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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과 자본주의의 관계는 한마디로 견원지간이다. 과거 150여 년 동안 서구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와 자본가에 대한 경멸을 널리 퍼뜨려왔다. 역사상의 반자본주의 운동을 살펴본다면19세기는 민족주의, 낭만주의, 반유대주의, 사회주의가 있고, 20세기는 공산주의, 파시즘, 반체제문화가 있고, 21세기는 반세계화운동, 녹색운동, 공동체운동, 뉴에이지운동 등이 있다. 저자 앨런 케이헌은 지식인과 자본주의의 갈등관계를 “정신과 돈의 전쟁”으로 형용하는데 지식인의 반자본주의 운동은 1848년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폭발했다. 물론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에 반대만 한 것은 아니다. 지식인과 자본주의가 서로 우호관계를 유지한 “정신과 돈의 밀월” 시기가 있었다. 바로 18세기 초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몽테스키외 등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친자본주의적 성향을 표출했다. 18세기의 많은 지식인들이 자본주의를 옹호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물질적 개선이라는 실용주의적 이유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과 사회에 자유와 평화 그리고 평등이라는 도덕적 및 정치적 이익을 안겨주는 원천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지식인들은 종교적 폭력(종교적 광신)과 정치적 폭력(전제정치)을 예방할 수 있는 원천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자유시장경제+근대적 기술+중산층+그런 것들과 결합된 일련의 가치와 태도”를 의미한다. 반면에 지식인이란 직업과 교육수준에서 아카데미아의 학자와 보헤미아의 작가와 예술가를 가리킨다. 이들은 신중하고 비판적인 담론을 즐기고, 도덕적 설교를 좋아하고, 독립과 자율을 중시하는 보헤미안 기질을 갖고 있다. 오늘날에도 자율은 지식인들에게 무척 중요한 덕목이다. 자율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 뿐만 아니라 시장의 힘으로부터의 자유까지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식인들에게는 시장을 형성하는 일반 군중의 욕구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지식인들은 시장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질문들을 제기할 책임이 있다. 토크빌이 말한 ‘계몽된 이기주의’를 넘어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향상시키고 개선시킬 수 있는 계층은 지식인 계층뿐이다. 바꿔 말하면, 자본주의는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의 도덕문화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시장문화와 도덕문화 둘 다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도덕적 목표를 갖고 있지 않으며,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거나 완벽한 인간존재를 가꿔보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처럼 도덕문화를 결여한 자본주의는 근본주의와 물질주의에 취약하기 마련인데 지식인들은 도덕문화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저자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반자본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지식인상을 제시한다. 저자는 지식인들이 막스 베버가 말한 목적윤리와 책임윤리를 동시에 실천해서 인간의 영혼을 가진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개선하는 것보다는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혁명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왔지만, 민주적인 자본주의사회에서 지식인들에게 적절한 역할은 자본주의에 도덕문화를 제공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지식인들은 준귀족이자 세속적인 준성직자들이다.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의 도덕적 실패에 대하여 도덕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준성직자로서의 임무이고, 사람들을 보다 나은 길로 안내하는 것은 준귀족으로서의 임무이다. 귀족인 동시에 성직자인 지식인들은 권력과 선을 다시 결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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