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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고전 읽기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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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   매 순간 우리는 미래의 자신이다.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이다. 확실히 우리는 한 몸 안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산다.    인생을 서서히 관조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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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

 

매 순간 우리는 미래의 자신이다.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이다. 확실히 우리는 한 몸 안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산다. 

 

인생을 서서히 관조할 수 있는 나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 고전은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사랑을 읽었다면, 이제는 개츠비가 그런 사랑을 한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고, <마담 보바리>를 그저 사랑에 맹목적인 여성으로만 바라보았던 젊은 날과는 달리 보바리부인을 보면서 상상이 주는 현실의 참혹함을 이해하게 되고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의 모습으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곤 하는데 고전은 내가 나이가 든 만큼의 몫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 또한 고전을 나와 함께 나이가 드는 책이라고 하는데 이 표현은 내가 즐겨 했던 말이기도 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공감대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처음 제목을 본 순간 , 언뜻 이해되지 않았던 제목이었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이 책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수십 번을 읊조리고는 하였는데, 어느 순간 아 ~지금의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의 나이고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뜻임을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고전 안에는 현재를 읽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개츠비나 마담 보바리, 젊은 베르테르나,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를 통해 현재 있을 법한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곤 했던 것 같다. 세계가 아무리 빠르게 변화하고 강산이 수백,수천번 뒤집어졌다해도 인간의 자연생태적 측면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저자 정혜윤이 말하듯이 고전의 이야기들은 소설속 이야기로만 멈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론 우리 삶 전체를 바꿀 수도 있는 ‘내면의 삶’의 출발점을 제공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고전은 무척 중요하고도 진실한 이야기이다.

 

 

삶 안에 또 하나의 삶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황홀한 독서였다.

 

 

개츠비의 이상하리만치 집요한 데이지를 향한 사랑, 덧없는 열정과 더불어 설명되어 지는 ‘미국적 성공과 몰락’을 통해 개츠비의 욕망이 한 개인의 욕망이 아닌 덧없고 무절제한 번영의 시대를 보여주는 <위대한 개츠비>는 자본주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 개츠비만 따로 떨어뜨려 생각해보면, 순수하고 착하고 귀여운 소년이 자본주의와 쾌락의 물결에 휩쓸려 욕망의 덫에 걸려버린 한 남자의 씁쓸한 인생사이다. 저자의 <위대한 개츠비> 읽기에는 데이지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자 꿈이기에 , 개츠비가 자신의 꿈을 사랑한 순간, 언젠가는 사라져갈 텅 빈 무엇이자 시든 청춘, 영혼을 잃어버린 껍데기 같은 삶으로 전락하였기에 개츠비의 사랑을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지 않고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를 발터 벤야민은 이런 표현을 하였다.

“동물적 존재란 그에게는 어쩌면 일종의 수치감 때문에 인간이라는 형상과 인간의 지혜를 포기하였음을 뜻하였는지도 모른다.” 벌레가 된 그레고리 잠자를 동물적 존재라 표현하며 그레고리 잠자를 저자는 '나를 향하는 칼날‘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 짊어져야 하는 공통적인 짐과 꿈은 자신안의 욕망과 다른 사람이 부여한 수많은 욕망을 통합해 내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능력을 원하면서 갖지 못하기에 꾸는 꿈을  카프카는 동물적 존재로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라고 내가 말할 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란,내가 내 살을 도려낼 때 사용되는 칼이 바로 당신이라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

-카프카,『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한 남자가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 한 여인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는 장면은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면 항상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워더링하이츠에 부는 바람처럼 광적인 사랑의 모습과 , 캐서린에게 유령으로라도 매일 밤 자신의 곁을 찾아와주길 바라는 절망 가득한 부르짖음의 히스클리프에게 우리가 매혹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광기와 집착때문일까?  저자는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매혹적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금욕주의자가 되느니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며, 열정으로 가득 찬 인간은 확실히 덜 타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영원한 것만이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며, ‘나는 너야!’라는 선언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불행 없는 소망은 없다는 걸, 부도덕하지 않은 절대성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마담 보바리>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장이다. <보바리즘>의 저자 쥘 드 골티에에 따르면 보바리즘이란 자신과 , 자신이 실제로 그러한 것과는 다르다고 믿는 능력이라고 한다. 즉 플로베르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자신은 자신이 그러한 것과는 다르다고 스스로 믿는 능력’이 병리학적 양상을 제시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인 엠마는 자신의 전 생을 ‘마치 ~처럼’ 살았는데 사랑을 해도 마치 귀부인처럼, 사치를 부릴 때도 마치 파리의 부인처럼, 종교를 믿을 때도 마치 성녀처럼, 하는 것이다. ‘마치 ~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실제의 나와 상상속의 나는 다르다는 그 간극을 뼈져리게 의식할 때가 온다. 그땐 엠마처럼 파멸이 눈앞에 다가와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30~31절-

 

이 고독하고 아름다운 구절 다음 문장이 바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치 ~처럼’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해석을 들을 수 있는데 '마치 ~ 처럼' 세상을 살면  상상력이 부족하고 필연적으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게 되므로 자애심과 자기 연민의 저 밑바닥엔 자기 경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를 '마치 ~ 처럼'이 아닌 ‘마치 ~ 이 아닌 것처럼’ 으로  보는 시각은 무척 중요하다고 한다. 마치 ~ 아닌 것처럼 ‘을 통한 질문과 의심,끝없는 문제제기만이 우리 마음을 작동시키고 다른 세계를, 더 광활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외에 저자의 감각적인 독서법을 통해 다시 읽게 된 <거미여인의 키스>라든지<위대한 유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주홍글자>등은 더욱 감미롭게 읽혀진다. 고전에서 끌어올린 알토란 같은 명대사들과 명장면들은 다시 한번 감동에 사로잡히기 충분하였고, 텍스트와 더불어 의미를 전달하는 독서법은 고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욱 감성을 충만하게 한다. 저자의 감각적인 독서법으로 인해 책을 덮은 순간 폭풍의 언덕위에 세워진 워더링 하이츠를 떠올려보게 되는 고전의  황홀감이 그득하다.

 



YES마니아 : 골드 k********2 2012.08.18. 신고 공감 15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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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양이 아니라 깊이로 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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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전을 좀 읽어내며 독서의 깊이를 더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지 꽤나 된 것 같다. 당시 먼저 떠올랐던 것이 동양고전이었기에 '논어'를 먼저 잡았고 이 책을 읽고나면 다음은 '맹자''노자''한비자' 등등을 읽을 것이고, 서양고전도 곁들여 읽을 거라고, 그래서 나의 독서의 폭과 깊이가 더해질 거라고 내심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잡았던 '논어'는 몇 개월이 지나도록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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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전을 좀 읽어내며 독서의 깊이를 더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지 꽤나 된 것 같다. 당시 먼저 떠올랐던 것이 동양고전이었기에 '논어'를 먼저 잡았고 이 책을 읽고나면 다음은 '맹자''노자''한비자' 등등을 읽을 것이고, 서양고전도 곁들여 읽을 거라고, 그래서 나의 독서의 폭과 깊이가 더해질 거라고 내심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잡았던 '논어'는 몇 개월이 지나도록 처음 읽었던 그 부분에 그대로 책갈피가 꽂혀있다. 언젠가는 다시 손에 들게 될거란 막연한 생각으로 그냥 방치해 놓은 채.

 

독서습관이 책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최근 느끼게 되었다. 매년 일년에 몇 권을 읽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워왔고, 그 목표대로 월단위 주단위로 독서계획을 세워 독서량을 맞춰내기 바쁜 독서를 하다보니  어쨌든 새로운 책을 선택할 때도 내가 익숙한 주제를 다룬 책을 먼저 선택해서 보게되고 내용이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주제를 다룬 책들, 그리고 내게 선행지식이 없어 가독성이 떨어질 것 같은 책들은 은연 중에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독서편식만 심해지고 어느 정도 독서량이 되면 독서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고전을 봐야겠다는 결심은 막연한 욕심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책에 미친 청춘」이란 책을 읽은 후 좀더 다양한 책을 선택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룬 책들 대부분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고전소설에도 살짝 흥미를 갖도록 해준 것 같다.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겠다는 결심과 욕심이 나로하여금 때마침 고전소설을 다룬 이책 「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꼭 먼저 읽어 보도록 조급증을 갖도록 했다. 특히 책에서 다룬 고전소설들은 제목만 들어도 알만한 위대한 작품들이었기에 내가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되줄 거란 생각을 했었고 감각적인 독서가로 알려진 정혜윤작가가 고전소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들을 쏟아내 놓았을까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또한 한몫했던 터였다.

 

체육 시간 전날이면 서점에 가서 얇은 문고판 책 한 권을 사고 엄마의 커다란 팬티 한 장을 빼돌려 엉덩이와 헐렁한 엄마 팬티 사이에 그 책 한 권을 끼워 넣고 그 위에 체육복을 입고는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이 공놀이를 할 때 자신은 책을 꺼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읽기를 했다는 작가. 어떤 책이 엉덩이 밑에 숨기기에 좋았던 책이었는지가 중요했고 그렇게 읽었던 책이 대개 고전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읽었던 고전을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하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기억나는 장면 중 많은 것을 어느 틈엔가 자신이 직접 겪어 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만큼만 그를 이해할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도 인생에 몇 년은, 혹은 몇 날 며칠은, 혹은 어떤 찰나에는 히스클리프였을 것이다.(혹은 현재도) (P.66)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을 향한 사랑은 강하고 끈질긴 모습이 공포스럽기까지 하지만 때론 우리도 현실에서 이런 지독한 사랑에 빠져 본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에게 고전은 사건이 위대한 책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마주한 인간들의 반응이 위대한 책이다. 고전 속 주인공들은 어느 한 부분에서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쉽게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우리는 고전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고전소설에서 주목하는 인물들은 곧 현재의 우리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생각을 갖도록 한다.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고 한다.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뭔가 읽고 써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 고전이라고 한다. 저자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꿈꿨던 밤마다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 책을 읽고나니 보물과 같은 이런 고전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지난 날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앞으로 내가 읽고 또 곱씹어야 할 책이 고전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삶의 시간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로 재는 것'이란 말을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제 내게 있어 독서는 양이 아니라 그 깊이로 재는 것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 늦게나마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j 2010.04.18. 신고 공감 7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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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스스로 발견해야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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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정혜윤씨의 저서이기에.  둘째, 고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참 신선한 표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고전이 세기를 걸쳐 읽히기 되는 것은 놓고 '세계가 여러번 진행된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이건 역시 정혜윤이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것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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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정혜윤씨의 저서이기에.  둘째, 고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참 신선한 표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고전이 세기를 걸쳐 읽히기 되는 것은 놓고 '세계가 여러번 진행된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이건 역시 정혜윤이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정혜윤씨가 이 책에서 다룬 것들 중 내가 읽어본 고전은 단 몇 편에 지나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 역시 저자와 독자의 소통으로 보자면 일방적인 이야기를 겨우 듣는 입장에 불과한 독서였다.  그동안 고전을 외면해 왔던 나를 질책할 일이었다.  누구였던가.  이름만으로 모두가 아는 세계적 명사인 그는 '고전'만 읽으라고 했다.  (그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게 참 안타깝네)  뿐만 아니라 고전의 중요성은 여러 차례 많은 이들로부터 들어왔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내놓은 '추천도서' 리스트를 잘 들여다보면 많은 량의 고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토록 고전을 외면해 온 것인지.  그러면에서 이 책은 나의 편중된 독서습관에 빨간 등을 켜주었다.

 

  책으로 들어가보다.  정말 아쉽게도 나는 이 책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첫째는 내 탓이요.  앞서 말한 것처럼 독자인 나의 독서량 부족으로 저자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음이다.  둘째는 정혜윤씨 탓(?)이다.  (어허, 오만한 독자일세. 거참....)  그 이야기를 슬슬 해보자.  고전이란 뭐랄까?  발견하며 읽는 맛이 제 맛이 아닐까 싶다.  어떤 책이든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고전은, 그 안에서 나만의 것을 발견하는 맛이 쏠쏠하다.  그런데 정혜윤씨는 이 책에서 고전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발견' 해두었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을 하나의 요리에 비교해 보자.  제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 할지라도, 요리조리 맛깔나게 찍어준 음식 사진이라 할지라도 직접 맛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기에 그럴까? 그 요리가 맛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먹어보지 못한 자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는 '이미 맛 본 자의 후기' 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 맛있겠군.  먹어봐야겠어'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할터이다.  그런데 정혜윤씨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전반적으로 맛있어요.  하지만 그 버섯은 조금 덜 익었구요.  소스는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포크날은 적당히 길이가 있는 것으로 선택하세요.  그래야 면이 흐르지 않아요' 하고 이야기 해주었다.  어떤 독자에게는 이런 상세한 후기가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더 이상의 발견거리가 없으리만치 '완벽한' 후기는 절망스러웠다.

 

  반면,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어떻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한낱 남녀의 사랑이야기 정도로만 해석한 것인지.  베르테르의 절절함과 그 가슴아린 섬세하고 연약한 감성은 왜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유독 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좋아하고 이 책은 몇 십번을 읽은 책이라 남다른 애정을 가진 책이긴 하다.  하지만 너무 표면적인 읽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우리의 베르테르씨를 제대로 알아봐주지 못했음이 서운했다. 

 

  그러나 이 책은 역시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아주 뜨끔한 울림.  '무식하기 짝이 없군.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 그렇게 고전을 몰라?  대화가 안되는군.  좀 읽지 그래?' 하는 송곳같은 날카로움을 느껴야 했다.  또 하나.  역시 직접 경험만한 것은 없다는 생각 '아무리 보기 좋은 것이라도 내가 직접 입어보고 먹어보는 것이 최고' 라고 말이다. 

 

   정혜윤씨 '저도 세계가 계속 진행되길 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제가 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다음 달 독서목록에는 고전을 두어권 추가해 봐야겠다.  그리고 한 chapter, 한 chapter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m*********m 2010.04.27.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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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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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학창시절..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궁한 주머니사정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책을 사 모았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 읽기를 그다지 싫어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나의 책모으기는 다소 읽기를 전제로 한 것이라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편집증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읽고 싶은 책, 읽기 쉬운 책 위주가 아닌 동서고금의 철학서적과 역사서, 그리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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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학창시절..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궁한 주머니사정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책을 사 모았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 읽기를 그다지 싫어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나의 책모으기는 다소 읽기를 전제로 한 것이라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편집증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읽고 싶은 책, 읽기 쉬운 책 위주가 아닌 동서고금의 철학서적과 역사서, 그리고 지성이 넘치는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섭렵해야 된다고 여겨지는 고전문학 책 중심으로 나는 별다른 독서계획조차 없이 무분별하게 사 모으기에 급급했고, 수중에 조금이라도 돈이 쥐어지면, 가차없이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이러한 나의 취미(독서가 아닌 그저 책모으기)로 말미암아, 대학에 진학하고 얼마가 지난 다음에는 작지 않은 내 방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의 책을 소장하게 되었다. 처음엔 책을 부지런히 사모으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시던 부모님도 정도를 약간 지나쳤다 생각하셨는지.. '일단 여기 모은 책들을 다 읽고 또 새로운 책을 사는 건 어떨까..?'라는 말씀을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하셨다.

 

물론 모은 책들 중에 읽은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주로 고전문학작품 중심으로 시간이 나는대로 부지런히 읽기를 시도했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하면서 틈나는대로 읽었던 책들이.. 오히려 여유시간이 많아지고 시간관리가 훨씬 용이해진 대학시절에는 잦은 술자리와 다양한 방법의 쾌락추구 등에 밀려 오히려 뜸하게 되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생각도 크고, 시간도 많았던 대학시절 책을 늘 가까이 두지 못한 기억이 아직도 아련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 취직을 하고, 어엿한 성인으로 살아가게 될 즈음.. 집안 사정으로 잠시 조그만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세간살이를 다 들일 수 없어 살림의 상당부분을 집 근처 창고에 보관한 적이 있었다. 꼭 필요한 물건 이외에는 모두 창고행이 결정된 상황이어서 나의 소장품들도 고스란히 창고로 보내졌다.  한 1년 내외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책들은 나중에 꺼내어보니 습기를 머금고, 곰팡이가 쓸어 매우 흉측한 몰골로 변해 있었고.. 아쉬움과 추억을 뒤로 하고 결국 가지고 있던 책의 상당부분을 그냥 폐기처분해야 했다. 폐기 처분된 책의 대부분은 채 한 페이지도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었음은 물론이다.

 

정혜윤의 「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은 '정혜윤식 고전읽기'라는 어느 리뷰어님의 말씀처럼 그녀가 좋아하고 또 깊이 감명받은 고전 작품들을 그녀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소개하는 책이다. 소개된 고전을 미처 읽어보지 못했거나.. 그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숨아 가빠, 채 쫓아가지 못하면, 다소 어렵고 공허하게 들릴 수 있는.. 그래서 읽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어쪄면 책이 주는 메세지나 감동이 무척 상이할 수 있는 책이란 느낌이다.

 

소개된 책들 중의 절반도 채 완독하지 못한 나로서는 쉽지 않았던 책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나마 읽은 책들도, 대부분 머리에 피도 안마른, 세상을 모르던 시절에 읽은 것이 대부분이라 이제는 어설프게 남은 단편적 기억으로 그녀의 해석을 쫓는 작업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린 시절 독서의 위력이라는게 이런건가 싶을 정도로, 읽은 책과 전혀 모르는 책에 대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많이 달리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맨 처음으로 든 생각은 '고전읽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과거에 대한 애틋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손쉬우면서도, 또 결국, 유일한 방법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리뷰를 쓰고 바로 시간나는 대로 헌책방으로 달려가볼까 한다. 나와 유사한 과거의 이력이 담긴 빛 바랜 고전들이 그 향기를 여전히 간직한 채,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책들도, 그리고 나도 지금부터 '두번째 세계 안'에서 젊은 날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얼마나 많은 후회를 다시 십년, 이십년 후에 할지 이미 한번의 경험으로 대충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p***i 2010.05.04.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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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같은 책을 읽고나서도 독자에 따라 그책의 해석과 의미가 달라진다. 특히 정혜윤작가의 독서이야기는 같은 장면을 새롭게 애틋하게 해석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책속에 소개되어있는 고전중에 내가 읽어본것은 고작 두세개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도 오래전에 읽어서 사실 기억도 나지않아 '어 이런내용이였나' 나의 문학적 건망증을 되짚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짧은 이해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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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같은 책을 읽고나서도 독자에 따라 그책의 해석과 의미가 달라진다. 특히 정혜윤작가의 독서이야기는 같은 장면을 새롭게 애틋하게 해석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책속에 소개되어있는 고전중에 내가 읽어본것은 고작 두세개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도 오래전에 읽어서 사실 기억도 나지않아 '어 이런내용이였나' 나의 문학적 건망증을 되짚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짧은 이해력으로는  정혜윤작가의 식견들이나 표현들이 여럽기도 했고 새로운 책을 이야기 하는거 같기도 했다.

 고전읽기의 중요성은 자서전이나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누누히 얘기하고 있다.이책은  단순히 읽는데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그 여운을 간직하고 자신의 삶에 투영하기 위한 섬세한 고전 탐독법을 알려준다. 책을 읽고난후 고전에대한 흥미를 다시 일깨울수 있는 에피타이져 같다!

c*****3 2010.04.18.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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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장르를 가리지 않고 방대한 독서를 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감각적인 글쓰기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 정혜윤이 자신이 읽은 고전들을 다시 독후감을 쓰듯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독서 에세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책을 많이 있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는 저자가 자그마치 15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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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방대한 독서를 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감각적인 글쓰기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 정혜윤이 자신이 읽은 고전들을 다시 독후감을 쓰듯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독서 에세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책을 많이 있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는 저자가 자그마치 15편이나 되는 고전을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사실 나는 고전을 잘 읽지 않아서 인지 어떤 고전 책들이 나올지 기대되기도 하고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나올까봐 걱정도 되었다.

저자에게 있어서 고전은 사건이 위대한 책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마주친 인간들의 반응이 위대한 책이라고 한다. 나에게 고전은 그저 꼭 읽어야만 하는 필수 교양서적이었는데 저자와의 전혀 다른 생각은 내가 고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 같았다. 

위대한 캐츠비, 변신, 폭풍의 언덕, 젊은 베터르의 슬픔, 골짜기의 백합, 마담 보바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84,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설굴, 순수의 시대, 주홍 글자, 거미여인의 키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위대한 유산 총 15편의 고전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나는 15편의 고전중에서 읽은 것은 고작 2~3편 밖에 되지 않았다. 폭풍의 언덕, 젊은 베터르의 슬픔, 주홍 글자가 전부 였다. 게다가 내가 들어보지 못한 고전들까지 몇편 있어서 속상했다. 나도 나름대로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너무 수박 겉 핥기 식의 독서만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저자는 총 15편의 고전을 한편 한편 자신의 시각에서 고전들을 다 재해석 하고 있었다.  고전들을 통해서 만나는 저자는 그 누구보다 감성적이었고 고전을 읽었던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서 한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이 다 보일정도로 고전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 위대한 캐츠비>와 같은 고전은 들어본적은 많지만 직접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위대한 캐츠비>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요약 정리해 두어서 쉽게 기억되는 것 같다.   <폭풍의 언덕>은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읽은 기억이 있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게도 하고 잠시 잊고 있었던 고전의 내용까지 다시 기억나게 하는 것 같다. 시간을 내서라도 다시 한번 찾아서 그때의 기억을 추억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겠다.   <주홍 글씨> 헤스터의 가슴팍에 달린 A는 여자의 죄 많은 정욕의 구체적이고 치욕스러운 정표였다. 하지만 주인공 둘의 사랑은 아직까지 내가 기억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읽은 고전을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정리할수 있을까?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 자신이 쓴 개인적인 독서 에세이를 읽으므로써 몰래 저자의 독후감을 보는 것만 같다. 고전을 읽고 다시 누군가의 생각으로 정리해서 함께 보고 의논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역시 이 한권의 책으로 독서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생긴 것 같다.

x******0 2010.04.17.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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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다보면 참으로 찌질한 인간군상들을 만난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건 스스로 부인하고 싶어 했던 바로 나의 모습들이다.  그러면서 위로받는다.  ‘나 같은 놈 저기 또 하나 있네’ 고전을 통해 만나는 우리들의 모습.  그것은 항구성을 지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인간만큼 진화가 느린 동물도 없다고 했던가?  그녀의 종횡무진 독서법은 고전과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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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다보면 참으로 찌질한 인간군상들을 만난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건 스스로 부인하고 싶어 했던 바로 나의 모습들이다.  그러면서 위로받는다.  ‘나 같은 놈 저기 또 하나 있네’


고전을 통해 만나는 우리들의 모습.  그것은 항구성을 지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인간만큼 진화가 느린 동물도 없다고 했던가? 


그녀의 종횡무진 독서법은 고전과 현대문학의 이야기를 얽혀가면서 전개된다.  사실 이런 종류의 (남의 독서법을 엿보는 듯한) 책읽기는 자못 지루할 수 있다.  고전을 접하지 않았거나 그녀의 말들이 현학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더욱 그렇다. 그녀는 서두에 이런 말을 언급한다.


 ‘사토장이의 딸’의 작가인 조이지 캐롤 오츠의 말을 인용했다. 고전과 현대문학을 골고루 썩어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법이다. 오웰의 『1984』는 하루키의 『IQ84』와 함께,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나 『분노의 포도』는 매카시의 ‘국경 3부작’과 함께, 이런 소설읽기라면 누구에게나 재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의 말은 고전이 절대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바로 우리를 바라보는 거울과 같다는 얘기를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지 않았을까?


 고전을 읽으며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개츠비가 겪었을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개츠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1920년대 미국은 최고의 호황기와 불경기를 동시에 겪게 된다.  그 아노미 속에서 인간의 속물스러움은 어쩌면 당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미국 민중역사가인 하워드 진을 소개한다. 하워드진의 논조는 그녀의 고전읽기에 균형을 잡아준다.  1920년대 미국의 혼란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당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의 수는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그것이 우리가 1920년대의 개츠비를 통해 지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또 어떠한가?  꿈, 꿈, 완전히 정반대되는 꿈.

과거, 이 책은 징그러워서 읽기를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읽는 동안 내 몸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벌레의 환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갇혀 지내며 몸 안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환상에 시달리는 장면은 내가 가장 징그러워하는 영화 속 장면이다.  그 환영으로 인해 나는 변신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내가 어느 날 한 마리의 징그러운 벌레가 되었을 때 내가 아끼던 사람들이 나를 그야말로 벌레 취급하게 된다면, 더더욱 내가 그들을 위해 내 인생을 포기하고 아낌없이 한 마리의 벌레처럼 세상을 살았었다면. 오호...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포기하지 말찌니... 그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우리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핑크빛이라 여겼던 모든 사랑이 알고 보면 이별의 다른이름이었을 뿐이다.  ‘폭풍의 언덕’의 집착적인 괴이한 사랑.  죽음으로 밖엔 설명될 수 없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바람의 피우다 결국 자살한 ‘마담 보바리’.... 여기서 잠깐 멈추자. 


플로베르는 이 소설을 쓰고 음란 혐의로 기소되었단다.  이 책을 나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와 줄리언 반스의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오가며 펼쳐지는 남편을 배신한 여자들의 사생활과 그 사생활을 지켜보는 남편의 입장.  플로베를 통해서만 아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우리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플로베르가 엠마를 죽인 것은 자신의 실패를 현실 속에서 고통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욕망 때문에 괴로운 나날들.  그녀가 말하는 ‘마치 ~가 아닌 것처럼’ 오늘도 살길 바란다. 


이것만으로는 좀 덜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한 번 뿐인 인생의 쓸쓸한 일회성’을 극복하고   두 번째야말로 자신의 욕구를 설명할 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고전읽기는 단순히 고전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미래를 이어가는 욕구의 통로였다. 


b****h 2010.04.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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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좋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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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는『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를 읽고 있어”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 책’이다. 여기서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몇 번을 읽었는가, 라는 횟수는 무의미하다. 그 보다는 한 번 읽고 나서 제대로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다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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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는『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를 읽고 있어”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 책’이다. 여기서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몇 번을 읽었는가, 라는 횟수는 무의미하다. 그 보다는 한 번 읽고 나서 제대로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다시 읽을 수 있다. 혹은 어린 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것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서 뭔가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라고 덧붙였다.

 

정혜윤의『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주목한 이유는 작가의 고전 읽기가 감각적이며 황홀하다는 데 있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독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작가의 열정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한 대로 ‘위대한 생각이 위대한 사건이다’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빼앗긴 몸은 엉덩이의 힘으로 묵직하게 지탱할 수 있었다. ‘세상의 어떤 자리에 앉더라도 결국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야 하는 거니까’라는 솔직한 고백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엉덩이의 힘에서 발견된 그녀의 고전 읽기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세계가 두 번 진행된다’는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즉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을 고집스럽게 파고들었다.

 

이 책을 펼치면『위대한 개츠비』를 시작으로 하여『위대한 유산』에 이르는 15편의 고전이 소개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의 고전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작품을 골고루 석었다. 이러한 까닭은『사토장이의 딸』의 조이스 캐롤 오츠가 말한 독서법에서 찾을 수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고전과 현대 문학을 골고루 섞어 읽는 게 가장 좋은 독서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조지 오웰의『1984』는 하루키의『1Q84』와 함께, 스타인벡의『에덴의 동쪽』이나『분노의 포도』는 메카시의 ‘국경 3부작’과 함께, 디킨스의 소설은 닉 혼비의 소설과 함께 읽기를 권하고 있다. 재미와 공감 못지않게 우리의 세계를 확장 시켜줄 수 있다는 열정적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는 작가의 바람 중에『골짜기의 백합』은 아주 인상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골짜기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골짜기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읽어보면 다음의 문장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소. 사랑하는 여인은 매번 우리로 하여금 양식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게 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소. 그것은 그녀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오. 그대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 조그마한 거절에도 슬퍼하며 입술이 도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기적적으로 거리를 뛰어넘고, 피를 바치고, 미래를 희생하기도 하지. 오늘날 그대는 나의 과거를 원하고 있으니, 여기에 있소.

 

그러면서 작가는 골짜기의 사랑이란 기억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들에 다 함께 바쳐진 사랑, 내 자신의 약속과 결심으로서의 사랑, 선물 같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폭풍의 언덕』에서는 ‘최고의 사랑 고백’을 들려주면서 부서진 영혼을 위로를 해주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최고의 사랑 고백은 곧 ‘나는 너야’라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생각한 것은 히스클리프 자신이었단 말이야.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난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 거야. 나는 그 일부분으로 생각지도 않을 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네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는 히스클리프를 구원하고자 한다. 이유인즉 히스클리프가 ‘사랑의 넓이가 아니라 깊이를 보여주는 묵시론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고전이 중요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우리들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인 고전에서 정혜윤은 세계가 두 번 진행되며 전설이 되는 욕망을 일깨워주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두 번이란 ‘한 번뿐인 인생의 쓸쓸한 일회성, 혹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내려는 의지’이며 전설이란 ‘자신이 꿈꾸기를 계속한다면 잃어버릴 것은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단순한 고전 읽기라는 독서 에세이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삶의 질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에세이’이라고 여겨졌다.

p******0 2010.03.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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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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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평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책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종류의 책을 내가 즐기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려운 고전인 경우에는 나 혼자만의 독서로 끝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배우는 정도가 얼마나 큰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란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처음에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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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평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책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종류의 책을 내가 즐기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려운 고전인 경우에는 나 혼자만의 독서로 끝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배우는 정도가 얼마나 큰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란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처음에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말은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과 비슷한 얘기였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된다면, 두 번째의 진행에서는 첫 번째의 오류와 실수를 말끔히 지우고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행동을 연출할 터이니, 두 번째의 진행은 완전한 축복일까, 아니면 김 빠진 인생일까.

 

이 책에는 위대한 개츠비, 변신, 폭풍의 언덕 등 15편의 고전에 대한 정혜윤 작가의 느낌이 담겨 있다. 기대했던 대로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웠으나, 예상과는 벗어난 부분도 있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이런 종류의 책은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에서 고전을 평가하고 감상하여, 그 누가 읽어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좀더 주관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저자의 느낌에 공감하거나 공통된 경험이 없을 경우 살짝 생경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나와는 핀트부터 다르거나 좀 더 깊은 독서경험에서 나온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을 연결키는 독서의 내공을 따라가기에 부족함이 있었고, 호흡이 긴 감성적 문장들의 화려함에서 본 뜻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한겨레 신문에 주마다 실리는 정혜윤 씨의 글은 이보다 쉬워 쏙쏙 이해되면서도 그 감각적 감성에 즐겁게 동화될 수 있었는데... 이 책이 좀 난해하게 느껴진 건 어쩌면 주마다 읽던 짧은 길이의 칼럼에 익숙해져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방대한 독서량이 부럽기도 하고, 발군의 쓰기 실력을 펼칠 수 있는 독특한 정서와 실력도 저자의 개성을 한층 빛내주지만, 느낌의 넓이보다는 깊이가 깊어 좀 벅찼다는 사실.

 

그래도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깊은 감성의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감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은 고수와의 만남. 이 책의 느낌을 이렇게 평가내릴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은 후,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가치와 교훈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는 더욱 커졌다.

a******2 2010.05.3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