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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 상당히 흥미롭고 매혹적인 제목에 먼저 끌렸다. 깊이 있는 과학서를 읽기에는 내 배경지식이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얼마 전 모네에서 피카소까지를 관람하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그 느낌에 취해 특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펼쳐들었다. 일단 제목을 보고 먼저 떠오른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실제로 만났을까? 만난 적이 있을까? 보통 사람들이 지각하는 불변의 상수인 시간을 두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시간을 상대적인 것이라 이야기한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적 이론을 근거로 이야기하자면 만난 적이 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인물들 중 특별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듯 상당히 연관 있어 보인다. 측면만 두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조차 끌어내어 그린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나 게르니카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사람들의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리는 명화로서 경이로움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고정관념을 탈피해 상식을 뒤집어엎은 면에서 그의 그림은 놀라웠다. 과학이라고 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는 그때 그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한 걸음 물러난 태도로 즐기면서 볼 수 있게 되어서일까 주로 읽던 분야의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책에서 들려주고 있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대상의 정면을 보는 행위와 측면을 보는 행위를 동시에 하고 있음으로 다층적인 여러 시간대를 한 화면에서 동시에 보여주는 그림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뉴턴의 중력과는 다른 시공간의 휘어짐을 이야기하는 그의 중력이론은 빛은 질량이 광자로 되어 있는 입자이므로 천체 주변을 지날 때는 휜다는 점을 들어 시공간이라는 개념과 왜곡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나타났을 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부각된 것처럼 그들의 행보를 연관지어 나열해 보이는 저자의 글을 보며 아 이런 것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었을까 이야기 자체에 대한 놀라움도 있었지만 저자의 통찰력에도 감탄을 했다. 예술과 과학이 변천을 겪는 과정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배경을 근거로 서로의 연관성을 해석하는 관점이 신선했다. 학계에서 유명한 인문학적 과학자 에른스트 패터 피셔의 글은 아주 쉽지도 않았지만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떠올려보는 과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시공간을 염두에 두고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의 공통점을 영화관이라는 매개체를 두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또 다른 예술가와 철학자나 과학자들에게서 그러한 연관점을 발견하게 할지도 모른다. 관점의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진리라 믿었던 과학 역시 가설을 토대로 수정하고 수정되어 진리가 되고 세월이 흘러 또 다른 누군가가 세운 가설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는 고정관념을 탈피한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계에서는 이미 유행하고 잘 알려진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우물 안의 개구리로 아는 것 들은 것 보이는 테두리 안에서 생각의 근거를 마련해왔던 내게는 까만 밤하늘에 퍼진 불꽃같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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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다. 책을 처음 읽으면서부터 책이 끝날때까지 숨쉴틈 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책은. 바로 이런 책이 우리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해주며 우리가 교양인으로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해준다. 세상에 크고 작은 즐거움들이 있지만, 이렇게 잘 쓰여진 책을 읽는 느낌은 다른 즐거움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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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만 보면 어느 날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정말 만나서 영화관에 가서 어떤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눴음직하다. 물론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활동 무대는 달랐지만, 동시대를 살아갔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학문과 예술에서 유럽은 국경의 의미가 다른 곳에 비해서 희미한 곳이라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둘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고, 당연히 함께 영화관을 간 일도 없다. 그럼 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은 뭘까? 이 제목은 많은 것을 감추고 있지만, 또한 많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현대 과학을 대표하고 있고, 피카소는 현대 미술을 대표한다. 여기서 현대 과학과 현대 미술은 과학 혁명 이후의 과학,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의 전통을 한꺼번에 뒤엎는 전복의 과학과 미술이었다(물론 그들의 선배는 있었다). 또한 우리는 그 과학과 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물론 미술보다 과학 쪽이 훨씬 더 심하긴 하다). 그렇다면 영화관은 무엇일까? 20세기가 막 시작되면서 명성을 얻은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영화도 세상에 등장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영화관, 혹은 영화는 그런 시대적 동시성의 의미뿐만 아니라 공간 예술에 시간성이 첨가된, 그리고 과학이 그것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르였다("영화와 더불어 그림들은 뛰는 법을 배웠고, 시간을 정복했다.", 42쪽) 바로 '공간'과 '시간'. 이게 이 책의 주제다. 이 공간과 시간을 과학자들과 미술가들은 어떻게 다루었는지가 바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만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직접적 선배라 할 수 있는 헤르만 폰 헬럼홀츠와 푸앵카레, 피카소, 즉 입체파에 큰 영향을 미친 세잔도 등장하고, 더 윗대의 선배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도 등장하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등장한다. 물론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의 후배이자 이 둘의 전복자이기도 한 하이젠베르크와 칸딘스키도 등장한다. 그리고 더 많은 과학자와 미술가들. 이들이 설명하고자 하였던,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였던 세계는 묘하게도 그 시대의 다른 미술가, 과학자의 세계와 비슷했다는 것을 저자는 발견한다. 과학과 예술은 공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하나의 시대정신이 예술과 과학 두 분야에 비슷하게 영향을 주고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87쪽) (2015.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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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의 만남으로 이 책 제목을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두명의 거물인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를 내세워서 , 당시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업적인 뉴턴 역학의 파괴와 입체파를 시작한 시대 정신이 같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과학사가 아주 많은 시대를 넘나드는 관계로 다 따라 다니기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크게 3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기하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과 그 이후에 나오는 리만 기하학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둘째는 빛에 대한 내용이다. 빛이 파장이라는 정설에 대해, 아인슈타인이 입자에 대한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다. 빛이 파장으로서의 특성도 가지고 입자로서의 특성으로 양면을 다 가진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수학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가 허수라고 불리우는 imagine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이후의 시대에 대해서도 과학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흔히 알고 있는 보어 모델인 전자의 궤도와 하이젠베르그의 전자 구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전자 구름이란 전자 궤도를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확율적인 모델인 것이다.
하여간 이 책은 좀 어렵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회화 사조의 변화를 비슷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됨 통일에 있어서, 집단과 개인의 양쪽 모습을 같이 보아야 하며,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과 예술을 같이 보아야 한다. 즉 두쌍의 눈인 내적인 눈과 외적인 눈으로 봐야 할 것이다.
독서 릴레이 2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