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시각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 왔다. 눈에 가득한 하얀이 전해 주는 시절에 기억을 땡기는 것은 당연 차이코프스키이다. 이 곡은 지휘자별로 여러 개의 테이프, CD, DVD가 있다. 그에게 꽂힌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의 곡에서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냄새가 동시에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를 전후해서 제정러시아의 몰락과 볼셰비키 혁명이라는 혼돈의 공간이었던 러시아에서 지식인으로써의 그의 생애이다. 그의 여러 곡 중에서 발레곡 ‘백조의 호수’는 서양 classical music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이다. 몇 해 전에 있었던 드라마 ‘도깨비’ 전편을 10번 이상 본 것과 비슷한 이유가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 드라마는 고려 후기의 장군이 거의 800년 동안 자신의 신부를 기다린다는 영원한 사랑을 그린 내용은 그 자체로 하트 뿅뿅이다. 백조의 호수는 ‘야수와 미녀’의 거꾸로(?), 또는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인 ‘선녀와 나무꾼’의 속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열린 결말을 갖고 있다. 지휘자마다 결말을 달리하는 다양한 version이 있다. 원래는 4개의 Act(막)이었는데 6개까지 있는 것도 있고 개수가 같더라도 곡의 구성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곡의 구체적 내용은 다른 발레곡처럼 어떤 대사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팜플릿이나 소책자를 읽지 않고서는 그 내용을 일반인이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일종의 판토마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곡을 감상하는데, 내용을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먹물로 활자화된 text는 감상을 저해하고 흥(興)을 반감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눈을 감고 상상에 빠져서 나만의 흥 만에 젖어들고 하이얀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 CD는 전통적인 4개의 Acts와 36개의 곡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sonata형식의 교향곡에 비교하면 배나 되는 분량이다. 이를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온다면, 발단, 전개, 위기, 절정에 비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감상한다면 어렵지 않게 분위기에 젖어들 수는 있다. 금관악기와 현악기의 멋드러진 조화를 느낄 수 있다. 1 Act. ; Scene. Moderato ‘정경’이라는 제하에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부분으로 소설의 발단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갈등이 없는 상태이다. 도입이라 분위기는 조용하다. 마치 해 뜨기 전의 아침처럼 모든 게 숨을 죽이고 있는 분위기다. 잔잔한 호수의 분위기를 맘껏 느낄 수 있다. 모래 한 톨만 던져도 잔잔한 평화가 금세 깨질 것 같다. 간간히 긴장을 주며 이 분위기를 깨는 곡이 흐르기도 한다. 세상에는 한 가지 부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正과 反, 그리고 合이 공존한다. 선과 악, 그리고 그 중간이 존재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다. 두 주인공의 만남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제공되고 있다. 착한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세상을 어지럽히고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마 같은 존재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swag는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고 소문만으로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다. 아직은 두 개의 공간과 인물들이 거리감을 두고 있어서 양자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곧 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2 Act. ; Waltz. Tempo di Valse 고음으로 시작해서 순간 깜작이었다. 즐거움과 밝음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한 번의 놀래킴은 색다른 뭔가 있다는 게 분명하다. 유쾌한 뭔가를 찾아낸 게 분명하다. 온 세상에 사랑스러움이 쓰담쓰담한다. 모든 게 순조롭고 행복하고 사랑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진다. 둘의 약속과 바람은 그대로 실현될 듯하다. ‘우리 이대로 영원하다’는 소망이 그 자체로 만땅이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순조로움은 오히려 불안감을 감출 수 없게 한다. 굴곡 없는 평안은 오히려 불안을 부채질하기에 안성맞춤이다. 3 Act. ; Swan Dance. Allegro moderato 벌써 음악부터 위기를 부르고 있다. 높은 음으로 시작하다가 저음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즐거움과 불안감이 교차하게 하는 현실이다. 왈츠가 흐~른다. 기쁨의 공간에 음모와 계략이 슬픔과 혼란을 불러온다. 찬치 속에 음모는 도사리고 둘의 사랑을 방해하려고 한다. 막판에 흐르는 쓸쓸함은 누구한테 하소연할 데가 없다. 여러 곡의 흐름과 다양한 감정의 혼합이 어우러지면서 감정을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한다. 4 Act. ; Scene. Andante 절정이자 열린 결말이다. 지휘자마다 다르게 다른 곳이 더 연주되는 부분이다. 슬픈 저음으로 도배하면서 고음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비극을 부를 수 있지만 결단의 순간이 온 것이다. 긴장감이 백배이다. 영원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좌절의 난장판에 미래를 내 줄 수는 없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 귀가 호강하게 하는 곡이다.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얀 백조 떼가 하얀 눈이 내리는 호수가를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 시각은 어디로 가고 청각 만에 의존해서 감상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 보일 것 같지만 오로지 상상만으로 그림을 그리며 안구정화를 한다. 하얀 감각의 세상이 가져다 준 기회에 영원한 사랑을 느끼며 그런 사랑을 꿈꾼다. 새하얀 눈의 계절에는 차이코프스키가 최고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