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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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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는 여름을 가장 좋아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놀거나 일할 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다 삼십대부터는 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봄꽃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이 여름이라지만 여름에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아니라도 우리 눈을 끌어당기는 것은 너무 많으므로. 춥고 힘든 겨울을 거치며 얼음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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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는 여름을 가장 좋아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놀거나 일할 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다 삼십대부터는 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봄꽃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이 여름이라지만 여름에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아니라도 우리 눈을 끌어당기는 것은 너무 많으므로. 춥고 힘든 겨울을 거치며 얼음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미는 꽃이라니. 그렇게 피어나는 꽃은 겨우내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 마음과 비례하여 경탄하게 된다. 봄꽃에 경탄하게 되면 이미 늙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봄꽃에 대한 경탄을 멈출 수 없다. 봄꽃에 대해 경탄하는 그림책.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선물을 받았는데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받았으니, 축복처럼 이 책을 만났다.

 

봄이다. 새들의 노랫소리 가득한 숲. 꼬마 여우 페르디는 꽃향기를 맡고 나비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봄을 즐긴다. 그러다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는데 언덕 아래 과수원에 눈이 쌓여 있다. 봄인데 눈이라니. 페르디는 나비들이 춥겠다고 생각하며 재빨리 언덕 위로 올라간다. 누구한테 먼저 알려 줘야 할까 생각하는데 비둘기 한 쌍이 보인다. 눈 소식에 비둘기들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야겠다고 말한다. 남쪽으로 가기 전에 페르디와 비둘기는 고슴도치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하니 고슴도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냐며 시무룩해 한다. 페르디와 비둘기와 고슴도치는 이제 다람쥐에게 소식을 전하며 도토리를 더 모아야 한다고 전한다. 토끼들한테는 풀을 더 먹어 둬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동물들이 늘어나며 긴장감이 높아 가는데 이들은 눈 소식에 걱정하다가 그 전에 할 것이 있다고 소리 지른다.

 

“눈밭에 가서 신나게 놀자!”

 

아이다운 천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토끼와 다람쥐와 고슴도치와 비둘기와 페르디는 과수원으로 달려간다. 과수원에는 눈이 아닌 꽃 천지가 펼친 화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꽃눈을 흰 눈으로 잘못 보았던 셈.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좋다. 펼친 화면으로 계속 이어져 감동을 더한 과수원 장면에서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며 아울러 가장 아름다웠던 꽃눈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관악산 외진 곳, 우리 식구의 전용 공간처럼 이용하던 그곳은 시골집 마당처럼 제법 널따랗게 땅이 다져졌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끔 지나갈 뿐 인적이 드물다. 약간 경사진 윗부분에는 아름드리 아카시나무들이 우쭐우쭐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고 옆에는 때죽나무도 활짝 자라고 있다. 여덟 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시골집 마당 가듯 찾은 그곳에는 꽃잎이 하얗게 땅을 덮고 있다. 봄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때죽나무에서는 진한 향기가 날리고 막바지 아카시 꽃잎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이리저리 땅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환호성을 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떨어지는 꽃잎을 나울나울 따라가며 담는다. 작은 바람에는 적은 꽃잎들이 큰바람에는 많은 꽃잎들이, 바람과 꽃잎은 그렇게 서로 죽이 맞아 떨어진다. 바람이 한동안 불지 않자 딸아이는 두 팔을 쭉 펴고 몸을 팔랑팔랑 돌리며 “바람아, 불어라!” 팔랑개비가 되어 바람을 일으킨다.

 

다음 장면으로 차마 넘기기가 아까워 한참 붙잡고 바라보던 화면을 넘기면 페르디와 친구들은 꽃잎을 한 아름씩 주워 뿌리며 논다. 그런가 하면 꽃밭에 벌렁 드러누워 엄마 품처럼 포근한 꽃 이불을 즐긴다. 마음껏 놀았으리라. 비둘기 고슴도치 다람쥐 토끼들이 제각기 돌아간 뒤에도 페르디는 그냥 포근한 꽃 이불에 누워 살며시 미소 짓는다. 활짝 핀 꽃송이들이 바람 따라 춤추는 것을 바라보며. 나 또한 딸아이랑 페르디 곁에 눕는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10.04.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