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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session :: Antonia Susan Byatt 정말로 읽고 싶고 갖고 싶었던 책을 손에 넣으면 왠일인지 바로 그 자리에서 펼쳐 보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편지의 답신을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출 때까지 뜯지 못한다거나, 제일 맛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심정과도 같달까. 책 중에도 종종 끝나가는 것이 아쉬워서 부러 천천히 읽거나 아껴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은 일단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잠도 밥도 다 잊고 손에서 떼어놓질 못한다. 중학교 땐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들의 책이 그랬고, 고등학교 땐 마거릿 미첼 등의 책들이 그랬다. 요즘이야 훨씬 자극적이고 열정적인 책들이 많아 그런 고전들이 밋밋하고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인터넷 같은 놀거리가 없었던 우리 세대(혹은 어머니 세대) 의 여학생들에게 있어 그런 여성 소설들은 그야말로 '로망' 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서 '완소' 하게 되는 책들은 외려 감상문 쓰기가 어려웠다. 마치 좋아하는 상대에게 러브 레터라도 쓰는 마냥,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 못해서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결국 좌절하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수십번도 더 넘게 읽어 이젠 아예 대사까지 외우는 제인 오스틴의 책들 중에 내가 감상문을 쓴 건 중학교 때 숙제로 제출한 것 밖에 없다.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행여 내가 쓴 졸문이 그 책의 무엇 하나라도 손상되게 할까 송구스러워서라도 쓸 수가 없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이야 산더미처럼 많지만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장담하건데, 분명 이 글도 두서없고 마음만 앞서는 '빠순이' 의 유치찬란한 수다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훌륭한 원작의 리뷰 다운 리뷰를 기대하신 분께는 그저 하해와 같은 양해를 바랄뿐이다.) 소녀 시절에는 엘리자베스 베넷과 미스터 다아시의 밀고 당기기가 얼마나 가슴 설레였고, 제멋대로 상상한 히스클리프의 카리스마에 얼마나 밤잠을 못이뤘는지, (그러나 20대가 되어 겉멋이 들며 오스카 와일드 같은 데카당스풍에 빠진 뒤로 히스클리프를 마초라고 비난하며 배신을 때렸더랬다.) 레트 버틀러가 스칼렛을 안고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을 이불 속에 숨어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던 기억은 너무 부끄러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 같으면서도, 지금은 사라진 그때의 순수함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혹,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도 있지 않을까? 글로는 잘 쓸 수 없어도 같은 기억을 공유한 사람과는 몇날 며칠이고 그 책들에 대해 행복한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거기에 이 책, 수전 바이어트의 <소유> 를 더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오스틴과 브론테의 소설을 여전히 애정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과도 사랑에 빠지게 될 게 틀림없을 테니까. 초역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나와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꿈만 같게도 이번에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리스트에 오른 것을 본 순간,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만세 삼창을 했더랬다. (작년부터 출판사마다 고전 세계문학 발간 붐이 일어난 덕에,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로렌스 더렐의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라든가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샬롯 브론테의 <교수>와 <빌레트> 등이 속속 나와주어서 정말이지 가슴 떨리고 기쁘기 짝이 없다. 이젠 앤 레드클리프의 고딕 소설과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 만 나와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같진 않고 더한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 ㅎㅎ 아무튼 열린책들 만세다!) 사실 이 책은 고전이 아닌 현대 소설쪽에 분류 되지만(작가도 아직 생존해 계시다),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이다보니 고전의 향수를 물씬 느끼게 한다. 내용과 주인공도 빅토리아 시대의 고전을 연구하는 두 남녀 학자다. 랜돌프 애쉬라는 천재 시인의 100주기를 맞아 자료를 찾던 미국인 학자 롤랜드 미첼은, 영국 도서관에서 우연히 애쉬의 비밀 연서를 발견하고 그 연서의 대상인 크리스타벨 라모트 라는 여류시인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녀를 연구하는 여성 학자 모드 베일리를 찾아간다.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두 남녀 시인의 접점에 흥미를 느낀 두 사람은 두 시인 사이에 오갔던 연서를 토대로 그들의 밀애의 흔적을 찾아 함께 여행을 떠난다. 머리 좋은 학자지만 인간 관계나 연애에 서툴렀던 롤랜드와 모드는 애쉬와 라모트의 뜨거운 열애의 기록들을 함께 읽어나가며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빠져든다. 자, 여기까지의 내용만으로도 확 삘이 오시는 분은 얼른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점 앞으로 달려가시라. 900페이지에 이르는 두 권의 빵빵한 소설이지만 손발이 오글 거릴 정도로 뜨겁고도 아름다운 시의 연문을 나누는 애쉬와 라모트의 이야기에는 물론, 롤랜드와 모드의 조심스런 사랑에도 마음이 조급해져 책장을 넘기는 손이 빨라질 것이다.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없다해도 이 소설은 감탄을 일으키게 하는 유려한 문체와 로맨틱한 분위기, 거기에 비밀을 풀어나간다는 추리 소설적인 면도 갖추고 있어 (심지어 악당도 등장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도 선사해준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영화화가 되어 있다. <포제션> 이라는 원제 그대로 기네스 팰트로우와 애론 애크하트가 주연을 맡았는데, 원작과 달리 다소 각색이 되거나 몇몇 내용이 빠지기는 했어도 빅토리아 시대와 현대의 영국을 오가는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두 쌍의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다만,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는 쪽보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는 쪽을 더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영화는 현대의 감성에 맞게 조금 더 극적으로 꾸며져 있다보니 거기에 먼저 반하게 되면 원작을 읽을 때 루즈함을 느끼게 될 여지가 있어서다. 일례로, 몇년전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으로 <오만과 편견>이 리메이크 되어 호평을 받으며 원작도 여러 출판사 버전으로 나와 반짝 인기를 끌었는데, 파격적일 정도로 현대적인 각색이 된 영화를 보고 반해 처음 원작을 읽게 된 이들 중에는 영화와 원작이 달라 실망했다는 경우가 적잖았다. (반대로 오래된 팬들은 지나친 각색이라며 반발을 하는 아이러닉한 상황도 있었다.) 최근 번역되어 인기를 끈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 에 이런 장면이 있다. 한 북클럽 회원이 주인공 줄리엣에게 '어째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냐' 고 따지는 부분인데, 그에 대한 주인공의 답변이 일품이다. ' 긴장감이 엄청난 작품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기도 전에 애간장이 녹아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서' 라나. 손뼉을 치고 맞아 맞아 200% 공감을 하고 웃는 새에, 그 책들을 열독했던 소녀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정말 즐거웠다. 나같은 시절을 보낸 독자가 있다면 <소유> 를 소개하며 줄리엣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주고 싶다. 애간장이 녹아 정말 죽을 것만 같은 두근두근한 소설이라고. 그리고 차 한잔과 함께 '그 장면이 그랬지' 하고 소녀처럼 꺄악대며 책수다를 함께 나눠보고 싶다. 영화도 함께 보면 더 좋고!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을 본 이들에게는 한가지 더 반가운 사실이 있다. 영화에서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엘리자베스 베넷을 연기한 그녀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