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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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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11월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신이 그렇게 원하신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신의 뜻이오 십자가는 그대들을 구원하는 상징일지니 붉은 핏빛 십자가를 철회할 수 없는 신성한 계약의 증표로 그대들의 어깨나 가슴에 걸도록 하라"로 촉발된 십자군 전쟁은 그마나 제국의 버팀목 역활을 했던 약간의 다양성 표출에 직격탄을 날리고 하느님의 휴전이 확인될 때 까지 유럽과 중동인근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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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11월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신이 그렇게 원하신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신의 뜻이오 십자가는 그대들을 구원하는 상징일지니 붉은 핏빛 십자가를 철회할 수 없는 신성한 계약의 증표로 그대들의 어깨나 가슴에 걸도록 하라"로 촉발된 십자군 전쟁은 그마나 제국의 버팀목 역활을 했던 약간의 다양성 표출에 직격탄을 날리고 하느님의 휴전이 확인될 때 까지 유럽과 중동인근을 대 혼란의 시대로 몰아가게 된다. 물론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변함 없이 굴러갔지만 이 전쟁이 가져온 댓가 역시 수레바퀴의 동력만큼이나 값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기번은 십자군 전쟁을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평가한다. 그것은 "야만적인 광신의 표출" 이다. 원래 성전(聖戰:holy war)이라는 의미는 평화시대의 군주을 섬기는 자들이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불가피하게 정당한 싸움에 나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파괴의 칼을 뽑은 명분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본 기번은 십자군 전쟁의 본질에 대해서 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종교가 속세의 영역속으로 들어오면서 급기야 속세와 종교의 통상적인 잣대를 단하나 종교의 잣대로 저울질 하면서 벌어진 참흑이었다. 결국 십자군원정의 구성원들은 빚이나 이자, 명예훼손죄, 세속의 처벌 면제등 속죄에 대한 댓가로 십자군 원정에 참여를 독려받게 되고 이러한 모든 속세의 죄들이 성전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면죄부를 받다 보니 결국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명확약관해 지는 것이다. 이는 비잔티움 함락 후 발생했던 마호메트 2세 군대의 약탈행위 보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한 약탈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음을 전쟁으로 인한 약탈은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를 매우 작게 만든다라는 기술로 그 씁쓸한 뒤맛을 느끼게 한다. 그만큼 십자군 전쟁은 광신으로 둘러싸인 일부 지도층의 광기와 더 이상 삶의 존재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한 민중의 분풀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실패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정작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장악했지만 로마시민들 대다수에게 로마 교황청의 이름과 권위는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만큼 현실적인 괴리가 존재하였고 물론 이는 현세적인 괴리만큼이나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평민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그리스도를 거부했듯이 로마인들이 화려하고 거만한 현세적 지배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대리인(교황)을 몰라본 것처럼 말이다.이러한 괴리감은 결국 교황의 선출과정을 바꾸는 계기로 이어진다. 기존에 성직자와 민중의 투표로 추대되던 방식에서 1179년 알렉산데르3세와 1274년 그레고리우스 10세에 이르러 추기경으로 만 구성된 협의체(콘클라베) 탄생하면서 성 베드로의 제자들은 민중과 결별을 선언하게 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 정체성에 대한 확신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번은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마무리 하면서 1430년 포기우스라는 인물이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올라 황폐해진 로마시 전역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회로 자신의 대작을 마무리 한다. 아이네이아스와 로물로스의 건국으로 시작된 로마가 공화정과 제정을 거치면서 해가 지지 않는 세계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정작 지금 포기우스의 눈앞에 서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패허나 다름없는 쇠잔한 정경으로만 다가온 이유를 기번은 티투스의 원형경기장으로 잘알려진 콜로세움의 붕괴 과정을 네가지 이유를 상정하여 설명하고 있다.

 

 1) 시간과 자연에 의한 훼손
 2) 야만족과 그리스도교도들의 적대적 침략

 3) 건물 자재들의 도용과 남용

 4) 로마내부의 분쟁

 

기번은 특히 위의 4가지 요인중 두번째와 네번째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야만족으로 대변되는 알라리크와 가이세리크의 병사들이 승전의 열정에 취하여 무분별한 탐욕과 잔학함을 휘두르긴 했지만 그들이 주 목적은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귀중품이었지 집정관들과 황제들이 남긴 기념비들을 철저히 파괴하는 무익한 행동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눈에는 악마의 조각상이나 제단, 신전들은 모두 증오의 대상이었고 로마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선조들의 우상 숭배 흔적을 없애기 위해 열과 성을 다 바쳤고, 다만 신앙의 논쟁거리에서 살짝 비켜간 공공건물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그만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현격히 살아지면서 세상을 이분법적인 잣대로만 생각한 후대인들의 로마계승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략 4천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과 본문에 맞먹는 주석으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일반 독자들에게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고전으로 인식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나가기에 상당한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여기에 로마제국의 번성기를 다루는 내용도 아닌 쇠망기를 다루다 보니 역사적 인용자료가 방대하다 못해 기번 자신 역시 긴가민가하는 주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다소 산만한 내용들과 중복되는 내용들이 상당부분 차지 하고 있는 것 역시 가독성을 저해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기번이 살았던 팍스 브리타아니아시대나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에서도 로마라는 대제국에서 멀어져서 사유할 수 없는 이유를 기번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로마는 그리스도교라는 암적인 존재(물론 이 표현은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해석한 말이다)가 출현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해가 질 수 없는 대 제국이었다. 도시국가에서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다름 아닌 문화와 종교를 비롯한 각종 사회제도 심지어 인종적인 편견에서 까지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받아들인 다양성과 포용력에 그 근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사회를 잠식하면서 로마는 두 가지의 원동력을 상실한 채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가치관으로 점철되면서 결국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로마는 서양역사와 문화 그리고 제도등에서 지금도 서양 대부분의 국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다만 로마死後 등장한 열강들이 진정한 포스터로마가 되지 못한 것은 로마의 진정한 정신인 다양성의 포용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포스터로마를 자처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국가들에게 로마의 흥망성쇠는 역사속의 지는 노을이 아닌 현실속에서 엄연히 살아 숨쉬고 있는 교훈인 것이다.

l******e 2010.06.03.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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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이 무너진 이유6-십자군 원정
"로마제국이 무너진 이유6-십자군 원정" 내용보기
<로마제국 쇠망사6>에서는 교황의 주도로 전개된 십자군전쟁의 본질과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에 미친 영향으로 시작하여 비잔틴제국, 즉 동로마제국의 내부적인 갈등, 몽고제국의 성립과 유럽원정 그리고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제국의 성쇠에 이어 오스만제국의 성립, 교황에 의하여 주도된 라틴교회와 비잔틴제국의 동방교회의 통합 논의, 오스만제국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멸망, 12세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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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6>에서는 교황의 주도로 전개된 십자군전쟁의 본질과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에 미친 영향으로 시작하여 비잔틴제국, 즉 동로마제국의 내부적인 갈등, 몽고제국의 성립과 유럽원정 그리고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제국의 성쇠에 이어 오스만제국의 성립, 교황에 의하여 주도된 라틴교회와 비잔틴제국의 동방교회의 통합 논의, 오스만제국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멸망, 12세기 이후 로마에서 벌어진 교황의 세속지배와 교황청의 아비뇽시대와 로마로 복귀하게 되는 과정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5세기에 폐허가 된 로마의 유적을 조망하며, 로마유적이 황폐해진 이유를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십자군 원정을 촉발한 사람은 프랑스 아미앵출신 페트루스라는 은자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성묘를 참배하면서 박해를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투르크사람들에 의하여 탄압받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슬픔을 느낀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에게 구원의 길을 물었지만, 동로마황제의 나약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망한 그는 로마로 우르바누스2세 교황을 설득하여 지원을 약속받고, 내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여러 속주를 누비면서 설득에 나섰습니다. 결국 라틴사람과 프랑크사람의 전쟁을 즐기는 속성과 맞물려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속죄약속 그리고 신의 가호에 대한 믿음 등이 무지한 사람들을 홀려 동으로 향하게 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젖과 꿀이 흐른다는 동방에서 부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지휘체계 없이 소아시아로 떠난 이들이 지나는 곳 주민들과 충돌을 빚기 일쑤여서 헝가리나 불가리아 등지에서 공격을 받았고,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서는 투르크군에 의하여 30만이 궤멸을 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툴루즈 백작 레이몽이 이끄는 기병을 주축으로 한 10만 1차 십자군 원정대는 니케아, 안티오크를 거쳐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왕국을 세워 1187년까지 이어가게 됩니다. 1차 십자군의 성공은 투르크 세력을 견제하여 무너져가던 비잔틴제국의 몰락을 잠시 막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1188년 살라딘의 투르크군이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자 제2차, 3차 십자군 원정이 이어졌고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승패가 엇갈리는 가운데 협상을 통하여 전투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노켄티우스3세가 주도한 제4차 십자군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은 가운데 중간에 목표를 시리아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바꾸면서 비잔틴사람들과 라틴사람들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콘스탄티노플을 향하여 진군하게 된 것은 비잔틴제국의 왕위계승과정에서 밀려난 알렉시우스 황태자의 도움 요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필요한 군자금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뒤에는 베네치아의 노림이 숨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결과 비잔틴제국은 와해되고 십자군 원정대가 세운 라틴제국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영토는 분할되어 십자군에 참여한 나라가 차지하였는데 라틴제국이 4분의 1을 차지하고, 나머지의 반을 베네치아가 그리고 나머지는 프랑스와 롬바르디아가 차지한 것입니다. 즉, 4차 십자군 원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차지한 것은 단돌로가 이끄는 베네치아였습니다.


라틴제국이 쫓겨난 비잔틴제국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반란과 불가리아의 침공 등으로 근근히 이어가다가 1261년 제노아와 손을 잡은 비잔틴사람들의 역습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들어선 비잔틴제국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권력투쟁으로 지새우다가 결국은 오스만제국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비잔틴제국이 무너지기 전에 동방교회와 라틴교회의 통합논의가 있었다고 하는 부분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의 약탈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해서입니다.


아마도 오스만제국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보입니다만,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성립과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제국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연대를 오가고 있어 전체를 개괄하는 것이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투르크군대가 비잔틴을 우회하여 발칸제국을 공격한 것으로 보여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비잔티움을 함락한 마호메트2세가 비잔틴제국의 궁전으로 향하면서 읊었다는 페르시아 고유의 우아한 2행 압운시는 기억할 만 합니다. "거미가 황궁에 거미줄을 드리웠고, 올빼미는 아프라시압(옛 사마르칸드)의 탑에 앉아 망루의 노래만 불러대는구나.(522쪽) 인간의 영화가 덧없음을 담은 것입니다.


동로마제국이 멸망했으니 로마제국의 쇠망을 논할 일이 없을 터임에도 기번은 이야기를 되돌려 1100-1500년 사이의 로마의 상황을 다시 늘어놓습니다. 아마도 라틴교회의 교황이 세속의 일에 간여하면서 로마제국의 영화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리아지방과 이탈리아반도의 주도권 다툼을 그려낸 셈인데 그 와중에서도 귀족들을 비롯한 로마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생각, 즉 오만함이 로마제국의 영화를 재현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기번은 1430년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선 포기우스가 로마의 대표적 유적 7곳에 대한 기록을 검토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서고트족이나 반달족이 쳐들어와 파괴한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인간의 건조물이란 진전이 없으면 그만큼 퇴화하기 마련이어서 뒤이어 오는 시대가 고대 유물의 황폐화를 부추겼을 것이고 보았습니다. 기번이 보는 고대 로마유적의 황폐화 원인은 1) 시간과 자연에 의한 훼손, 2) 야만족과 그리스도교도들의 적대적 침략, 3) 건물 자재의 도용과 남용, 4) 로마 내부의 분쟁 등입니다. 고트족은 6일 만에 반달족은 15일 만에 로마를 떠났으니, 여기서 말하는 야만족은 그들이 아니라 로마의 가톨릭교도에게 돌아갈 호칭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로마사람들은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옛 건물에서 얻는 자재를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고대 유물들을 팔아먹기까지 했다는 것이니,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다른 민족에게 뒤집어씌운 셈입니다.


긴 논설을 맺으면서 기번은 로마제국의 쇠하게 된 것은 1. 군사 전제 정치의 무질서, 2. 그리스도교의 생성과 확립, 3. 콘스탄티노플의 건설과 제국의 분열, 4. 게르만과 스키타이 야만족들의 침략과 정착, 5. 이슬람교의 창시, 6. 교황의 세속 통치, 7. 십자군 원정, 8. 사라센과 투르크인의 정복 등이 주요 요소였다고 정리합니다.

y*****2 2016.12.3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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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제국의 멸망을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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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원의 마지막 권(券)이다.복잡하게 전개되는 장에선 아시아의 발흥(터키)와 자체내의 점진적인 쇠약으로 대변할 만한다동로마의 멸망도 또한 서로마의 멸망도 마찬가지이고동일한 루트로 멸망의 길을 갔다고 말하고 싶다역사엔 반복적인것, 변하지 않고 항상 있는것 그리고 또한가지전형적인 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 동로마의 멸망에서도 또한 이런것들이 차례대로 뇌리를 쓰친다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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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원의 마지막 권(券)이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장에선 아시아의 발흥(터키)와 자체내의 점진적인 쇠약으로
대변할 만한다
동로마의 멸망도 또한 서로마의 멸망도 마찬가지이고
동일한 루트로 멸망의 길을 갔다고 말하고 싶다

역사엔 반복적인것, 변하지 않고 항상 있는것 그리고 또한가지
전형적인 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 동로마의 멸망에서도 또한 이런것들이 차례대로 뇌리를 쓰친다
그리 위대한 업적이나 위대한 인물이 없음에도 그래도 오랫동안 장수한 것을 보면
선대의 위업아래 신의 가호가 있었다고 주장할 만도 하다.
그러나 씁씁한 마음은 서로마의 망함에서 보듯이 그리 시원하지가 않다

인간도 생로병사에서 마지막 죽음은 시원해야 한다
뭔가 남기기도 하지만 변함없이 후세의 삶에 영향을 준다든지 길이 길이
남기는 삶처럼, 보편적인 상식처럼 우리의 뇌리속에서 한 자리를 하는 것처럼..

역사책속에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기란 어려움도 있지만 그러나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란 더더욱 어렵지만
여전히 자기의 삶의 하나의 장을 형성케하는 것은 반드시 있다
이게 자기에게 발현되는 것은 먼뒤의 일일수도 있고 지금 당장 박차고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난 전자를 택하고 싶다.
그리고 전자에서 나의 스트락쳐의 한장으로 삼고 싶을 따름이다

천년의 세월동안 지속해온 국가 아니 조직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가 보아야 할것은
다 보았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겐 고통과 즐거움의 연속이었지만 오늘 본 모습은
그리 즐거움만 준것은 아니다
고통이 서서히 squeezing한 모습에서 거대한 덩어리의 진흙이 물에 녹아
망가지듯 하는 모습이다
우리 이런 삶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탄탄한 삶과 괴로움과 어려움에 분연히 대처하고
풍파에도 굳건한 그런 모습일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천년이나 계속되면 그런 모습도 보일터
이런 짧은 수명에선 그런 나태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일 겨를이 없을
것이다
바삐 흐르는 시간속에서 자기의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이 좋을상 싶고
또한 본연의 모습에서 자기의 삶을 영위했어면 하는 나의 바램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작은 좋은지 모르겠다
나의 삶의 반추에서 나의 여생의 계획에 좋은 모티브와
세상사의 움직임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의 근거가 되고 자료가 되었어면 하는 것이다

k*******n 2011.09.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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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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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이 쓴 고전인 로마제국 쇠망사가 6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6권에서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세력에게 함락당하기까지, 동로마 제국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무너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이 다름아닌 내전과 내분이었다는 것을 쇠망사라는 제목에 잘 어울리는 내용과 문체로 전개하고 있습니다.이번 6권은 십자군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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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이 쓴 고전인 로마제국 쇠망사가 6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6권에서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세력에게 함락당하기까지, 동로마 제국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무너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이 다름아닌 내전과 내분이었다는 것을 쇠망사라는 제목에 잘 어울리는 내용과 문체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6권은 십자군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십자군에서 동로마가 어떤 역할을 했고 동시에 동로마 역사에서 십자군이 어떤 의미였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다양하고 많은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18세기에 당시 역사관이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역시 풍부한 주석 및 해석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던 대목이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쭈우욱 재미었었습니다.


#연말리뷰
d****3 2025.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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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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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정계를 떠난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지를 가꾸면서 전원생활을 했다. 정계에는 곁눈질도 하지 않고 10년 동안 자신의 내공을 쌓으며 충전기로 삼았다. 로마의 몰락 과정을 다룬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 또 읽었다. "로마의 쇠퇴는 제국의 거대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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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정계를 떠난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지를 가꾸면서 전원생활을 했다. 정계에는 곁눈질도 하지 않고 10년 동안 자신의 내공을 쌓으며 충전기로 삼았다. 로마의 몰락 과정을 다룬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 또 읽었다.

"로마의 쇠퇴는 제국의 거대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번영이 쇠퇴의 원리를 무르익게 한 것이다. 정복지역이 확대되면서 파멸의 원인도 증가했다.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위적인 기둥이 제거되자마자 이 거대한 건축물은 자체의 무게 때문에 무너졌다.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l 2016.06.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