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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종과 영조 시대의 치세를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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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종과 영조의 시대를 다룬 15권의 내용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당파를 바꿔가면서 정책을 조율하던 숙종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미 숙종 치하에서 노론 가문이었던 왕후 민씨가 폐서인되면서, 남인의 지지를 받던 장희빈이 한때 왕후로 올랐던 것도 이러한 정국의 상황에서 초래되었던 사건이었다. 끝내 남인이 축출되면서 장희빈이 폐서인으로 사사되고 왕후 민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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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종과 영조의 시대를 다룬 15권의 내용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당파를 바꿔가면서 정책을 조율하던 숙종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미 숙종 치하에서 노론 가문이었던 왕후 민씨가 폐서인되면서, 남인의 지지를 받던 장희빈이 한때 왕후로 올랐던 것도 이러한 정국의 상황에서 초래되었던 사건이었다. 끝내 남인이 축출되면서 장희빈이 폐서인으로 사사되고 왕후 민씨가 복위되었지만, 당시 세자가 장희빈의 소생이라는 것이 이후 정국의 첨예한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3살에 책봉되어 30여년을 살벌한 정국의 상황을 세자의 위치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당시 노론이 장악했던 조정의 상황도 경종에게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위에 오른 경종은 이후에도 아우인 연잉군(영조)에게 대리청정을 요구하는 노론의 압력을 직면했던 것이다.


경종의 재위 시기는 표면적으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라는 성격을 지니지만, 결국 후계자를 연잉군(영조)로 만들기 위한 노론들의 강압적인 압력이 지속되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론의 역모를 고발하는 이른바 ‘목호룡의 고변’으로 당시 정국의 주축이었던 노론 4대신이 사약을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리고 재위 4년 만에 경종이 세상을 뜨고, 이복 동생이었던 영조가 즉위하게 되었다. 소론 정권 하에서 노론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영조는 역모로 몰려 죽은 노론 4대신의 신원을 해결하는 것이 선결해야할 과제로 남았다. 결국 노론의 의도가 관철되었으며, 형식적으로 영조는 당쟁을 지양하면서 탕평을 추구한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영조의 탕평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저자의 지적처럼  ‘껍데기만 남은 탕평’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영조는 52년 동안 재위에 있었으며, 그의 괴팍한 성격으로 세자인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도세지의 비였던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을 통해, 당시의 상황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경종과 영조 시대에 왕권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었던 일련의 사건을 두고, ‘권력은 부자나 형제 사이에도 나눌 수 없다’는 비정한 격언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비극을 안고서 세손의 자리에서 인고를 겪었던 정조의 즉위 이후, 규장각이나 왕실 호위부대를 통해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의 정책이 이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 권에서 자세히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24.05.08.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왕조실록 -- 역사에 관심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
"조선왕조실록 -- 역사에 관심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 내용보기
역사를  지겨워 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학생들에게 읽히는 것도 좋은 생각으로 보인다 청령포를 갔다와서 인지 단종실록을 먼저 손에 들었다. 결국 죽음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어린 단종에 대한 얘기를 읽으며 또 한번 왕이라는 자리를 생각해 본다. 나는 절대 그 자리에 오를 수 없기에 상상만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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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지겨워 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학생들에게 읽히는 것도 좋은 생각으로 보인다

청령포를 갔다와서 인지

단종실록을 먼저 손에 들었다.

결국 죽음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어린 단종에 대한 얘기를 읽으며

또 한번

왕이라는 자리를 생각해 본다.

나는 절대 그 자리에 오를 수 없기에

상상만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그러니 어쩌리..비판밖에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끔

드라마에서 역사를 외곡되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만화책을 미리 읽게 하고

드라마든 역사책이든 접하게 한다면

훨씬 재미있어 할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a****1 2010.09.0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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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내용보기
15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경종, 조태구, 이이명과 김창집, 김일경, 목호룡        이인좌, 오명항, 이광좌, 홍치중, 정호와 민진원 오른쪽 : 영조, 인원황후, 김재로와 조현명, 정순왕후(영조의 계비),        김상로, 영빈이씨(세자의 생모로 세자의 처형을 청함)            홍봉한, 혜경궁 홍씨, 세손(정조), 사도세자   15권은 경종·영조실록이다. 경종에 대한 나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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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경종, 조태구, 이이명과 김창집, 김일경, 목호룡

       이인좌, 오명항, 이광좌, 홍치중, 정호와 민진원

오른쪽 : 영조, 인원황후, 김재로와 조현명, 정순왕후(영조의 계비),

       김상로, 영빈이씨(세자의 생모로 세자의 처형을 청함)    

       홍봉한, 혜경궁 홍씨, 세손(정조), 사도세자

 

15권은 경종·영조실록이다. 경종에 대한 나의 선입감은 허약해서 일찍 죽었으므로 이렇다할 자취를 남기지 못한 왕, 영조는 가장 오래 살면서 치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노망으로 인해 아들을 죽인 군주라는 정도였다. 그런 두 임금의 실록을 완독한 뒤에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나의 선입감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경종은 그저 허약하기만 한 임금이 아니라, 나름으로 깊은 생각을 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한 임금이었다. 언뜻 보면 집권 노론 대신들의 눈치를 보는 듯 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펼쳤으며, 왕세자인 연잉군(영조)도 적절하게 통제를 했다. 그가 만약 병약하지 않아서 보다 오래 살았다면 선왕인 숙종 못지않게 정치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영조는 노망으로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이을 인물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서 아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그가 생각한 후계자가 바로 정조였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고 세손인 정조를 왕으로 삼은 것은,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하고 세종을 세자로 삼은 것과 유사한 행위가 아니었을까? 태종이 성공했듯이, 영조 역시 성공했다. 정조는 세종 버금가는 명군으로 꼽히고 있지 않은가?

 

둘째, 역사를 만화로 꾸미는 것이 필요함을 증명한 작품이다.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흥미 있게 보고 있지만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사색당쟁이라는 것이 어떤 파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환국, 탕평, 신원 등이 거듭되면서 소론은 준론과 완론으로, 노론은 시파와 벽파로 분파 되는 등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이것을 사서나 소설로 서술한다면 그야말로 복잡다단했을 것이다.

 

박시백 화백은 이런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풀어서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던 터였지만 지금까지 조선시대 당파의 분파에 대해서는 가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니 그들이 생각하는 바와 분파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셋째, 이인좌의 난을 보면서 호남을 연상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글쎄 너무 무리한 연계인지는 모르겠다. 노론과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던 소론이 몰락한 것은 이인좌의 난과 그 이후의 반란 시도에 소론 인사들이 다수 연루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명분 면에서 소론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역적과 다수파인 노론으로부터 역적과 가깝다고 매도되면서 철저하게 무너져갔던 것이다. 좌익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호남을 거론하고 있는 수구진영을 보면서……. 조선시대 노론이 소론을 압박하는 모습에서 개인적으로 영남의 일부 기득권이 호남을 왕따시키려는 전략이 떠오른 것이다. 이런 당쟁은 결국 한말의 망국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지역감정도 격화된다면 더 큰 비극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보면서 늘 느끼는 바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를 통해서 현실을 파악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미래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열쇠가 어디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6권은 정조실록이다. 조선에서 세종에 버금가는 명군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정조! 그러나 뜻밖의 죽음으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군주이다.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할지 기대가 된다.

y******3 2014.07.1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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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지향 그러나 아들에겐 냉혹했던 영조, 뼛속까지 임금-조선왕조실록 15
"탕평지향 그러나 아들에겐 냉혹했던 영조, 뼛속까지 임금-조선왕조실록 15" 내용보기
조선왕조는 후기로 갈수록 왕위 계승이 불안정하게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만큼 세자가 일찍 죽는 비극이 생기거나  보위를 이를 왕손이 귀했다는 말이다. 또다른 측면으로는 차기 왕위계승자를 두고, 세력싸움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20대 경종과  21대 영조의 경우 이복형제사이에 왕이 이어진  경우였다. 보위에 오른지 얼마 안된 젊은 임금대에 세자가 아닌 세제가 책봉되
"탕평지향 그러나 아들에겐 냉혹했던 영조, 뼛속까지 임금-조선왕조실록 15" 내용보기

조선왕조는 후기로 갈수록 왕위 계승이 불안정하게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만큼 세자가 일찍 죽는 비극이 생기거나  보위를 이를 왕손이 귀했다는 말이다. 또다른 측면으로는 차기 왕위계승자를 두고, 세력싸움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20대 경종과  21대 영조의 경우 이복형제사이에 왕이 이어진  경우였다. 보위에 오른지 얼마 안된 젊은 임금대에 세자가 아닌 세제가 책봉되기는 조선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물밑으로 얼마나 권력투쟁이 치열했을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경종은 재위기간이 불과 4년에 불과했고, 그의 재위기간 동안 집권당인 소론과 야당인 노론사이에  당쟁이 극심했다. 경종의 건강이 약하고 후사가 없었던 것에서 차기 왕위 즉 미래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당쟁이 격화될  여지가 충분했던 것이다. 연잉군(영조)도 역모에 휘말릴만큼 위태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는 잘 헤쳐왔고, 대신 노론의 4대 대신이 희생되는 혹독한 댓가를 치뤄야 했다. 이런 희생은 노론이 집권했을 때 다시 피바람을 부르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경종을 뒤를 이은 영조가 노론의 왕이 아닌 탕평을 구상하게 된 것, 요즘말로 치면 통합적인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었다. 노론의 지원을 받아 보위에 올랐지만, 당쟁이 격화되면 결국 왕권도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관료들이 당파적 이해 관계에 얽혀 왕명보다 당명을 더 우선하게 되기 때문이다.

탕평이 성공을 거두었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영조는 조선 최장기 보위를 지킨 왕인만큼 노회한 정치력으로 정국을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왔던 것은 탕평인사를 주장한 영조 대에 외척들의 부상이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첫번째 왕비였던 정성왕후 쪽 친가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세자빈 혜경궁 홍씨나 계비 정순왕후 집안이 실세로 부각되며 외척끼리 경쟁하는 양상이 돼버렸다. 외척의 득세는 훗날 당쟁구도가 붕괴된 뒤 풍산 홍씨, 안동 김씨 등 외척을 중심으로 하는 세도정치가 발호하게 되는 빌미가 되고 만다.

노회한 영조는 이점을 미처 몰랐던 것일까? 왕족의 정치참여는 극도로 제한했으면서 외척들의 정치참여에는 허용적이었던 것은 조선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니었을까. 

 

장수로 무려 52년간 재위한 영조,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통령 임기가 5년이니 무려 열 번의 임기를 연임하고 다시 열한 번째 임기중 서거한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장기집권한 셈인데, 임기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탕평책이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이런 시도는 집권당이 바뀌면 정치적 보복이 이루어지던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다.

그외에도 균역법을 실시한 것을 비롯해서,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으려는 접촉도 많이 한 임금이었다. 서원의 신설을 금지하는가 하면, '속대전'을 비롯한 편찬사업도 많이 진행했고, 가혹하기 이를데 없는 형벌도 완화했다. 영조는 정조와 함께 조선 후반기 안정기를 구축한 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영조는 꽤 풍파를 많이 겪은 임금이었다. 조선 어느 왕이 평범한 삶을 보낼 수 있었을까만 영조는 그가 장수한 만큼 유난히 자식을 많이 앞세웠다. 그 중에는 세자 둘도 포함돼 있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효장세자가  열 살의 나이로 죽은 뒤, 무려 7년 뒤 어렵게 얻은 왕자가 사도세자였는데, 손수 명해서 뒤주 속에 가둬 죽이는 전대미문의 참극을 일으키고 만 것이었다.

박시백은 영조가 의도적으로 세자를 제거하고 총명한 세손 정조를 선택해서 보위를 잇게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혜경궁 홍씨 집안이나 사도세자의 모친인 영빈 이씨도 사도세자만 제거하는 편이 세손 등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해 영조의 뜻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밉다고 해도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게 하는 아버지란 보통 심장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폐세자도 아니고, 자식을 그것도 아주 가혹하게 죽게 만든 영조를 보면 정신적으로 대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드라마에서 영조를 괴팍한 인물로 묘사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무려 52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왕으로 지내다보니, 범인으로서의 심성을 잃어버리고 아버지 이전에 왕이 돼 버린 것일까.

 

반세기도 넘게 재위한 조선 최장기 임금 영조는 탕평이라는 통합적 정치를 시도했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반면 자식을 뒤주에서 죽게하는 비정하기 이를 데 없었던 왕이기도 해, 아버지 보다는 뼛속까지 임금이라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e****0 2015.01.09.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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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를 위해 공식적으로 아들를 죽인 임금,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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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도 아들인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는 임금이지만 영조는 노골적으로 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였다. 자결을 명했지만 옆의 신하들이 맹렬히 말리는 바람에(성종과 연산군  때의 경험으로 보면 나중에는 열심히 말리지 않는 것도 죄가 되므로) 자결도 못하고 사약도 내리기 힘들어 뒤주에 가두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전무후무한 죽음의 방법이다.  그동안 많은 책과 드라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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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도 아들인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는 임금이지만 영조는 노골적으로 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였다. 자결을 명했지만 옆의 신하들이 맹렬히 말리는 바람에(성종과 연산군  때의 경험으로 보면 나중에는 열심히 말리지 않는 것도 죄가 되므로) 자결도 못하고 사약도 내리기 힘들어 뒤주에 가두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전무후무한 죽음의 방법이다.

 그동안 많은 책과 드라마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이 홍봉한을 비롯한 노론들의 정치공세였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이 책에서는 사도세자의 개인적인 기질과 마음의 병(아마도 단순 우울증을 넘어선 정신분열?) 때문이라는 주장에 무게를 심어 주고 있다. 발작을 일으키면 나인들과 사랑하던 여자까지 죽이는 성질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되었을 경우에 예상되는 파란을 막기위해 왕과 신하들이 힘을 합쳐 계승자를 갈아치웠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똑똑한 세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똑똑한 정조는 후에 자신도 아버지의 죽음에 적은 부분을 기여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

  영조는 조선시대의 왕 중 진정한 '생존자'이다. 태생적 한계를 딛고 왕이 되어 가장 오래 살아 남았다.

 

e******s 2015.03.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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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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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인 세종대왕 편을 처음 읽어본 이후로 계속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박시백 화백의 최신작인 15편이 드디어 나왔다.    이번 작품의 내용은 <이산>과 지금 방영되고 있는 <동이> 같은 여러 사극들에서 익히 다뤄저 많은 독자들도 잘 알고 있는 영조 시대다.    손자인 정조와 더불어 조선 말기의 중흥기,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발전하고 평화로운 시기를 만들었던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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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편인 세종대왕 편을 처음 읽어본 이후로 계속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박시백 화백의 최신작인 15편이 드디어 나왔다.

 

 이번 작품의 내용은 <이산>과 지금 방영되고 있는 <동이> 같은 여러 사극들에서 익히 다뤄저 많은 독자들도 잘 알고 있는 영조 시대다.

 

 손자인 정조와 더불어 조선 말기의 중흥기,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발전하고 평화로운 시기를 만들었던 훌륭한 군주 영조.

 

 그러나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여야 했던 비극을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어보기 전에 작가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중적인 역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덕일 씨가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자서전인 한중록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정신병이 아니라 조정 내의 당파 싸움에 휘말린 결과였다. 또한 사도세자는 무예에 능하고 호방했던 인물로 정신병을 앓지 않았다."라고 주장한 대로의 인식이 꽤 많이 퍼져있다.

 

 이에 대해서 박시백 작가가 본편에서 편 관점은 그런 주장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으로 그렸다. 한중록이 다소의 과장은 있을지 몰라도 사도세자의 정신병적인 증상은 사실이었고,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 간의 대립은 정치적인 결과라기보다는 두 부자의 성격이 다른 것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는 아직 확실히 알기 힘들다.

 

 작품을 읽고 나서 아쉬운 점은 책의 전반적인 흐름이 조금 싱거워졌다고 해야 하나, 밋밋하게 느껴졌다. 제목 그대로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점은 감안해도, 줄거리 전개가 조선왕조실록에 쓰여진 내용들을 그냥 만화로 옮기는 정도에만 그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실제로 영조 시대에는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 않았는가? 얼마 전에 종영된 사극 <추노>처럼 단순히 왕이나 대신들 같은 지배층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백성과 천민 같은 일반 대중들의 삶도 작가가 조명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시백 작가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이 갖는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기 전에까지 손에 들고 읽었다고 할만큼,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분명하니까.

x***2 2010.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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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된 사도세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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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권 '경종.영조실록'을 이제야 읽었다. 만화라고 하지만 글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어른, 아이 모두에 인기있는 유일한 책이다. 역사를 싫어하는 초딩 우리 아들도 요즈음 '동이'에 나오는 똑똑한 왕자가 이 만화책의 주인공 영조라고 하니까 아주 좋아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왜 사도세자를 죽였는지 모르겠다면 울분을 토하고 있다. 딸은 미친 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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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권 '경종.영조실록'을 이제야 읽었다. 만화라고 하지만 글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어른, 아이 모두에 인기있는 유일한 책이다. 역사를 싫어하는 초딩 우리 아들도 요즈음 '동이'에 나오는 똑똑한 왕자가 이 만화책의 주인공 영조라고 하니까 아주 좋아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왜 사도세자를 죽였는지 모르겠다면 울분을 토하고 있다. 딸은 미친 늙이라고 흥분해서 난리다. 8일 동안 뒤주에 가둬 놓고 서서히 죽인 것을 보면 분명 계획된 살인이라고 추측해도 될 것 같다.

 

 영조를 보면 사람은 콤플렉스가 있으면 그것에 발이 묶여 평생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천한 어미에 대한 콤플렉스, 경종 독살설의 중심에서 자유롭지 못해 정통성을 의심받아야 했던 수많은 나날들이 말년의 영조를 괴팍한 늙은이로 만든건지도 모르겠다. 영조는 당파간의 지나친 싸움을 경계하여 탕평책을 펼쳤지만 그의 재위기간 내내 노론이 득세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탕평을 무기로 왕권을 강화시켰을 뿐이다.

 

 내가 아는 영조에 대한 것은 국사 시간에 외웠던 탕평책, 가채를 금지하고 족두리를 보급한 것,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아버지, 자식에 대한 편애가 유달리 심했던 아버지, 무수리의 아들 등 일반적인 것들 밖에 없었다. 좀 더 많은 상세한 내용을 기대했지만 짧은 만화 한 권에 경종과 영조 시대를 다 담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다. 상세하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개략적인 사실 정도만 알고 가기에는 더 없이 유익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힌다. 야사와 드리마에 익숙한 학생이나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c*****6 2010.09.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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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 그러나 노론의 임금 영조
"탕평 그러나 노론의 임금 영조" 내용보기
소론 소수파 임금 경종, 노론 다수파 임금 영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론 임금 경종이 아버지 숙종 편에도 혹은 동생인 영조 편에도 들어갈 수도 있는 작은 분량의 이야기일 것이고, 이 15권은 영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종 세자시절부터 위태로운 자리에 있었으나, 왕위에 오른다. 반대 정적인 노론에 둘러싸인 약한 왕이었으나, 결국 반전에 성공하여 소론 정권을 만들어 실권을
"탕평 그러나 노론의 임금 영조" 내용보기

 소론 소수파 임금 경종, 노론 다수파 임금 영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론 임금 경종이 아버지 숙종 편에도 혹은 동생인 영조 편에도 들어갈 수도 있는 작은 분량의 이야기일 것이고, 15권은 영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종 세자시절부터 위태로운 자리에 있었으나, 왕위에 오른다. 반대 정적인 노론에 둘러싸인 약한 왕이었으나, 결국 반전에 성공하여 소론 정권을 만들어 실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병약한 왕은 얼마 가지 못하고 죽고 만다. 물론 이 죽음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조는 노론의 왕이다. 인조가 서인의 왕이었다면 영조는 가장 세력이 강한 여당인 노론의 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영조의 주요한 정책은 탕평책이었다. 그래서 여당과 야당을 고르게 배치시키고도 하고, 심지어 소수 소론에게 정권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은 영조는 노론의 왕이고, 끝까지 노론과 같이 했다고 할 수 있다. 노론은 왕과 함께 가는 여당이고, 탕평이라는 명분하에 관제 야당 같은 소론이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소론의 왕인 경종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소론이 끝까지 유지하고, 끊임없이 노론 왕인 영조를 제거하려는 반정을 꿈꾸고 실행했는지 모르겠다.

 

 영조 재위 기간에 가장 참혹했던 일은, 아버지인 영조와 자식인 사도세자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결론은 다 알듯이 사도세자의 참혹한 죽음으로 끝나는데, 이 사실을 당시 실세인 사도세자의 장인과 또 사도세자의 부인이 모두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사도세자가 죽을 만해서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아버지 영조와 아들인 사도세자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엄격한 아버지와 어쩔지 모르는 아들의 관계로 들어난다. 덕분에 아들은 아버지의 눈길을 피하게 되고, 점점 관계가 나빠지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민한 손자인 정조의 출현으로 인해, 영조가 아버지를 제거하고 아들로서 왕위를 잇게 한다는 선택이다. 현대의 정설은 경종의 궁녀들궁부터 자란 사도세자의 정치적인 성격이 소론 지향이야서 정치적으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 책의 재미있는 시각은 왕에 대한 비판적인 것에 있다. 여기서도 가장 긴 재위기간을 가지고 또 오랫동안 장수를 한 임금 영조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정책 중 중요한 것은 초기에 나왔고 후기에 갈수록 별로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재위 기간이 50년이면 너무 긴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z******g 2012.07.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