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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1959~ )의 저작 중 두 번째로 읽는 책이다. 전작인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저자는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번 책에서는 동적 평형이 생명체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동적 평형을 이루는 것이 왜 중요한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야기한다.
《동적 평형》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부터 7장까지는 뇌, 소화, 다이어트, 식품의 안전성 등으로 테마를 나누어 설명하고 마지막 8장에서는 저자가 새로운 생명론으로 제시하는 동적평형론에 대해 소개한다. 이 책의 본문은 그동안 궁금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던 질문에 의미심장한 답을 찾아주며 시작된다.
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걸까? 새해가 된지 얼마 안된듯한데 열흘이 넘게 지나버렸다. 나만 세월이 빨리 흐르는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면 다들 그렇단다. 게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가속도가 붙어 더 빨라진다고 한다. 궁금하긴 하지만 합리적인 답이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이 책에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았다. 저자는 그 이유를 ‘체내시계’의 메커니즘에서 찾는다. 단백질의 신진대사 속도가 체내시계의 초침인 셈인데 나이를 먹으면서 신진대사가 느려지며 체내시계 또한 느려진다. 하지만 우리 뇌는 이것을 감지할 수 없다. 즉 몸으로는 반년 쯤 지났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1년이 흐르는 것이다. 내 생명의 회전 속도가 실제 시간의 경과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p.36) 우리가 착각하는 건 시간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오랜 기간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되어 세상을 도식화하고 단순화시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목적은 생존 자체가 아니라 생존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저자는 ‘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걸까?’하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착각과 편견에 사로잡혀있는지를 지적하며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싼 화장품이 효과도 좋을까? 나는 화장품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피부에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지 가격이 비싸거나 특별한 성분이 첨가되었다고 해서 피부에 더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화장품을 고를 때 좋은 성분이 들어있다고 하면 눈이 가기는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신이치의 답은 ‘No’이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세포로 흡수되고 단백질로 재합성된다. 새로운 단백질이 합성되며 기존의 단백질은 분해되어 배출된다. 콜라겐은 피부의 탄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단백질이지만 체내에서는 다른 단백질과 마찬가지로 아미노산으로 흡수되며 피부는 필요할 때만 혈액 중의 아미노산으로 콜라겐을 합성한다. 따라서 콜라겐 식품이 직접적으로 피부에 탄력을 주지는 못한다. 저자는 화장품에 대해서는 더한 팩폭을 날린다.
만약 콜라겐이 배합된 화장품을 이용한 후 피부가 팽팽해졌다면 그것은 콜라겐의 효과가 아니라 그저 피부의 주름진 곳이 히알루론산이나 요소(尿素), 글리세린 등의 보습제로 채워졌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p.64)
본문의 마지막인 8장에서 저자는 동적평형론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밝히고 이 이론이 기존의 생명론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생명현상은 모두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장은 펌프이며 혈관은 튜브, 근육과 관절은 벨트와 도르래, 폐는 풀무. 모든 신체 부위 시스템은 기계적 추론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운동은 역학에 의해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엄연히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생명을 해체하고 부품을 교환하며. 발생을 조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품화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유전자를 특허화하고 장기를 매매하며 세포를 조작하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 뒤에는 데카르트적인, 생명에 대한 기계론적인 이해가 있다. (p.188~189)
저자는 데카르트 이후 현재까지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상을 기계로 보는 시각은 자연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결국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는 주장한다. 생명은 기계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신이치는 그 해답을 루돌프 쇤하이머(1898~1941)의 동적평형론에서 찾는다. 쇤하이머는 동위체가 표식된 아미노산을 이용하여 쥐가 섭취한 단백질이 에너지와 호흡 등으로 배출되지 않고 몸 안에 퍼저 몸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분자가 정체된 상태로 있지 않고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환경의 일부를 우리가 음식물로 섭취하고 그것들은 잠시 머무르며 우리 몸을 구성하다가 다시 해체되어 환경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흐름을 쇤하이머는 ‘살아 있다’고 표현하며 ‘동적 평형’이라고 명명한다. 저자는 쇤하이머의 동적평형론이 그동안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아울러 건강,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이치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생명관이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조작하는 등의 문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생명은 기계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쇤하이머의 이론을 소환하여 동적평형론을 세계관, 환경관으로 확장시킨다. 그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여러 문제들을 새로운 생명론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보인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기대했던 만큼 농산물 증산에 기여하지 못했고, 장기 이식술은 아직 결정적으로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을 수 있을 만큼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만능세포의 분화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증식을 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기적적으로 만들어낸 복제양 돌리도 얼마 살지 못했다. 나는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일련의 사례는 생명과학이 과도기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평형계로서의 생명을 기계론적으로 조작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p.195~196)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윤리적 문제를 내포한 복제 기술에 반대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장기 이식마저도 동적평형론에 위배된다며 반대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장기매매 등의 사회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수혜자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 신장, 심장 이식으로 새로운 삶을 찾은 분들이 적지 않고, 더 많은 수의 환자들이 희망을 갖고 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적평형론에 집착하여 기계론적 생명관의 긍정적인 면마저도 배제하는 모습은 지나쳐 보인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동적평형론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자연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동양 사상의 기본이지만 검증할 수 없었기에 서양의 인간중심 세계관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저자는 이것을 과학으로 증명하여 보여준다. 철학적인 경구(警句) 같고, 때로는 시처럼 보이는 그의 생명과 환경에 대한 정의를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생명은 ‘흐름’이며 우리 몸이 그 ‘흐름이 잠시 머무르는 상태’라면 환경은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니다. 생명은 환경의 일부, 혹은 환경 그 자체인 것이다. (p.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