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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드니 가볍다. 책이 가벼우면 첫 장을 넘기기가 쉽다. 부담없이 읽혀지는 것이 희한하다. 책이 가벼우면 내용도 가벼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데도 책이 술술 읽혀지는 나만의 법칙 같은 것이 있다.
대학때 노래패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고3 수능을 마치고 교육관이 남달랐던 한 선생님의 힘으로 고3 여고생들에게 학창시절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주셨다. 대학 노래패를 불러와 공연을 보여준 것이다. 그 공연을 보면서 대학을 가면 꼭 노래패를 들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사범대 노래패 회원이 되었다. 새내기때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것, 선배가 되면서 후배를 챙겼던 것, 노래패 패장을 맡으며 힘들어 했던 것, 4학년 때 마치 고문처럼 노래패 후배들을 지원해주었던 것, 그 추억들을 이 책 덕분에 떠올려본다.
포크가수? 아니, 나는 이지상씨를 중얼가요의 수장인 민중가수라고 하고 싶다. 그 분은 부담스러워하실런지 모르겠다. 80년대 학번들을 떠올리면 함께 따라오는 것이 무엇일까..? 정치적 색깔은 붉디 붉은 민주주의의 열망이다. 그치만 그 강렬함을 부드러운 낭만으로 덮어주는 것이 있다면, 통기타가 아닐까. 이지상 씨는 그 386세대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그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땅에서 금기시 되어온 이야기부터 이게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어두운 이야기까지.. 그의 입에서 조곤조곤 살아난다. 노래를 부르듯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뱉어낸다. 과격한 주제가 될 수 있는 것들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위만 쳐다보며 부러워하고 뒷목 붙잡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할때 그는 우리가 잊고 있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제서야, 아! 위안부 할머니가 계시구나. 아! 조국 독립을 위해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투사들이 있었구나. 아! 작년에 그렇게 분노했던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그새 잊었네. 아 맞다.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거리에서 쓰러져간 시민들과 학생들도 잊으면 안되지..하며 미안한 듯 한숨이 나온다.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 정치권력자들의 횡포, 전쟁의 참혹함, 바르게 세우지 못한 역사,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배려, 여기 저기도 끼지 못하는 제3인으로 살아가야하는 재일동포...
어찌보면 비주류의 삶들을 통째로 어딘가로 집어 삼켜버리고 내가 마치 이 사회의 주류인냥 실은 알고 보면 주류가 되고 싶어 발버둥치는 불쌍한 중생에 불과한 초라한 내 자신이 혹여 가진 자들의 뒷꽁무니가 안보일세라 쉬지 않고 따라가느라 바빴던 것이다. 훅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이 결국 이 책을 만나게 된 지금의 기회에 감사하게 된다. 이지상씨가 노래만 부르지 않고 저 밑바닥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책으로 해줘서 참으로 감사하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이런 책들이 많이 팔리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알고보면 우리들의 삶들인데 우리는 비싸게 잘 포장된 삶이 곧 내 것인냥, 그리고 그렇게 살고 말겠다며 이를 악무는 바람에 정작 진짜 우리의 모습을 억지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명쾌한 분석이 불분명한 이때에 따뜻한 어조로 비수를 꽂아주는 이지상씨가 참으로 고맙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과 연계되어 있는 그의 노래가 듣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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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땐 별 기대가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작가일 뿐더러, 책 표지는 80년대 통기타 가수의 수필집인가 싶은 분위기이고, 책 종이질은 몇번 압축되지 않은 재생지인지 거칠고 퍽퍽했다.
그런데, 한 장을 넘기자 마자 그의 팬이 되어 버렸다. 더럽고 추하고 이성으로 용납되지 않는 부조리의 억울한 세상속에서 부드럽고 고상한 영혼의 말로 노래하는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회적 진실들을 뉴스에서 접하게 되면 가급적 귀를 막아버리려 하고, 잊어버리려고 했다. 어차피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할테니까. 그러다 보니 이젠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 사고에 무뎌지고, 함께 아파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이웃의 아픔에 함께 가슴 깊이 아파하는 법을 다시금 배우게 된다.
대중매체는 돈이 되는 인기있는 노래만 들려준다. '사랑아 네가 떠나서 나는 운다'류의 노래들... 이런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노래를 할 수 있다는걸 몰랐다. 아픔이 시로 승화되고 곡조가 붙어 노래로 불리우며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 아픔을 함께 나누는 소통의 도구가 된다는게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부드러운 문체 안에서 그의 인생에 대한 철학을 보며 강렬한 인상을 받는건 한문장 한문장 고민하며 생각을 녹여내려는 노력이 진실되게 전달되기 때문인거 같다. 이런 좋은 인생의 선배를 알게 되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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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 이지상 / 삼인]
가수 이지상. 나는 ‘이지상’이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 가수 활동을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르는 것 같고, 무명가수인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지상은 상업적인 음악이 아닌, 음악으로 사회고발 & 비평을 하는 가수이고, 꽤 알려진 사람이다.
이지상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사람을 노래한다. 이지상은 노래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부당한 모습, 썩은 모습들을 들추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아픈 곳, 힘든 곳을 드러낸다. 그는 사회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얼마나 당연한 사실인가). 그래서 모든 사회 정책이든, 문화든 사람에게서 출발하여 사람을 거쳐,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어떤가? 사람보다 돈과 권력이 앞서있다. 사람이 뒤로 밀린 사회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우리는 지금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 중심으로 사회를 되돌리려 하는 사람들, 이지상은 그런 사람들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이지상은 노래와 더불어 노래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려하고, 썩어 문드러진 사회를 들춰내서 썩은 곳을 도려내려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지상도 노래 한 곡으로 그런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노래로 인해서 낮은 곳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닦아줄 수 있기를, 소외된 곳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다독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밤에 책을 읽을 때면, 방바닥에 이불 깔고 엎드려서 읽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엎드려서 편안하게 읽을 수 없었다.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아 책을 읽었다. 이 책 속엔 많은 상처를 안고, 많은 눈물을 흘리며, 힘겨운 투쟁을 하며 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용산 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폐지 줍는 극빈 노인들, 노동현장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 성을 파는 여인들, 위안부 할머니들과 재일동포들. 그들은 모두 우리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눈앞에 나서지 못하고 숨어 우는 사람들이다. 이지상은 노래로 그들을 다독이며 그들과 같이 나아가려한다. 그들은 나와 다름없는 우리 국민이고, 우리 이웃이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지상은 또한 파렴치한 정치인, 악덕 기업인, 남보다 앞선 힘(돈, 권력)으로 약자를 억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노래한다. 이 노래엔 예리한 칼날이 서려있다.
이지상이 꿈꾸는 것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사람이 돈과 권력에 밀려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며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회를 꿈꾼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사람이 머물 수도 없어라. 사람이 안 사는 집은 이내 낡고 무너지듯이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은 잡풀이 돋아나고 수풀이 우거져, 이내 마을의 자취도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아닌 사회, 사람이 중심에서 밀려난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 사회의 주인공은 바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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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우리 회사의 공장에서 일 하시던 한 아주머니의 소식을 오늘 아침에 들었다. 지난 토요일 자신이 다니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2개가 절단됐다고 한다. 기계를 만지는 일이긴 하지만 위험한 일은 아니라 그런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어쩌다가 그런 사고가 났는지 ... 1일 3교대, 3주에 1주는 야간에 일을 하고 설날과 추석을 제외하고는 빨간 날도 없는데다가 고작 2주에 하루 쉬면서 그 아주머니가 월급으로 받는 돈은 그저 1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 치료비야 산재로 처리가 된다지만 수술이 잘 끝난다고 해도 그 두 손가락을 예전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달에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언제부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역시 알 수 없다. TV를 보면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씩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금새 잊혀지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뭐 나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빠듯한 생활비 신경쓰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고 1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천안함 사고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마치 박통, 전통 시대로 돌아간 듯 KBS에서는 명분 없는 성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있고 공중파 방송은 근 한 달째 오락프로그램 방송을 자제하고 있다. 아직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8명의 젊은 장병들이 귀환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어느 누가 다를까냐 만은 왠지 이들의 희생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실종된 천안함 선원들을 찾기 위해 동참하다 변을 당한 금양 98호의 소식은 이제는 천안함 소식 말미에 토막뉴스로나 잠깐 들을 수 있을 뿐 벌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영정사진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아무도 찾는 이 없던 한 인도네시아 선원의 빈소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혹시라도 그의 월급에 의지해 생활하던 가족들이 있지는 않을까. 그는 왜 그의 나라를 떠나 이 먼 곳까지 와서 그런 사고를 당했을까. 이지상이라는 가수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민중가수로만 알고 있을 뿐 그의 노래 하나 변변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궁금했다. 소외된 자, 이름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의 삶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에도가와 조선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용산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촛불을 드는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불행히도 책 속의 모든 내용에 무한 공감을 보낼 수는 없다. 특히 김홍일씨를 그저 민주투사로만 그리는 부분이나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을 너무나도 쉽게 강간범으로 만들어 버리는 내용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확대 선전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개인적으로 미국산 소고기는 먹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그 고기가 미국산이란 걸 아는 한은 절대 먹지 않는다. 물론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하자는 뜻도 있지만 그 보다는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재개한 정부의 정책을 절대 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무슨 투사라도 되는 것처럼 시류에 편승해 자신의 블로그에 미국 소는 어쩌고 하던 유명인들이나 아무런 소신도 없이 그저 남들이 하니까 유모차를 밀고 나가 촛불을 들고 우리 아이에게 미국 소를 먹일 수 없다고 외치던 철없는 젊은 부모들은 침을 튀기며 비난한다.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시위 현장에 나가서 유모차 중에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수입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봤을텐데 ... 환경운동을 하기 위해 진보주의자가 되야 할 필요도 없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반드시 좌파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이 진보주의자가 되고 좌파가 되기를 강요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이런 양극화는 더욱 더 분명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 자연스럽게 진보주의자요 좌파가 되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나 보다 못나야만 하는 사람이 내 위에서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 모습이 아니꼬웠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빨간 딱지를 붙여주는 일 말고는 없었던 것일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기간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실용정부'라는 명칭을 쓰고자 하지만 그저 특별한 이름도 없이 이명박정부로 불리는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게 과연 무엇일까?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사람들은 이 땅에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같은 젊은 학생들의 희생이 반복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이건희의 삼성을 기억하는 것만큼 전태일의 희생을 기억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마다 한 미군병사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윤금이의 얘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다간 지난 10년간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어버려 정말로 '잃어버린 10년'이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진다. 작년 언제쯤인가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었다. 영화 시작 전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를 빌린 4대강 사업 홍보 영상이 상영되었다. 아이들 관객이 주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영화였는데 말이다. 이명박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경상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뭐야'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대한늬우스'의 망령이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솔직히 아이들을 보여주려 간 극장이 아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환불을 요구할 뻔 했다. 경북 북부지역에는 4대강 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영주 댐 건설에 대한 반대여론이 시끄럽다. 아니, 시끄러운 건 아니고 몇몇 환경,진보단체와 댐 건설로 터전을 잃게 되는 봉화지역 주민들의 외로운 외침만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영주 시민들은 댐 건설에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찬성이 아닐 바에야 무관심을 보이는 게 현 정부가 바라는 바가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경북지역은 지난 대선 때 현 대통령인 이명박 씨에게 몰표에 가까운 지지를 보낸 지역이다. 봉화지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 시골 사람들 무식한 사람들 많다. 한반도운하가 뭔지 4대강 사업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저 전라도 사람은 민주당을, 경상도 사람은 한나라당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TV에서 좋다고 떠들면 좋은지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동네가 4대강 사업의 첫 번째 피해지역인걸 알았다면 현 정권에 투표하는 비율이 좀 떨어지긴 했겠다만 어쨌든 게임은 끝났고 수몰지역 주민들은 스스로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 4대강 사업을 뼛속 깊이 반대하는 입장에서 영주댐 건설 반대시위에 참가해서 머릿수라도 좀 채워줄 수 있었건만 난 그러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신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하던 사람들 틈에서 난 그저 침묵을 지키며 앉아만 있었던 색깔만 진보주의자인 용기 없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이명박 씨에게 투표를 하고 나서 자기 살던 집 잃게 생겼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고 우르르 떼지어 몰려다니는 건 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 어느 날 제자가 잠에서 깨어나 슬피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슨 꿈을 꾸었느냐?"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책 106 페이지) 우리는 때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을 꿈꾸며 괴로워한다. 저자의 말처럼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자조하며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리고 누구도 그 기다림의 끝을 알지 못한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기다림의 의미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순간부터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모든 시간 혹은 행위'이다. 그러니 wait가 아니라 hope가 맞다. 갈망이 현실이 되어 더 이상 바랄 필요가 없을 때가 기다림의 끝이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모든 기다림이 just wait가 아닌 hopeful wait가 되는 세상이 오길 그저 기다릴 뿐 아직은 모든 wait가 hope가 되는 세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가든파이브 근처를 지나친 적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쫓겨난 청계천 상인들이 희망의 기다림을 안고 있어야 할 곳이다. 하지만 해 진 후 멀리서 불을 밝히고 있는 가든파이브 네온사인은 사람 떠난 유령도시마냥 처량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청계천이 복원되기 이전, 내가 아직 서울에 살고 있을 때, 와이프와 함께 청계천에 자주 갔었다. 키우던 기니피그가 새끼를 낳으면 단골 가게에 새끼를 데려다 주고 사료를 얻기 위해 찾아 가기도 했었고 이런 저런 곳을 다니며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었다. 청계천 복원이 될 즈음 시골로 이사를 왔고, 그 이후 가끔 서울에 가더라도 청계천은 절대 가지 않는다. 청계천 공원에서 즐겁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면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생각에 안타까움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청계천을 찾아가려 한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의 동상 앞에 서서 소외되고 어려운 자들을 위해 몸을 던진 그의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무늬만 진보주의자일 뿐이다.
P.S. 책을 구매한 독자들 중 추첨을 통해 저자의 CD를 주는 이벤트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 같이 이름은 알지만 그의 노래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에 소개된 노래 3~4 곡이라도 CD에 함께 넣어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가지 더 ...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 몇 달 전 KBS 1박2일에도 소개되었던 예천의 회룡포가 사라진다고 한다 (아래 사진). 회룡포는 거기 그대로 있지만 물길이 끊겨 넓은 모래사장만이 남겨질 모양이다. 정확한 진실은 4대강 사업이 진척되야 알 수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업 이전에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알고싶다. 이 곳은 경제논리로 없애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 유산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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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얼추 2년쯤 된 것 같다. 촛불시위가 계속되던 어느날. 이지상은 서울에서 지리산자락에까지 싫은 내색없이 달려와서는 손으로 셀 만큼의 몇 안되는 참가자들 앞에서 그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그날 나는 그를 처음 보았고, 행사를 마친 늦은 시간에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 때 처음 만났다. 대화 중에 서로 뱀띠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람 사귀기 정말 못하는 나는 술의 힘을 빌어 가수 이지상과 친구가 되었다. 코가 비뚤어 지도록 술을 마신다는 표현이 있는데, 아마도 그날은 둘다 코가 비뚤어 지도록 마셨던 것 같다. 그후로는 블로그를 통해 안부를 주고 받는다. 내 게으럼의 탓으로 자주 안부를 전하지 못해도 볼것없는 내 블로그에 그는 블로그 이름처럼 발자국을 자주 남겨준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 고마운 친구가 책을 낸다는 소식도 블로그를 통해 알았다. 그가 쓴 책 사람을 노래하다를 보면서 나를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사는 삶은 정말 잘 사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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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코드가 맞는 사람과 조우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가수 이지상 님의 이야기와 그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살이의 고뇌와 기쁨, 슬픔과 기대까지 모두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냄새가 나서 더 살고 싶은 사회와 세상을 위한 열망이 그의 이야기와 노래들에 실려서 널리널리 퍼져나갔으면 하는 그의 바람과 저의 바람이 모두 한마음으로 담긴 듯한 이 책! 그래서 더 따뜻하고 훈훈하게 와닿는 느낌이었지요.
그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바람과 갈망,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과 실천, 그리고 멋지게 알아주는 사람은 적지만 어쩌면 가장 행복한 방법으로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를 새삼 알아가고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컴퓨터나 인공지능의 일잘하고 완벽함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좀 모자라 보이고 투박해보일지라도, 그래도 좀더 사람냄새가 나는 세상을 갈망하며 살아가고자 허기진 생각을 모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와 노래는 또 하나의 희망과 우리들의 노력으로 힘을 갖게 해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이지상과 가수 이지상, 세상을 사랑하는 이지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나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국 우리가 사람을 위하는 삶과 마음으로 이 세상을 가꿀 때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음을 소중하게 마음에 담습니다. 실천하는 마음을 발휘할 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람을 이야기하는 이지상, 그의 마음과 영혼이 담긴 노래들에 절로 귀기울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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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지상. 나는 잘모른다. 그가 딱히 유행시킨 노래도 없고 춤,용모로 알아주는 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책을 읽는내내 난 가수 이지상의 사람됨을 보았다.
그는 꼬박 스므해동안 비주류음악인으로 민주주의를 꿈꾸며그가 희망하는 세상을 꿈꾸며 기다림의 방식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노래가사에는 하나하나가 사연이 있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마음으로 직접 와 닿는 그런 노래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생각하며 부른 [사이판에 가면]사춘기의 설레임을 알기도전에 일본군들의 정욕받이로 살아야만 했던 그시절.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속 깊은곳에 불끈두주먹이 솟아오릅니다. 일본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후원 노래제일 후렴구에는 [일본인 학교보다 좋습니다] 제일동포로 살아야만 했던 우리의 동포들...
노무현대통령의 그 안타까운 죽음. 폐지줍는 노인. 나는 경향신문만 본다. 4대강살리기 기어이. 김홍일 나는 그가 더 슬펐다등 읽는내내 마음속이 짠해져오며 나도 과연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가수 이지상은 말한다. 그가 이 글을 속삭이듯 경어체로 쓴 것도 그 때문이란다. 그에게 노래는, 자신의 시를 백 사람이 한 번 읽기보다는 한 사람이 백 번 읽기를 바란다고 말한 어느시인의 이야기처럼 그의 이야기도 말하고 있다.
가슴아픈이야기들이 책을 놓는 그순간까지 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온다. 기다림이란 ....희망을...민주주의를....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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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Carrot씨' 코너의 친절에 힘입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평소에는 개인적인 소회나 일상 주변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글들을 모아 놓은 책들은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지상씨의 책을 읽으며, 뭐라고 할까, 내가 너무 나 자신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사회나 보다 넓게는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거나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보다 관심과 애정을 갖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은이를 지금이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노래란 무엇일까. 노래를 단순히 시간을 보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듣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노래보다는 가수들의 외모와 매력에 빠져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에 비하면, 책에서 느껴지는 지은이는,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정서를 어루만지고 바람직한 세상,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어울어져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들을 기타와 함께 살아온 것 같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웃들뿐만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 재일동포들에 이르기까지 힘든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따스하고 애정이 담긴 눈길로 고통을 같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돕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 준다. 지은이는 시종일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가 했고 하고 있는 일들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러한 활동들이 얼마나 큰 노력과 인내와 희생이 필요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지은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가, 공유하지 않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타인에 대한 배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시간을 내어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