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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아니면 누가 그랬겠어? 노숙자 놈들이니까 남의 신발을 훔쳐가지. 이런 순 도둑놈의 새끼들 같으니라고.” 질세라 소리를 지르던 수강생이 식당주인을 물어뜯을 듯이 달려들었다. “이 사람이 누굴 붙잡고 누명을 씌워? 당신이 봤어? 우리가 신발 가져가는 거? 참나, 사람 되게 무시하네. 이렇게 멀쩡한 신발 놔두고 왜 남의 신발을 신고 가겠냐고 이 사람아....... 생사람 잡지 마!” 말리려던 팔에 힘이 빠졌다. [P.58] 이것이 사회의 현실이다. 돈 없으면 괄시받는 세상일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이야기이겠느냐마는 돈 없고 집 없으면 당장 지금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끼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당한 봉변, 아마 살아생전 잊기 어려운 상처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이런데, 한 끼의 식사대신, 인문학을 운운하는 최준영교수, 어려운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어려운 시절을 겪어 본 사람은 아마도 그 시절을 다시는 떠올리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경우에는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기 바쁠 때, 어두운 음지를 바라보고 그들의 아픔을 읽고 헤아리는 사람이었다. 이 책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가 그 증거이다. 저자는 6년 넘게 노숙인, 여성가장, 교도소 수형인등을 어루만지며 그들이 살아온 삶의 애환을 엮어 만든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를 내 놓았다. 노숙인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위 관계자마저도 교육보다는 밥을 떠올릴 때 강력하게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현실에 배를 곯을지언정 올바로 생각하는 능력에 주력한 사람이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무슨 의미 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서민들을 괴롭히는 ‘경제난국’, ‘경제침체’라는 말이 언제나 해결되어 크게 숨 한번 쉴 수 있을까? 갑작스런 경제 불황과 연이은 경제 한파로 많은 가장들이 실직을 하고 가정의 파탄을 경험하며 집 아닌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거리에 거하는 노숙인들의 수효가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로 그 수가 실로 엄청나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저리다. 노숙인들을 탓하며 무능력하다고 저들에게 모든 원인을 전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걸어온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공동의 책임인데, 힘없고 나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냉대하기에는 공동의 잘못이 크기 때문이다. 노숙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부분에서 한 방송에서 시청했던 기억을 잠간 떠올린다. 저들이 배가 고픈 것만으로 노숙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오해라는 내용이었다. 한번 노숙인이 되면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던 방송멘트가 생각난다. 정신에 장애를 갖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정신력이 약한 경우라면 다시 배고프고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아무런 주저함 없이 다시 지난날의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심리가 치료되어야 하다. 심신의 박약한 상태를 정신력으로 굳게 버틸지 아니면 두 손 두발 다 들고 재기를 포기할지는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같은 의미에서 저자의 교육에 대한 취지와 실천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기에 눈물겨운 빵을 알고, 생각(철학)의 중요성도 아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선택, 그것은 교육을 통한 정신력의 회복이다.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삶의 자리에서 소통하는 것이 저자가 발견한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늘 스스럼없는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서는 것,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소외된 그들에게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노숙자와 노숙인? 이 두 단어는 같은 말이 아니었던가? 분명 이 둘은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한다. 노숙인이란 한 마디로 집이 없어 거리로 나앉은 사람을 일컫는다. 집을 사거나 얻을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일 뿐 아니라 어려운 일을 만나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마치 ‘정신 지체자’를 ‘지적장애인’라고 부드럽게 호칭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노숙인들을 위한 성프란시스 대학은 특별할 수밖에 소통이 있고, 글쓰기 강의가 있어 생각이라는 결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행동하기 전 소신에 대하여 “진정한 교육이란 먼저 알고 있거나 많이 아는 사람이 무식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찾아 나서야 한다.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서로 가르치는 것, 그것이 교육이다.” 남미 민중교육의 선구자인 파울르 프레이리가 쓴 <페다고지>에 나오는 말이다. [p. 91] 최준영 교수의 강의에 모토가 되었다는 문장이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등불이 되어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희생이 이 책으로 인하여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저자는 겸손하게 결단력 있게 노숙인들의 삶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생각하며 소통한다. 저자가 노숙인들의 대화의 통로가 되는 한 훈훈한 감동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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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난을 겪었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은 언제나 짧게 지나가지 않는다. 짧게는 몇년 길게는 대에 걸쳐 진행되어 온다. 나는 대를 걸쳐 온 가난이라는 시간을 지나쳐 왔다. 그간의 세월을 되짚어보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누군가 아픔의 90%는 돈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수긍하게 되었다. 가난은 겪지 않은 사람에게 또는 겪고 지나간 사람들에게는 불편이지만, 지금 가난을 등에 짊어진 사람에게는 불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공부하고, 더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때는 책 보다 지금 현재 먹고 살 수 있는 것부터 생각했고, 어느정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난 다음에야 인문학을 접했다. 언젠가 한번 노숙자 쉼터에 간 경험이 있었다. 그때, 복지사 선생님이 노숙자인들의 편견을 깨게 만들었다. 노숙자들을 향한 악소문, 고정관념들에게 관한 것에 대한 그들은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다면 노숙인으로 살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 또한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나니, 그들의 아픔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10%쯤 자리잡았던 편견마저도 없어져버렸다. 난 아직도 그들이 힘든 순간에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절대로 노숙인의 삶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인문학강의을 하신 저자에게 경의감을 표한다.
어린시절 학대받은 사람들의 뇌는 5-10%정도 망가진다고 합니다. 그런 뇌로는 충동에 대한 조절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가난이라는 1차동기에 더해 학습과 사유라는 2차동기가 없었기 때문일 터였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그나마 최소한으로 주어진 삶의 여건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두려움에떨려면 현실에 안주하길 바라고 있었다. -본문 중- 그는 인문학강의를 제안받고 고민했다고 한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데도 말이다. 나 역시 만약 그 입장이었다면 똑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이가 들어서 인문학강의를 하면 어떨까?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언제고 강사를 해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인문학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인문학을 존중하고, 존경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 나 또한 그의 삶, 그 자리를 닮고 싶어진다. 이 책의 소제목에 빵보다 인문학을... 이라는 제목이 있다. 나는 이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인문학은 시작과 끝이 소통임을 깨달았다. 나의 삶이란 주제로 펼쳐진 과제의 내용을 보고, 나도 눈물이 글썽했다. 나는 이미 그의 강당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나 또한 가난으로 인해, 어떤 것도 고민할수도 생각할수도 없었던 때를 겪었기에 노숙인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일종의 거울효과입니다. 보기 싫은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을 통해 보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 밉고 싫은 겁니다. 사실, 노숙자인을 잘 몰랐어요. 가난이란는 것도 관념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을 뿐,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본문 중- 소통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노력은 그네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아마 그를 책으로 말고, 실제로 만났다면 나는 그의 강의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인도해 줄 선생님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소통의 방법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아픔을 바닥까지 느껴 본 경험이다. 내가 그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나는 오로지 그 사람만을 바라보고 삶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윗글처럼 모든 것을 관념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도 모르겠다. 행동의 중요성을 여기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 그리고 오로지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이 책은 노숙인들의 편견을 깨줄 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저자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단하게 보인다. 나도 언제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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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느낌이 다가오지 않았다. 책 내용중 일부가 발췌된 내용을 보고 ... 아... 책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이야기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관한 것이겠구나 하고 느껴졌다. 그리고 에세이처럼 한편한편 적어놓은 내용들을 읽으며 그저 단순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노숙인들,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 인문학 강좌를 통해 그 중 글쓰기 강의를 통해 나눈 이야기들, 그들이 쓴 글을 소개하고 있다. 일부는 재소자들이 쓴 글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노숙인들이 쓴 글이다. 그들의 글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느정도의 편견을 바꾸게 되기도 한다. 우리 이웃... 어쩌면 바로 내 가족이나 친척, 나와 가까운 누군가였을수도 있는 사람들... 너무나 평범하고 단정하게 살아가는 주변의 인물들이 노숙인이 되어 피하게 되고 웬지 눈길마주치는것, 스치는 것, 지하철이나 버스의 옆자리에 함께 앉게 되는것도 피하게 되는 이들인 것이다. 배움도 있고 번듯한 직장도 있던 이들이 거리에서 한대잠을 자고 무료급식소를 전전하고 더러워진 옷에 깨끗하지 못한 외향으로 함께 하고 있다. 사연들도 참 다양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책을 읽고 그들이 느끼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때로 가슴 찡해오고 나 자신이 더 부끄러워질때도 있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정말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자신들을 돌아보고 이야기하고 그걸 글로 풀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며 그들의 생각이 삶이 언어가 태도가 바뀌는 것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요즘은 책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 내 글쓰기의 거의 전부인듯 싶다. 1년에 보는 공연이 꽤 많고 영화도 몇편은 되었기에 가능하면 거의 다 보고난 후의 후기랄까 감상을 조금씩 적어놓곤 했는데 작년부터인가 어느순간 내 글쓰기가 게으름에 의해 드문드문해졌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특히 좋은 습관은 오래 지속해 나가기 어려운데 나쁜 습관, 안좋은 버릇이나 생활태도는 너무나 빨리 자리를 잡는다. 그나마 책을 읽고 쓰는 글은 지속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나름 또 다른 분야인 공연을 보고 정리하던 습관을 다시 자리잡도록 열심을 내야겠다^^ 더불어 매일 단 한장이라도 읽기로 마음먹은 성경을 읽고도 단 한줄이라도 QT를 해 나가야겠다. 지금 당장 내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 다짐들이 바로 나인데... 그저 한번 떠올리고 지나쳐 버리면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가? 그런 마음을 품었던가? 기억에서 조차 가물가물해 질테니 말이다. 예전에 썻던 내 글을 보고 ... '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가??' 하며 또 나름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곤 한다. 간혹 ^^ 내가 참 괜찮은 녀석이네 하고 스스로를 토탁이게도 되고 ㅋㅋ 글쓰기는 책 읽기는 공연,영화보기는 또다른 세상을 통해 나를 더 새롭게 하고 힘내게 하는 활력이된다. 삶이 힘겨운 노숙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돕고 그들과 더불어 나눔을 갖는 최준영님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진행해 가시는 많은 분들의 노력과 애정, 애쓰심에 고개가 수그러지고 도움도 되지 못하지만 세상 곳곳에 이렇게 빛되고 소금되는 분들이 계서서 감사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그런삶이 되도록 주위를 둘러보고 기회가 될때 회피하지 말고 망설이지 않는 준비된 마음을 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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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제목만 보고서 난 과연 어떤 책이 그런 영향을 줬을까부터 생각을 했어요. 책 내용도 마찬가지겠거니 했는데... 예상했던 것과 비슷하지만서도~ 다른 이야기들이 많더라구요. 인문학.. 솔직히 잘 모릅니다. 공대 출신인데, 인문,어학 등은 참 어려워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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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방명록에 익숙하지만 한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분이 글을 남기셨다. 다음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신 아그리파님... 추천사를 부탁하노라고... 종종 블로그를 방문해 글만 읽고 조용히 나가는걸 아셨나 보다. 시간이 흐르고 한권의 책이 도착했다. 직접 싸인을 하신 책... 시간 날때마다 틈틈이 읽었다. 이런 책은 급히 읽기 보다는 느끼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읽으면서 느꼈다..그래...느끼면서 읽고, 읽으면서 느껴야 한단 생각이 맞았어.. 고등학교를 야학에서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셨고, 대학시절엔 야학교사로 활동을 하셨고, 현재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계신다는 소갯글로 시작되었다. 가끔 오해를 받곤 한다. 노숙인 인문학에 참여하고 있으니 좋은 사람일 거라는.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 혹은 착한 사람으로 오해 받는 건 부담스럽다. 그래서다. 되도록 단순하게, 가볍게 생각하려 한다.P126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역시 종종 듣는 얘기이고, 순간순간 벽에 부딪치게 하는 생각을 교수님도 하고 계셨다. 가끔 그래서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 생길 때... 나역시 조금은 이기적으로 가볍게 생각함으로서 마음을 편히 가질려고 노력을 하곤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 벽이라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높은 철옹성 같을수도 있는 벽을, 계단처럼 편히 생각할수 있는 모습에, 되돌아 보면 다시 한번 되뇌여 본다....가볍게......단순하게.... 1년정도 지났을까. 고아원 방문 인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꾸준히 나오는 사람중에 교사 출신(대학생 혹은 대학 졸업생) 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던 것.......공장노동자와 대학생. 아니, 야학학생과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둘중에 누가 더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나는 봤고, 느꼈고, 깨달았다....초등학교밖에 못나온 우리의 미싱사 누나는,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자격증을 딴 뒤에도 여전히 공장노동자로 일하고 있떤 내 아는 남동생은....백수로 지내던 나는..... 그 후로도 10년 동안이나 고아원을 꾸준하게 방문을 했다..... 나눔은 지식이나 사회적 능력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을. 나눔은 지식이나 사회적 능력이 아니라 진심어린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P177 눈물이 났다...그냥 눈물이 났다. 정말 맞는 말씀이다....싶은 생각과 더불어..나도 모르게..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뭐그리 참고 참았던 눈물이 많았던지.......줄줄 흘러 내렸다. 어릴때부터 넉넉치 못해 생각키도 싫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면서 말이다...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어른이 되면...꼭...봉사를 하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다. 지금도 넉넉치 못하지만...사람 욕심이란게 한번 부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 살면서 많이 느낀다...그래서 일까...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가슴에..많이도 와닿았다.. 나눔은 지식과 능력이 아니라..진심어린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 인문학교육은 생각하는 삶을 살게 한다. 과거를 성찰하면서 현재를 생각하게 하고, 현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도록 하는 게 인문학이다. 노숙인이라고 생각이 없는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학문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하는 학문이다.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다양한 세상사 풍경들을 예로 들어 엇비슷한 답을 해줄 뿐이다....그 예들은 가슴에 와닿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상의 얘기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P197 인문학을 논하는 분들은 최대한 어렵게 표현을 한다. 처음 읽다보면 외계어를 읽는듯한 착각을 들게 할 만큼.....가끔은 일부러 지식인척 상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의도의 글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조금은 가식적인....인간미 없는 그냥 척하는 지식....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다.... 교수님의 인문학은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이 아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생각하게끔 하는 인문학임을.... 너무나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인문학이...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아니란걸 느꼈다. 혼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던가....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얼마나 많은 답을 찾고 헤매었던가.....정답을 찾든.... 정답을 찾지 못했든.... 상관없이 말이다... 질문하는 학문이 인문학... 우린 늘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내가 나에게 질문을 하듯, 다른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답을 찾고, 찾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가까이 있는..친근한..자신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인문학이 어렵지 않음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잃어 버렸던 많은 기억들과 반성과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따듯함도 함께 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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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노숙인을 첨 만났던 건.. (저자가 강조하는 노숙자가 아닌 노숙인.. 간호원이 간호사로 바뀌던 때 혼란이 기억나네요.. 아직은 노숙자로 부르시는 분들이 더 많지만.. 용어도 용어지만 용어안에 담긴 그 배려, 존중, 이해의 정신이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을 서울로 오고 지내던 중 동생도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어 오티가기전에 잠잘 곳이 없다고 새벽차를 타고 올라와서 새벽 3시에 마중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서울역 계단을 새벽에 올라가는데.. (예전의 서울역입니다. 지금은 정말 외관이 화려해졌어요. 지금도 그 분들이 계시겠지만요..) 허름한 차림의 한 분이 제게 말을 거셨더랬죠. 집에 갈 차비를 잃어버리셨다고, 3000원만 달라고.. 그래서 정말 차비인줄 알고 드렸더니.. 2000원만 더주면 버스타고 갈 수 있다고.. ㅋ "더는 없어요" 하고 역으로 들어가면서 괜히 조금은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으로 수많은 노숙인들을 눈으로 보았을 때, 정말 많이 놀랐고 좀 무섭더라구요.. 한꺼번에 일어나서 시위라도 하실 것 같은.. 저도 그렇게 아주 많은 편견에 갇혀 노숙인들을 보고 있었나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청량리 노숙자 예배를 주일마다 드렸었습니다. 지금은 안하고 있는데요, 아침마다 팀이 구성되어 노숙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왔었어요. 노숙인들은.. 아마도 예배후에 제공되는 밥을 더 원했겠지만요. 매주 만나니 얼굴을 기억하시고 반가워하시고 안부를 서로 묻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 중 일부분들의 아픈 사연을 듣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도울 길이 없나 고민하기도 하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자립을 도와줄 수 있는 밥, 물질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필요한 것은 삶의 동기를 회복하는 것이며, 인간으로의 자존감, 실존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에 있다는 노숙인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처음 제대로 생각해본 것 같습니다. 그들을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기관이나 단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도움의 방법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자립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다시 노숙의 자리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만 여겨왔던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말입니다..
여러 사연을 가진 노숙인들이라 그런지.. 노숙인들이 숙제로 제출했다는 사연들, 서평들, 글쓰기들은.. 정말 여타 작가들의 글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글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책에 실렸겠지만 말입니다.. ) 특히 '엄마를 부탁해'는 저도 넘 맘 아프게, 공감하며 하루만에 훅~ 읽어내린 책이라 그 책에 대한 소감이 참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불만족스럽지만 그렇다고 변화할 용기도 없는 사람, 즉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숙인들이라지만 그건 저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런 상태의 어리석음을 보일 때가 저도 종종 있습니다. 또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의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소박한 진리를 무시하고 외부에서 기적과 개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게으름과 어리석은 모습도 자주 보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능력을 끌어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한다는 말에 맘 깊이 공감합니다.
저자의 평가처럼 성프란시스대학의 출범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노숙상태라는 척박한 현실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엄존하며, 일반의 왜곡된 시선과는 달리 그들 역시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일 테고, 이 책의 발간은 그런 성프란시스대학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특히 우리 일반 범인들)과의 교통의 통로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클레멘스 코스를 개설한 얼 쇼리스가 영감을 얻게 된 흑인 살인 용의자 수감자와의 대화는 책의 여러 곳에 인용되어 있는데, "우리가 가난한 건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는 그 말은 이 책, 노숙인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찾아 나서야 하는 것, 함께 노력하고 서로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저자의 강의 모토는 저자가 강의하고 삶을 나누고 함께 한 내용으로 충분히 드러나 있습니다. 쌍방향성을 지향하고 토론수업을 고집한 것도 그렇고.. 노숙인들이 저자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모시게 된 사연도 그렇고.. 문득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의 방향성도 이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면 저는 어쩔 수 없는 엄마입니다.. 엄마도 직업병인가 봅니다..ㅋㅋ 저는 책을 참 좋아합니다. 책을 정말 사랑하시는 울 부모님 영향일 겁니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수강선생님의 말씀처럼.. "사랑합니다"라고 처음 고백해보았다는 분 말씀처럼.. 책이 할 수 있는 일, 영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네요..
인문학 교육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도 중요하고 '책 나누는 사람들'처럼 후원과 이해를 지원하는 사람들도 중요하고 '빅 이슈'처럼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고 어느 것하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빠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숙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민인문학'이 저자의 바람처럼 '지식나눔'을 넘어 '함께 만드는 희망'이 되기를 저도 간절히 바래봅니다. 당장.. '책 나누는 사람들'부터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는 '컴패션'을 통해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참 많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다시 한 번 하게 해준 오~랜만에 읽은 좋은 인문학 책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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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과 인문학이라...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였다. 이 책의 저자는 소외계층에 인문학을 강의하고 인문학을 전파하는 사람이란다. 소외계층과 인문학이라...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글 읽는 즐거움과 글쓰는 재미를 가르친다라..거기다가 문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까지...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 책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인문학을 배우며 무슨 생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지.... 저자의 말중에서 가장 와닿는 말은 삶의 의지와 기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빵과 잠자리보다 인문학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선뜻 무슨 말인가 했지만 천천히 책을 읽으면서 그 말들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삶의 기쁨은 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 아픔을 돌아보고 내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간절해지는 것은 당장의 배고픔과 추위를 피하는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질때 비로소 일깨워진다는것을 말이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는 노숙인과 소외계층에 인문학을 강의하면서 인문학으로 인해 사람들이 변화하고 섞이고 살아가는 과정들을 엮은 책이다. 노숙인들의 인문학 강좌인 "성프란시스대학"의 설립부터 3기입학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일반인들이 알지 못했던 소외계층 인문학도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이며 깊이 있게 엮은 책이라고 할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이렇게 커다란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수 없다. 많은 사람의 도움과 관심과 정성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결실을 맺을수 있는것이다. 소외계층의 인문학 역시 그러했다. 많은 강사진들 특강을 해준 작가들 실무진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소외계층을 도왔던 마음씨 착한 사람들까지..그 사람들이 모두 함께였기에 더 빛을 발한 인문학이 아니였을까 싶다 인문학은 사람들의 학문이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사람들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아주 인간적인 학문인것이다. 소외계층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역시 사람이였다.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하고 이해가 필요하고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비로소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인해 다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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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기를 거쳐 인문학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통했고 가장 중요시 여겼으며 인문학을 한 사람은 존경 받았다. 그러나 언제부터가 인문학은 서서히 잊혀갔고 현재 대학에서도 가장 인기 없는 학과중에 하나이다. 인문학은 실질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인문학을 전공하며 미래에 전공을 살려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준영 작가는 왜 노숙자들과 저소득층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을까? 어찌보면 길거리에서 하루 하루를 사는 이들에게는 글 한자를 더 가르쳐주는 것보다 오늘 저녁을 해결하기 빵 한조각을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음식으로도 자유롭지 못하며 아주 기본적인 의식주가 전혀 해결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그들에게 최준영 작가는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6년 전부터 성프란시스대학과 관악인문대학, 경희대학교 문과대 ‘실천인문학센터’ 등을 통해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글은 자기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 할 수 있는 기법이다. 대화를 통해 쉽게 자신의 진실과 마음을 그리고 오류법을 잘 설명할 수 없어도 작은 문장 하나로 상대에게 자신의 진실을 전하는 최고의 수단인 것이다. 글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며 글은 타인과 내가 공동체를 이루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제공해 준다. 거리에서 하루 하루를 헛되이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숙인들에게 최준영 작가는 오늘 한끼의 식사가 아닌 평생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아주 근본적인 힘을 길러 주는 것이다. 오늘 당장에 필요없고 남들이 보면 저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인문학이 무슨 소용인가 하겠지만 먼 미래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융화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흔히들 자식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고 한다. 최준영 작가는 어려운 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들을 돌본다고 생각되어진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도와주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최준영 작가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라는 제목처럼 책을 통해 인문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것이다. 최준영 작가를 통해 나 또한 인문학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돈벌이에 유용하지 않다는 이유로 천대받는 인문학은 인간을 살리는 아주 근본적인 원천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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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최근 들어 인문학에 대해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인문학을 통해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 분들까지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만약 이 책을 읽지 못했다면,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노숙인이나 힘겨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금전적인 도움이나 먹거리 등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에 나오는 많은 분들의 이야기와, 어려운 환경에 처하신 분들에게 인문학 수업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게 된 지금 이 '책이 저를 눈뜨게 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누구든 어떤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기자신에 대해서 비참하다는 생각과, 모든 것이 자신이 부족해서 벌어진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비애감에 빠져서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저 되는대로 살자는 식으로 술기운, 약기운에 기대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 힘든 상황에 처하면 물론 하루 하루가 살아가기 버거운 일이기에 한 푼이 아쉽기도 하고, 한 끼가 아쉽기도 하겠지만 그런 물질적인 도움과 더불어 자신에 대해서 자존감을 다시 찾는 일과, 자신감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에 너무도 공감한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고, 그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다시 노력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사람은 자리가 만들어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사업을 하던 남편이 힘들어지고, 여러 주변여건과 함께 돌아가는 사업의 경우 나 혼자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주변의 상황이나, 사회적인 영향으로 한꺼번에 어려움이 몰려옴을 겪게 되었다. 남들이 말할 때는 알지 못하던 일들, 다른 사람이 어려워지면 왜 그런 상황이 될 때까지 갔을까 의아해하고 비난하던 것들이 내 일이 되어 다가왔다. 노숙인인 사람이 처음부터 노숙인 이었는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힘든 상황 때문은 아니었는가? 지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빈부 격차의 문제는 없는가? 돌아볼 일이다.
인문학 교육은 생각하는 삶을 살게 한다. 과거를 성찰하면서 현재를 생각하게 하고, 현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도록 사는 게 인문학 이다. 노숙인 이라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나도 한 때는 아주 부정적으로 노숙을 하는 분들이나 죄를 짓게 된 사람들을 대하곤 했다. 얼마나 게으르면, 몸 성한데 왜 이런 곳에서...... 나름 잘난 사람마냥 그렇게 생각하며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편의 일이 힘들어지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지만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기를 쓰고 덤벼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그럴 때 함께 손잡아 주는 일, 한 끼의 먹거리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생각하며 진정한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년에 두 분씩만 보내주세요. 그 이상을 힘들 것 같아요."
얼마나 따뜻한 말인가. 어디서든 사람 살만한 세상이다. 나부터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아는가? 그들에게 우리가 내미는 작은 희망들이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몸부림치는 삶을 살리는 동아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어려워본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더 잘 알고, 힘든 사람들이 오히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더 잘 아는거 같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성프란시스' 대학이 있고, 다른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있다는 사실과, 음으로 양으로 그들을 도와주시는 저자와 같은 분들과, 다른 많은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이 말이 이 책의 인문학 강좌의 필요성에 대한 그들이 변해가는 것에 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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