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는 여러 빛깔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나라인 것같다. 로마노프 왕국의 이미지, 러시아혁명 당시의 처참하고 투쟁적인 이미지, 냉전시대에 미국과 양극관계를 이룰 당시의 이미지들이 함께 잔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낭만적인 동화속 궁전 모습을 떠오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러시아식 비잔틴 양식의 양파형 지붕과 그를 둘러싼 형형색색의 색깔이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궁전의 호박방의 호화로움, 또한 바이칼호수를 향해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까지 생각한다면, 러시아는 한 번쯤 여행하고 싶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낭만적인 모습보다는 러시아혁명전후를 중심으로 한 암울한 모습들이 더 많이 묘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시인 최하림은 2004년과 2006년에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을 하게 되는데, 러시아의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어떻게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뒤쫒아 본다. 자작나무와 들꽃이 핀 들판에서, 예니세이강이나 네바강이 흐르는 곳에서,도스토옙스키를 찾아서 페테르부르크로, 톨스토이의 자취를 찾아서 야스나야폴라나행 기차에 올라서. 체호프를 찾아서는 멜리호보마을로.
그리고 보니 러시아에는 기라성같은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이 많이도 있다는 것을 새삼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대문호인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푸쉬킨, 스카초프, 예세닌, 솔제니친,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도. 그런데, 왜 시인 최하림은 러시아를 예술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두 번이나 찾아 갓을까? 1960년대 초에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생가와 묘지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런 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란다. 톨스토이가 걸었던 그 오솔길도 걸어보고 톨스토이를 스쳐갔었을 바람도 맞으면서 그의 문학세계에 흠뻑 빠져본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워낙에 노름꾼이고 바람도 피웠다는 사실. 그러나 그런 톨스토이는 농민들에게 자신의 재산까지 기꺼이 나누어주고, 함께 농사를 지을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톨스토이는 '부활''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인데, 최하림은 완전히 톨스토이의 문학에 심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하림은 푸쉬킨의 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괴로운 것/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또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 지는 법이니/ (...) 학창시절 얼마나 좋아하던 명시인데..... 그리고 러시아의 문호중에 반가운 시인이자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 그의 시는 잘 모른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중에 '의사 지바고'에 푹 빠져서 날밤을 새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 소설이 영화화되어서 시내 극장에서 상영이 되었을 때에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갔다. (예전에 서울의 중고등학교는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면 시내 극장으로 단체관람을 가곤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꽃미남인 주인공 오마 샤리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얀 눈이 덮힌 설원의 풍경.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장면인 페레델키노의 2층집. 창문에 하얀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 시를 쓰는 그의 귀에 들리는 늑대소리. 특히 여주인공 라라의 주제곡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기억들. 그런데, 러시아의 예술기행을 통해서 그곳의 모습을 접하게 되니 새삼스럽게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 때 읽었던 '의사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을 난 그때 잘 알지 못했다. 그 시대적 배경이 1905년의 러시아 제1차 혁명과 1917년의 10월 혁명,그리고 그 혁명들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시기였음을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어떤 사회적 혁명이라는 것 밖에는. 우리는 대부분 세계적인 고전들을 학창시절에 많이 읽는다.
그렇기때문에 제대로 작품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줄거리 위주로 읽는다는 것을 이제와서 생각하면 많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다는 생각에 다시 그 작품을 읽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제대도 된 작품 이해는 많은 문학 작품을 읽고, 역사적, 사회적 인식이 정립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도 모르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도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어느 정도의 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만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고, 문학작품을 읽어 보았다면 이해가 쉽고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최하림의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오래전 읽었던 고전들을 한 달에 한 권씩이라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
|
이여행기의 제목이 소련이 아닌 '러시아'인 이유는 제국이었고 '철의 장막'이었던 시절의 예술가들을 만나야했기 때문이다. 시인인 저자가 러시아 예술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조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그의 여정을 통해 잘 드러나있다. 거장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안톤체홉과 음악가인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저자의 깊이 있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각이 참으로 부러웠다.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거장들을 만나기 위해 노구에 지병까지 있는 불리함에도 굳이 러시아를 두번씩이나 찾았던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러시아의 작가들을 연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인내심없이 러시아를 여행하기는 어렵다더니..여전히 공산주의시절의 잔재가 느껴지는 러시아의 딱딱한 분위기가 그를 힘들게도 했지만 그의 열정적인 발걸음을 붙들지는 못했다.
'죄와벌''카라마조프네형제들'의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그말고도 많은 거장들이 태어나고 잠든곳이다. '카라마조프네형제들'을 집필한 책상과 그위에 놓여져 있는 2시9분을 가르키고 있는 멈춘시계를 보면 작가의 숨소리가 들리는듯 느껴지지 않을까. 재정러시아시절의 거장들은 하나같이 도박을 좋아했던가 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얼마나 도박을 좋아했는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작품을 썼다니..그가 좀더 일찍 그리고 오랫동안 도박에 몰두했다면 더 많은 그의 명작을 만났을지도 모를일이다. 농민과 함께 호흡하고 농토도 돌려줄만큼 너그러웠던 톨스토이역시 재산을 거덜낼만큼 도박을 좋아했다니..거장들을 사로잡은 도박의 매력이 나도 궁금해진다. 혹시 좋아하다 보면 글이 마구 써지지 않을까? 스스로 톨스토이의 사도라고 밝힌 저자는 아주 오래전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톨스토이의 정신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고백한다. 농노의 아내를 겁탈하고 살림까지 차리고 싶어했던 위대한 작가의 어두운 일면마저도 그의 사랑을 퇴색시키진 못한 모양이다.
'안톤체홉'하면 나는 벚꽃나무가 떠오른다. 실제로 그가 살았던 집마당에는 벚꽃이 지천이란다. 그옆집에도, 언덕 아랫집 마당에도..하얗게 날리는 꽃잎을 보면서 '바냐아저씨'와 '벚꽃동산'을 구상했을것이다.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정원사가 되고 싶었다는 체홉의 정원은 그와 그의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있었다. 잘웃고 자상하고 다정했던 의사이기도 했다는 체홉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그립기도 했겠다. 유독 많은 예술가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폐병'으로 죽어가면서 하필이면 독일어로 'Ich sterbe'(나는 죽습니다) 라고 말했을까. 콧수염이 멋진 영화배우 오마샤리프와 하얀 눈밭과 기차..바로 이장면이 안톤체홉의 대표작 '닥터지바고'의 한장면이다. 어려서 본 작품이지만 문득 벚꽃나무와 더불어 우리는 하얀 눈밭을 기억할것 같다.
나도 언젠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싶다. 누군가 남북통일이 되어 서울역에서 시작되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던 말이 떠올랐다. 그날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시간의 개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끝없는 시베리아평원을 달려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당도하고 싶다. 저자의 불평처럼 뚱뚱하고 웃지않는 공항검색대원이 맘에 들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러시아대륙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음울하고 추운 러시아의 몸뚱아리를 낱낱이 보고 싶기때문이다. 침묵을 좋아한다던 저자처럼 잔잔하고 조용한 여정을 따라 두번씩이나 떠다 먹었다던 러시아식 요구르트를 맛보기 위해 나도 언젠가는 동토의 땅 러시아를 가볼것이다. 물론 그전에 적어도 이책에 주인공들인 거장들의 작품을 반드시 다읽어봐야 하겠지만. |
|
동토(凍土)의 나라, 또한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간직한 나라, 이런 환경이 아마 인간의 감성을 더욱 자극하지 않았을까? 일일이 거명 할 수 없을 정도로 근대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문호들을 많이 간직한 나라로서 러시아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러시아로 문학여행을 하게 되면 그 대문호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거닐던 거리, 그들의 삶의 숨결이 배어있는 집과 정원, 그리고 숲과 강이 흐르는 자연의 모습 등을 같이 호흡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보곤 하기도 했다. 또한 작가가 작품을 집필하던 서재와 침실, 그네들의 산책로와 마을까지. 이러한 기대를 다소나마 충족시켜 보자는 기대에서 시인(詩人)이 쓴 러시아 예술기행은 자못 기대를 부풀린 것이 사실이다. 아~ 안나카레니나는 그곳에서, 부활의 네흘류도프와 캬츄샤가 지냈던 저택과 대영지, 발자취, 닥터 지바고의 눈보라 치는 설원의 풍경, 작품 속 배경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 작가의 생가와 호흡이 머물던 곳들에 대한 발자취를 시적 감흥을 보탠 문학적 향취와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그러나 체호프의 집을 방문하면서, 작자는 “풍경을 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 긴 시간은 충족의 깊이를 가지고 온다, 그런 충족이 참 여행이다.”라고 하면서, 열흘 남짓한 러시아 횡단 관광여행에서 만나는 깊이의 한계를 얘기하듯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 여행기는 이르쿠츠크에서부터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열흘 남짓한 단체여행에서 흘깃 흘깃 지나치는 대문호들의 명소를 지나치는 단상과 <고요한 돈강>의 작가 숄로호프, 그리고 시인 아흐마토바의 빈집을 방문하는 두 차례의 러시아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여행은 20명 남짓한 동료가족들과의 단체여행기로 러시아 여행하면 한결같이 이르쿠츠크를 시작으로 바이칼 호수, 리스트뱐카, 게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계3대 미술관인 에르미타슈 박물관 그리고 화려한 여름 궁전 등등 겉만 핥아대는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작자가 제일 좋아한다는 작가로서 야스나폴야나라는 곳에 있는 톨스토이의 볼콘스키 저택과 생가 방문기가 비교적 길게 소개되고 있으나 작품과 연계된 현장감 있는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체호프의 멜리호보에 있는 주택을 방문하여 키 작은 할머니가 체호프는 정원사가 되었을 거라는 취향을 전하는 이야기와 정원 주변에“벚꽃나무들이 하얗게 꽃 피어 날리는 길 등 시시콜콜한 설명이 그나마 일부 작품에 닿아있는 정경이 작은 위안을 준다. 굳이 예술기행의 구색을 갖추자면 영화감독 타르콥스키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상식적인 소개글 정도이고. 여기에 그네들의 발자취가 스며든 현장 속의 예술적 정취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방문에서 찾아가는 “해바라기 밭에 황금물결이 넘실대는가 하면, 언덕을 깊이 파면서 돈 강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며,..”하는 숄로호프의 고향 뵤센스카야에서의 문학박물관과 생가의 여행 역시 현장과는 괴리된 채 솔로호프의 작품이야기가 설명되고, 일반적 관광여행자들의 소감과 자신의 사적 심경이 장식한다. 더구나 두이노의 비가, 젊은 파르크, 레퀴엠등의 시로 알려진 시인 아흐마토바가 살았던 파운틴하우스의 텅 빈 실체만 감흥 없이 소개되고는 별도로 그녀의 시(詩)일부를 설명한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고리키, 파스테르나크, 숄로호프, 아흐마토바에 이르는 러시아 대문호들과 예술인들의 이름과 작품이 나열되고 있지만, 러시아 예술 고유의 향취와 정서, 작품과 작가 , 주인공들과 교감하는 러시아는 찾을 수가 없다. 작자 개인의 감상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술기행’이라는 자못 거창한 표제와 내용과는 거리가 한 참 멀다. 많은 아쉬움이 있는 저작이다. |
|
동토의 땅~ 러시아.. 사실 겨울에 태어난 겨울아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추운 날씨는 정말 싫어하는데 한겨울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넓은 땅을 가진 러시아는 그만큼 동서양의 문화가 새롭게 융화되고 또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이방인인 나의 눈으로 보면 낯설지만 그 매력적인 문화에 푹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보드카의 진한 술냄새처럼 러시아 사람들도 혹독한 계절에 맞서며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워겠죠. 언젠가 한 번쯤은 러시아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그 거친 땅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러시아 발레의 아름다움 또한 빼놓을 수 없겠죠. 또한 수많은 러시아 대문호들의 이야기도 .. 나폴레옹 또한 점령하지 못한 그 곳,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한 그 곳.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푸시킨 등등 러시아 문학은 추운 겨울날 읽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아요. 물론 대부분이 두껍고 지루한 이야기이지만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특히나 뛰어나서 읽을수록 점점 등장인물들에 호감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그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본성은 아마도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더욱 더 또렷해지고 가끔은 더 악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인 시인 최하림씨가 굳이 다른 곳을 제쳐두고 굳이 러시아를 택한 것에는 아마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에요. 아마 러시아에 가면 누구나 작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품게 되는 건 그 곳이 삶에 대한 치열한 전쟁터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
|
(기껏 다 써놓고 업로드하는데 에러가 나서 다시 쓴다. 다 부셔버리고 싶은 분노를 삭이며 가급적 간명하게. 그나저나 YES24는 이러고도 어떻게 주가가 계속 상승세인지, 역시 미스테리다. 작전주 아닐까?)
시인은 죽지 않았다.
조선일보 주말섹션 팀장격인 문갑식 기자가 시인과 '하드보일드 인터뷰'라는 것을 해놓고는 호들갑스럽게, 마치 시인이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갈겨놓은 것을 일전에 보고서 이런 신간을 보게되니, 아무래도 좀 묘하다. 시인이 10년도 전에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라는 시집을 냈었는데, 그때 이미 시인은 고혈압 탓에 매우 고생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 시집 중 한편의 제목이 '시간은 영원히 고통스럽다'이다. 아, 그러고보니, 그 시는 초입에 이런 혹을 달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량과 여유를 말한다 노년의 마음에서 우러나움직한 그것은 神性에 속하는 것일까
이 책 <러시아 예술기행>에 바로 저 '아량과 여유'가 듬뿍하다. 이를테면 헛수고로 하루를 보낸 뒤 배를 타고 바이칼호에 나갔을 때의 정경이 그렇다.
배는 환바이칼 열차의 선로 쪽으로 달렸다. 달리는 것은 우리 배만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옆에서도 달렸다. ... 관광객들은 그런 바이칼의 물과 바람과 비를 보려고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일본에서, 미국에서 몰려들어온다. 그렇다고 바이칼이 관광객들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말은 관광객들이 가지고 온다. 그들은 새롭고 찬연한 말을 가지고 와서 바이칼을 새롭고 찬연하게 느끼려고 한다.
시인은 오랜 세월 낭만적 이상으로 그려온 명승지가 상업화한 상황 앞에서도 저렇듯 의연하고 예쁘게 쓰고 있다. 이를테면, 에베레스트 등반이 완전 비즈니스가 되버린 상황을 무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E AIR) 같은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물론 시인이 낙관론자라서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시인은 '영원한 고통'을 스스로 겪으며 쓰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 굴참나무 시집을 낼 때 시인은 충북 영동에 살았고, 죽음을 앞둔 지금은 경기 양평에 살고 있다. 그 사이에 시인은 러시아에 두 차례 다녀왔다. 시인은 '톨스토이의 사도'를 자처하며 경건한 마음을 갖고 다녀왔다. 톨스토이의 죽음, 러시아 대문호들의 죽음을 생각하고 오는 길들이다. 그러니 이 책은 할 수없이 인생과 역사와 자연을 담고 있다. 그런데 막상 문장들은 작고 섬세하다. 그 내용 또한 가이드와의 긴장 따위 조촐한 것들까지 아우르는 소박함이 짙다. 한마디로, 디테일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면서도 큰 스케일을 담보하고 있는 문장들이다. 한 문장씩 베껴쓰고 싶은 문장들이다.
아마, 어쩌면 이 책은 시인 생전의 마지막 출판물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