시절 전체가 고난이다. 감정도 없고 무감각한 그. 항상 무시 당하는 그이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물론 그가 희망을 절실히, 또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그도 희망을 바란 것 아닐까 싶다. 여러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간다는 것, 무시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다 해나간다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이 모두가 그에게 희망적 결말을 낳은게 아닌가 싶다. 또 그 과정이 남들과 달랐던 그에게 특별한 성장을 선물로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는 무감각사회다. 무감정사회이기도 하다. 모두들 감각, 감정장애를 가지고 있는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각을 숨기고, 표현하지 않으며 묵묵히 살아간다. 나는 이러한 우리사회에는 공감능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가길 희망하는 '이기적 경쟁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난 뒤 그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들도 분명히 내면적인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들도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응원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무감각사회에도 가슴에는 공감과 희망이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작은 희망이 내 마음을 적시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세상에 많은 감각, 감정이 존재하지만 공감이 부족한 우리사회가 꼭 읽었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주인공이 살아가는 과정, 그가 겪는 고난과 희망이 모든 분들의 가슴을 신선하게 자극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분들에게 두서없이 추천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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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글에 이끌려서 샀는데 엄청 재미있고 영화를 시청하는 것 처럼 장면들이 화르르 뇌 속으로 지나가는게 묘사가 엄청 좋아서 쪼개서 읽으려다가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그냥 엉덩이 붙이고 그 자리에서 다 읽었어요..... 영화보는 상황에서의 느낌은 막 새롭거나 그러진 않은데 꼭 책을 읽는 상황에선 이 느낌이 새롭고 기이한 기분이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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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심찮게 길거리 묻지마 범죄에 관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사람 많은 번화가 한복판에서 칼부림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끔찍한 사건들. 한 사람이 칼을 그렇게 휘두르고 있는 동안, 그래서 죄 없는 사람이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이 스러져가고 있을 때, 그 주변에 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그런 의문을 품었던 적도 있고요.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 보면, 나 역시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 속수무책 아무것도 못하고 벌벌 떨거나 그저 줄행랑을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몬드'라는 소설은 바로 그런 길거리 묻지마 살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로 시작되는 소설. 그날은 또한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주인공인 윤재의 16세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윤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으로 냉면을 먹으러 갔던 윤재와 엄마와 할멈. 윤재는 식당에서 '자두맛 사탕'을 받으려다가 엄마나 할멈보다 늦게 냉면가게에서 나오게 되고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엄마가, 할멈이 칼부림을 당하는 걸 고스란히 지켜보게 됩니다. 하지만 윤재는 그 장면이 '끔찍하다.'거나 '마음이 아프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감정을 전혀 느끼진 못합니다. 윤재의 아몬드(편도체)는 일반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 작아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거든요. 제가 평소 즐겨보아오던 소설들 속에서 이런 인물이 등장한다면, 그는 분명 후에 자라서 잔인하기 짝이없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되게 마련이기에 윤재의 성장과정을 묘한 긴장감으로 읽어갔습니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이 없고 표정이 없는 괴물이라고 치부되어 온 윤재. 이런 인물이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어쩌면 기적일 테니까요. 때문에 윤재의 엄마나 할멈은 윤재가 품거나 갖지 못하는 사랑까지 몇곱절의 사랑과 정성으로 윤재를 키워오고, 윤재에게 감정을 '학습'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할멈은 없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살아도 산 게 아닌 채 누워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더더욱 앞으로의 윤재가 걱정이 됩니다.
이런 윤재 앞에 또다른 괴물인 '곤'이 나타납니다. 곤은 윤재완 다르게 세상 만사가 불만 투성인 감정 과잉인 아이입니다.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괴물 녀석과, 감정 과잉인 괴물 녀석의 만남은(게다가 이들이 만나게 된 계기 또한) 아슬아슬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괴물과 괴물이 만나 그야말로 엄청난 '괴물'이 탄생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런데 이녀석들 귀엽습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욕설과 비속어인 곤과 무미건조하기 짝이없는 반응으로 일관하는 윤재의 대화가 어쩐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고 녀석들이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괴물이라 치부되어 온 두 녀석인데, 알고보면 녀석들 또한 평범하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게지요. 그리고 전 그런 녀석들에게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게지요. 너무나 다른, 극과 극인 두 녀석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그래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진심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곤'이 나비를 가져와서 '윤재'의 감정을 일깨우려고 했던 장면은 정말이지 좋았습니다. 이런 '곤'이의 노력 덕이었을까요, 아니면 윤재 말대로 첫사랑과 함께 찾아온 사춘기적 감성 때문이었을까요... 윤재의 아몬드는 분명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곤'이의 성장은 그리 순탄치가 않습니다. '윤재'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곤'이, 그래서 윤재의 아몬드에 변화가 생길 수 해준 곤이, 이제 윤재가 곤을 구하러 갑니다. 그 결과는 저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책 속 구절에서처럼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일 테니까요. 다만 한 가지 저는 이 책의 결말 부분인 4부를 읽으며 내내 울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슬퍼서이기도, 감동적이기도 해서, 즉 제 가슴이 제 아몬드를 지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정말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윤재가 심 박사를 찾아갔던 어느 날이었는데, 심 박사가 환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윤재를 맞이하는 뒤쪽으로 보이는 텔레비전 뉴스 속에서는 전쟁으로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 있었습니다. 윤재는 이에 생각합니다. 자기 같은 천치도 저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안다고요. 저는 정말이지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종 식사를 하며 뉴스를 보는데, 이런 비슷한 뉴스를 본 적이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걸 보면서도 목구멍으로 밥은 참 잘도 넘어갔었으니까요. 아몬드가 다른 이들보다 한참이나 작아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이에 이렇게 외칩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라고. 공감 불능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우리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 p.245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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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는 소년의 성장소설, 감정을 느낄 수 없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더 감정을 싣을 수 있게 하는 소설 '아몬드'이다.
책은 내용이 두껍지 않고 주인공인 '선윤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선윤재는 뇌의 편도체가 다른사람들 보다 현저히 작아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고 공포나 두려움 그리고 사랑과 설레임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윤재의 엄마는 그런 윤재의 상태를 알고 그가 세상에 적응 할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정과 감정을 표현해야 할 지 하나씩 알려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마치 야생동물과 같은 대상처럼 감정 하나하나를 교육 받는다. 윤재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교육이 윤재를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윤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살 수도 있었다. 우리가 아는 싸이코패스 처럼. 하지만 윤재를 향한 엄마의 사랑으로 법의 태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살아간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 아닌 스릴러 소설 '한니발'류가 되었겠지
하지만 사고로 엄마와 할머니가 사망한 후 세상 속에 내던져진 윤재의 학창시절을 그린다. 윤재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윤재는 말한다. '나는 니가 원하는 것을 줄 수가 없다'라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그 대상에게서 공포, 두려움을 대가로 보고싶어 하는데 윤재는 애시당초 느낄 수 가 없으니 그 감정을 줄 수가 없다. 그리고 '결코 이런 싸움은 결코 나에게 이길 수 없다고 한다. ' 인간은 참으로 잔혹한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이 없다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가장 무서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도 새삼 느낀다.
사실 누군가와 다툼이 생겼을 때, 가장 두려운 건 상대방의 육체적 강함이 아니라 행동의 대가를 얼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다.
윤재에게는 다행히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윤재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알려주고 사회속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을수 있도록 도와준다. 윤재의 감정은 성장 하고 있고 그리고 더욱 성장 할 수 있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윤재 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 모두는 어쩌면 타인과의 감정의 연결선을 끊으려는 노력속에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사회 생활이 힘든건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며 나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어떠한 감정엮임도 최소화 하려는 노력들이 결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서점에는 그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잘 나타낸다. 시간이 없다면 베스트셀러만 훑어봐도 사회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책들은 개인의 감정을 위로해주는 그리고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받는 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회에 속하지 않는다면 살 수 없는 현대인들의 사회 속에서의 아우성들이 범람하는 이 사회에서 어쩌면 윤재의 무감정의 상태가 부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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