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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태우는 곳에는 결국 인간도 태우게 될 것이다 - 책을 학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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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가 잘 한 일 중 하나는 아내와 매주 화요일마다 2시간씩 경남도립미술관에서 미술교양강좌를 듣는거다. 책으로만 웹으로만 이해하던 단편적 지식들이 여러 선생들의 강의 속에서 엮어지는 것이 여간 즐거운게 아니다. 내가 공부를 참 잘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배움 이상의 큰 소득이다. 당나라 제일의 문장가 한유韓愈의 사설師說에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 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닌데,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스러우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의혹됨은 끝내 풀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큰 깨달음을 준 미술 강좌 첫 수업이 <<미술이 마음을 담을 수 있는가>> - (프랑스 야수파와 독일표현주의)다. 독일의 표현주의 작가들은 히틀러와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 찍혀 활동이 금지되고 그들의 작품은 몰수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망명의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퇴폐미술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일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책 이야기 하나만 더 하자. 유종필의 [세계도서관기행]에 '독일'편을 보면 분서焚書축제를 벌였던 현장인 베벨광장이 나온다. 악명높은 선전장관 괴벨스는 '반독일 정신에 대항하기 위하여'라는 깃발을 내걸고 당대 최고 학자들의 저서를 전국에서 수집해와 분서축제를 벌인다. 괴벨스는 그것들을 태우면서 "이 불꽃이 새 시대를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책을 학살하다.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진시황이 법가 사상으로 중국을 통일하면서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을 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사건을 "분서갱유焚書坑儒'라 부른다. 2천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오래 된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0세기에도 일어났고 양이나 내용으로 따져도 진시황의 그것에 모자람(?)이 없다. 아니 넘쳐난다.
p8. 책을 학살하는 두 가지 이유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책은 적의 상징물이었고, 피통치자에게는 자기 권리를 깨치게 하는 것이어서 통치자에게는 성가신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은 통치자에게 더 잘 통치하기 위한 지혜를 주는 생명과 영혼의 샘물 같은 것이었고, 잘만 활용하면 피통치자를 길들이는 데에도 어 없이 좋은 도구다.
책을 학살하는 것은 피통치자의 문화를 학살하는 행위다. 나치는 유대인과 유대인의 문화를 함께 없애려 했고 세르비아도 보스니아에서 이슬람의 문화를,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공산주의에 반하는 과거의 자국 문화를, 그리고 티베트를 탄압하면서 티벳의 불교문화를, 이라크는 쿠웨이트 문화를 태워없애려 했다. 책을 학살하는 행위의 동기는 자문화 우월주의일수도 있고, 열등감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의 유대인 탄압은 우월과 열등감이 동시에 나타난 경우다.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학적으로 변이되어 우생학을 만들었고 독일 제국주의는 아리아인이 적자適者라는 우월주의를 낳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배상금 문제와 겹친 경제적 위기의 어려움을 유대인의 음모와 경제적 독식 탓으로 보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독일 관리들은 유대인 학살 목표 수치를 1,400만으로 잡았고, 실제로 유대인을 학살한 숫자는 600만에 이른다. 폴란드에서는 90퍼센트의 유대인을 죽였고 70퍼센트의 책을 파괴했다. 보존된 책이 독일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것이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책의 여러 이야기 중에 나치 독일의 인종조의와 민족주의가 빚어낸 비극만 옮긴 것이다. 내가 지금껏 읽은 책 중 가장 긴 역자 서문은 저자의 노력의 흔적을 역자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책, 도서관, 문화 말살에 대한 다양한 고찰이 담겨 있고 독일 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중국, 이라크의 책의 학살도 각 나라의 역사, 정치, 이념적 이유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책의 학살은 민족의 학살, 문화의 학살이다. 이 책은 역사의 생채기를 더듬는 작업이다. 읽는 내내 안타까운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 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지막은 다른 책에서 빌어온다. 아래 글의 광장은 괴벨스가 분서 축제(?)를 벌였던 베벨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텅 빈 지하 서가를 만들어 투명 유리를 통해 안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책이 사라진 공간은 문화와 지성, 이성의 결핍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이 지하 서고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는 시인 하이네가 1820년에 쓴 작품에서 가져온 문구가 동판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단지 전야제에 불과했다.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태우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은 1백여 년 뒤에 벌어질 사건을 예견하고 쓴 것이나 다름없다. 시인의 놀라운 예지력에 소름이 끼친다. 유태계의 이 천재 시인은 지금 몽마르트 언덕의 공동묘지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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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으면 너무나 좋을 책
세계도서관기행. 유종필 지음. 前 국회도서관장. 현재 관악구청장 민주당 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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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르치스형 인간이다. 어릴 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읽으면서 두사람 가운데 어느 유형에 가까운지 나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그 때 알았다. 나는 기질상 나르치스 유형이지 결코 골트문트 유형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런지 나르치스의 눈을 통해 말년에 깨달음을 얻은 성자 골트문트를 바라보며 나는 일종의 질투심을 느꼈다. 당시 책의 제목은《지와 사랑》인데 골트문트가 사랑을 대표하기에 내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왜 지와 사랑이 일치할 순 없는가. 왜 평생 독서와 사색과 고행을 치룬 나르치스가 아니라 거칠 것 없는 탕아의 삶을 걸은 골트문트인가. 골트문트는 교리나 책보다는 몸의 깨달음을 중시했다. 이런 문자보다는 선화미소를 더 중히 여기는 불선의 가르침이 내게 당황함으로 다가왔다. 당시의 나는 골트문트의 경험주의가 책과 사유체계보다 낫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골트문트라면 전세계의 책이 다 없어져도 슬퍼하거나 감정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 않을 것 같다. 불립문자를 강조하는 이가 죽은 문자로 쓰여진 책의 학살에 대해 그렇게 큰 휴머니즘적 상실감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책의 학살자들에 대해 증오심을 가진다. 하이네의 말처럼 책을 불태우는 것은 언제나 결국 사람을 불태우는 것이다.
저자 레베카 크누스의 조작적 정의에 따르면 '리브리사이드(책의 학살)'는 문화말살의 일환으로 20세기에 대규모로 저질러진 책과 도서관의 파괴를 가리킨다. 예부터 책과 도서관은 문화와 정체성의 핵심으로 기능하였고,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책과 도서관은 약탈과 소멸의 대상이었다.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이념 또는 이데올로기를 말하는데, 특히 반세계시민주의와 반지성주의와 연관된 극단적 이념을 리브리사이드의 배후세력으로 지목한다. 예를 들어 폐쇄적 민족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가 책의 학살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틀로 거론된다. 사례로는 나치가 유럽에서(1939-1945년),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1991-1995년),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1990-1991년), 마오주의자들이 문혁기(1966-1976년)에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티베트에서 저지른 일련의 만행들이 폭로된다.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을 살펴보자.
「책과 도서관 파괴를 슬퍼하는 사람들과 책을 불 속으로 기꺼이 즐거움을 느끼면서까지 던져 넣는 사람들을 참으로 구별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류의 진보라는 목표는 20세기의 특징이기도 했던 문화에 대한 집단폭력 그리고 대규모 파괴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30쪽)
「책과 도서관들은 왜 계획적으로 파괴되는가? 책의 학살과 정치폭력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책의 학살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충격을 주는가? 책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데 사상들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그런 파괴가 잘 일어나는 사회문화적인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중요한 문제로서 책과 도서관은 무엇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인가?」(68쪽)
책은 이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행하고 있다. 저자의 해답이 낯설지는 않은데 우리도 역사왜곡이나 문화말살의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군사정권의 사상검열, 일본의 독도분쟁과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역사왜곡 등, 집단기억의 왜곡과 영토와 자원에 대한 권리주장을 내세우는 주변국의 음해에 시달리고 있다. 문화말살에 따른 책과 도서관의 파괴는 영화〈이퀼리브리엄〉에서도 드러난다.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풍부한 감정행위와 책, 미술, 음악 등 문화예술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금지하는 전제사회는 영혼의 삭막함을 드러낼 뿐이다. 대다수가 문맹인 시절 문자를 깨우친 식독계층은 비밀스런 신비의 열쇠를 쥔 소년처럼 들떴을 것이다. 책은 지배계층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생명체였고, 동시에 시민계급의 성장을 가져온 혁명의 매개체였다. 역사학자 바버라 터크먼의 다음과 같은 책의 정의는 매우 함축적이다.
「책들은 문명의 전달자다. 책이 없다면 역사가 침묵할 것이고, 문학은 벙어리, 과학은 불구가 될 것이며, 사상과 사색은 정지할 것이다. 책들이 없었다면 문명의 발달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책들은 변화의 엔진이고 세상에 달린 창문이며 '시간의 바다에 세워진 등대'다. 책들은 동료이자 스승이며 마술사고, 정신의 보물을 보관하고 있는 은행가다. 책들은 인쇄된 인간성이다.」(49쪽)
저자는 도서관의 사회적 기능을 역사, 집단기억, 신념체계, 민족주의, 사회발전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도서관과 민족주의간의 관계였다. 역자 강창래는 도서관은 책의 감옥이라는 섬뜩한 명제를 던지는데, 동네 도서관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서관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나에게 도서관은 언제나 즐거운 산책로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2010년 올해의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옮긴이의 세심한 역주를 보면 번역과 편집에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명의 발음표기가 다소 부정확하지만 영어 번역이기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오기고 이해에 무리는 없다. 20세기 책의 학살을 고발하는 정말 멋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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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도서관과 책은 나의 정체성이라고 말 할 수 있을만큼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어지는 ’학살’이란 단어에 공감한다. 내게 축척되어 있는 거의 모든것들이 도서관과 책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일것이다. 고로 책이나 도서관을 학살하는 행위는 내게서 과거와 현재 미래,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 사실과 거짓, 문화를 학살하는 행위로 내가 지워지는 것일것이다. 이렇듯 도서관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과 정보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매개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적, 정치적 기록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성장하게 하는 많은 것들에서부터 또 다른 나외의 많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들의 국가와 나라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곳이었다. 그 집단의 도서관을 파괴하는 것은 그 집단의 문화 발달을 총체적으로 방해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자기 존중감을 훼손시킨다. 그것은 또한 여러 측면에서 그 집단의 미래를 훼손시킨다. p114 책을 읽는 동안 문화말살의 대상이었던 우리네였기에 그 익숙한 역사 혹은 교과서 단어속에 우리 민족을 대입시켰고 이념의 갈등으로 비극이 빚어졌던 또 그 나라였기에 한 극단적인 정치 이념, 정권 아래서 금서나 불온서적, 검열, 안보라는 단어가 책속에 녹아들었다. 저자는 책의 학살을 어떤 집단의 문화를 완전히 혹은 상당부분 없애버릴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특정 행위를 뜻하는 문화말살p53의 한부분으로 이야기를 한다. 책의 학살을 특히 20세기에 대규모로 저질러진, 정부가 승인한 책과 도서관 파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려고 선택했다. 그것은 이념을 중심으로 짜여진 장단기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에 따라 실시된 의도적인 것이었다p31 하마터면? 이 책에서 이 나라에 가해진 민족 , 문화 말살 정책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저자는 인종주의이면서 민족주의 기관이 저지른 책의 학살 동기가 비슷한 일본제국보다 사건의 원형 나치 독일을 선택한 이유를 자료가 풍부해서 나치 독일 사례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렇듯 책의 사례로 나온 군국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를 이끈 극단적인 지도자에 의해 자행된 다른 집단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정통성과 우월성을 강조, 강요했던 20세기 책의 학살 이야기는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역사속에서 찾을 수 있을것 같다. 기록 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가졌다며 파괴 역시 같은 양식을 뛸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은 고대왕조가 바뀐 새 지배자가 들어서면 적이 되어버린 지난 왕조에 대한 조작,왜곡, 파괴하면서 정통성을 세우려 했던 역사의 기록과 인물의 제거, 일본에의해 자행된 민족말살정책과 문화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나라의 민족을 나타내는 정체성을 띤 모든것들의 파괴, 이념 대립을 넘어서 이념을 이용한 독재자에 의한 검열과 금서의 존재을 포함해 그 시대마다 기록하는 자들에 대한 철저한 탄압과 함께 선전동원의 수없는 사례속에서 우리나라 독자는 다른 독자들보다 원하지 않는 배경이었지만 한층 이 책의 사례를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추측을 해본다. 책의 학살을 말하기 위해 공통된 특징이 있는 인종학살, 문화학살이 자행되었던 20세기 사례로 독일 나치의 유태인에 대한 인종학살에서 독립적인 종교와 문화를 가진 티베트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책의 학살, 보스니아를 규정했던 다문화주의 무슬림에 대한 세르비아의 만행,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마오주의자들이 중국 문화혁명기 다섯가지를 소개한다. 이 모든것들이 극단적인 이념, 생각을 가진 한 개인이 사회적배경(빈곤과 무기력함)으로 인한 혼란스러움, 절망속의 사람들과 맞물려 일으키는 광란의 도가니처럼 보인다. (엉뚱하지만 도대체 어느쪽이 나쁘고 악일까? 한개인의 발화점으로 촉발된 끔찍한 역사의 사건들에서 그 많은 다수가 체면상태에 빠져들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아무래도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거겠지--;;;;; ) 정보와 지식의 소유는 부와 권위, 권력과 일맥상통하는 시대를 파괴한것은 인쇄술이란 기술혁명일것이다. 그 기술 혁명이 인터넷을 비롯해 많은 전자기기들로 대체된 오늘날 정보는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만들어내고 조작하여 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이지 않게 강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나 사실을 알기를 원치 않은 사례속의 지배자들처럼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과 책, 사람을 학살하기도 하고 그들은 파괴의 대상이었던 이 모든것들을 피지배자들을 길들이길 위해 정통성을 세우고 우월성을 강조하기위한 문제해결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나는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휴머니즘 쪽으로 경도되어 있고, 문화와 정체성의 보루로서 도서관의 중요함과 지적인 자유를 믿는다. p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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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책을 학살한다니, 섬뜩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면 내가 잔인한 인간일까. 어찌되었건 책을 학살하다는 제목은 나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고, 한 달여에 걸쳐 천천히 읽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책이 학살되어 온 역사를 담고 있다. 책을 학살하는 이유는 이전 왕조나 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정보를 차단하면 통치하기 쉬울 것으로 보아 우민정책을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책은 고대로부터 적의 상징물로 통했고, 그러면서도 책은 통치자에게 더 잘 통치하기 위한 지혜를 주는 생명과 영혼의 샘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통치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책을 불살라 없애고,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말살하고자 이용됐다. 지금은 대부분 이런 책의 학살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어디선가는 이런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책은 총 9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에서 3장 까지는 책과 도서관의 문화말살 현상과 책의 학살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고, 4장에서 8장까지는 독일과 세르비아, 이라크, 중국, 티베트에서 이뤄진 책의 학살 사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9장에서는 책이 학살되는 사상의 충돌에 대한 결론으로 되어 있다. 좀 어려운 듯도 해 보이지만, 책의 서문과 1-3장을 꼼꼼히 읽으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정권이 권력을 강화하면서 이념은 전체주의를 위한 이론적 근거가 된다. 이념의 정통성은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모든 이견과의 차이를 몰아내고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책과 도서관은 기억을 보존하고 증거를 제공하며 다양한 관점이 유효하다는 증거를 보관하고 지적인 자유를 누리게 해주면서 집단의 정체성을 지원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통제되고 검열되며 광범위하게 숙청되기까지 한다. 만일 변혁을 방해하거나 이념의 목표를 더 이상 이루지도, 이룰 수도 없게 만들 집단으로 판단되는 적과 텍스트가 너무나 밀접하다면 그것들은 배신자 집단과 함께 공격을 받는다. 사람의 목소리를 없애려 할 때 그 목소리를 물질적으로 표현한 텍스트도 함께 파괴된다. 짧게 줄이면 이것이 책의 학살의 역학 구조다" p156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책의 학살사건 이면에 있는 의미(이념과 통치의 문화말살정치)를 알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책이 무엇인지, 책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책을 학살까지 해야했던 두려움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 모든 것이 궁금하다면, <책을 학살하다>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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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섬뜩함, 그리고 궁금함......그런 심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은 두꺼운 책 두께에 처음엔 주저하게 되었지만, 점점 작가의 지적인 영역의 광대함에 놀라며 책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지식으로는 이런 책을 쓸 수 없었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읽을수록 문화와 정치, 권력 등이 연결되어 세상을 이루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해준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수메르나 아시리아, 고대 이집트, 고대 중국에서 문자가 시작되었고, 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정치 권력이 바뀔 때마다 도서관을 파괴하는 의례를 치러야했다는 그 부분에서 볼 때, 세계의 역사든 국가의 역사든 간에 반복되고 순환되는 역사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정치 체제가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도서관을 파괴하고 책을 불태워버리는 일들을 아시아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저질러버리고, 민족주의, 군국주의를 앞세워서 군중들을 들뜨게 만들고 흥분하게 하여 자기 세력을 만들어 가는 모습들이 사람의 한계라는 것을 느꼈다. 책과 도서관은 기억의 창고로서, 비판적인 생각을 지원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폭력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무자비하게 통제해야만 했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학살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장점은 세계 역사를 한 눈에 짚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히틀러, 나폴레옹, 스탈린, 사담 후세인, 중국의 황제들 등 모두들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비슷한 수법으로 무참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정신까지도 말살시키려 책을 불살라버렸다.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책들이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종교에 있어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종교가 ’사랑’, ’자비’의 마음일텐데, 종교의 이름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본다. 하나님의 교회 추수회의는 피츠버그 근처에서 헤밍웨이, 칼릴 지브란의 작품을 비롯하여 신을 모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판단된 책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같은 해 3월 28일 조지아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책이 불타 없어졌다. 같은 해 자카르타에서 민족주의자와 이슬람 교도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담은 책들을 모조리 불태워 없앴다. 이런 일들이 끊임 없이 반복된다. 알수록 불편한 진실을 접하게 된 느낌이라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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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과 도서관인가... 20세기 이념으로 중무장한 책의 학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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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람들은 책에 열광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을 두려워 하는 걸까?! 가끔씩 “왜 책을 읽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있지만, 특별히 “왜 책을 두려워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거나 받아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를 마주한 지금쯤, 한 번은 던져 봐야 할 질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 사람들은 책을 두려워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책을 학살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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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라는 소설 속 멸망한 지구에선
이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는
분서갱유나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 있었다던
한번이라도 읽고 싶은 책을 구하고 소장하려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책을 사랑하는 이에겐 너무나 충격적이고 비통한 역사를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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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책을 학살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다. 음, 언뜻 들어도 과거에 자행되었던 몇 가지 경악스런 사건들이 떠오르는 단어이긴 하지만 그래도 생명이 아닌 책에게 '학살'이란 단어를 쓰다니, 참 독특했다. '책의 학살' 이란 뜻의 libricide란 영단어는 나치의 유대인 인종 청소로 대표되는 인종말살 즉, genocide란 영단어와 '문화말살'이란 ethnocide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정의되어 있는 이 단어는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책'을 '죽임'을 뜻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책의 학살'은 정부가 승인한 책과 도서관 파괴를 가르치는 용어로 쓰이는데, 그 중 특히 20세기에 자행된 일들을 말한다. 실례를 들자면,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나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내전, 이라크가 쿠웨이트에게 자행한 일들, 중국공산당이 티베트에게 저지른 일 같은 것들. 사실 그런 일이 자행된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안히 매스컴에서 보도되어진 모습만 전해받는 우리에게도 지식인들과 함께 책을 불태우고 도서관을 파괴하는 일들은 경악스러운 일로 비춰지는데 그것을 눈 앞에서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이 안 간다. 내가 이렇게 책을 끔찍이도 사랑하게 되기 전에도 책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인간들만 사는지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치의 유대인 책 파괴나 세르비아의 무차별적인 폭격에는 인간의 한순간에 벌어지는 광폭한 광기 같은 악마성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여러 흔적들이 남아있다. 먼저 이런 '책 학살'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인종말살'이나 '문화말살' 정책과 함께 진행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말은 책이 곧 문화의 보고이자 정수임을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한 인종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지식인과 그 지식인의 지식 창고인 책이 더불어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책이 같이 말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왜 자행되는 것일까. 왜 한 민족을 청소해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같은 인간에게 드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우선 역사적인 상황을 알아야 한다. 일단 나치 독일을 예로 들어보면,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암울한 상황에서 독일은 자신들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위해서 철저하게 전체주의와 민족주의를 신봉했다. 그런 사상을 신봉하기 위해서 그 사상과 배격되는 다른 사상을 일체 거부했는데, 이 때 나타난 것이 '책 학살'이다. 자신들이 신봉한 사상을 1%라도 위협할 수 있는 사상이 있다면 철저하게 배격하고 배제했는데, 그렇다보니 개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휴머니즘과 인권을 보장할 수 없었다. 워낙에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요시하는 전체주의와 선민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독일이다보니까 자신들과 조금만 달라보여도 금방 마음이 불안해져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종청소다.
자신이 옳다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나치의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다른 의견이라도 존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인간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원칙을 지킨다면 '책 학살'이나 '인종말살'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 보장이 중요하다고 해서, 휴머니즘이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강요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것이니까 말이다. 또한 지식인들을 자신의 권력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라도 '책 학살'을 이용하기도 한다. 나치 독일이 인종주의라는 근거를 내세워서 유대인들은 비천하고 아리아인들이 가장 우수한 인종임을 주장했던 것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책을 버리고 자신의 사상을 뒷받침하는 책들만 남겨두고 보급한다면 뭔가 알고 있다는 지식인까지도 최면을 걸 수가 있다. 사회분위기를 한 가지 사상만을 옳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지식인들을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그런 지식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책이 없는 것을 찬양하고 심지어 스스로 개인 소장물을 파괴하는 행동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기까지 한다면 이런 최면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상을 통제하는 방법으로도 '책 학살'을 이용하는데 닫힌 사회에서는 그런 최면이 절대적으로 유지가 되기 때문에 인류 전체의 보고인 도서관을 파괴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끔찍한 일을 벌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류 문화 유산을 파과하는 행위에 대해서 국제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책 학살'이 인류 문화의 발전에 위배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면서 강제적인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국제사회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정신을 차렸다. 먼저 헤이그조약, 로에리히조약을 체결했고, 더 나아가 유엔의 설립과 유네스코의 설립으로 문화재를 보호하는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류의 번영에 위배되는 행위를 마음껏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자마자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각 민족의 중심 가치가 국제사회에서 생각하는 휴머니즘과 어긋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탈레반이 종교적인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고대의 바미안 석불을 파괴했을 때도 국제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단 탈레반이 그런 일을 자행한 것은 서구열강들이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에는 원조를 해주면서 아이들이 굶어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굳이 그런 일을 행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도서관과 문화재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모든 민족들이 공통된 가치로 생각하고 있어야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가 있는데, 모든 민족의 가치가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일단 이제 시작이니까 개방된 생각으로,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해서 차차 이루어나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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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학살이 일어나는 메커니즘 "사실 책을 파괴하는 것은 그런 두려움을 표현하는, 즉 책의 힘을 찬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11). 이 책은 내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살인사건과 종교와 도서관과 권력의 비밀을 둘러싼 미스테리말이다. ’libricide’라는 단어(말)가 존재할 정도로 책의 학살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요, ’전통’으로 인류 사회에 존재한다. 역사는 책을 학살했던 사건들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임을 말해준다. 인간 역사에서 특정한 사상을 배격하여 책을 불태우는 책의 학살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인간과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물은 없다고 하는데, 왜 인간은 마치 자살을 하듯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일까? 이 책은 책의 학살 역사와 현상을 고찰하며, 20세기 사례를 분석한 ’논문’으로 읽힌다. 이 책에서 사용되는 ’책의 학살’이라는 용어는 특히 20세기에 대규모로 저질러진, 정부가 승인한 책과 도서관 파괴를 가리키고 있다. 저자가 특별히 20세기를 구분하여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논제를 요약하면 이렇다. 20세기 이후에 벌어진 책의 학살은 종교를 대신한 국가에 의해 합법성과 사회적인 정당성을 부여받으며 책의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대규모 학살 사건, 즉 독일, 세르비아, 이라크, 중국, 티베트에서 벌어진 다섯 가지 학살 사건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논증을 펼친다. "책의 학살은 인종말살과 문화말살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난 종속적인 현상 또는 부차적인 형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1). 정부나 체제에 의해 주도되는 책의 학살 사건은 인종말살과 문화말살을 일으키는 동일한 메커니즘에 의해 벌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학살이 일어나는 원인과 이유를 책이 가진 ’정치성’에서 찾고 있다. 체제를 강화하는 통치 방편이 될 수도 있고, 또 체제를 전복시키는 위협적인 힘이 될 수도 있는 책의 정치적인 속성이 ’무기’로 또는 ’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데올리기 시대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의 극단적인 정치권력은 자신들과 이념이 다르거나 그 이념을 방해하는 사상을 없애려 했다. 그 방법이 바로 ’책의 학살’이었던 것이다. "정권이 권력을 강화하면서 이념은 전체주의를 위한 이론적 근거가 된다. 이념의 정통성은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모든 이견과의 차이를 몰아내고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책과 도서관은 기억을 보존하고 증거를 제공하며 다양한 관점이 유효하다는 증거를 보관하고 지적인 자유를 누리게 해주면서 집단의 정체성을 지원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통제되고 검열되며 광범위하게 숙청되기까지 한다. 만일 변혁을 방해하거나 이념의 목표를 더 이상 이루지도, 이룰 수도 없게 만들 집단으로 판단되는 적과 텍스트가 너무나 밀접하다면 그것들은 배신자 집단과 함께 공격을 받는다. 사람의 목소리를 없애려 할 때 그 목소리를 물질적으로 표현한 텍스트도 함께 파괴된다. 짧게 줄이면 이것이 책의 학살의 역학 구조다"(156). 이 책은 ’책의 학살’을 예방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로 나아간다. 제도와 합법성 하에서 자행되는 책의 학살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막을 제도와 합법성을 보완하고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분석한 사례는 모두 외국의 것이지만, 우리에게도 책의 학살은 낯설지 않은 경험이다. 그런데 책의 정치적 속성과 정치 권력의 대응과 반응을 읽으며, 현 정치권의 방송장악 논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20세기에 자행된 책의 학살 사건보다 우리의 방송장악 논란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싸움은 더 이상 신념(이념)이나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원시로 퇴보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은 한 편의 논문처럼 책의 학살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 틀과 사례 분석이 논리적이다. 이떤 주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해와 통찰을 원할 때 가장 먼저 ’논문’을 찾아보는 습관을 가진 내게는 더 없이 만족스러운 책이다. 또 하나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5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가볍다는 것이다! 주제와 내용, 그리고 부피의 무거움에 비해 실제 무게는 상당히 가볍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