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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오게된 이유부터 불합리할 뿐더러 10년 형기가 끝난다고 풀려날 가망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기가 연장되거나 유배형으로 살게될지도 모를 무기수와도 같은 삶.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수용소일 수도 있고, 구 소련의 사회체제를 비유한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혹한의 추위, 강제노동, 배고픔은 인간의 존엄을 논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만든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인간의 삶은 이어지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된다. 이런 환경에서도 잔꾀부리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 슈호프, 이 모든 것을 신의 섭리로 생각하는 알료샤, 제 104작업반을 나름대로 이끌어가는 괜찮은 작업반장, 추린, 집에서 보내주는 소포가 그나마 위안이고 희망인, 체자르, 전직 해군 중령이자, 아직도 깐깐함이 남아 있는 부이놉스키, 하이에나같이 본능만에 충실한 페추코프, 답답하고 엄울한 하루를 재치와 해학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슴 먹먹한 슬픔과 분노도 같이 느끼게 한다. 교도관에 반항해서 중영장 10일에 처해지는 부이놉스키, 차가운 시멘트벽에 며칠에 한번 따뜻한 죽이 나오고 그 전에는 치아가 성하다면 먹을 수 있는 차가운 빵. 다들 이 10일이 그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반원들, 혹한의 노동에서 돌아와 이제 온기를 느끼려고 하는데 끌려가는 그를 보면서 한기로 몸이 떨린다. 누군들 이런 상황을 원했을 것인가, 그저 부당하게 처해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상황에 적응하는 각자의 모습은 다르다. 스탈린 체제에 대한 고발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우리의 현실이 수용소와는 많이 다르지만 인간의 모습에서는 많은 유사점을 보게 된다. 1/2/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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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많은 출판사에서 책으로 팔고 있다. 청목사에서 발간한 이 책은 첫째, 표지가 마음에 든다. 아픔을 아프지 않게, 갈망을 갈하지 않게 단순한 붓놀림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오타가 많아 약간의 짜증이 났다.)
청소년 논술용으로 만들었다는 느낌도 든다. 한자를 병기하고, 단어 뜻풀이를 해 놓았지만 그다지 어려운 말들은 아니었다.
수용소 생활을 다룬 다른 책들도 다수 있고 감옥과 같은 극한의 고통을 묘사한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이 책은 세밀한 심리적 묘사를 빼버리고 이반 데니소니치라는 평범한 농부 출신의 주인공을 내세워 단 하루 동안 일어나는 수용소에서 일상을 담았다. 그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서 수용소 생활을 통해 느껴지는 아픔과 고통을 후벼파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읽으면서 기름기 쪽쪽 빠진 훈제 요리를 먹는 것처럼 별로 아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면서 힘든 수용소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솔제니친은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한 출판사 담당자는 여러 원고 뭉치를 휴지통으로 던지며 읽다 이반~을 읽을 때는 양복을 입고 다시 정색을 하며 예의를 갖추어 읽었다고 한다.
나도 그러려고 해 봤는데,나는 결국 소파에 누워서 읽었다. 예의는 갖추려고 했으나 피곤에 지친 몸이 나를 따라주지 않았다.
수용소에서의 하루가 특별한 하루는 아니다.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또 그런 내일이 이어지는 하루이지만 그 하루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8년 동안 체험한 수용소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하루의 일기이지만, 결국은 8년의 이야기인 셈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의 군 생활 특히, 4주간의 논산 훈련소 생활을 떠올렸다.
숟가락을 잃어버리면, 다른 내무반에서 훔쳐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굶어야 되는 사회. 솔제니친이 겪은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건빵 한 봉지를 얻어 먹기 위해 식당 도우미를 자청하고 어렵게 받은 건빵을 화장실에 가서 친구와 함께 입속에 우겨넣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행군을 하다가 조교로부터 총을 비스듬하다고 등짝을 얻어 맞은 기억도 나고 자대 배치 받고 나서는 아침마다 점호 시간에 창고 뒤에서 맞은 공포의 폭력 시간이 떠올라 새삼 가슴이 아파오기도 한다.
의미요법을 만든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떠오르는 것 역시 같은 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이반은 의미요법을 잘 실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오는 소포를 일치감치 포기한 그.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내 하루를 돌아볼 일이다. 내 하루는 어떤 행복으로 칠해져 있는가? 온전히 내가 꾸려가지만 타인과 온종일 엮여져 있는 나의 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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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슈피겔만의 만화를 글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제 수용소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다른 공간, 가깝지만 조금은 다른 시간, 엇갈린 배경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이렇게 비슷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스탈린 시대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삶들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꿈 같은 이야기들 같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간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씁쓸함을 자아낸다. 내가 누리는 자유로움으로 인해 내가 행복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내 인생을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느 정도는 내 삶을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 마저 갖게 된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내가 더 열정적으로 살지 않는 것, 다른 조건들을 탓하는 것. 이런 것들은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행동들이란 걸.. 나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