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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왜 이럴까, 저 새끼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이런 생각이 들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서 책을 찾아 읽는다. 이번엔 '폭력'이다. 주욱 살펴보니 이 책이 땡겼다. 읽었다. 아아, 다 읽고 나니 더 무기력해진다. 그래도 리뷰는 남긴다.
저자는 독일의 유명한 사회문명비평가라고 한다. 사회학과 교수 출신이라고 하는데, 책 내용을 보면 서양 문명사, 정치사에 역사, 문학이 어우러져 있다. 각 장의 내용은 질서와 폭력, 무기, 폭력과 격정, 폭력 불안 그리고 고통, 고문, 구경꾼, 사형 집행,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사물들의 파괴, 문화와 폭력을 다룬다. 기본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홉스의 견해가 깔려 있고 섣부른 희망이나 인류애, 연대를 말하지도 않는다. 핵전쟁 이후나 좀비 습격, 자연재해 이후 살아남은 인류가 등장하는 영화 속 내래이션이 떠오를 정도다. 인용해보자면, 이런 식.
사회는 타인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충동이나 노동의 필요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협력하고 단합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의 경험이다. 사회란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공동의 보호를 위해 만든 예방 조치이다. - 13쪽
저자는 1장 '질서와 폭력'에서 말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도덕과 근거는 바로 인간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불안이라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는 끊임없는 유혈 사태가 아니라 그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으로 인한 지속적인 불안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리고 2장 '무기'에서는 강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사용하는 폭력의 무기는 돌, 쇠, 화약, 총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능력, 즉 지식이나 계략, 술책까지 포함한다고 통찰한다. 이렇게 폭력과 사회 관련한 내용이 이어지는데 각각의 장은 폭력에 관한 역사적 예나 관련 예술 작품 소개로 시작한다. 질 드 레의 예, 성경의 예, 베이컨의 그림 <십자가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 독일 재세례파의 우상 파괴 예, 기요틴 사례 등등,,, 그 부분만 봐도 엄청나다. 저자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이 저자분의 주력 분야 쪽 배경 지식이 얊다. 지금 내가 가진 능력과 시야로는 서양 중세사 부분만 평가할 수 있다. 폭력의 맥락에 등장하는 각종 서양 중세 형벌 제도 관련 부분 서술은 정확했다. 고문의 역사는 하층민, 아웃사이더, 부적응자의 사회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있다고 고문의 희생자를 역사적으로 고찰해서 결론 내리는 부분은 물론, 사형당한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를 징벌과 본보기만이 아니라 그가 아직 죽은 자들의 세계에 도착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중세인들의 사고방식 속에서 설명하는 부분, 형 집행의 목적이 징벌이 아니라 붕괴된 상태의 복원임을 명시해 주는 부분 등등, 중세사 부분이 전공자 서술만큼 깊이있고 믿음직스러웠다. 이런 역사적 고찰 끝에 저자는 사형이 옛날 인간 희생관행과 맺고 있는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인신공희 제사가 축제였던 시절과 현대 사행 집행을 연결시켜서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즉, 현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형 집행을 일반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없도록 하는데 그건 문명화된 동시대 사람들이 그 순간을 보지 못하도록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런 경험을 더 즐기고 싶어 하여 문명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놀라운 견해였다.
하지만, 다른 장은 현재 내 독서이력으로는 내용 평가가 어렵다. 여기는 인상깊은 부분 인용으로 지나가기로 한다.
육체는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을 구성하는 중심이다. 따라서 육체에 가해지는 상해는 곧바로 영혼과 정신, 자아, 그리고 사회적 실존 방식과 관계된다. - 95쪽
폭력은 삶의 연속성을 끊어버린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순히 전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폭력을 겪기 전과 겪은 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세계는 더 이상 친숙한 고향이 아니라 반복되는 위협의 원천으로 바뀐다. 주변의 낯익은 것에 대한 신뢰는 붕괴된다. 주변의 사물은 그가 눈을 뜨는 순간 곧바로 사라질 것처럼 위협한다. 폭력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 귀환자는 모든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도무지 귀 기울이려 하지 않거나 그를 주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실의 체험이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 112쪽
특히, '학살' 장은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 저자는 인간이 잔혹 행위를 하기 위해 먼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에 거리를 두고 평가하거나 비인간하거나 같은 인간 종이 아니라고 간주한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살인 사건은 살해자가 희생자를 직접 죽이는 것이고 신체 접촉이 있는 것, 자기 힘을 느끼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치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이고 친밀한 행위와 흡사하다. - 264쪽
피에 대한 굶주림과 살인 욕망은 적대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증오나 분노가 대향학살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체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자기 한계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충동이 마구 발산된다. 이런 충동은 더 이상 비밀의 보호막 속에 숨거나 의식의 질서 속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살해자들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표출한다. - 267쪽
그것은 다름 아닌 무제한적인 자기 발산에서 오는 야수적인 만족감이다. 그는 스스로 총체적인 세계가 된다. 그의 육체는 폭력과 융합되어 스스로 폭력이 된다. - 269쪽
아마도, 나는 위의 '학살' 부분을 읽음으로써, 이 사회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며, 저 새끼들은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저렇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나, 에 대한 답은 찾은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폭력은 같은 인간에 대한 몰이 사냥이 전쟁터의 전투나 이방인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일제 검거나 린치 등 국가 제도로 정착된 것이구나, 하고. 위에서 시켜서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폭력을 즐겨서 그랬을 수도 있구나, 하고. 즉, 역사적으로 인간 사냥은 보편적 집단 폭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이 있는 일이었다고 그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지막 장인 '문화와 폭력'에서 저자는 말한다. 폭력은 그 자체가 인간적인 문화의 산물이자 문화 실험의 결과물이며 폭력은 그때그때의 파괴력의 수준에 따라 실현된다고. 그리고 인간들은 기꺼이 폭력에 참여하여 파괴하고 살해하고 있다고. 사회 시스템이나 인간의 문화는 이런 잠재력에 형식과 형태를 부여하면서 돕기까지 한다고. 문제는 폭력과 문화의 협력에서 생겨나며 문화는 결코 평화주의적이지 않다고. 아아, 그렇다면 문화를 바꿔야 하는 건가? 저자는 아무런 대안도 전망 제시도 없이 글을 끝내 버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사족 1
내용을 떠나, 이 저자의 문체도 관심이 간다. 매우 독특했다. 역사적인 폭력 장면을 서사시처럼 서술한다. 유장한 내래이션이 마치 일리아드를 읽는 느낌이었다. 대구가 들어맞는 문장 구사가 고급스럽다. 대단한 저자다. 이런 느낌이 독자인 내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역자분의 능력도 대단하신 것 같다. 이한우 선생님 번역이었다.
읽다가, 314쪽에 '7개의 성문을 가진 테벤 성' 이라는 부분이 있어서 의아했다. 분명 <안티고네>의 배경인 '테베'를 말하는 건데 왜 '테벤'이라 하셨을까? 이런 실수를 하실만한 분이 아닌데 싶어 찾아보니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표기로는 테벤(Theben)이었다. 실수가 아니라, 너무 꼼꼼한 번역이었던 것이다!
*** 사족 2
지금의 국가 폭력에 분노하여 <폭력 사회>란 책을 읽었다. 만든이들의 이름이 적힌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백남기 선생님, 그리고 모든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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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인이며 지성인임을 자처하는 인간의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인간의 역사가 폭력과 함께 해왔으며 늘 인간 안에 내제된 폭력성이 언제 표출될지 아무도 알수 없다는 사실을 접하니 머리 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다 돋는다. 저자는 인간과 폭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폭력은 문화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은 타인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충동이나 노동의 필요성이 아닌 폭력의 경험이라 정의한다. 즉 사회가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이라크 전쟁, 9ㆍ11 테러,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는 약탈과 폭동, 인종차별 등 21세기 현대에서도 여전히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텔레비전이나 영화, 게임 등을 통해 폭력은 우리 주변으로 확대되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반복되어 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폭력으로부터 더이상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위협속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이 책은 역설적으로 폭력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오히려 폭력을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왔음을 이야기 한다. 인간이 만든 무기는 무장과 비무장 그룹으로 나뉘어 무장그룹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힘의 중심을 형성하였으며 무기의 진화는 공간의 제약을 받던 폭력을 해방시키게 되었다. 아울러 폭력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과 폭력의 희생자들의 내면과 고통을 다루고 있다.
모든 폭력의 본질은 육체적인 파괴에 있지만 폭력은 육체뿐 아니라 영혼과 정신, 자아 그리고 사회적 실존방식도 변화 시킨다. 더이상 폭력을 당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음이다. 또한 인간이 안전한 상태에서 만끽하는 폭력의 쾌감을 파헤치며 아울러 고문, 구경꾼, 사형 집행,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사물들의 파괴, 문화와 폭력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폭력과 관련된 인간의 모습을 폭넓게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 뿌리 깊게 파고든 폭력이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체에 가하는 리얼한 고문장면이나 사형집행 장면에 눈살을 찌뿌리고 소름끼치는 집단학살이나 유혈이 낭자한 전투장면을 여과없이 읽으며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 문명이나 문화, 숭고한 종교가 폭력을 조장하고 확장시키는 힘의 원동력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폭력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을 100% 수궁할 수는 없다. 아마도 굳어진 고정관념이 한 권의 책으로 바뀌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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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잔인한 책이다. 정말 적나라한 책이다. 많은 책을 접해보는 중에 의도적으로 잔인성과 조악함을 들추어내겠다는 충격요법을 쓴 약간 급낮은 책들은 몇몇 본 적이 있지만 인문영역을 자리하고 토마스 홉스와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안나 아렌트와 미셸 푸코까지 참고서적을 한 책으로서 이렇게 섬뜩한 내용을 가진 책은 본 적이 없다. 중세말 질 드 레라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살인극, 그것도 하류층의 오갈데 없는 어린 아이들만 골라서 여럿이 보는 가운데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짐승같은 얘기를 읽고 있노라면 구역질이 나오고 만다. 그렇다. 저자는 구역질과 혐오감조차도 우리를 사로잡는 것을 꺼릴 때 우리 인간을 덮치는것이라고 말한다. 피범벅을 이루는 공포영화나 폭발과 총포가 난무하는 전쟁영화(휴먼적 요소가 거의 없는)를 보고 살상이 멈추지 않는 장면을 볼 때도 손가락을 벌려 눈을 가리는 행동역시 그 장면이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일까. 혐오감을 배제할 수 없지만 가끔씩 공포영화가 솔깃해지는 심리도 폭력의 요소가 우리 유전자의 한 부분을 지배하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적 상상력을 넘어서 역사에서 또는 현실의 다른 어떤 공간에서 여전히 폭력은 난무한다.
폭력과 연관하여 다양한 생각의 범주를 끌어낸 저자는 무기, 격정, 불안, 고통, 고문, 구경꾼, 사형집행,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사물파괴, 문화, 질서에 대해 언급한다. 그의 서술은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다 못해 저자가 컴퓨터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철저히 감정개입을 자제하고 처절할 정도로 참혹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환형(능지처참)에 관한 서술에서 독자는 도저히 글자를 따라 읽어내려갈 수 없는 끔직함을 공유하게 된다. 언어로서 이처럼 잔혹한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또한 그가 말하는 고통이란 노 패인 노 개인에 등장하는 찬란한 성공과 환한 미래를 위한 필히 겪어내야할 시련 정도가 아니다. 그는 고통은 고통일뿐 기호가 아니며 어떤 사명도 전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통은 그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고. 고통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큰 악일 뿐이라고. 폭력이 조장하는 결과로서의 고통은 그럴 수 있겠다.
고문은 파괴력이 가장 큰 지배기술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민주화과정을 겪어낸 우리로서는 군사정권시절 숱한 고문 희생자를 알고 있다. 고문기술자라는 말까지 유행하지 않았나. 꽃다운 나이에 물고문의 희생자가된 아까운 청년을 생각하면 아직도 입술을 깨물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형사재판의 수단이었던 고문이 19세기초반에 이르러 잠시 폐기된 적도 있었다니 신기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수십년뿐, 20세기에는 기술발전으로 더욱 무시무시한 폭력과 고문을 목격하게 되었다. 나찌장교역할을 맡았던 전직 치과의사(로렌스 올리비에 분)가 고문 도구로 치과용 기구를 사용하던 한 영화장면이 떠오른다. 고문은 동질적인 사회의 핵심영역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회적 범주를 장악하며, 나이외의 다른 것에 대항해 싸우는 기술이자 사회적 분할과 배제의 도구라는 저자의 설명은 냉혹하지만 진실이었다.
폭력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어디서건 멀지 않은 곳에 구경꾼이 있다라는 말에 찬성할 수 있는가. 사자의 밥이 될 것인지, 살려줄 것인지 엄지손가락의 방향으로 죄인의 목숨을 결정하던 로마 원형경기장의 장면은 어지간히 영화에서 보아왔다. 로마황제의 결정에 따랐을까. 아니다. 수많은 군중의 함성을 황제역시 저버릴 수 없었다. 구경꾼은 방관자가 아니다. 그는 관심을 가진 관찰자이며 곧바로 흥분한 개입자가 될 수 있다.
고문이 밀실에서 이루어진다면 처형은 원래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치 및 사회 질서를 공고하게 하고 보존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반자, 범죄자, 무신앙자가 처형대상이었다. 사형집행을 잘 들여다보면 자의성의 정권(정치권력)과 질서의 연대(군사력)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갑지 않지만 거역하기 힘든 진실은 학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학살에는 반드시 폐쇄된 장소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마을이나 소도시는 포위상태여야하고 안마당이나 광장의 경우에도 접근로가 완전히 차단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탈출할 수 없어야 한다. 전투는 승리를 목표로 하는 반면 학살은 어떤 미래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현재의 지속만 있을뿐이다. 칼질작업의 내적인 충동이란 묘사에 이르러 독자는 또다시 악마적인 내용에 치를 떨지 모른다. 서투른 독자는 19세이상의 영화를 보고 나쁜 영향을 받는 아이처럼 이런 난폭한 묘사에 더러운 기운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드러냄의 기술이 반성의 단계로 이어지길 저자는 바랬을 것이다. 설마 유혈낭자한 묘사를 통해 새디즘적인 폭력을 상상하고 이 책을 썼으리라 상상할 수 없다.
힘에 대한 반역이 곧 파괴의 사회적 의미라고 정의하는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적어도 그렇다. 그는 우리가 가끔씩 잊기 쉬운 놀라운 진실을 드러내는 데 서슴이 없다. 모든 질서는 물질적인 대상이나 기호, 인공물을 통해 구체화된다. 힘의 건축물이나 정권의 상징물, 영주의 재산과 그의 부하가 가진 무기등이 그런 예이다. 복종이 지속되는 한 이런 사물들은 주목과 존경을 환기한다. 그렇다면 사물을 파괴하는 것은 당연히 힘에 대한 반역일 수 밖에... 무굴제국의 왕 샤자한 때 지은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건축물이상으로 권력을 상징한 사물을 바라보게 되고 이집트의 피라미드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화조차도 그 안에 폭력을 함축한다. 문화가 세워진 기반을 생각해보라. 중국대륙에서 당송원명청으로 주권이 바뀌어 가고 새 조정의 성립이면에 수많은 폭력의 자취가 남아있을 것이다. 문화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각종 제도와 견해의 정당성과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다시 책의 맨 앞으로 돌아가서 질서와 폭력의 관계를 얘기해보자. 인간은 서로에 대해 느끼는 불안때문에 사회를 구성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손잡고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스스로를 보존한다. 사회속의 여러 사회적인 교섭의 상황을 규제하는 사회계약이 필요하게 되었고 칼은 그 계약의 효력과 구속력을 보장했다. 규칙의 준수를 위해 감시와 제재라는 규범이 따라야 한 것이다. 즉 사회계약에는 지배의 계약이 수반된다. 폭력의 독점이 허용될 때 개인의 도덕적 허술함이 제거되고 자의적인 계약파기를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지배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배가 효력을 발하는 범위 안팍을 향한 폭력을 행사한다.
질서는 무얼까. 그것은 순응성과 동질성을 추구한다. 규칙이 엄수되고 있는지 감시되고 때로는 강요된다. 질서란 규범과 정상성에 관한 정의이다. 획일성의 생산이자 일체의 낯섬에 대한 배제와 억압이다. 소설속의 전체주의사회나 영화속 미래 기계인간 시대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폭력으로 유지되는 질서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는 순간이다.
탈제도적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이 책(1996년 간)은 80년대 후반에 나온 자끄 아딸리의 <노이즈, 소음의 정치경제학>을 연상시킨다. 그는 프랑스 미테랑 정권의 경제자문이었다. 아딸리의 책은 무차별적 권위의 질서에 대한 단절(rupture)의 시도와 그 의미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었다. 반면 이 책은 질서로 대변되는 사회의 규범과 문화와 지배체제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은 폭력의 흔적과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그리고 폭력에 연관된 사물과 상황의 잔혹성을 낱낱이 까발린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고개를 돌리다가도 인간의 역사속에 있어왔고 인간 종의 유전자속에서 진화되어 온 요소라는 생각에 다시 유심히 읽게된다. 너 자신속의 짐승을 알라. 그리고 버려라, 그 욕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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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소설이나 여행서만 읽다가 오랜만에 인문서를 읽으니 공부하는 마음이 들어 뿌듯했다. 게다가 부제인 '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호기심을 자극했던지라 꽤 두꺼운 책임에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문체도 짧고 명확해서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는 인상이고 챕터도 잘 나뉘어 있어 이해도 쉬웠다. 특히 앞부분의 질서와 폭력 파트의 부분과 폭력과 격정 부분의 몇몇 구절은 너무도 와 닿아서 포스트잇을 붙이게 만들 정도였다.(책의 모서리를 접거나 밑줄 긋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도 많고 인상적인 부분도 많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유를 즐기다가 서로의 안전을 위해 규칙을 정하고 그 질서에 숨막혀한다. 기득권층은 자꾸만 자신들 편한대로 규칙을 고치고, 그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폭력으로 그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다시 방종한 자유. 그리고 다시 규칙정하기의 반복이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이러한 폭력과 질서의 역사도 반복된다. 사람들은 직접 행위하거나(가해자가 되거나) 폭력을 당하거나(피해자가 되거나) 구경꾼이 된다(방관자가 된다). 사람들은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를 기억하고(공포의 대상으로 기억하거나 처벌의 대상으로 기억하거나), 가해자는 구경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구경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행하거나 구경꾼들의 부추김으로 폭력의 행위는 더욱 잔인해진다. 책에서 기술하는 것들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적용되는 것들인지라 이 책이 잘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한편, 인간과 사회는 폭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다.
쉽지 않은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작가는 중간 중간 각 챕터의 내용과 어울리는 그림들과 일화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이끈다. 아직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은 것 같지만 그의 전작인 <공포의 시대 : 정신착란 테러전쟁>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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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 책은 폭력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목차만 봐도 소름끼칠 내용들이 한가득이다. 질서와 폭력 / 무기 / 폭력과 격정 / 폭력, 불안, 그리고 고통 / 고문 / 구경꾼 / 사형 집행 / 전투 / 사냥과 도주 / 학살 / 사물들의 파괴 / 문화와 폭력 까지 총 열두 가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진행된다. 사실 더 끔찍한 것은 따로 있다. 각 목차에 달려있는 소제목들이 바로 그것인데, 일례를 들어보면 [고문]에는 [절대적인 폭력의 공연장, 파적인 환상의 실험실]이란 소제목이 붙어있다. 쉽사리 죽음을 허용하지도 않으면서 고통만 무한정 연장시키는 고문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 이것을 읽으면서 정말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됐다. 폭력과 학대의 언어로 된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정도로 이해가 되었으니까. 즉, 얼핏 스쳐지나가도 진저리칠 만큼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쉽사리 이해가 되었단 말이다. 물론 저자와 옮긴이의 역량이 큰 비중을 차지했겠지만, 이런 변태적이고 사디즘적인 언어를 이해하다니, 그것조차 소름끼친다.
처음에 이 책을 들었을 땐 쉽사리 읽힐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이 정도로 모호한 개념들의 향연이 지속될 줄은 몰랐다. 이해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례 중심이 아닌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뒤범벅이 되어 읽을 때 누군가 방해라도 할라치면 같은 문단을 반복적으로 두,세 번 읽어야 겨우 이해가 될 만큼 어지러웠다. 이해는 되지만 끔찍한 내용을 계속 읽으려니까 힘들었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폭력과 격정]편과 [고문]편은 정말 대단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정신적인 고문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런 끔찍한 글로 인한 폭력에 노출되다니... [폭력과 격정]편에 있는 명망있는 기사 질 드 레의 사디즘 경향의 범죄이야기는 완전 경악할 만하다!!! 여덟 살에서 열다섯 살의 어린 아이들을 마흔한 명이나 살해했는데, 살해도 살해이지만 그 방법면에서 자르고 찌르고 해부하고 성교하고 수간시키는 등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으니까 말이다.
희생자에게 쉽게 죽음의 안식을 주지 않으려 정교하게 설계된 고문의 교안대로 차근차근 진행시키는 인간을 보노라면 내가 인간인 것이 낯뜨거울 뿐이다. 한 인간의 인격은 깡그리 무시한 채 그저 고통만 느낄 수 있는 고깃덩어리로만 만들어버린 고문을 포함한 이 책에 나온 모든 폭력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가 시작되었을 때, 폭력을 없애기 위해 질서를 세우고 대표자를 선택해 그에게 모든 폭력의 권한을 주었더니, 오히려 질서가 없었을 때보다 폭력을 더 많이 양산해내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서의 딜레마를 일깨워준다. 폭력은 지배계층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없어서는 절대 안될 유지수단이라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정상적이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집권자가 권력을 잡았다면 다행한 일이겠지만, 독재자가 정권을 차지한다면 폭력의 위험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기에 질서가 생기는 순간 폭력은 더욱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게다가 가해자는 피해자의 죽음을 조종하면서, 고문하면서, 살해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극복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모든 인간에게 도래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착각을 갖는 것으로 해소한다니... 정말 인간이 갖는 이기적인 본성에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전에 형사물 만화책에서 어떤 사람이 살인하는 쾌감을 설파했던 것을 이해못했었는데 그 의문이 여기서 풀렸다. 살인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좌우하는 데서 쾌감을 느꼈던 것임을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폭력의 역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일까. 그리고 문화와 폭력의 관계는? 사실 지배계층에서 폭력을 사용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시킨 후부터는 인간의 문화는 곧 폭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서, 지배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는 한, 영원히 인간 사회에 폭력성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폭력의 도구가 되는 육체를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폭력의 희생물이 되는 육체를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원히 폭력과의 결별은 요원해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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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치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이고 친밀한 행위와 흡사하다. p.264 책의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성악설 위주의 논리가 이어지는데다가 번역자도 익숙치 않은 문체 때문에 조금은 어렵게 읽었다. 지하철에서 오고가며 절반쯤은 읽고, 오늘 별다방에 앉아 커피와 도넛을 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그게 화근이었지. ※ 경고! Warning! 먹으면서 읽지 마세요!!! 제발! 배가 고프니까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눈 앞에 있는 이 책에서는 엉덩이에 뭐를 꽂아서 죽이고, 내장이 어쩌구저쩌구 사람을 4등분해서 말에 매달아 마을을 한 바퀴 돌고... (그림보니까 우리나라의 육시와 같은듯) 용케도 삼켰구나 싶을 정도.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서양의 중세가 떠오르는 묘사인 데, 실제로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성행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이라고 하긴 좀 뭣하지만, 개인적으로 "어쩌면 나도...?"라고 움찔했던 챕터가 '구경꾼'이었다. 확실히 사람이라는 동물은 '남의 일'이라고 하면 상당히 잔인하게 관대할 때가 많다. 나의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로서 방관한다랄까, 알량한 도덕심에 양심? 당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피해자에 대한 폭력의 당위성을 놀랍게 찾아내는 능력은 어쩌면 가해자보다는 구경꾼이 더 뛰어날지도. 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안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도덕시간에 참 많이 나오긴 했지만, 볼프강 조프스키가 말하는 이러한 '폭력사회'야 말로 우리의 실제 모습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폭력사회》는 너무 '악한 인간'에만 초점이 맞춰진 건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들이 이 책만 읽고 지레짐작, "세상은 썩었어! 더러운거야!" 외치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나의 피폐한 정신을 위해서도 조금은 밝은 사회를 그린 책을 한 권 함께 읽어주는 게 좋을 듯. p.s. 세상은... 아름다울거야. 그렇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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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의 단어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감성에의 충격이라는 폭력을 겪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폭력의 주요 범위가 인간의 신체에 국한되어 있지만 말이다. <폭력사회>는 개인적으로 폭력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하지만 엄연한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인간의 문명사이고 잔혹하고 황폐한 인간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이 주는 센세이션함은 옮긴이도 후기에 다뤘듯이 단문형이고 기존의 문체를 벗어난 저자만의 문체가 주는 생경함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질서와 폭력, 무기, 폭력과 격정, 폭력․불안 그리고 고통, 고문, 구경꾼, 사형집행,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사물들의 파괴, 문화와 폭력은 모두 인류 문명에 있어서 나타났던 다양한 폭력의 사례를 되짚어 그 폭력의 신랄함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독자들에게 충격과 그만큼의 씁쓸함을 안긴다. 뒤돌아보면 인간이 인간성의 상실이니 그 회복을 외치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니 그런 인간성에의 천착이 유구하다 해도 극한까지도 아닌 특정 인간들에게 부여된 힘이 서로간의 상승작용을 일으켜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극악한 형태의 폭력을 자행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한낱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는 심증을 갖게 하곤 한다. 상당히 불편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책이다. 저자가 시사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도 짚어내기 쉽지 않다 한번 더 읽어야겠지만 그 독서의 시간이 내게는 또다른 상징과 이미지 속에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 줄까? 그러겠지만 여간해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폭력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 물음보다는 피에 대한 굶주림과 살인 욕망이라는 인간에게 필요할 때 폭력은 작용하는 것이지 분노와 복수가 폭력에 대한 필요조건임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때 어떤 만행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은 과도한 상상일까? 이 책이 여러모로 많은 사유에의 물음을 던져준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은 어찌보면 살인 등 폭력을 통해 타인에의 잔인성을 실현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은 안전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의미깊지만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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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절망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신뢰’(trust)라는 사회 자본을 연구 주제로 하여 책을 탐독하고 있었는데, <폭력사회>의 저자 볼프강 조프스키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이렇게 단언한다. "인간을 협력하고 단합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의 경험이다"(13). 저자는 사회의 탄생이 ’신체상의 고통’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사회는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의 산물이다"라고 폭로한다. 나아가, 인간이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수립한 사회 질서가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더 센 폭력을 끊임없이 재생샌해내고,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구경꾼’일 때에는 폭력이 주는 쾌감을 즐긴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그려주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가장 절망스러운 사실은 폭력의 쾌감에 끌리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다. 폭력의 구경꾼일 때, 인간은 스스로가 안전 속에 있다는 느낌을 즐긴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은 폭력을 추악하고 끔찍한 죄로 규정하고, 그것을 퇴치하며, 평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는 통념적인 믿음을 뿌리채 흔들어버린다. 저자는 인간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폭력을 더 체계적인 위협으로 만들어온 과정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처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할수록 오히려 더욱 견고한 폭력의 굴레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인간은 도대체 ’평화’라는 개념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인간은 그렇게 고상한 동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이성의 빛이 우리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믿음은 얼마나 오만한 인간의 착각인가. 결국 인간의 지성이 도달하고 있는 결론은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절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자본이 거대해지고, 인간 지성이 발달하고,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글로벌 세상이 되어갈수록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더욱 교묘해지고 잔혹해져도 우리는 속수무책인 채로 반응할 수밖에 없고, 운이 좋다면 폭력의 쾌감을 소비하는 구경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폭력’이라는 변수 하나가 인간 사회의 역동과 문명을 모두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폭력사회>를 통해 꽤 많은 부분을 설명해내고 있다. 폭력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견고하고 광범위하게 사회(삶)에 밀착되어 있음을 느낀다. 사회학적 지식 기반이 미약하여 나는 이 책을 읽고도 본격적인 논의에 참여할 수준이 되지는 못하지만, 옮긴이의 바람처럼 "진영화되고 내용은 고갈되어버린 한국 지식인 사회가 새로운 고민과 담론을 만들어가는 데 조프스키의 문제 제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의 글에서 읽은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다"라는 말이 곱씹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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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시작한 이래 폭력이 멎은 시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크게는 총성이 울려 퍼지면 셀 수 없는 인원이 죽어나간 전쟁이 있을 것이고, 작게는 개개인의 감정에 의한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원인은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 내재된 것이 폭력성이라는 점만은 동일하다. 이토록 역사가 긴 것이 폭력인데, 마치 우리 자신은 고결한 것처럼 폭력에 대해 정확하게 바라보려 하질 않는다. 각종 제도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으로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조금은 나은 축에 속할 것이요, 대부분은 무관심으로 일관함으로써 스스로가 평화로운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듯 굴고 있다. 하지만 무관심이 무관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은 폭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살아 있는 순간 그러할 것이요, 죽어가는 과정이 그러할 것이다. 심지어 죽은 이후에도 폭력과의 연결고리로부터 자연스러울 수가 없는 게 인간이다. 상당히 불편한 시선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때론 영상보다도 강렬한 게 문장이라고 하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인간이 가할 수 있는 폭력과 당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기술은 어떠한 영상보다도 선명하고 또 강력했다. 대부분의 기술이 육체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었다. 가장 포착하기 쉽고 형상화하기 쉬운 것이 바로 육체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니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허나 육체의 폭력은 오로지 육체만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신체에의 상해를 입음으로써 정신과 영혼을 상실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떠한 종류가 되었건 폭행을 당하는 순간 피해자는 인간으로서의 무언가를 잃고야 만다. 역으로 가해자는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상정하지 않았기에 혹독한 폭행을 가할 수 있었다. 많은 사례가 있겠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보여준 대학살을 떠올려보면 가장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상부의 명령을 충성스레 이행하는 입장에서 상대로부터 인격을 읽어내는 것은 오히려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무언가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반복되는 폭행에 익숙해짐에 따른 것일 수도 있겠으나 다분히 의도적으로도 그들은 상대를 인간 아닌 하나의 몸뚱아리로 받아들이고자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희생자에게 반항의 여지가 존재한다면 이는 행운이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성립했다는 말은 권력에의 상이함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피해자의 반항은 가해자의 성남을 부를 뿐이다. 반항을 하면할수록 피해자는 이전보다 더 혹독한 폭력을 감당해야만 한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폭행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불특정 다수를 상정한 체 행해지는 대학살의 경우 가해자는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에 미친 나머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피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피해자로부터 보상받으려는 듯 굴고, 그 공간에 더는 폭력을 가할 존재가 남아 있지 않을 경우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서면서까지 폭력을 행사하려 든다. 폭력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학살 아닌 다른 종류의 폭력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폭력을 제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인류가 이제껏 벌여왔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성립은 그런 점에서 진일보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폭력의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 국가 권력자에게 자신의 힘을 양도하기에 이른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다수로부터 위임받은 힘의 도움으로 개인 차원에서는 구축하기 힘들 평화를 생성해내고는 한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이상적일리는 없다. 때로 국가는 옳지 않은 움직임에 제 힘을 백분 발휘하고, 폭력을 신봉한다. 위정자 개인의 폭력을 제외한 모든 폭력을 불법화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기도 하며,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정당한 움직임마저도 봉쇄하는 경우도 잦다. 국가에 의해 형성된 질서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세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그리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우리 자신의 역사 속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회는 폭력적이다. 차원 높은 문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 폭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세계대전이 발생하기도 전부터 다분히 회의적인 시선을 견지했다. 하지만 질서를 극복하려는 야만주의의 거센 도전을 잠재우는 것은 인류의 몫이다. 아주 쉽다 할 순 없겠지만 이 또한 인류가 해낼 수 있는 영역에 속한 일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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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내용이 참 궁금했다. 어떤 내용일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책장을 넘기면서 하나 하나 폭력의 현상과 그 폭력이 만들어 준 사회 그리고 그 것에 알게 모르게 순응하고 지켜 나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잔혹성 읽으면서 부르르 떨리는 일까지, 인간이 지녀온 폭력의 다양한 형태와 심리 그리고 현상을 너무 리얼하게 설명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과연 폭력은 무엇인가? 인간을 협력하고 단합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인 폭력의 경험이다. - Page13 폭력에 길들여진 세상인지 모른다. 다만 물리적 폭력이 아닌 다른 또 다른 폭력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을지 모르겠다. 서로 규범을 지키고 질서를 지키고자 한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폭력에 대한 경험이 깔려 있을지 모르겠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따라오는 제약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알고 있기에 사람은 집단의 약속을 지키려한다. 이러한 폭력에 대한 경험은 질서를 지키고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은 폭력에 대한 욕구를 숨기지 못하고 역사적으로 언급하기 힘든 일들을 벌여 나가고 있다. 고문에 대한 기억, 학살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잔인함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런 잔인함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숨기지 않으며 전투를 하고 고문을 가하며 상대를 피폐하게 만들어왔다. 폭력은 이렇게 우리의 문화 속에 숨겨져 있으며 그런 문화를 애써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폭력은 문화에 내재되어 있다. 문화에는 철두철미하게 죽음과 폭력이 각인되어 있다. 문화가 세워져 있는 기반은 인간의 피로 물들어 있다. 문화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고 폭력에 의해 지탱된다. - page315 책장을 덮으면서 폭력이 가져다준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도 그런 폭력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휘두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자신이 폭력을 가하는 지도 모르고 폭력을 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사회가 폭력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말에 조금은 놀라운 충격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폭력을 지배욕이나 과시욕 정도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폭력이 가져온 인간 전반의 문화 그리고 그 속의 역사는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끈임 없이 다른 형태로 변형이 되어져 인류의 문화와 같이할 것이기 때문이기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