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과학이 전쟁에 공헌을 했었는가 아니면 전쟁으로 인해서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져왔는가? 이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다.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과학이 이용되어진 예도 있었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무수한 생명을 구할수도 있었던 예도 있었다. 또한 과학이라는 분야의 최종적인 연구목적이 무었인지를 생각할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인간이 바라는 바도 아니었고, 이는 일부 통치자의 욕심에 의한 전쟁이 대부분이아니었던가. 과학이란 인류의 평화에 그 목표를 두고 연구되어야하며, 세계의 이해관계에 의해 과학이 살상용으로, 파괴용으로 이용되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류의 과학은 개인이나 국가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것이다. 책의 내용이 참으로 이해하기 쉬웠고, 번역도 너무도 매끄러웠던 책이었다. 오랜만에 문장을 편안하게 읽을수이었던 좋은 책이었다. |
| 세계를 지배하는 자 누구인가. 이 책은 대답한다. 상대를 압도하는 '결정적인' 무기를 보유한 자라고. 그리고 그 결정적인 무기 뒤에는 과학이 있다고. 히타이트 인들이 최초로 바퀴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전쟁에 전차를 도입했을 때, 소아시아는 그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아시리아 인들이 철을 제련하는 법을 발견할 때까지였다. 소아시아의 패권이 그리스 인들에게 넘어간 이유는 그들의 전쟁 기구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도시국가였던 그리스는 전투 경험이 풍부했기에 동시대인들은 생각도 못했던 갖가지 무기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중에는 중세까지도 성벽을 깨는 기구로 계속 쓰이는 캐터필더라는 공성기계도 있었다. 중세 기사들의 시대는 철갑을 뚫을 수 있는 장궁의 개발로 종말을 고했고,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포의 개발로 전쟁의 양상은 또 한번 바뀌었다. 대포로 돌을 쏘아보내던, 그래서 성벽을 부수던 전법은 다시 성벽에 포탄을 쏘는, 그래서 성벽을 폭파시키는 전법으로 바뀌었다. 노를 저어서 움직이던 갤리선의 시대는 대양을 건널 수 있는 범선의 개발로 끝났다. 동서양의 전쟁 능력이 역전되는 시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제 전쟁 무기를 개발하는 사업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그만큼 속도도 빨라진다. 결국 대량살상무기 개발 경쟁이 촉발되고 그 결과는 핵 무기였다. 재미있는 것은 전쟁 무기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들의 속내다. 근대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자신의 순수과학 탐구와 전쟁무기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는 인간적인 고뇌도 불필요했다. 천문학자로 이름 높은 갈릴레이가 학문적 연구를 위한 비용을 조달한 방법이 그런 사례를 적절하게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을 수입한 갈릴레이는 그 망원경으로 외적의 침입을 몇 시간이나 먼저 알 수 있다며 봉건영주에게 망원경을 팔아먹는다. 그리고 밤에는 그 망원경을 하늘로 돌려 천체 관측에 몰두한 것이다. 하지만 대령살상무기 개발의 시대로 접어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또는 "핵무기가 나치의 손에 들어가면 안되니까"라는 변명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핑계일 뿐이었다. 나라가 절박한 위험에 있지 않더라도, 이미 나치의 패망이 확실시될 때에도 그들은 전쟁무기 개발을 계속했다. 그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노력했을 뿐이다. 일본의 731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는 "국가"를 내세워서 잔인한 생체실험을 강행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때는 그 자신을 위해서 연구 내용을 미국에 팔아먹었다. 과학은 스스로를 위해서 전쟁에 자진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생 관계의 결과는 무엇인가.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이 말로 암울한 결론을 낸다. "제3차 대전에서 사람들이 어떤 무기로 싸우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4차대전에서 사용될 무기는 확실히 알고 있다. 바로 돌멩이와 몽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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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이 책은 전쟁이라는 극히 폭력적인, 그러면서도 비인간적인 행위가 순수과학자들과 어떻게 연계되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대 전장에서 가공할 전투력을 보여줬던 전차(戰車)부터 현대전에서 가공할 파괴력을 보여줬던 핵무기까지 수천년간 인간이 사용해온 무기들은 모두 다 그 시대 과학자들의 발명품이었고, 순수과학을 주도해야 했던 과학자들은 그들의 지식을 인명 살상과 문명 파괴에 사용해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주저없이 말한다. "결정적 무기의 추구가 과학을 발전시켰다." 고 말이다. 실제 저자는 각 시대마다 전장에서 선보였던 획기적인 군사무기들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다고 그가 주장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전쟁에서의 기술결정론은 아니다. 다만, 그는 어느 시기에나 선진적인 군사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이 있었음을 밝히고 그러한 군사문화는 곧 주변으로 확산 · 전파되면서 또 다른 군사문화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전쟁에 얼만큼 동조했는지를 말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마사다의 열심당원을 공격하는 로마군에 대해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앞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할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당시 마사다 요새는 난공불락이라고 불렸다. 사방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지대 평원에 자리잡은 마사다는 고대 중동의 축성법이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만큼 완벽을 자랑하는 요새였기 때문이다. 마사다의 수조와 군량 저장소는 적군과의 장기전을 가능케 했고, 두꺼운 돌벽을 6m 높이로 쌓아서 만든 성벽은 적의 침입을 막아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성벽 곳곳에는 망루가 설치되어 있어 수 km 밖의 적군의 움직임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 농성을 하던 960명의 열심당원은 이제 곧 마사다 요새로 쳐들어올 로마 제10군단 병력 5,000여명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흔히 벌어졌던 중동에서의 공성전을 상기하며 전의를 불태웠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군은 전혀 요새로 진격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로마군에 배속된 수학자들은 로마군 사령관 플라비우스 실바 장군에게 절벽의 한쪽 면에다 마사다의 1차 방어벽에 곧장 닿을 수 있는 높이 30m, 길이 80m의 흙으로 만들 경사로에 대해 보고를 했다. 그리고 경사로를 만드는데 정확히 얼만큼의 흙이 필요한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설계도를 따라 포로로 잡힌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동원되어 경사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백명의 로마 공병들은 거대한 크기의 공성용 기계인 충차(衝車)를 조립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발리스타(ballista)라고 불리는 거대한 석궁 모양의 원거리 공격기계를 조립하였다. 그 옆에서는 발리스타로 발사하기 좋도록 큰 바위들을 동그랗게 깎는 로마의 장인들도 보였으며 그렇게 6개월동안 로마군은 기묘한 전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차근차근 진행된 전투 결과, 마사다 요새는 함락되었고 로마군은 거의 전력 손실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는 로마군의 전형적인 전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수백년간 로마는 주변 민족들을 압도하면서 대제국을 이룩했었다.
그렇게 저자는 전차와 합성궁, 강력한 철제무기,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의 열정, 영국의 장궁과 석궁, 대포와 대포를 방어하기 위해 진흙으로 보강한 성벽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무기와 그 무기를 방어하기 위한 또 다른 무기, 그보다 앞서가기 위해 더욱더 발전된 무기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관되었다. 즉, "과학자는 언제나 자신의 지식을 국가를 위해 사용했고 그것은 전쟁에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순수과학 분야의 발전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군사 외적인 부분에서도 발전을 이뤘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기 위해 동원된 각종 과학기술이 전혀 다른 효과를 얻어냈던 것을 들 수 있다. 전국을 병참기지화하는 과정에서 운하가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으며, 전투에서 활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는 이후 지질학, 천문학, 수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전함을 만들기 위해 닥치는데로 나무를 베다보니 조림학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쟁을 위해서 동원된 과학기술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문명의 발달이라는 또 다른 부수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는 순수과학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가 전쟁에 이용될 줄 모르고 계속적으로 연구를 해왔던 것과 함께 동전의 양면을 장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인슈타인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전쟁에 대해 저자는 이처럼 동전의 양면과 같은 부분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있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동양의 전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어 그 점이 아쉽기는 했다. 동 · 서양이 분명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문명 교류를 이뤄왔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시각은 이슬람 문명 이동으로는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언급된 이슬람과 중국은 종교와 이념 때문에 과학문화가 뒤쳐진 문명으로 소개될 뿐이었다. 어쨌든, 서양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과학과 전쟁의 야합이라는 측면만큼은 훌륭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로 가게 되면서 저자는 보다 적나라하게 과학과 전쟁의 야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물론 책 전반부에서 견지했던 입장은 그대로 고수한채 말이다. 자신의 과학기술이 전쟁에 이용될 줄 모르고 연구에 전념한 과학자, 전쟁을 통해 발달한 과학이 일상 생활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 2가지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국가주의 속에서 정치력과 결탁한 과학자들의 양심과 애국심이라는 부분이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도 과학을 경멸하면서 그리스를 전쟁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동원했지만 근대에 이르러 그러한 면은 더욱더 부각되기에 이른다. 현대산업의 발달과 제1 ·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과학자는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남김없이 보여주기에 이른다.
그리고 저자는 거침없이 말한다. 과학은 정치의 시녀가 되었다고 말이다. 독일과 일본이 저지른 충격적인 생체실험과 그로부터 얻은 정보들이 동원된 끔찍한 전쟁, 그리고 전후 엄청난 양의 정보를 놓치기 아까운 미국의 야욕이 적나라하게 책에 소개되었다. 거기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이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자국 내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는 엄청난 내용까지 소개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정말 주인장도 몰랐던 부분인데 읽으면서 섬뜩할 정도였다. 과학이라는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본 흔치 않는 책이기 때문에 더욱더 전쟁과 과학의 치부가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고대 동양에서도 이와 같은 식의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 전쟁사 관련 서적을 봐도 서양 위주의 서술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헌이나 고고자료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들은 분명 특정 시기, 특정 국가에 대한 내용이지만 얼마든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적용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분명 그 당시 인류가 생각하고 있던 가장 끔찍한 폭력행위이자 최고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봤을때 이 책은 주인장에게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떠안겨준 책이기도 하다.
2004년도 대학민국학술원 기초학문분야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책이라고 한다. 괜히 선정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
| 전쟁과 과학. 이것들만큼 고대와 현대가 극단적으로, 그것들이 예전의 것과 같은 것인지 의아심이 들 정도로 달라진 것은 없을 것이다. 전쟁은 예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있고, 과학은 혼란스러울 만큼 급격한 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일관되게 전망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전쟁과 과학의 '야합'관계이다. 컴퓨터, 레이저, 트랜지스터 등, 이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과학적 발전의 성과물들이 바로 전쟁의 요구 - 더 빨리 더 많이 상대방을 죽이는 - 에 답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침반과 항해술이 신대륙으로의 항해를 위한 - 금을 빼앗기 위해 어마어마한 원주민을 죽이기 위한 - 결과물이라면 말이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낸 주장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전쟁의 필요성과 밀접하다' 처럼 온건하다. 그러내 내 추측으로는, 행간에 숨어있는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 과학은 전쟁의 시녀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옳다고 해서 과학에게 폭력의 혐의를 씌우는 것은 단순한 발생적 오류이지만, 과학의 중립성을 역설하고, 윤리적 책임에 대한 면책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꽤 껄끄러운 견해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사례를 제시한다. 사실 책 전체가 이러한 예시이기도 하다. 그러한 예시들은 꽤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들이다. 사실 전쟁사나 과학사에 대해 관심이 없더라도, 이 책에 가득차 있는 재구성된 이야기들과 역사의 뒷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매력있는 이야기 거리이다. 가령 매킨토시의 로고 '깨문 사과' 의 유래같은 얘깃거리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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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좀 바꿔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폭력적인 존재인가...라구요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위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밖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Science goes to War,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석기용 옮김, 이마고, 2003 2003년에 사서 읽고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과학기술과 전쟁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했는지에만 관심이 갔는데 다시 읽으면서 조금 다른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고금의 진리...세상은 돈이 지배한다는 것이죠 저자는 현대과학은 결국 보다 효과적인 살상기술을 개발하려는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속성이라기보다는 다른 이유에서 파생된 결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란 기술의 연구와 개발에는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과거로부터 그러한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할 수 있는 존재는 국가였고 결국 과학은 국가의 이익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현대에 와서는 예산지원 뿐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의무, 애국심과 같은 것들이 또 다른 족쇄가 되었죠 이런 속성은 의학 연구에 있어서도 잘 드러납니다 세계적으로 거대한 제약회사들에서 연구비를 크게 쏟아붓는 분야가 무엇일까요 암이나 AIDS는 물론이지만 그 못지 않게 비만 치료제 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합니다 비만이란 건강한 식습관과 적당한 운동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말이죠 당연히 비만 치료제 시장이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없이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약값을 지불할 소비자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아프리카 같은 빈국들에서 막대한 인명을 앗아가는 전염병들에는 연구예산이 별로 배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제약회사의 의약품연구원들이 특별히 비윤리적이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연구의 우선순위는 예산을 배정하는 상부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그 상부의 결정원리에는 자본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죠 군사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다 많은 예산, 풍부한 지원을 제공받는다면 그 상대가 관심있어하는 연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책의 마지막 장은 제목에서 과학이 정치의 시녀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보다는 자본의 시녀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당히 암울한 글이 되어 버렸군요 오늘 뉴스에는 이란의 로켓 발사 소식과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같은 과학기술의 대조적인 두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이란의 목적이 순수하게 우주항공기술에만 있다고 믿기도 힘들지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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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전쟁을 왜 할까? .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명언을 남긴 영국의 사회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은 애초 싸움에 대한 본성을 타고 난다고 생각했다. 그 본성을 좀더 해부하면 경쟁과 불신, 명예가 있는데, 인간의 본성에는 경쟁심이 있기 때문에 서로 좋은 먹이를 구하려고 싸움을 하게 되고, 또 인간의 본성 가운데는 불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싸움을 하게 되며, 명예를 지키려는 본성 때문에 자신에 대한 좋은 평을 듣기 위해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간이 살아왔던 약 3420여 년의 세월 중에서 전쟁이 전혀 없었던 기간은 단 268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왕 시작한 전쟁, 이기기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지사. 전쟁과 과학은 아주 오래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채로운 인간 역사의 흐름에서 이런 어두운 일면이 인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한편 인류의 발전에도 상당히 큰 기여를 해왔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로니컬하다. 그것은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과학이었고, 그런 과학의 발전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상대방을 죽이는 더 좋은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관계였다.” “가장 좋은 무기를 가진 자가 이긴다.”- 과학과 연결됨.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고, 결국에는 지구를 파괴의 위험에 처하게 만든, 인간만의 성과물인 과학의 탄생과 성장에 주로 기여했던 것은, 인간만의 성과물인 과학의 탄생과 성장에 주로 기여했던 것은 바로 좀더 뛰어난 무기를 갖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었다. 이처럼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는 수 천년을 이어온 전쟁과 과학의 공생관계를 파헤치면서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이 군사기술개발에 연루될 수 밖에 없었던 흑막을 폭로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은 바로 이러한 전쟁과 과학의 야합이 낳은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과학이 단지 일방적으로 전쟁에 봉사해왔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저자의 지적. 즉 과학은 전쟁으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으며 과학자들 역시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이용하기도 했다는 사실. 저자 어니스트 볼크먼은 풍부한 역사적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을 겸비한 군사 전문가. 그는 고대 문명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전쟁에서의 과학자의 역할, 지배자의 과학정책, 전쟁에 사용된 무기 등이 전쟁의 승패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해낸다. 따라서 전쟁의 본질, 이론 및 전략의 기본 등을 철학, 정치학, 논리학 등의 측면에서 다룬 군사학의 고전 『전쟁론』을 보완해주는 군사과학서. 또한 첨단무기나 무기의 역사, 전쟁의 역사 등 어느 하나에만 초점을 둔 기조의 여러 책과는 달리 전쟁사와 과학사 양쪽 모두를 같은 비중으로 다뤄 전쟁에 대한 과학의 정확한 입지와 과학에 대한 전쟁의 관계를 명징하게 부각시켜주고 있다. 게다가 자칫 무겁고 딱딱해질 수 있는 전쟁과 과학이라는 주제를 저자는 치열한 전투 장면과 그 전투에서 극적으로 등장하는 신무기의 위용, 양심과 조국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학자의 고뇌, 과학의 뒷받침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필요 이상의 발전은 허용하지 않는 위정자의 비정함 등을 특유의 저널리스트적인 감각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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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전쟁을 왜 할까? .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명언을 남긴 영국의 사회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은 애초 싸움에 대한 본성을 타고 난다고 생각했다. 그 본성을 좀더 해부하면 경쟁과 불신, 명예가 있는데, 인간의 본성에는 경쟁심이 있기 때문에 서로 좋은 먹이를 구하려고 싸움을 하게 되고, 또 인간의 본성 가운데는 불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싸움을 하게 되며, 명예를 지키려는 본성 때문에 자신에 대한 좋은 평을 듣기 위해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간이 살아왔던 약 3420여 년의 세월 중에서 전쟁이 전혀 없었던 기간은 단 268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왕 시작한 전쟁, 이기기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지사. 야합의 역사라지만 정말 야합의 역사일까? 오히려 공생의 역사다. 전쟁과 과학은 아주 오래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채로운 인간 역사의 흐름에서 이런 어두운 일면이 인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한편 인류의 발전에도 상당히 큰 기여를 해왔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로니컬하다. 그것은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과학이었고, 그런 과학의 발전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상대방을 죽이는 더 좋은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관계였다.” “가장 좋은 무기를 가진 자가 이긴다.”- 과학과 연결됨.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고, 결국에는 지구를 파괴의 위험에 처하게 만든, 인간만의 성과물인 과학의 탄생과 성장에 주로 기여했던 것은, 인간만의 성과물인 과학의 탄생과 성장에 주로 기여했던 것은 바로 좀더 뛰어난 무기를 갖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었다. 이처럼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는 수 천년을 이어온 전쟁과 과학의 공생관계를 파헤치면서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이 군사기술개발에 연루될 수 밖에 없었던 흑막을 폭로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은 바로 이러한 전쟁과 과학의 야합이 낳은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과학이 단지 일방적으로 전쟁에 봉사해왔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저자의 지적. 즉 과학은 전쟁으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으며 과학자들 역시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이용하기도 했다는 사실. 저자 어니스트 볼크먼은 풍부한 역사적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을 겸비한 군사 전문가. 그는 고대 문명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전쟁에서의 과학자의 역할, 지배자의 과학정책, 전쟁에 사용된 무기 등이 전쟁의 승패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해낸다. 따라서 전쟁의 본질, 이론 및 전략의 기본 등을 철학, 정치학, 논리학 등의 측면에서 다룬 군사학의 고전 『전쟁론』을 보완해주는 군사과학서. 또한 첨단무기나 무기의 역사, 전쟁의 역사 등 어느 하나에만 초점을 둔 기조의 여러 책과는 달리 전쟁사와 과학사 양쪽 모두를 같은 비중으로 다뤄 전쟁에 대한 과학의 정확한 입지와 과학에 대한 전쟁의 관계를 명징하게 부각시켜주고 있다. 게다가 자칫 무겁고 딱딱해질 수 있는 전쟁과 과학이라는 주제를 저자는 치열한 전투 장면과 그 전투에서 극적으로 등장하는 신무기의 위용, 양심과 조국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학자의 고뇌, 과학의 뒷받침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필요 이상의 발전은 허용하지 않는 위정자의 비정함 등을 특유의 저널리스트적인 감각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만든다. |
|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이기(利器), 컴퓨터는 결코 평화스러운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탄생한 게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전자식 진공관 컴퓨터 에니악(ENIAC)은 펜실베니아 대학의 수학자들이 대공포를 효과적으로 발사하려는 육군을 돕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고, 뒤를 이은 마크Ⅰ도 함포 사격의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해낸 산물이다. 꼭 100년 전인 1903년 12월 17일, 시험 비행이 성공한 직후 라이트 형제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미국 전쟁성이었다. 공중에 12초간 떠 있었던 최초의 비행 이후, 독일에서 2만 1천 피트 상공을 나르며 수백 km의 항속 거리를 지닌 '고타 폭격기'를 개발해낸 것은 불과 13년 뒤였다. 라이트 형제가 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도 노벨상 문턱에도 가지 못한 건 그들의 발명품이 초창기에 철두철미 살상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란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캔음료의 기원은 나폴레옹이 효율적인 전쟁수행을 하기 위해 군사공학 분야에 현상금을 걸었던 사실로부터 비롯한다. 한 샴페인 병 제조업자가 고안한 병조림 덕택에 나폴레옹 군대는 전례없는 기동력을 발휘했으며, 소재가 유리병에서 주석깡통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은 어쩌면 인류 절멸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을지 모를 일이다. 시침 뚝 따고 조신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이 물건들의 출처를 따져보면 나의 이 의심이 그다지 뜬금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터이다. 또한, 우리가 목격한 최근의 두 차례 전쟁에서도 똑똑히 지켜보았다시피, 인간이 인간을 살리는데 쓰이는 과학에 비해 인간이 인간을 제거하는데 사용되는 과학의 수준이 몇 차원쯤 높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수많은 박애주의자와 평화주의자들이 애통해 할 일이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마땅히 분노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어니스트 볼크먼의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는 과학의 급격한 발전 자체가 전쟁 수행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둘은 상호 공생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과학은 인류의 생존보다는 파멸에 더 봉사해온 원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이 우리에게 준 축복도 상당하다. 뭐니뭐니해도 의학의 발전, 그리고 일상생활용품의 혁명적 변화다. 그러나 볼크먼에게 이런 축복들은 과학이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실험 도중 던져준 '개평'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위험천만한 곳에 쓰일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 임무를 거부하지 않은 과학자들에게 냉소를 보낸다. 《현대 산업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은 양대 전란에서 과학이 보여준 활약들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열대지역에 원정 나간 부대원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모기 살충제를 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된 에어로졸 캔(aerosol can), 일본이 말레이 반도를 점령하는 바람에 공급이 줄어들게 된 천연고무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합성고무, 어떤 과학자가 레이더에 사용된 공동 마그네트론 곁을 지나가다가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이 녹아 있는 것을 보고 우연히 발명하게 된 전자레인지, 낙하산용 천으로 사용되던 비단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나일론, 교전중인 부대에 가벼우면서도 내용물이 썩지 않게끔 처리된 전투식량을 배급하기 위해 개발된 냉동건조식품, 포대 관측병과 포병 중대 사이의 교신을 좀더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개발된 전화기술, ...... 사람을 죽이는 기술에 전적으로 헌신한 과학과 기술의 이런 목록들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일에 관여한 수천 명의 과학자들 중에 마음이 정말로 불편했던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과학을 파괴적인 목적에 사용한 것에 항의하는 정부 탄원은 한 건도 없었고, 거의 3000만 명에 이르는 인간의 죽음을 초래하게 될 전쟁행위에 과학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우려 깊은 과학자들의 조직도 하나도 없었다.》(본문 345 -346쪽) 볼크먼에 따르면 자신의 업적이 그런 목적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 저항한 과학자는 아인슈타인과 무선전신 발명가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정도였을 뿐이다. 외려 독일이나 일본의 인간생체실험에서 보듯이 '실험실용 흰색 가운을 입고 수천 명의 포로들을 살해한 사람들은 괴물도 아니었고 가학주의자도 아니었'(본문 438쪽)던 과학자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과학의 선용(善用)이라 할 의학마저도 이러한 잔인한 동족 살해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이 분명 전쟁사를 다루고 있고, 인간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는데도 그리 섬뜩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나중에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는데 전쟁사와 정치사, 문화사, 과학사는 얼핏 서로 다른 부분을 다룬 것 같지만 뿌리는 결국 하나이며 어느 것부터 읽든지 그 차이는 별반 없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을 절멸시킨 역사와 사람을 풍요롭게 만든 역사가 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
| 저자와 다른 독자들의 의견에 동조한다. 또한 과학으로 인한 폐해로 고통받지만 그 혜택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를 이 책으로 인해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등의 상황을 돌아보면 이러한 생각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지고, '어휴, 니들은 이제 그런 걱정을 할 수준에 이르렀냐'하는 부러움 섞인 한숨이 나오니 안타깝고 자존심이 상하기까지하다. 과학은 전쟁의 시녀고, 전쟁의 필요에 의해 더 많이 빨리, 확실하게 살인하기 위한 동기로 발전했다는 저자의 의견에 80% 찬성하면서도 아이들이 과학을 친숙하게 여기고 좋아할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더불어 이 책과 인문학자들의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그들이 만들 미래를 좀더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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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공공연한 비밀인 과학과 군사기술의 야합의 역사를 파헤치고 있는 이 책은 클라우제비츠의《전쟁론》을 훌륭히 보완하는 연구서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현대 과학의 기원이 고대 문명을 물적 정신적으로 주도한 주술사, 마법사, 기계제작자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본다. 고대인들의 주술이나 마술, 기계들은 근본적으로 자연과학을 기초로 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문명을 건설하고 다른 문명을 정복하거나 자신의 문명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력을 기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 뛰어난 수많은 과학자들 역시 전쟁과 불가분한 관계를 유지하며 과학을 발달시켜왔다고 지적한다. 특히 군인들이 과학자와 과학의 성과를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과학자들과 과학이 전쟁을 필요로 하고 이용하기도 했다는 발견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비단 군사기술개발에 종사하는 현대 과학과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낳을 수 있을 예기치 못한 결과 역시 경계를 늦추지 않게 만든다. 물론 군사기술개발이 비군사적인 부분에서 인간의 편의를 가져온 경우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런 편리는 저주의 몫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과학을 논쟁적으로 다룬 책들은 대부분 단순하고 익숙하며 낡고 진부한 '문제의식 없는 논쟁'만 반복하는 지루딱딱한, 과학적 미사여구만 현란한, 그리고 교육·선전용 과학서적에 머물고 있다. 특히 과학의 치부를 다룰 때면 기껏해야 과학의 위상을 보지하기 위한 미온적인 비판이나, 무조건적인 폄하나 숭배, 혹은 과학기술의 무용론 따위를 마구잡이로 주장하는 유아론적인 태도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에 비해 기존의 과학서적들의 이런 단점들을 극복하고 전쟁에 야합하는 과학의 입지와 과학에 대한 전쟁의 밀애 관계를 명징하게 부각시킨 이 책의 노력은 독보적이다. 특히 이 책은 아직도 공전(空轉)만 하고 있는 '과학의 인간성은 진정 얼마나 있는가?'라는 필연적인 질문을 강력히 상기킨다. 그래서 이 책은, '무한경쟁시대에 과학기술만이 살 길이다!', '기초과학육성!'이라는 오! 이토록 너덜거리는 구호만 만연하고, 진정 과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과학이 무슨 결과를 초래할 지 모르는 우리 '과학맹'들로서는, 거머리처럼 우리의 뒷덜미에 들어붙어 호곡성을 질러대는 전쟁의 망령에 시달리면서도, 오로지! 오로지! '힘 없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과학의 주술'에라도 목을 매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로서는, 비록 고통스럽고 괴롭더라도, 그러나 새로운 인식과 사유의 기쁨을 누리면서 이 책을 일독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힘을 기르고 국부를 창출하는 데 일등공신으로서 과학의 씁쓸한 미소 뒤에서, '어쩔 수 없이, 혹은 기꺼이 전쟁에 봉사해서라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싶다'는 과학 및 과학자들의 영원하고 가증스런 욕망이 폭로되는 모습을 몰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현대 '과학과 과학자들의 권력의지'를 일말이라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볼크만이 이러한 과학과 전쟁의 야합에 붙이는 '저주'라는 수사는 결코 지나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저주'는 얼마전에 이라크를 작살내버렸다! 비단 그 뿐이랴! 그럼에도 우리에게 진정 과학의 발달이 중요하고 그것만이 살 길이라면, 그래서, 과학과 과학자들의 앎의 의지 자체가 저주스럽기보다는, 과학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의 오판, 오용, 무지, 탐욕, 그리고 '과학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한 오해'야말로 진정 저주스럽다면, 이 책은 현대 과학자들,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승리나 이익을 추구하는 군지휘관 및 전략가들, 기업가들,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는 청소년이나 대학생, 과학계 일선에서 연구활동에 종사는 현역 과학자들, 그리고 과학정책을 입안/집행하는 공무원들 및 정치가들이 한번은 읽어야 할, 만일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다면, 제발 이런 질문을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해 보기를 촉구하는 '제목'에만이라도 관심을 보여야 할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과학은 일찌기부터 죽음을 부르는 과학이었으며, 그런 과학의 발달이야말로 지금도 끊이지 않는 전쟁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오늘날 매우 세련된 야만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는 물론 그보다 훨씬 더 세련된 집단이었던 고대 그리스인들마저도 바로 그런 과학의 저주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