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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집착으로 인한 광기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과연 축복이 될 수 있을까. 발상의 전환에 따라 받아들이는 차이는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감히 예스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축복'이라는 단어 사용 자체가 이미 모순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 속 그들은 광기로 인해 삶을 연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분명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이를테면 기약 없는 기다림, 무려 몇 십년 지속되는 혼자만의 사랑은 웬만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실현하기 불가한 부분일 테니 말이다. 단순한 애정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을 정도, 흡사 상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아, 라는 말의 의미를 <낯선 여인의 편지>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반면 표제작 <체스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역사의 폐허 속에서 고통받던 한 남자가 외려 체스라는 지적 게임을 통해 감내하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체스라는 것에 예속되어버린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순네 칸의 흑백영역 안에서 오직 두뇌와 심리만으로 대결하는 체스 게임은 사람 대 사람 간의 개인적 특성을 표출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게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슈테판 츠바이크가 작품의 소재로 체스를 채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체스챔피언 챈토비치, 하지만 그의 과거는 현재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루했다. 버려졌고 누군가에 의해 키워졌으며 정신지체라는 병을 앓고 있었지만 오직 하나, '체스'를 통해 고도의 집중력과 천재성을 발휘한 그다. 반면 챈토비치와 강렬한 심리 대국을 펼치는 B박사는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돼 일명 호텔 감옥이라 불리는 곳에 감금,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고문에 의해 정신적 아픔을 겪었다. B박사가 게슈타포에 항거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해방구는 우연하게 손에 넣은 체스 교본이었고 미친 듯이 탐독한 결과 챈토비치와 막상막하의 대결 구도를 그릴 수 있는 인물로 표현된다. 또한, 그는 고문과 고립이라는 이중고 때문에 해방과 자유에 목마른 나머지 체스라는 게임에 과도한 집착을 하면서 광기에 휩싸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작품이 단순히 한 인간의 광기, 집착, 고립 등만을 다루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저자의 유고작이기도 한 <체스 이야기>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인간의 광기를 큰 틀로, 1930년대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역사적 혼란기를 한 인물에 투사하는 과정을 내부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상대의 킹을 Checkmate하는 체스 게임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고 Checkmate냐 Resign이냐 하는 승부의 판가름은 절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인간이 특수한 환경에서 겪게 되는 혼돈을 정신 분석학적 측면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작품 다수에서 각 인물의 내면 심리를 정신분석학을 근거로 해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상반된 두 남자의 심리전을 다룬 <체스 이야기>는 화자인 나를 통해 그들의 심리를, 열 세 살부터 시작된 한 여인의 외사랑을 다룬 <낯선 여인의 편지>는 시간과 기억, 사랑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사랑에 빠져든 인간의 절절한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체스 이야기>보다 사랑을 소재로 한 <낯선 여인의 편지>가 와 닿았다. 사랑은 쏘아진 활시위다. 그렇다면 과녁에 명중했든 아니면 불발로 그쳤든 결과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을 만큼 소설가를 향한 열렬했던 그녀의 사랑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결과는 없다. 오직 그녀의 멈추지 않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살아가면서 많지 않은 몇 번의 마주침 뒤에 그를 기억하고 그리는 건 언제나 그녀였고, 그는 새까맣게 잊었다. 그러니까 그에게 그녀는 언제까지고 '낯선' 여인으로 남아있다. 제목 그대로 24장의 고백으로 이루어진 <낯선 여인의 편지>는 소설가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 환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을까. 살아오는 동안 그를 지나쳐갔던 수많은 거리의 여자 중, 그렇고 그런 여인이었을 뿐인 한 여자를 통해서 말이다. 사실 사랑은 일방통행으로 나아가기는 쉬워도 교차하기는 어려운 감정의 발로이다. 사람이 첫눈에 반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단 0.1초라고 한다. 평생을 살아도 그 0.1초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 이상이다. 그러니까 사랑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도 우리가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하는 경험을 하기 어려운 것만큼 쉽지 않은 순간이라는 거다. 사랑은 흔한 듯하지만 내 것이 되기 어려운, 그런, 경이로운 경험이다. 낯선 여인의 평생 한 사람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싶기도 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사랑이라는 감정의 교차 지점은 이어질 때보다 어긋날 때가 더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를 향한 그녀의 집착이 결코 집착이라는 단어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단순히 한 여인의 광기 어린 사랑, 혹은 집착으로 점철된 사랑이라 단정하기에는 그녀의 사랑은 순수했으며 숭고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흔든 위대한 사랑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기의 사랑 역시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을 향한 지속적인 사랑을, 구애를 멈추지않은 것이야말로 세기의 사랑이라 단언해도 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건 죽을 때까지 그녀의 사랑은 '낯선' 여인의 사랑으로 남았다는 것, 그것이지만 말이다.
한 작품 속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다채로운 내면 심리를 모두 경험한 기분이다.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혼돈의 세계(B박사), 애절하다 못해 처연하리만치 지고지순한 사랑의 기다림(낯선 여인), 어쩌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단점으로 남았을 병이라는 것을 과도한 집착을 통해 인생 승부를 본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챈토비치) 등은 각각 인간 감정의 가장 밑바닥, 심연까지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보편적이지 않은 감정의 최수뇌부, 인간의 심리는 무저갱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니다. 인간이 감정을 통해 dominateion 되는 순간의 영역은 관찰을 통해 충분히 드러날 수 있으며 전달될 수 있다. 최소한 스테판 츠바이크의 작품 세계에서는 그러하다. 어디까지나 타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지점만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감정의 영역이라는 건 영원한 성역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 속 확연한 색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외에 세상에는 너무도 다양한 색으로 채색된 사람들이 흑·백의 양면성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말은,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를 따듯한 시선을 갖춘 작가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보다 냉철하고 냉혹한 시선으로, 사실적인 현실을 그리고 있으니까. 본디 현실은 냉정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종의 직접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흔한 말이지만 시대적으로 격변기가 아닌 때는 사실 없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전후 사정도 마찬가지다. 날 선 시선으로 시대를 포착해 각 인물에 투영함과 동시에 이 시대를 사는 인간에게 적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사명이지 않았을까.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그녀의 가슴 절절한 사랑(궁상맞기까지 한)을 표현한 그의 시선이 왜 날이 섰느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사랑은 헌신적이었지만 평생 보답 받지 못한 사랑은 스테판 츠바이크가 그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또 다른 표현 방법이다. 특히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으로 비춰졌던 그가 실은 너무도 세속적이다 못해 속물적인 인물이라는 데에는, 슬픔을 금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인간 심리를 구슬을 한알 한알 꿰듯 낱낱이 파헤치고 싶다면 또는 궁금하다면 수치·통계적인 심리서보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이 전하는 소설적 재미가 한층 흥미를 돋구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 지닌 모든 감정의 시작은 미비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는 걸, 저자는 이 한 권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건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이 있다는 건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순수, 광기, 집착, 욕망, 절망, 고뇌, 불안, 강박, 사랑, 믿음 등 생이 절대적인 건 이러한 감정들, 심리작용 때문임은 너무도 확고한 진실이지 않은가. 누군가 나에게 날 선 시선으로 인간의 감정을 밀도 있게 스캔한 작품 하나를 추천하라 한다면 단연코 이 작품을 건네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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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츠바이크의 소설을 만나다. 츠바이크를 “발자크 평전”으로 처음 만났고, “로맹롤랑” 등 그의 글에 푹 빠졌지만, 그가 소설가라는 사실은 잊고 있었다. 너무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그렸기에 ‘타고난 전기작가’라는 선입견이 마음에 새겨져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단편의 대가』답게 정말 훌륭한 소설가임을 실감했다. 인간의 마음을 한 가닥 한 가닥 엮어서 조금은 섬뜩함까지 느껴지는 거대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체스이야기>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자전적 회고록이라고 한다. 그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탄압 받고 원하지 않는 이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도 무의식 속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태인으로써 겪는 일들, 유태인이기도 원하지 않았는데, 오 신이시여! 왜 저를 유태인으로 만드셨습니까? 사랑과 짝사랑 그리고 광기. 너무나 많은 수식어가 붙는 사랑,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원망스럽고. 그 사랑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픔을 주고 씻기지 않을 상처를 남긴다. 많은 사랑이 아름답게 승화되기도 하지만, 혼자 한 사랑은 가끔은 상대를 감동시켜 사랑을 이루기도 하지만, 사랑에 집착한 혼자만의 사랑은 시든 장미처럼 휴지통에 버려지기도 한다. 살면서 한번쯤 사랑에 중독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술에 취해서 내뱉는 소리의 대부분의 사랑의 고통이고, 유행가의 가장 흔한 주제도 사랑에 대한 것이다. “철부지 어렸을 땐 사랑을 몰라. 세월이 흘러가면 사랑을 알아.” 사랑이란 참 묘한 작용이다. 광기에 대한 사랑. 개인에 대한 사랑보다는 애국심, 민족과 국가라는 이름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행한 잘못된 사랑은 수많은 불행을 낳는다. 수많은 유태인학살에 앞장 선 히틀러, 괴펠스, 아이히만 등도 나쁘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했고, 내 임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충성하였을 뿐이라는 보통 사람들, 나 아니면 이 위기의 국가를 구할 수 없고, 나의 행동이 민족과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 광기와 착각은 사회에 전염되고, 중독되고, 빠져들어 마침내 그것이 진리가 되어버린다. 광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아로새겨 진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다. 특히 전쟁이란 광기는 우리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인간이란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인지 모르겠다. <체스이야기>는 히틀러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벌인 잔인한 결과들과 유태인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중간자로 서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B박사의 입에서 나온 고통의 회고, 나치의 고문은 육체적 고통만 준 것이 아니다. 고립을 통해 정신적 고통을 주면서 서서히 말려 미치게 만든다. 이런 위기에서 그를 구한 것은 한 권의 체스교본, 이것도 잠시, 내 속에 만들어진 검은 말의 나와 흰말의 나, 내가 내 속에서 분열되어 서로 충돌하는 이상한 상태에 빠진다. 체스는 그의 최후의 구원이었고, 그 자신이 되어버렸다. 체스에 사로 잡힌 B박사, 즐거움에서 욕망으로, 점점 게임의 강박과 광기 그리고 광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존의지, 인간은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그러나 인간은 큰 고통과 상처 속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광기에 사로잡혀 춤추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전쟁은 인간성을 파멸시키는 공포, 이로 인한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다. 단지 그 상처는 마음 속에 숨어 자신을 파멸시킬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한 소녀의 마음을 그리다.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께’로 시작하는 편지, 나 모르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편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결코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일 수 있을까? 그것도 이미 죽은 여인이 당신에게 그녀의 삶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무서운 사랑, 첫눈에 반하다. ‘처음 본 바로 그 순간’ 한 사람의 삶이 변화한다. 지독스러운 종말을 가져오지만 결코 멈출 수 없다. 그녀는 장미처럼 시간을 치장하다 시들고 버려지는 존재인지, 영원히 사랑으로 간직하면서 인간의 세상을 떠난 것인지. 당신은 한 사람만을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그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나요? 한번 사랑하면 그 사랑은 영원한 것이기에 오늘도 사랑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한 사람에겐 지고 지순한 사랑이었지만, 다른 한 사람에겐 하룻밤의 육체적인 쾌락에 불과했다. 그녀는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사랑했지만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다. 상처와 사랑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인지. 그의 기억에서 사라진 그녀는 이미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는지 모른다. 인간은 이렇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한 없이 잔혹해질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그 잔혹함을 견뎌낼 수 있는 생명체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기도 하고, 단지 욕망에 춤추기도 하는 그런 존재가 인간이다. 세상이란 어쩌면 힘든 삶을, 사랑이 있기에 견딜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했는데. 그는 나를 사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짝사랑의 허망함이여! 아, 슬픈 인간의 운명이여! 왜 이 두 편을 하나로 묶어서 출판을 했을까? 인간이란 이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다. 인간의 광기. 그 속에 생존욕구와 사랑, 사랑의 광기. 그 종말은 상처를 가슴 깊숙이 새겨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낙인 찍는다. 남자인 저자가 그린 섬세하고 아픈 이야기. 미치도록 살고 싶어하는 한 남자, 지독히 홀로 사랑한 한 여자, 사랑 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한 것도 사랑이었지만, 삶의 의미를 잃게 한 것도 사랑이었다. 그 속에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본다. 나 같으면 이런 사랑을 하지 않으리. 하지만, 사랑이란 알 수 없는 존재이니, 그 운명을 피해갈 수 있을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모르고, 유희적이며 육체적인 사랑에 몰두하는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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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짧지만 강력한 이야기. 문장속의 상징과 비유로 인해 책장을 덮고도 여운이 많이 남고 생각하게 만든다. 글쎄, 사람은 자신이 아는 이야기만 쓸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믿는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전쟁을 견뎌낸 작가가 그가 경험한, 극단적인 인간심리로 인해 이렇게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게 했고, 과연 그것에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체스이야기]는 도나우강에서 부모를 잃은 가엾은 고아 미르코 첸토비치로 시작된다. 다행히 신부의 보호아래 놓였지만, 허공을 보는 것외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첸토비치는 어느날의 계기로 체스천재로 떠오른다. 하지만, 상상력의 부재와 자아도취, 부의 추구, 교양의 부재로 손가락질을 받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에 읽는 내가 불편했다. 뭐그리 완벽함을 바라누. 하지만, B박사의 등장으로 첸토비치를 바라는 시선이 바뀌게 된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물건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모든 것을 고립시켜놓은 나치의 심리적 폭력은, B박사라는 광기의 피해자로 만들어놓고..첸토비치 또한 '자아도취와 상상력의 결핍'으로 미리 실마리를 주어놓은 말로서 교묘한 manipulator로서, 또 책 뒤 해설에서 밝혀놓은 '그(!)' 실제인물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은 있으나, 인간관계를 맺지못하며 오히려 약점을 이용한 교묘한 폭력을 휘두르는...순간 무서웠다.
[낯선 여인의 편지]는 원래 영화와 함께 보기 위해 읽은 것인데, 눈으로 읽기보다는 소리내어 읽으면 딱 맞을, 산문시와도 같다. 대략 살펴본 영화보다 더 가혹하지만, 더 순수한 (타인의 눈으로는 더 타락하였을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순정을 팔지않았다) 인생을 살았던 여인의 마지막 애절한 편지. 자신을 알아보기를 그리도 간절히 원했지만, 그리도 간절했음에도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대신 일초만에 알아본 요한의 눈길에 큰 아픔을 느끼는...(와우, 요한이 알아보는 순간 읽던 나도 숨을 멈추었다)
또한, 가난한 이가 구걸하러 오면 미리 돈을 주지만 눈을 마주치지않는 부분에서, 사랑하는 이지만 그의 본성을 캐취하고 좌절하는 부분에선 나도 가슴이 아프고...
글쎄, 현재의 눈으로서는 13살 이후에 오직 한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집착이라고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결혼을 하면 ' 그 한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불가능하지않다는 듯이 살아갈 수 있듯, 태어나 오직 한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너그러히 받아들여줄 수도 있지않을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은 가식이다...사랑한다면 쟁취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나이지만, 이 뼈속까지 아름답고 착한 여인의 편지는 어느 부분 하나 뭐라할 구석이 없이 진실됨이 느껴진다.
p.s: 다음은 영화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1948)]의 리뷰: 너무 길어져 이동 (http://blog.yes24.com/document/696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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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소설은 다 읽고 기분이 꿀꿀해져야 제맛인 것 같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낯선 여인의 편지> 역시 읽은 뒤에 상큼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역시 슈테판 츠바이크의 명성에 어울리는 걸작이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열세 살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어느 유명 소설가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한 어느 여인의 고백이다. 어린 시절 옆집에 이사를 온 소설가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소녀는 몇 년 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 바람둥이 소설가와 사흘간 사랑을 나눔으로써 아이를 가진다. 그러나 남자에게 그녀는 스쳐가는 수많은 여인 중 하나였을 뿐. 소설가를 병적일 만큼 사랑하고 그의 아이까지 낳은 여자를, 남자는 훗날 다시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을 나누면서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수많은 거리의 여자로 생각하는 소설가에게 여자는 절망하지만 끝내 먼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가 알아봐주기만을 기다린다. 결국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들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 역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편지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데….
그렇지만 과연 이런 그녀의 죽음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소설을 통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겉으로는 여자의 순결을 옹호하면서도 공창제도로 돈을 벌어들이는 당시의 이중적인 성도덕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다르고 환경도 다른 지금의 내게 이 책의 교훈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내게 이 소설은 ‘잘못된 첫사랑은 치명적이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소설가가 첫사랑을 주제로 작품을 써왔지만 그중 어느 정도나 그 사랑이 아름답게 이루어졌을까. 아마도 그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이 <낯선 여인의 편지>도 그렇고 톨스토이의 <부활>도 마찬가지며, 며칠 전 읽은 미우라 아야코의 <죽음 저편에서도>라는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설가의 옆집 소녀도 하녀 카튜사도 악녀 리카도 모두 잘못된 첫사랑의 희생자였었다. 굳이 소설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도 가끔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다.
성인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씁쓸하고 아픈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씁쓸하고 아픈 실패의 기억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행스럽고 아름다운 것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사춘기를 맞게 되면서 본능적으로 사랑도 갈구하게 된다.
그러나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첫사랑은 위험하다. 지금 첫사랑에 빠진 소녀, 그리고 제2, 제3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늙은 소년들은 자제하기 바란다. 그리고 스무 다섯 살 이전의 연애와 서른 살 이전의 결혼은 법률로 막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또한 청소년 보호법은 더욱 강력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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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선생님이십니다. 소설 <연민>의 작가이시고 1881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분의 유일한 장편으로 알려진 <연민>을 읽어보셨습니까? 안 읽어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죽입니다. 제가 그거 네이버 오늘의 책에도 소개했는데 말이죠. 마음 같아서는 내일의 책과 모레의 책에도 소개하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아주 유니크한 소설이거든요. 이 책에는 선생님의 단편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죽여줍니다. 장편에서 보여주었던 슈테판 선생님의 특질이 단편에서도 고스란히 살아있어요. 국물이 끝내준달까. 한눈을 팔 수 없습니다.
슈테판 선생님의 작품은, 어쨌거나 제가 읽은 소설은 백 퍼센트 심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브그리예 선생님의 <질투>에서 느꼈던 정말 엄청나다고 느껴질 만큼 집요했던 시선이 슈테판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심리적으로 묘사됩니다. 정말이지 집요하게 묘사되지요. 그래서 흡인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같이 숨을 죽이고 읽게 되는 그리 흔치 않은 소설 중에 하나라구요. 작중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를 묘사해 나가기는 하지만 독자의 심리 변화 또한 꿰고 있는 듯, 이야기 전개의 완급도 끝내줍니다. 뭔가 대단히 몰아가는 솜씨가 와우, 님 좀 짱이시지요. 마들렌 선생님의 <벽>이라든가, 야마다 에이미 선생님의 <풍장의 교실>에 등장했던 심리묘사에 반했던 분들은 그들의 할아버지 소설쯤 되는 이 엄청난 소설을 놓치지 마세요.
한 편은 체스 세계챔피언과 견줄만한 실력을 가진 이름모를 사나이가 그런 실력을 갖게 된 사연을 그린 작품이고요, 다른 한 편은 어떤 바람둥이 작가에게 날아온 제목 그대로 낯선 여인의 편지를 소개한 내용입니다. 두 작품 모두 극강의 레벨이구요, 두 말 하면 잔소리입니다.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상징적인 작품성 또한 녹록치 않더군요. 작품 배경에 깔린 이면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요런 해설, 괜찮았어요.
세계 3대 전기 작가로 더 많이 알려진 만큼 소설 작품은 많지 않은 선생님입니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어요. 천재가 단명하는 것처럼 많지 않은 작품이라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명작 고전이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라지요. 득템에 목마르신 분,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달려들어 주세요. 오늘 리뷰가 어쩐지 매끄럽지가 않네요. 홈쇼핑 내레이션도 아니고. 비가 와서 그런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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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최근 장편을 연이어 읽은 터라 환기와 숨 고르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몇 년 전에 읽었던 전기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와 최근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영감이 된 작품 '어제의 세계'의 작가였다. 01. '체스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뉴욕에서 출발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여객선 안에서 일어나는 세계 체스챔피언 첸토비치와 승객들, 그리고 우연히 나타난 B박사와의 작지만 소란스런 체스게임이라는 커다란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1938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방할 당시 B박사가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게슈타포에 체포된 B는 나치스의 강제수용소가 아닌 호텔에 감금되어 '무의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체스교습서를 훔치게 되고 이를 이용해 그러한 고문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더 큰 정신적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조실부모한 뒤 신부에게
거둬들여 진 첸토비치는 사회성이나 인지능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지만, 체스에서 천재성을 보이게 된다. 첸토비치는 모든 것에
무관심한 자세를 고수하는데, 체스 게임을 하는 자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첸토비치의 게임방식은 B에게 게슈타포에 당했던
고문을 연상시켰고, B는 흥분, 긴장의 고조와 함께 점차 자제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체스로 각기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 우연한 계기로 이뤄진 게임 속에서 그 세계가 만나는 순간, 그 교차점이 이야기의 절정일 것이다.
곱씹어볼수록 게임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02. '낯선 여인의 편지'에서는 평생 한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사랑한 어느 여인의 고백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가 R은 어느 날 낯선 여인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아이의 죽음을 알리며 시작되는 편지에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의 말 빼곡하게 담겨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여인의 사랑이 지극히 정상적이라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아봐 줄 것, 찾아줄 것이라는 수동적 자세에 안타까움과 동시에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여인이 R에게 자신이 간직한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할 수 있었다. R은 여러 여인과 자유로운, 가벼운, 방종한, 유희적인 연애를 즐기는 사람이다. (R의 연애방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녀는 무엇보다 소중하며 삶 전부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사랑이 R의 앞에 던져질 상황에 두려움을 예감,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에 측은함을 느꼈다. 사랑받길 원하고 알아봐주길 바라는 소녀의 순수한 짝사랑이 무너지고 비틀리는 과정, 그녀의 삶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평생에 오직 한 사람, 당신만을 사랑했다고 열렬히 고백하는 편지. 그 속에 담겨 있는 비밀들을 발견하면서 R이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는 일은 독자들에게 주어진 숙제이리라. 03. 두 작품 모두 짧고 명확하여 읽기 수월하다. 또한, 읽는 이에게 상상의 공간을 남겨두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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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장편 <초조한 마음>을 읽고 매료되어 그의 다른 작품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기로 했다. 주된 내용을 미리 알고 읽었어도 그 여인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이 신에게 자신을 맡기는 수녀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광녀로 보였을 수도 있을만큼 말이다. 한 남자의 하룻밤 상대임을 알고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도 죽는 날까지 그를 원망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츠바이크의 문장은 물흐르듯 유연하고 장미처럼 우아하고 풍성하다. 품위를 지키고자 했던 그 시절의 로망을 살짝 엿보기도 했다. 그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의 고통은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외롭고 레미제라블을 연상시키는 빈민구제소에서 그의 아이를 낳고 인간모독을 겪고는 아들을 상류학교에 보내기 위해 창녀로 살아가는 그녀. 열정과 편집증 사이를 오가는 그녀의 몰입된 사랑에 잣대를 들이대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