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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뚱보들을 없애기 위한 전쟁 - 레나 안데르손의 『덕 시티』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는 바로 소비(consumption)가 아닐까.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비를 통해 운용된다. 끊임없는 소모를 위해서 자원과 물자가 이동하고 새로운 제품이 탄생하며, 원활한 소비를 달성하기 위해 물리적인 전쟁과 치열한 외교가 진행된다. 우리의 눈과 귀는 언제나 더 많은 소비를 유혹하는 광고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현재 세계가 겪는 수많은 갈등들의 이면에는 풍족한 소비를 위한 열망이 존재한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을 소비하느냐에 따라서 계급이 결정되고, 그렇게 형성된 계급은 연애와 결혼, 개인의 품격까지 좌우하게 되므로. 소비의 능력이 개인의 신분과 정체성까지 결정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 안에서 문학은 한없이 초라하게 전락한다. 소비의 거침없는 질주에 대한 저항으로써의 문학은 어떠한 방식을 지닐 수 있을까. 스웨덴의 인기 작가 레나 안데르손의 신작 『덕 시티』(민음사, 2010)는 소비사회에서 문학이 취할 수 있는 저항의 한 방식을 흥미롭게 제시한다. 김수영의 표현처럼, 스스로 죽지 않기 위해서 문학은 타락한 현실을 풍자한다.
한 나라가 있다. 이름은 덕 시티(Duck City). 덕 시티에서는 모든 것이 풍요롭다. 국민들은 부족함을 모르며 누구나 자신이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인들로 가득한 덕 시티에 새로운 법률이 통과된다. 새 법률(소설 속에서는 '작전'이라고 언급된다) ‘흰 고래 법(작전)’. 흰 고래는 인간의 체지방에 대한 멸시적인 표현이다. 공직자와 교육자부터 노동자들까지 정기적으로 자신의 잉여 체지방 비율을 검사받아야 하며 체지방 비율이 높은, 이른바 ‘뚱보’들은 공직 진출과 사회 활동에 제약이 따르게 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광고문구인 ‘살(비만)과의 전쟁’이 덕 시티에서는 제도적으로 시행된다. 작전의 세부명칭은 '에이헙' 이다. 전설의 흰 고래를 찾아나서는 포경선의 이야기를 다룬 멜빌의 고전『백경』의 주인공 '에이헙' 선장의 이름을 차용한 명칭. 다만 때려잡아야할 대상이 고래가 아닌 인간의 살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단식과 식단 조절, 지속적인 운동이라는 우리의 평범한 사고는 배신당한다. ‘흰 고래 법’이 통과되어 비만과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덕 시티에는 괴상한 기업이 존재한다. 'JvA' 라는 식품회사이다. 지방을 줄이기 위한 식품을 연구하는 회사가 아니냐고? 천만에. JvA는 당분과 화학조미료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중독성이 강한 식품을 만드는 회사이다. JvA의 사장 존은 덕 시티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덕 시티 내의 모든 식품회사들을 제압하고 강력한 독점체제를 구축한다. 어떤 기업도 덕 시티 내의 식품계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한다. 증폭하는 뚱보들은 모두 만성 당뇨에 시달리게 되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인슐린 또한 모두 JvA가 생산하므로, ‘병 주고 약 주는’ JvA의 독주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 와중에 죽어나가는 것은 설탕이 가득한 음식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뚱보들, 그러니까 일반 국민들이다. 여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존은 새로운 재료를 가지고 더욱 맛있는(중독성 있는) 음식들을 덕 시티에 공급하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뉴스는 체중 감량에 실패한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진 사건을 보도했다. 도널드의 이웃이었던 구스 가족처럼 집달원들이 체중 감량에 실패한 사람들을 집에서 내쫓았다. 이러한 수모는 덕 시티의 대식가들 누구나 때가 되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117쪽)
덕 시티의 국민들은 존의 회사에서 나오는 각종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회사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도널드도 예외는 아니다. 도널드는 새로 개발되는 설탕이 듬뿍 쳐진 도넛을 우물거리며 자신이 흠호하는 대학강사 데이지에게 작업을 걸고 싶어 몸이 달아 있다. 하지만 데이지는 도널드의 삼촌인 JvA의 사장 존과 내연의 관계이다. 몇 번 몸을 섞기는 하지만 도널드는 데이지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도널드는 한 때 덕 시티 최고의 체중 감량으로 ‘영웅’이 되기도 했지만 데이지와의 줄다리기와 자신이 일하는 식품회사의 이중성에 대한 회의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폭식을 통해 다시 뚱보로 전락하고 만다. 덕 시티의 저명한 문학가 해럴드는 ‘셰익스피어’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국가의 폭력적인 법안에 대하여 비판한다. 해럴드의 비판은 효과가 없다. 해럴드는 단지 일 개 대학의 교수일 뿐이고, 그 역시 존과 대학 동창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법에 대한 저항은 ‘말장난’으로 그치고 만다. 존과 해럴드의 논쟁은 우아하고 문학적인 교양의 과시로 끝난다. 소설의 말미에서 해럴드는 마침내 존의 회사가 저지르는 부정을 고발할 생각으로 청문회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JvA의 부정과 도시에 번지고 있는 살인의 공포에 대해서 통렬히 비판하려던 해럴드는 엉뚱한 고백을 한다. 해럴드는 청문회 위원들 앞에서 JvA 공장에서 버려진 도넛 두 상자를 주워와서 집에서 먹은 경험에 대하여 토로한다.
"존경하는 위원 여러분, 저는 문학가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도넛들의 맛을 표현하려고 하지는 않겠 습니다. 전 네 시 간 동안 마흔 개를 전부 다 먹어 버렸습니다." 해럴드 벨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럴드는 좀 더 정확히 말했다. "간단히 말해, 도넛은 정말 기막히게 맛있었습니다." (255쪽)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는 해럴드의 고백을 끝으로 소설은 끝난다. 덕 시티에서 행해지는 살과의 전쟁은 우스꽝스러운 발상을 바탕으로 어이없는 풍경들을 나열하면서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이면에는 묘한 기시감이 존재한다. 오늘날 살과의 전쟁을 치루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은 표면적인 동일성에 불과하다. 덕 시티가 치루는 뚱보 말살정책과 거대기업 JvA의 행태들, 그리고 해럴드와 도널드, 데이지의 모습은 현실 세계의 여러 모습과 겹쳐진다. 이를테면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음식을 판매하면서도 살과의 전쟁을 치루는 이중적인 행태는 현실 세계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거대한 소비를 유지하기 위하여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미국이 중동에서 벌인 전쟁과 외교전의 슬로건은 언제나 비슷하다. 중동의 민주화와 자국민 보호.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늘려가던 제국주의 시절의 유럽 국가들은 무력만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늘 성경책과 신식 문물을 앞세워 들이닥쳤다. 그러니까 구한말의 서양과 일본처럼. 자국의 풍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원의 공급과 생산된 물건들을 판매할 대상이 언제나 일정한 비율로 존재해야 된다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독점화된 JaV의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는 덕 시티의 시민들은 몇 겹의 고통에 시달린다. 살찌게 되는 음식만이 공급되는 현실과 인슐린을 비롯한 치료제마저 특정 집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실, 비판이 막혀있는 폐쇄적인 정책, 그렇지만 맛에 익숙해져서 계속 뚱보가 되는 음식을 먹고 싶은 자신의 욕구. 덕 시티의 풍경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과잉공급되는 뉴스들, 속물들을 욕하면서도 자신도 기꺼이 속물이 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원활한 소비를 하지 못할 때마다 결핍감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은 가상 국가인 덕 시티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소비하기 위하여 일하고, 소비를 통해 자신의 계급을 증명하기 위해서 애쓰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JaV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면서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소설 속 뚱보들과 그대로 겹쳐진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도널드의 이름과 '덕(Duck)' 시티라는 호칭의 결합은 레나 안데르손이 만든 가상의 국가 덕 시티가 현실 세계의 미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판적인 문학가 '해럴드'는 미국의 대표적인 저널지 '뉴욕 해럴드'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덕 시티』는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 새로운 반미(反美)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에이헙', '흰 고래 법' 이라는 『백경』에 대한 패러디를 염두에 둔다면 이것은 단순한 반미 소설에 그치지 않는다. 멜빌의『백경』에 등장하는 포경선은 여러 인종들이 혼합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덕 시티의 가련한 뚱보들과 기업 JaV, 해럴드, 도널드, 데이지, 존의 존재는 풍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하여 아무런 가책도 없이 세계를 전쟁과 착취로 몰아가는, 혹은 그것을 방관하는 보편적인 인간에 관한 은유로 읽어야 한다.
《보그(Vorgue》지의 야윈 모델들을 보면서 자신의 육체를 미적으로 굴복시키며, '친환경', '저 칼로리' 라는 수식어를 단 식품들을 먹으며 날씬한 몸매를 지닌 채 타인을 굽어보고자 하는 현대인들이 구성하는 이 세계는 어쩌면 보다 거대한 '덕 시티'일지도 모른다. 레나 안데르손의 『덕 시티』는 《다옌스 뉘헤테르》지의 표현처럼 더 많은 소비를 갈구하며 폭력과 착취에 무감각해져가는 세계를 향한 풍자극이자 격렬한 "문학적 공격(저항)"이다.
도널드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먹는데도 계속 배가 고팠다. 그는 잃어버렸던 체지방을 몇 주만에 되찾았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흰 고래 수용소가 되었다. 그의 뇌에 뭔가가 영원히 다시 연결되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순수한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순수했던 그때 좀 더 정신을 차렸어야 한다고 자주 후회했지만, 순진했기 때문에 순수한 것보다 더 불행한 상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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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유니크한 주제를 다룬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세상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는 생물학적으로 INPUT과 OUTPUT이라는 극히 단순한 구조에 의해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생명체보다 인류라는 종인 우리는 이제 더이상 INPUT에 대해서 만큼은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와는 달리 살아가고 있다. 즉 음식, 먹거리는 인간에게 있어 더 이상 기본적인 생명유지의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와 기초적인 농경시대의 먹거리의 개념은 더 이상 현대인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 만큼 과학기술의 발달과 획기적인 재배방식 및 그에 따른 파생 조리법의 출현으로 이제 먹거리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는 해결되었다고 봐야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아직도 먹거리에서 해방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덕 시티>는 바로 이런 먹거리를 다룬 작품이다. 먹거리를 다루면서도 이 작품속에는 조지 오엘의 <1984>를 방불케하는 거대한 음모 그리고 페스트푸드와 정크푸드로부터 야기되는 비만과 그를 바라보는 시각등 다양한 볼거리를 담고 있는 보기 드문 소설이다. 대게 정치적인 무거운 소재를 플롯으로 절대권력인 국가나 자본이 인간의 심성까지 지배한다는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소설들은 상당수 접할 수 있고 대부분의 래퍼토리가 상당히 심오한 정치적 이슈를 표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덕 시티>는 이러한 국가나 자본의 거대한 음모가 우리일상 특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어야만 하는 먹거리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약간은 무게감이 떨어지는 듯한 발상이지만 실상은 지금 풍요로움에 흠뻑 젖어있는 현대사회를 그로테스크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디딕>의 등장인물의 괴기함과 디지니 만화 도널드 덕의 우스꽝스러운 소재를 차용한 작가는 현대인들의 빼앗긴 먹거리, 나아가 자유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대량생산과 자본의 급격한 지배력은 한때 풍족한 먹거리를 제공했지만 이제 사회는 작중 도널드나 데이지처럼 뚱뚱한 사람을 루저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비만에 치명적인 정크푸드를 마치 풍요로움과 권력의 상징처럼 열심히 기계에서 찍어내고 있고 강요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한손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들고 다른 손에 코카콜라를 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자유의 여신상과 비견되는 풍요로움과 자유를 대변하듯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천편일률적으로 짜맞추고 있다. 그리고 마치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으로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선택을 좀먹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한쪽에서는 웰빙바람과 더불어 먹거리에 대한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다이어트에 광풍이 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중독된 환자처럼 정크푸드에 집착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선택 마저 앗아가버리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먹고싶은 것을 먹지 못한고 있다는 강한 자괴감을 가지게 한다. 결국 자본과 결탁된 식품에 대한 선태권을 상실한 우리에게 무엇을 먹어야 하는 점보다는 과연 우리는 식품에 대한 진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한 고뇌에 빠져들게 한다.
스웨덴 작가라 하면 <말괄량이 삐삐>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이나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 정도를 떠올리는 독자들에게 레나 안드레손은 깊은 각인을 세겨준다. 그녀의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이번 작품은 애사롭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실고발적인 플롯과 작품 전반에 흐르는 내러티브는 독작들에게 마치 거대한 음모를 하나씩 파해쳐나가는 일종의 성취감마저 불러 일으키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의 가슴에 돌하나를 던져준다. 그러면서 소설속 가상의 도시 <덕 시티>가 과연 픽션속에나 존재하는 상상의 도시일까라는 의구심에 대해서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이 덕 시티로 변해가는 과정이지는 않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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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블랙 코미디. 다 읽고 나서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누가 보아도 현대 물질 만능 자본주의 한 단면인 식습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식습관의 첨병인 미국에 대한 풍자인 이 소설은 어리석은 대중을 몇 가지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이끌어 가는 미국이란 나라를 그리고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우중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지 그 상징들이 매우 쉽게 나타나고 있다.
지극히 탐욕스러운 동물로 알려져 있는 오리를 이름으로 하는 도시 국가. 그리고 그 오리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만들어 낸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 도날드와 그 여자 친구 데이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중요한 인물인 존은 미국 이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다.
애이햅 프로젝트는 멜빌의 <백경>에서 따왔는데 미국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책이며 또한 이 책에서 그리는 포획의 대상인 고래는 그 거대한 몸집의 대부분이 바닷물의 차가운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지방으로 되어 있고, 바로 포경 산업은 이 기름을 얻기 위해서 이루어진 산업이었으므로, 체지방과의 전쟁인 애이햅 프로젝트는 역시 아이러니칼한 이름이다.
역자 해설에도 나오지만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서도 설파되었듯이 오늘날의 계급을 보여주는 지표 중에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가 하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서구 열강 중에서 빈부의 격차가 가장 미국의 일반 대중은 (이 책의 또 다른 비판 대상 중의 하나인)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푸드들 - 즉 기름지고 포화 지방이 많으며 고칼로리이지만 영양가는 떨어지는 - 음식을 즐기며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비만이다. 이에 반해 사회 지도층은 웰빙하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정치가 등은 뚱뚱한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비만을 커다란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푸는 해법 또한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푼다. 슬로우 푸드라 일컬어지는 좋은 음식 - 그래봐야 현대 사회에 들어오기 전에 일반적으로 먹었던 음식들 을 먹으며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을 다이어트 산업이란 이름 하에 또 하나의 일거리로 만들어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이는 끝없이 부가 가치를 생산해야만 사회 구조가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속성에 기인한 것이며 이 때문에 대중들은 끊임없이 먹고 다시 먹은 것을 없애야 하는 악순환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 역시 폭식의 정반대인 거식으로 향해 가는 것은 이러한 사회 구조의 모순점을 보여주며 또한 그러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기업가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로비 문화가 만연한 미국식 정치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러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나라의 현실임을 생각할 때 슬프기 그지없지만 슬픔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책을 심각하게 읽어볼 일이다. 과연 식습관 뿐 아니라 일상 자체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나는 천박하게 살고 있는가. 비록 그 구조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삶을 끌려가지 않고 끌어감으로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의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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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비둘기의 개체 수를 억제하기 위해 먹이 공급을 차단하여 굶겨 죽이겠다는 뉴스를 접하고 실소를 터트린 적이 있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결코 가상이라 할 수 없는 그곳으로. 웰컴 투 덕 시티!
덕 시티...체지방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작전 에이헵2-흰 고래를 찾아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는 우리의 무게 때문에 땅이 가라앉을 것이며 로마제국이 퇴폐로 여름 한낮에 잠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혈당 쇼크로 하루아침에 쓰러질 수 있습니다. p17
이런 이유로 시민들의 체지방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한다. 기준 이상의 체지방률을 가진 사람은 직장으로부터 해고당하고 먹는 것과 타는 것 어느 하나 자유로울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높은 체지방률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순적인 것은 국가가 허용하는 음식에 있다. 무게를 줄이려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기름지고 단 음식을 생산하는 기업의 제품이 권장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검은돈에 의해 얽혀 상부상조하는 국가와 기업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국가의 일련의 행위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불합리한 것인지 독자들에게 언질을 하는데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작전명의 에이헵은 백경의 선장 이름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상징한다고 한다.
에이헵 작전 선포 이후 시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먹기를 거부하거나 숨어 먹거나 한 손에 면죄부를 쥐고 당당히 먹거나. 덕시티에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이름의 도널드. 대통령의 친구이자 국가가 허용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도널드의 삼촌 존. 그들의 탐욕의 대상인 데이지. 지성으로 대표되는 헤럴드. 이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덕 시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형태에 있었는데 죽음과 도망 그리고 저항이었다.
"내가 각종 수치 측정과 저들의 규정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난 전체주의를 참을 수 없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네! 조금도 말이야. 식욕과 다이어트는 전부 똑같이 집단 광기에서 출발하지. 서열이 병적으로 필요해서 나오는 거라고. p251
작가는 덕 시티에 남긴 혹은 생존시킨 헤럴드를 통해 전체주의와 서열, 미국사회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덕 시티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처방법을 제시하고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작가의 비판과 당부가 나의 덕시티를 뚫기에는 조금 덜 날카롭고 조금 덜 유연했다는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터무니 없는 기준에 헤럴드처럼 부당함을 느끼지만 매스컴은 그 부당함마저 순응하게 하고 추종하게 만든다. 존처럼 도망갈 곳은 없다. 저항의 의지라는 것이 오히려 허구처럼 느껴지는 나에겐 불편한 진실이자 무기력함에 가까운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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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등장하는 사람 형체의 오리얼굴이 인상적이다. 살찐 사람들을 대표하는 흔한 동물들이 아니라 어쩌면 가느다랗다는 인상을 주는 오리를 왜 표지에 등장 시켰을까 궁금했다. 작가는 도널드덕에서 그 모습을 차용했는데, 또한 도널드 덕과 연관성? 있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란 참으로 기발한 것 같다. 하나의 대상을 비판하는데, 철저히 숨기고 있는듯하지만 그만큼 직선적이다. 뚱뚱한 사람만 모여 사는 도시를 묘사했다는 설정 또한 기발했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방향이 다소 다를 수는 있으나 영화 ‘트루먼쇼’가 떠올랐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기발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그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일까. 결국 제 정신인 사람들은 당하는? 약자였는데,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놀아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불량식품을 먹지 말라고 하면서 유약한 아이에게 더 불량식품을 팔아대는 사람들이나 담배가 해롭다고 하면서도 더 많은 담배를 생산하는 사람들.. 현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모습들을 허구 속 상황인 것처럼 묘사하며 비판하는 모습이 통쾌하다.
스웨덴 출신의 이 작가가 종교적 논쟁도 크게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그녀만의 시각으로 비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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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시티]의 책 표지에는 머리는 오리이고 몸은 사람으로 형상화 시켜서 뭔가 역설적인 내용을 담아낸 작품 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웨덴 작가의 사회풍자적인 표현이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레나 안데르손은 도발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유머로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서서 스췌덴에서 주목 받았던 만큼 [덕 시티]의 작품에서도 실랄하게 끄집어내서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풍자적으로 역설적인 표현을 담아 낸 [덕 시티]를 보면서 정말 비평가들과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구나!! 하고 생각이 듭니다. 덕 시티는 도날드라는 200kg이 넘는 거구의 남자가 어릴때부터 존 삼촌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덕 시티는 뚱뚱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전략해버려서 대통령이 에이햅 작전을 선포합니다. 곧 뚱뚱한 사람들을 날씬하게 만들라는 전쟁선포인 것입니다. 뚱뚱한 사람이 택시를 타려고 잡으면 태우지 말고 그냥 지나치고 걷게 만들고 "뚱뚱한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칼로리가 0이 아닌 음식을 주문하 수 없었다" 라고 나옵니다. 정말 날씬하게 만들기위해 에이헵 작전은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도널드는 JvA의 직원으로 일을 하면서 당뇨병에 시달리고 월급대신 인슐린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JvA 직원들 대부분이 인슐린을 월급대신에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듯 덕 시티의 주민들은 당뇨병과 싸우고 있고 심장병 고혈압등 여러가지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JvA의 존 사장은 어떻게 하면 먹으면 먹을 수록 배가 고파지는 밀가루를 개발 할 수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 참으로 한심하게 다가 왔습니다. 그것을 도널드와 상의하고 있는 장면에서 참 우리의 현실이구나 어쩜 정말 이런 밀가루가 안 나오라는 보장을 누가 하겠습니까?? 덕 시티는 이런 사회세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고 그런 문제들을 관가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소아 당뇨병과 소아비만이 많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 피자,콜라, 치킨 등,,트렌스 지방이 많은 음식들을 선호하다보니 자연적으로 비만한 아이들이 늘어나는 실정에 왔습니다.. 트렌스 지방이 없는 과자도 만들고 있지만 어찌됐건 과자도 몸에 안좋은 성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먹거리가 걱정되는건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른들도 그런 트렌스 지방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쌀 소비량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고 쌀값도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덕 시티를 읽으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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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시티는 표지만큼이나 신선한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면보다는 외적인 모습이 중시되는 세상, 지금의 현대사회의 모습들을 비꼬는 듯한 풍자가 재미 있었다. 우습기도 하지만 마냥 웃기다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책속에 담겨있는 내용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뿌리 깊이 존재하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와 패스트 푸드를 권하면서도 날씬한 사람들이 예쁘다는 편견속에 다이어트를 부추기는 이상한 시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꽃이피고 풍족함이 넘치는 도시였던 덕시티에 최근들어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데이지는 대학 강사였고 존은 목요일마다 데이지의 집에서 만나 데이트를 즐겨왔다. 데이지는 존과 있을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존은 데이지의 풍만만하고 거대한 몸매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존은 데이지를 많이 좋아했지만 그녀의 몸매만큼은 이해할수 없었다. 존은 JvA 도넛공장의 사장이다. 설탕을 잔뜩 입힌 도넛들이 기계에서 쏟아져 나왔고 예쁘게 포장되어 시민들에게 판매되었다.
"옳은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실천하지 않으면 절반의 성공밖에 못 거두는 겁니다."P214
덕시티는 한때 꽃이 피었고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9월의 어느날 대통령이 체지방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도널드는 존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공장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갈만큼 뚱뚱했고 임금으로 인슐린을 받아야했다. 당뇨병환자인 도널드에게는 돈보다 인슐린이 훨씬 더 중요했다. 어느날 공장에서 일하던 도널드는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땀이 나고 오한이 들었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모든게 엉망이었고 도널드는 응급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을 받았다. 간호사는 도널드에게 앞으로 140킬로 그램은 빼야한다고 말했다. 몸무게 213킬로그램에 체지방률 72퍼센트의 몸을 가지고 있던 도널드였지만 칼로리 높은 음식을 함부러 구입할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매일아침 체지방량을 측정당하고 얼마만큼을 먹고 움직이는 지도 검사를 받아야했다.
해럴드 벨은 대학교 최고의 교수였고 최고의 문학사상가였지만 너무 뚱뚱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나갈것을 통보받았고 교수직에서 해임당했다. 신발 제조업자들이 신발에 마이크로칩을 달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중앙에 보고되었다. 신발의 칩은 음식 섭취량을 기록했고 지방을 연소하기 위해 걸어야 할때면 전기에 충격을 주었다. 해럴드는 '리포'라는 불법 레스토랑에 가서 신발을 벗어버린후 소시지와 볶은 감자의 맛을 마음껏 즐겼다.
뉴스에서는 체중감랴에 실패한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진 사건을 보도했고, 엄청나게 뚱뚱한 사람들만 골라죽이는 연쇄살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덕시티는 이제 공포와 혼란의 도시였다. 뚱뚱한 사람들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면서도 대통령은 대기업들과 손잡고 기름진 음식들과 콜라와 설탕이 잔뜩 든 도넛들도 끊임없이 판매했다. 결국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들로 불법적으로 운영하는 술집과 식당들이 늘어나고 뚱뚱해진 사람들도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은 비만을 벗어날수 없는 구조에 덕 시티는 무너지고 만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있지만 결국 어딜가도 예쁘고, 잘생기고, 날씬해야 인정받는다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단음식과 패스트 푸드들은 끊임없이 판매되고 생활깊숙이 침투되어있으며 비만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미 가까이 접근해와있는 음식들을 무작정 끊어버릴수도 없다.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에 대한 욕망들은 자꾸 커져가고 살이 찌는 음식들도 끊임없이 개발되어 시중에 나오고 있으니 악순환은 반복될수밖에 없다. 이 책은 사회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바꾸고 싶어도 바꾸기 힘든 사회 구조속에서 우리는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것인가. 내용이 전개될수록 신선했고 속시원한 책한권을 만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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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시티를 읽으면서 감독이 맥도날드에서 한 달 동안 햄버거만 먹으며 찍은 영화 슈퍼 사이즈 미가 떠올랐는데 옮긴이의 말 중 작가는 모건 스펄록의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를 보고 덕 시티를 구상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 영화를 먼저 봐서 그랬을까 덕 시티의 내용이 훨씬 더 확 와닿았고 머리속에 등장 인물들의 모습과 행동들이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존과 그에 비해 엄청난 살과 먹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도널드의 모습.
덕 시티에서는 대대적으로 체지방과의 전쟁을 국가적으로 선포한다. 일명 에이햅 작전. 시민들은 매일 체지방량을 측정당하고 얼마나 열량을 소모했는지 감시받으며 체지방량이 줄지 않을 시 건강 수용소로 끌려간다. 이 곳에서 매일같이 굶고 운동만 해도 날씬해 지지 않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JvA의 사장 존은 에이햅 작전에도 불구하고 설탕이 잔뜩 발려진 도넛을 계속해서 생산해내고 팔며 사람들은 국가의 감시와 음식에 대한 갈망과 무절제 속에서 점점 미쳐간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현대 사회를 너무나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자본을 앞세워 그럴듯한 말만 내세워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점령하는 대기업과 이에 현혹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보다 비판없이 수용하고 다수를 쫓아가는 시민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기업에서 생산하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으며 운동으로 균형있는 몸매를 가졌으며 시민들이 절제할 수 없는 음식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동시에 그 이익으로 에이햅 작전에 필요한 물품과 돈을 지원하며 자랑스러워 하는 존과 몸에 이상신호가 와서 일하는 중간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인슐린 주사를 계속 맞아야 하고 짧은 거리도 차를 타고다녀야 하지만 맛있는 음식들을 거부할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도널드의 모습이 책에서 매우 상반되게 나타나 있다. 존과 도널드의 통화 내용 중 존이 도널드에게 한 말이 있다. 난 제품을 생산할뿐이고, 그 이윤을 좋은 곳에 투자해. 예를 들어 오조 박사는 혈관 세척용 솔을 개발 중이라고. 완전히 혁명적인 물건이야. 식품 산업에서 남은 이윤을 투자하는 거지. 난 암 학회랑 심장 학회에도 기부해. 그들이 내 제품을 비난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권유했다고.
현대 사회에서의 대기업들이 계속해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 자신들의 잘못과 결점을 가리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거나 자선사업을 하는 모습과 안좋은걸 알면서도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잠시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소비하는 시민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풍요로운 시대와 물질만능주의를 너무나 직설적으로 풍자했기에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씁쓸함과 쓴 웃음이 나오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