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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는 하도 내는 곳이 많고 번역의 질도 천차만별이라서, '번역의 질'이 책을 구입하는데 큰 기준이 된다. 내가 이번에 산건 '펭귄 클래식 코리아'의 앨리스 세트였는데, 구성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어판'의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어는 읽을 줄도 모르지만 왠지 가지고 있으면 폼날 것 같아서 이 셋트로 샀다.)
어쨌거나 처음 슥 펼쳐보고 있는데 이거 번역이 무지 딱딱한거다. 평소 일어->한국어의 번역만 보고 살아서 그런지, 문체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한국어와 별 다르지 않은 번역글만 보다가 이 묘한 글, 마치 외국어를 그대로 직역한 듯한 문장을 보고 있으니 그리 어색하게 보일 수가 없더라.
그래서 혹시 더 부드러운 번역을 한 책이 있지 않을까 하고 서점에서 대여섯권 뒤져봤다.
없더라 ㅋㅋ
앨리스라는 작품의 특성상인지 (말장난이 많고,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아주 많은 작품) 원문 자체가 그렇게 기이하게 쓰인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를 모르거든!!) 한국에 번역출판된 수많은 앨리스들은 전부 이런 '딱딱한' 느낌의 번역밖에 없었다.
*번역의 차이는 거의 없고 거기서 거기라고 쳐도, 요 '팽귄 클래식 코리아'의 앨리스가 다른 앨리스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주석 부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에 대한 외부적인 지식들이 장난이 아니게 풍부하게 적혀 있다. 즉 앨리스의 가족에 대해서라든지, (부끄럽게도 난 앨리스가 실존한 아가씨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작품이 나올 때의 시대상이 이랬기 때문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든지, 작품에 존재하는 수많은 패러디의 원문과 어떤 것을 노리고 패러디 했는지, 이 문장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고, 이 말장난은 어떤 중의적인 표현이 담겼다든지, 기타 등등... 국어교과서 뺨 때릴 정도로 '앨리스'라는 작품을 아주 철저하게 분석해서 이해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이쯤에서 '난 남의 해석 따위는 빌리지 않아!! 나 혼자의 감성을 중요시해!!!'라고 외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150년 전의 패러디의 의미와 그 뜻을 이해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좋을대로 하시길! 나는 주석을 보고 확실히 이해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하지만 말이다. (모처럼 읽는 고전이다. '공부'도 겸하면 얼마나 좋은가?)
*이제 책 이야기를 하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쉽게 말해 이런 책이다.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 불쾌함을 느끼는 것,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배려하고 싶은 것등 모든 것이, 말그대로 '모든' 것이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그려진 판타지 모험 소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의 시점'이라는 부분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작자인 루이스 캐럴이 앨리스 리델(실존했던 앨리스)에게 즉석에서 지어준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책 안의 모든 요소들이 이 '앨리스 리델'이라는 소녀가 이해할 수 있는, 알고 있는 단어와 상식만을 이용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이 어린 소녀가 가진 좁은 세계만을 이용해서 만든 판타지는 꿈을 꾸는 듯한 맥락 없어 보이고, 기가 막힌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소재 하나하나가 이 이야기를 듣는 소녀를 기쁘게하고 놀라게하고 흥미를 가지게 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 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지어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꺄르르 웃고 흥미진진해하는 앨리스(실존하는)를 생각하면서 읽어 보는건 어떨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들으며 '그게 뭐에요ㅎㅎ' 하고 꺄르르 웃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렇게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정말 그 발상이 기발하고 천재적이면서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앨리스가 몸이 커지는 약을 먹고 몸이 집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졌을 때의 독백이다.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는 일은 절대 없는 걸까? 그거 좋은데, 할머니는 안 될 테니까, 그런데 그러면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잖아! 아, 그건 정말 싫어!'
즉 이 어린 소녀는 '키가 자란다'라는 개념을 '나이를 먹는다'라는 개념으로 생각한 것이다. 자신은 집안을 가득 채울 만큼 커졌으니 더 이상 커질 일이 없고,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키가 자란다 = 나이를 먹는다. 키가 더 이상 자랄 수가 없다 =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좁은 세계를 가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 기발한 상상력! 두 번 다시 가지지 못할 이 멋진 발상이 부럽기까지 하다.
뭐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소개 할 때 '어린 소녀가 판타지 세계로 가서 겪는 이야기'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린 소녀의 부드러운 사고는 이미 그것만으로 훌륭한 판타지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는게 남의 꿈 이야기라고 한다 지리멸렬해 이야기로써 기능하지 않고, 직접 경험 한 사람 외에는 별 재미도 없는 이야기니까
그걸 남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밌게 전달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10세 소녀의 꿈을 말이다. 난 그 결과물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본다.
단 하나의 소녀를 위해 소녀의 눈높이에서 맞춰진 최고의 판타지 그 이야기를 몰래 옆에서 훔쳐듣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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