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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되려는 바보가 끼적이는 時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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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날 찾은 것인지 내가 시를 찾아낸 것인지, ‘까마귀의 껍질’이란 시집이 내게 온 경위가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망각과 함께 한우진 시인도 내 기억의 방엔 없는 분이었습니다. 바람처럼 불어 닥친 시가 작고 동그란 시선 앞에서 아른거립니다. 사랑이라도 시작하려는 걸까요? 이미 사랑에 빠진 詩가 수두룩한데도 또다른 詩가 필연처럼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아무리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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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날 찾은 것인지 내가 시를 찾아낸 것인지, ‘까마귀의 껍질’이란 시집이 내게 온 경위가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망각과 함께 한우진 시인도 내 기억의 방엔 없는 분이었습니다. 바람처럼 불어 닥친 시가 작고 동그란 시선 앞에서 아른거립니다. 사랑이라도 시작하려는 걸까요? 이미 사랑에 빠진 詩가 수두룩한데도 또다른 詩가 필연처럼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운명처럼 따라붙는 詩. 함박눈이 날리는 한낮의 햇살이 그렇게도 따사로웠던 이유입니다. 그래요, 詩란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연인의 눈빛입니다.

 

 

詩를 가슴에 품으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속세의 이성을 과감히 던져둔 채 감성의 뜰에 충만한 홀씨를 퍼뜨려야 하지요. 누구나 넋두리를 늘어놓곤 합니다. 괴롭고 서글픈 감정이 문득 창밖으로 저의 시선을 데려다놓습니다. 빛마저 잃은 백색의 창들을 등진 채 이름 모를 몇 그루의 나무들이 거기 서 있습니다. 그들은 이름 모를 새들을 불러 제 어깨 위에 올리우고 겨울바람의 힘을 빌어 춤을 춥니다. 흥에 겨운 새들이 노래하는군요. 이제 내 차례입니다. 춤추는 나뭇결에 총총히 박힌 검은 새들의 합창을 기록할 시간... 리드미컬한 詩와 사랑을 나누고 그 고운 가슴에 키스를 띄워 보내렵니다.

 

 

새와 구름이 서로 닮아가는 것은 추위 탓만이 아니다

꿈을 씹다가 강가에서 뱉었지만 추억의 흔적은 없고 강은 얼음을 잃었다

이제 강은 사랑을 말하기엔 적소가 아니다(P22, ‘봄강에 채우는 얼음 혹은 온더록스’ 중에서)

 

 

강은 늘 그대로였지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사랑한 강은 수많은 인연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곤 합니다. 가장 멋지고 인자한 모습으로, 마치 올림푸스의 신들이 인간들을 내려다보듯 강은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지혜의 은하수를 흘려보내며 헤어졌거나 만날 수밖에 없도록 운명 지어진 연인을 향해 단풍을 눈처럼 뿌려주면서. 빵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돌 위를 건너는 여인의 발을 간질이고, 그걸 지켜보는 사내의 눈에 들어가 별처럼 반짝이면서. 강은 삼삼오오 바위에 누운 이끼 녀석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던 일도 전부다 기억합니다. 그.런.데. 한우진 시인은 지독한 반어법을 쓰고 있네요. 꿈을 씹다가 강가에서 뱉었지만 추억의 흔적은 없고 강은 얼음을 잃었다... 아니요, 얼음은 꿈꾸는 데 지친 추억을 잠시 잠재웠다 봄이면 그 추억을 다시 방류할 것입니다. 강은 사랑도 휴식이 필요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지요. 강이 잃은 건 얼음이 아니라 ‘현실’일 겁니다. 강은 마땅히 그래야만 했을 거예요. 현실이란 강이 가지기엔 너무 아팠기 때문이지요. 맞아요, 시인은 강은 언제나 사랑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이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보이는 대로 읽는 것과 읽은 대로 보는 것만이 詩의 전부는 아니다, 라는 사실을 이렇듯 역설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요? 

 

 

사랑은 떠나고 술이 늙는다

마른나무들 단추를 푼다

아직도 어떤 여자의 옷은 따뜻해서 눈물이 열린다

무릇 내 청춘에 재라도 남았느냐고

바람이 분다(P46, ‘12월’)

 

 

보고 있으되 보고 싶고 그리워하되 그립고 사랑하되 사랑하고프다. 술을 빚을 때 들인 정성은 사랑의 과정이요 완성된 술은 사랑의 마침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마침표에 몇 개의 마침표를 덧붙여 느낌표를 만들어서 언제까지고 그 사랑에 전율하고 싶습니다. 정지하거나 퇴색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지요. 해서 사랑의 온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인은 그 사랑을 간직하고픈 간절함으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청춘의 사랑은 더하겠지요. 청춘의 사랑은 한때의 찬란했던 추억이란 재를 남기고 바람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허나 그 흔적이라도 기억할 수 있음에, 설령 지금은 다 말라 바스라진 몸뚱이에 누더기를 걸쳤더라도 나를 거쳐 갔던 그 바람소리를 그리워하며 흘릴 수 있는 눈물이 남아있음으로 행복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바람이 반갑습니다. 스쳐가기만 해주어도 감사한 그대이므로.

 

 

가난은 태우면 태울수록 겨울밤을 견디는 숯이 된단다

겨울이 시작되자 큰형은 폐병을 꺼냈다

나무에 걸려 있던 구름이 제법 울긋불긋해지고 새들은 비린내를 풍겼다

축축한 곳에서는 혼도 녹나기 십상이란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나는 불을 지폈다

뻘뻘 항아리 안에 형을 안쳤다(P60, ‘숯’ 중에서)

 

 

가난했기에 참 다행이었습니다. 까맣게 탄 숯이 되어 참말로 다행이었지요. 눈이 수북이 쌓였던 어느 겨울, 창피해 한번 신지도 못한 채 새것이자 헌것이 되어버린 내 털 장화(생활보호대상 아동에게 지급되었던)속엔 쥐 한마리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네 살 난 막내 동생이 죽은 지 7년만이었던가요? 여름엔 달동네였던 우리 집 재래식 화장실은 장마로 똥물이 넘실거렸고 밤이면 가로등 없는 무서운 길을 내려와 쓰레기와 연탄을 버려야 했지요. 가기 싫어 자매는 싸우기도 무지하게 싸웠더랬어요. 덕분에 일찌감치 조숙해진 전 고집만 세고 울기 잘하는 문학소녀가 되었습니다. 것도 남들이 그렇게 부르기에 전 그런가보다 했구요. 혼자였던 엄마는 늘 바쁘셨고 저는 울다 지쳐 잠들고 잠조차 오지 않는 시간엔 꾸준히 뭔가를 끼적이곤 했습니다. 네, 밥도 안쳤어요. 어른 없이 어린 세 자매끼리 살았으니까요. 가난은 태우면 태울수록 겨울밤을 견디는 숯이 된다는 걸 경험했기에 절감합니다. 그.런.데. 그 숯이 지금은 실내공기를 정화해주겠다고 거실 장식장 위에 앉아 웃고 있네요.

 

 

- 바위의 이름을 빌려 어둠을 지배하려는 올빼미가 발톱을 내민다

나는 노랑을 찢고 그 죽음을 들여다본다

 

죽음이란 집요하게 남아 있는 이 지상의 음료

‘빨강에서 초록까지 노랑이 모두 모두 죽는다’

실제로 죽음이란 쉽사리 추방되는 것이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잔을 비워내는 너희들

겨울이 어떻게 여름을 대신하는가를 되물으면서

요컨대 죽음은 뛰어내리는 이미지

(P104, ‘빨강에서 초록까지 노랑이 모두 죽는다’ 중에서)

 

 

각양각색의 제 모습을 드러내는 색깔들이 저는 미웠습니다. 지나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운 건 슬픕니다. 슬픔은 키 재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슬플 뿐이니까요. 찢은 노랑 속에서 죽음을 발견한 시인의 암브로시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란 집요하게 남아 있는 이 지상의 음료, 라고 했어요. 그건 올림푸스 신들의 음료입니다. 죽음의 불멸을 은유하죠. 그 뻔한 아포리즘이 바로 속세입니다. 욕망의 다양한 색주色酒를 들이켜는 우리는 한 계절의 끝에 이어지는 다음 계절의 역정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내곤 금세 눈시울이 젖곤 합니다. 그리고는 절벽에 선 좌절을 딛고 일어선 고통의 삶을 그리고 써냅니다. 거칠게 하강하는 폭포의 그 아름다운 몸부림이 실은 삶의 비애임을, 죽어간 모든 색깔들은 진작에 알았던 모양입니다. 세상을 온통 저희들로 채색했으니까요. 오늘 나는 부활한 빨강과 초록, 그리고 노랑을 보았습니다. 어느 時의 당신들처럼...

 

 

그대여 옷을 갈아입고 가을 내내 흐른 시냇물에 발목을 담갔습니다

그러므로 밀감 냄새나는 개울물, 야윈 별이 떠서 서쪽으로 쓸리고

새벽까지는 제 사춘기 남루를 씻었습니다

비로소 감나무 그림자가 깔리는 그 집 마당엔 달빛이 발자국으로

남을 것입니다 달빛에 채이며 그대를 보채던 창호지그리움은

아예 개울물에 적셨습니다 그대여 이제는 부서질 대로 부서진 다음

어느 풀잎 하나에도 맺히지 않고 물방울로 

그대 시린 손바닥에 이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산은 제 모가지를

끝까지 물들이고 우유빛깔 흉터를 밤에 남길 것입니다(P45, ‘회복/아녜스에게’ 중에서)

 

 

아직도 저는 사춘기입니다. 청춘의 달빛은 결코 색이 바래지 않아요. 사랑의 진행형이 바로 그리움인 걸 알고 감나무에 가 제 그림자를 깊게 드리웠기 때문이지요. 기억하나요? 우리의 밤을 밝혔던 촛불이 설레임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날의 장면을 기억합니다. 개울물에 박힌 징검다리, 지저귀는 새들, 바위에 붙어 팔랑거리던 색색의 낙엽들, 그만큼 흔들리던 풀잎과 나뭇잎, 또 그만큼 가슴 졸이며 춤추던 詩의 악보를. 남길 것은 반드시 남기고야 마는 그 흉터를 우유 빛깔이라 부르는 것도 우리가 서로 마주쳤던 그 찰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산 정상에서 아래 세상을 조감鳥瞰하는 그대는 나를 사랑하는 새의 노래. 시인은 바로 ‘우리 모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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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9 2012.12.14. 신고 공감 7 댓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