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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시인을 골라서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렵거나 쉽거나 읽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러 편의 시들이 한꺼번에 모아져 있는 책이라면 안심하고 고른다. 게다가 그 엮을 작가를 믿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시를 골라 읽고 그 내용을 잘 모를 때나,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잘 모를 때도 있는데 이 책은 친절하게도 시를 읽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설명글? 사유의 글이 함께 적혀 있어서 시감상에 도움을 준다.
소설처럼 차례차례 읽어야만 내용을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어느 곳을 펼쳐도 읽을 수 있고, 마음에 와닿는 내용들이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김용택 시인이기에 자연에서 살아가는 시인이기에 옛 정서들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세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공감이 더 많이 되는 것 같다. 따뜻하고 정겨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시와 함께 옛정서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시집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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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본다. 저자 김용택 시인의 촌평 내지는 감상부터 적어본다.
“유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쌍화점〉등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배짱도 좋다. 영화판이 어떤 곳이라고 거기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아마 유하는 가슴속에 잉잉거리는 호박벌 떼를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호박벌 떼를 가두어놓고 있으니, 속이 얼마나 잉잉거리고 복잡하고 뜨겁겠는가. 그는 그런 자기의 속을 황홀한 감옥이라고 말한다.”
-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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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새로 담근 김치를 들고 아버지가 오셨다.
눈에 익은 양복을 걸치셨다.
내 옷이다. 한 번 입은 건데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린 모양이다.
눈에 익은 셔츠를 걸쳤다.
내 옷이다. 한 번 입고 어제 벗어놓은 건데
빨랫줄에서 걷어 입은 모양이다.
“이 시에 대해서 할 말 없다. 이 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은 각자가 알아서들 하고, 할 말들 다 각자 알아서 하라.”
그래서 내가 몇 마디 덧붙여본다. 이 시의 1연과 2연의 공통점은 ‘딱 한 번’이다. 한번씩 밖에 안 입은 옷들이다. 시인의 서운한 마음? 아니다. 그런 건 안 보인다. 그냥 정겹다. 여유롭지 않은 삶 속에서 어렵게 장만한 옷 한 두 벌,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온 식구들 거다. 같은 상황도 해석하기 나름이고, 소화시키기 나름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이 ‘가족’이다.
책 띠지에 있는 저자 사진은 그의 나이를 다시 보게 만든다. 동안이다.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진짜 웃음이다. 1948년생이니까 66살?
정년퇴임 스케치를 일간지 문화면에서 본 듯하다. 그가 가르쳤던 초등학생이 성년이 되어서(시인이 되었다던가?)퇴임식에 참석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 같다. 산골에서 선생을 하면서 문학에 빠져들어 14년을 혼자 공부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외 8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여러 권의 시집, 산문집을 출간했다.
산골마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단순히 ‘지도’라고 표현하기엔 그의 역할이 컸다)순박하고 부드러운 그 마음속에 시 씨앗을 심어주었다. 아이들이 쓴 시를 읽어보고 가슴이 찌르르 하던 기억이 있다. 김용택의 책상엔 로댕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고 한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인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살고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는 자존심과 열정, 그리고 의지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앞서 출간된 『시가 내게로 왔다』 1,2권은 우리나라 근대 서정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 이용악에서 박용래와 김수영, 서정주와 고은을 거쳐 장석남, 유하에 이르기까지 근대 초창기 시에서부터 근, 현대 시사(詩史) 100년에 빛나는 아름다운 시들을 두루 엮었다.
이 책은 그 시리즈 3권이다.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라고 되어 있다. 저자의 아는, 모르는 시인후배들의 시작품이리라. 이 책에서처럼 현시대에서 시를 자아내는 젊은 시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봄직하다. 저자의 감상평은 덤이다.
‘엮으면서’중 일부를 옮긴다.
“모아진 시들을 다 읽고 나서 세상을 둘러보니 나는 딴 세상에 와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답답한 굴속에서 막 빠져나온 후련함을 맛보았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는 쉽게 말해왔다. 우리 시가,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쉽게도 젊은 시인들을 외면해왔다. 추억은 사람들을 게으르게 하고 이것저것 쓸데없이 ‘보수’하게 만든다. (‥‥) 젊은 시인들의 시 속에서 나는 근대를 넘어선 현대의 짙은 음영을 본다. 자본이 만든 도시의 음울하고 잔인한 음모가, 그 검은 손길이 인간을 넘보는 불안과 긴장의 냄새를 맡는다. 정말 너무나 난감해서 감당하기 힘든 문명 이전 같은 이 야만의 시대에 낯선 시들이 찾아와 나를, 내 온몸을 떨게 한다. 시인에게 꿈은 욕이다. 그러나 이 어인 헛것인가. 저기 저 강굽이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흐르는 물 위로 늘어져 물을 보며 새 눈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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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선생님 김용택이 읽은 '젊은 시' 들을 모아 놓은 시집이다. 거기에 시인이 나름 시에서 느낀 느낌등이나 그외 인간적인 면까지 써 놓아 좀더 시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음이 좋았다. 올해는 시집을 많이 읽어보리라 다짐을 했는데 시집을 구매한다거나 읽은 것은 몇 편 되지 않는다. 자꾸만 뒤로 밀리고 있는 시집 아니 詩, 그래서 난 더더욱 영화 '詩' 를 혼자 보러 갔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시강좌편에 물론 김용택선생님이 '김용탁' 시인으로 나와 우리들의 시가 지금 걸어가는 길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 놓듯 하는 장면들이 너무도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문학들에 비하여 등한시 되고 있는 시와 시인들, 하지만 분명히 시는 우리속에 존재하고 지금도 시인들은 시를 쓰고 있다. 나 또한 한때는 내 나름의 시를 쓰는것에서 행복감을 느낀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떼가 묻었는지 그 시심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나를 보듯 영화 '시' 에서 시의 추락처럼 한 인간의 삶이 저물어 가고 있다. 그 잔잔한 감동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난 좀더 올해는 지났지만 밝아오는 새해에는 좀더 많은 시집을 읽어보리라 다시 다짐을 해 본다. 그런 가운데 만난 젊은 시는 느낌이 좋았다. 익히 아는 기형도의 '안개' 도 그렇고 내가 모르는 시들이 정말 많이 수록되어 그만의 느낌과 함께 인간적인 시인의 생활상까지 약간 들추어 놓아서 더 정감이 가는 시집이었다. 시만 한 번 쫙 읽어 본 후에 다시 처음부터 시와 함께 김용택님의 느낌을 곁들어 읽어보면 남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문학과 사회, 역사를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논할 만한 식견이 없다. 시문학을 평가할 능력이 애초에 내게는 없다. 그런 일들은 문학평론가들이 할 일이다. 나는 그저 이 시집을 엮으며 간간히 떠오르는 생각들을 여기 쓸 뿐이다. 나는 몇몇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두 손을 놓아버린 손의 자유를 느꼈다.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며 두 손으로 바람을 잡아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손가락 사이를 지나는 상쾌한 바람을 온 몸으로 들이켜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처럼 시는 어디라고 딱히 정해놓지 않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비행하듯 젊은 시들은 사랑이나 이별등에 갇혀 있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만나는 느낌과 언어이듯 불쑥 불쑥 솟아 나온다. 한때 사랑과 이별시가 유행했다면 이제 '시' 도 우리 일상 생활로 들어온듯 자유롭다. 느낌도 자유롭고 표현방식도 자유롭고 언어 또한 자유로워졌다. 어떤 시는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하는 느낌의 것도 있고 어느 시는 짧막하지만 모든것을 아우르듯 하는 깊음이 숨겨져 있다. '이 야만의 시대에 낯선 시들이 내게로 찾아와 나를, 내 온몸을 떨게 한다.' 그 떨림을 나 또한 느끼고 싶어진다. 소설이 아닌 짧은 언어들의 그 행간을 읽으며 '떨림' 을 느끼고 싶다. 그 느낌을 느꼈던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너무도 멀리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시, 시가 내게로 올 수 있게 하는 길은 더 많은 시와 시집을 읽는 것일 터인데 그 또한 내겐 너무 먼 일이다.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래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더딘 사랑 이정록...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그런 시간들이 내게서 흘러간듯 하다. 내 안의 것들이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시간에 모래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 나간듯 너무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 잃어 버리고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자꾸만 문명의 이기들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사랑의 지옥, 유하...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의 시다. 호바꽃 속에 벌을 가두는 장난을 어릴적엔 무척 많이 했다. 노란 호박꽃 속에 벌이 들어가길 앉아서 기다리다가 벌이 들어가고 나면 꽃을 얼른 오므려 벌이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어 두었었다. 그렇게 한참을 꽃을 오르리고 있으면 속에서 벌이 '윙 윙 윙윙' 난리가 난다. 비상구를 찾지 못한 벌은 한껏 성이 난다. 그러다 얼른 꽃을 놓아 주면 가해자를 찾듯 주위를 '윙윙' 소리를 내며 날던 꿀벌이 생각이 난다. 그 황홀한 감옥에 갇힌 듯한 것이 사랑일까 지옥일까. 우린 어쩌면 모두 자신만의 '황홀한 감옥' 에 갇혀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황홀한 글감옥' 이라 했듯 우린 그 황홀한 감옥에서 어쩌면 일탈을 꿈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겠지만 난 '읽는 사람의 것' 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 또한 몇 편의 시를 써보기도 했지만 해석은 읽는 자의 맘이다. 내가 정말 좌절하는 기분으로 썼던 시는 다른 이에게는 힘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준다. 꼭 형식에 맞추어 혹은 평론가적인 해석을 하며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렇게 쓰는것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유롭게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최고인듯 하다. 꼭 어려운 말로, 그런 언어로 쓴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 쉽게 자유롭게 표현을 해도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으면 그것이 제일이라 생각을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인이나 그외 시들을 읽으며 왜 자꾸만 이런 시심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지금이라도 한 편의 시를 영화 속의 '미자' 처럼 쓰고 싶어졌다. 시집을 읽는 다는 것은 나도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하여 더 좋다. 구수한 김용택님의 느낌으로 좀더 가깝게 수혈할 수 있었던 '젊은 시' 는 저물어 가는 한 해, 꺼져가던 나의 시심에 불씨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