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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대학은 청량리역에서 3정거장 정도 위에 있었다. 버스 타는 일보다 걸어가는 일이 많았던 신입생 시절.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해 보겠노라 큰길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지름길을 택하기도 했는데... 아직 어수룩한 신입생 시절 길을 잘못 들어, 가게 된 곳이 있었으니.... 바로 588 집창촌이다. 당시 철거하려는 자와 철거당하지 않으려는 자의 대립 속에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었는데 어리고 순진했던 내게 충격적인 장면은 빨간 등과 하얀 드레스였다. 정육점에서나 볼 수 있는 빨간 등에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언니들이 나와 의자에 앉아 있던 모습. 이후엔 지름길을 버리고 큰길로만 다녔고, 이후엔 그곳에 없어졌다고 들었다. 없어지는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몸싸움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 삶의 큰 틀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어딘가에서 그 시절을 생각할지 모르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인생에 발을 집어넣은 이상 삶의 쳇바퀴는 굴러가기 마련이니까. 1980년대 초 청량리를 무대로 한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재혼을 하자 고모 집에서 눈칫밥을 먹던 종수는 집을 나와 버린다. 그곳에서 배회하던 중 청량리 역 근처에서 구두를 닦는 형들에 의해 찍쇠로 일하게 된 종수. 청량리 일대를 주먹으로 주름 잡는 무서운 독사형과 또 다른 형들과 고달픈 생활을 시작하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찍쇠로 열심히 일하는 종수를 좋아하지 않는 개남은 막내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종수에게 잡다한 일을 시킨다. 그렇게 구박을 당하던 종수는 그게 서러워 어느 집 담장에서 울고 있는데 아름다운 혜련 누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착하고 아름답지만 모든 이들이 무시하는 청량리 588에서 일하는 여성. 하지만 종수는 그런 누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다정하게 대한다. 누나에게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종수, 혜련을 만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독사 형과 구두닦이 형들. 그들은 자신의 삶 안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하는데...
지금은 없어진 588. 하지만 장소만 없어졌지 실제로는 다른 형태로 성매매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 당시에 그들은 인생의 패배자들이자 루저였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피해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악독 포주에 희생당한... 주먹으로 청량리 일대를 주름 잡던 독사는 588에서 일하지만 착하고 희망적인 아가씨 혜련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간다. 또한 자신이 데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준다. 현실에선 이런 일들이 일어날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니까. 삶의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그들이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사는 건 혜련이 말한 공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서 벗어나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의 메시지...
어떤 상황에서든 힘든 사람들은 꼭 있다. 그들도 이렇게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우리라고 못할 소냐 싶게 열심히 살아가면 좋을 텐데.. 요즈음은 비교 대상이 많아선지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데 힘들다. 상대적 박탈감이 어느 때 보다 크기 때문에... 그럼에도 희망을, 삶의 용기를 말하는 건 그래도 그때 보다 지금의 우리가 더 편하게 살기 때문 아닐까? 어린 나이에 구두를 닦고, 부모에게 버려지고 거친 삶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 지금의 아이들은 그 삶을 알지 못할 뿐 더러 알 수도 없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속에서 절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삶의 끈을 잡고 열심히 생활 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반갑다. 공부에 찌든 친구들. 부모와 소통 되지 않아 외로운 아이들, 친구 관계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 내 안의 삶이 전부인 양 생각하지 말고 내 주변도 돌아보면 어떨까? 다른 이의 삶을 알아가다 보면 내 인생이 그렇게 비루하지 않음을 알게 될 테니까. 날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에 날개를 달아 주고 싶은 그런 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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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개를 보니 80년대 초의 청량리 뒷골목길 얘기란다. 588 집창촌과 구두닦이 소년의 애환을 담았다는 얘기를 대하니 저 표지가 가슴 답답하게 다가오고 제목이 주는 뉘앙스는 더 처절하니 얼마나 힘든 소설일까? 싶어서 일순 겁(?)나기도 했지만 청소년 소설이라는 문구가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 됐달까. 마치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대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정감있는 눈물과 시큰함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대목도 없고 그 시대를 세밀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어둔 시절임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종수는 16살로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이민을 갔다. 이민1년후 데려간다는 약속이 유효할땐 고모집에서 안쓰럽게 생각하고 잘 보살펴 주었는데 아예 연락두절이 되면서 구박의 수위는 점점 강해져 무작정 가출을 한다.
어슬렁거리는 종수를 개남이가 발견해 독사(최평우)에게 데려가고 석길이 형, 성길이 형, 문수 형, 개남이 형과 조를 이뤄 구두닦이를 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갈 곳 없는 어린 것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일상이지만 고모집에 있을때보단 마음이 편하다. 툭하면 주먹이 앞서는 형들에게 어느날도 얻어 터지고 담 밑에서 울고 있을때, 목욕 다녀오던 선녀같이 예쁜 누나를 만나는데 그 이름하여 혜련.
혜련은 588 집창촌의 일명 창녀다. 종수를 알고부터 혜련의 삶은 종수를 위해주는 어머니요, 누나, 묵언의 가족이 된다. 가출 후 처음 인간적인 대우를 받음에 종수는 인생에 희망을 품는다.
중략
사실 나조차도 청량리는 말만 들었지 잘 모른다. 더구나 뒷골목의 어두운 현실은 책이나 드라마로 접하는게 다임을. 저자는 누나와 청량리에서 자취를 하며 본 기억을 더듬어 청소년에게 희망이 되는 책을 냈다는데 그 의도에 맞게 잘 써진 책이다.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꿋꿋히 바르게 의연하게 살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데 혜련누나를 운명처럼 만나고, 그 혜련누나가 종수를 매개체로 구두닦이들과 연관이 되어 따뜻하고 자상한 손길을 받아서 조금은 유순한 사람들이 되가는 과정(본성들은 착하지만 삶이 그들을 드세게 만들었겠다)은 가슴이 훈훈해진다. 그네들도 살아있는 따뜻한 가슴들임을 알게 된다. 개남이의 엇나간 방황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상이고 그 시대의 뒷골목의 비애이자 표상으로 다가온다. 고아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종수에게 한 줄기 빛이자 희망인 혜련누나는 종수를 둘러 싼 그들에게 무지개로 희망을 주지만 결국 무지개는 하늘에 떠 있는법. 잠시 왔다 가는 인생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 삶은 소중한 것임을, 배려하는 마음을 알려 준다. 어둔 현실이지만 희망이 있고 바른 노력을 해서 이루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삶은 노력하는 자의 몫임을 일러준다. 저 시대를 청소년들이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곳에서든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정진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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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고 싶다는 가족에게 버림받고 집을나와 떠돌다 구두닦기를 하지만 착한심성으로 희망을 잃지 않는 종수라는 아이를 통해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희망이란 어떻 것인지 말해주는 책이다.
작가는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갖기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메세를 담고있다. 요즘 희망이 없는 시대에 살고있다고 한탄하고 입시공부에 시달리며 집과 학교에서 마음둘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어려움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종수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힘이되어줄 것이다.
종수는 일명 찍새사 매일 다방이나 사람들이 모이는곳에서 구두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구둑닦는 곳에는 독사라는 이름의 큰형이 이들을 관리한다. 종수는 막내라 형들에게 구밖을 받고 가족이 그리울때는 우연히 만난 혜련이라는 누나를 찾아간다. 종수가 사는곳은 뒷골목으로 인생의 실패자등 소외계층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거칠기 짝이없다.
종수는 어리지만 마음씀씀이가 예쁘다. 비슷한 나이의 개남은 자신의 처지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날그날 즐거움만 찾는다. 그런 개남의 눈에 종수가 예쁠수가 없다. 결국 개남은 종수를 구타한후 떠나버린다.
혜련 종수가 의지하는 그녀의 직업은 창녀다. 남들은 그녀를 손가락질 하지만 종수가 희망을 찾는데 큰 힘이되어준다. 종수에게 공부의 중요성과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만 한다. 개남이 그런 아이다. 다행이 종수의 일관된 관심을 개남이 받아들여 종수와 같이 꿈을꾸는 모습을 통해 나또한 편협한 나를 반생해 본다.
우리 아이들의 대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학교와 가정이란 울타리에 갖혀 공부를 해야하는 현실이 더 버거울것이다. 이말을 들으면 또 어른들의 잔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정글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여러분은 여러분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야한다. 그렇지 못한 종수같은 아이들은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이글속의 종수는 다행이 좋은 사람을 만나 다시 공부할수 있는 기회를 잡지만 공부에서 손을뗀 후에 다시 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시 잡는다 해도 여러분이 하는 몇배의 노력을 해야한다. 남의 불행을통해 내 행복을 찾으라는게 아니라 남의 불행을 통해 지금 갖고 있는 행복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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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고 싶다!"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갈망이 아닐까? 그런데 그 어느때보다 '날고 싶다'는 마음 속 울림이 크게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의 배경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의 청량리?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히 짐작하게 되는 정경들 속 구두닦이들과 집창촌 여성의 삶을 어떻게 그려내고 '희망'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 절로 호기심을 끌었다. 청명한 푸른 하늘을 붕 떠가는 한 소년의 모습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가운데 책을 중반 쯤 읽다보니, 그 소년의 모습에 담긴 흑백사진의 정경을 뒤늦게 포착하며 사라진 청량리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아버지의 죽음과 엄마의 재혼으로 홀로 남겨진 열여섯 살의 '종수'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고모집을 가출한 후 구두닦이패의 일원이 된 종수는 거리에서 우연히 혜련이 누나를 알게되고, 또한 구타와 욕설을 일삼는 구두닦이형들(성길이 형, 문수 형, 개남이 형)의 틈바구니에서 고달픈 찍쇠 생활을 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점점 한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삶의 기반을 다져나가는 희망을 꿈꾸게 된다. 차례를 보면, 마지막이 '이별, 그 영원한 그리움'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고, 그 누군가가 혜련이 누나임을 첫장을 들추면서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고된 현실 속에서 그 어느때보다 사람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집창촌에서 일하면서도 기존의 이미지와 모든 편견을 불식시키는 혜련이 누나의 존재는 마치 진흙탕 속 새하얀 연꽃으로 쉽게 이미지화되었다. 청량리를 주름잡는 왕초 '독사 형'은 드라마 추노의 '대길'과 하나가 되었다. 주먹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 한 여인으로 인해 내일을 꿈꾸는 삶을 살게 되고, 거친 세상으로 내몰린 상처투성이 '종수' 역시 따듯한 시선 하나로도 삶의 의지와 희망을 간직하고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등, 그렇게 '혜련'의 존재와 6명의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가 밝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여리고 순수한 소년 '종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1980년대 청량리는 암울한 현실과 대조를 이루며 따뜻하게 그려졌다. '희망이 없는 시대'라는 오늘날 '인간성 상실'이라는 화두를 정말 희망이 없어 보이는, 가진 것 하나 없는 7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내가 진동하며 훈훈한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었다. 가족보다 더 끈끈했던 그들, 그리고 그들의 변모가 읽는 이로 하여금 한 가슴을 뜨겁게 만들며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나는 날고 싶다>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대통령이 죽었다>(박영희, 실천문학사, 2009)라는 책이 떠올랐다. 솔직히 시대적 배경이 거의 동일하면서 기억에도 없는 7,80년대의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문배달과 구두닦이라는 생소한 일과 한솥밥을 먹으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내일을 꿈꾸는 그들의 모습은 닮아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우리를 뒤돌아보게 한다. 지금보다 더 열악하고 암울해 보이는 그 옛날(솔직히 조선 시대의 풍경보다 오히려 낯설게 생경하게 느껴진다)의 이야기가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과연 희망은 '없는' 것일까? 끊임없이 자문해본다. 그러나 희망은 여전히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애정어린 시선 하나, 다사로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희망이고, 삶의 의지가 되는지, 때 묻고 거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종수'의 밝은 내일이 한 눈에 그려지니, 그 기운이 책을 통해 한 가득 온 몸으로 번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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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현대에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노스텔지어’의 사전적 의미는 불규칙적이고, 과거의 동경을 담은 내면의 감정을 말한다. 보통 어릴 적 고향에 대한 그리움 즉 향수를 말한다.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은 어릴 때의 즐거웠던 기억이나 추억이기도 하지만 재미있게 본 영화나 감동 깊게 읽었던 책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로 그립다 못해 아련함으로 전율을 느끼게도 한다. 오래 전에 청량리에 가본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그 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기억으로는 청량리와 비슷한 동네를 배경으로 ‘꼬방 동네 사람들’이란 책이 나오고 영화화 되었던 판자촌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다.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그 가난이 족쇄가 되어 더욱 어렵고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본 책과 영화의 내용을 다시 되새기라도 하듯 1980년대 초 청량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왔다 해서 읽게 되었다. 『나는 날고 싶다』라는 소설이다. 제목만으로도 이상의 날개가 생각난다. 사람이 날고 싶다는 생각할 때에는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고 자유스럽지 못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면 들수록 새처럼 훨훨 날고 싶다는 꿈은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나는 날고 싶다』는 1980년대 초 열여섯 살 꼬마 구두닦이 종수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과정을 담은 내용으로 1994년 제2회 MBC 창작동화대상 수상으로 문단에 나와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서 당선된 김종일이 쓴 청소년 소설을 다국어 교육 전문 종합 출판사인 어문학사에서 출판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열여섯 살 꼬마 구두닦이 종수, 싸움 잘하는 구두닦이 두목 독사, 언어장애자로 구두수선을 하는 사금쟁이 석길이, 구두닦이 딱쇠 성길이와 문수, 주인공 종수를 제일 못살게 굴던 개남이, 죽을 때까지 종수를 돌봐주던 생면주비의 누나 혜련이다. 이야기는 종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재혼을 하면서 이민을 가기위해 고모집에 맡겨지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잘 대해주던 고모네 가족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심하게 구박하고 학대를 하자 가출을 한다. 종수는 청량리를 배회하다 구두닦이를 하는 형들을 만나 구두닦이를 하게 된다. 어느 날 형들에게 매를 맞고 담장 밑에 쪼그리고 있다가 혜련이를 만나게 된다. 혜련이는 청량리 집창촌에서 일하고 있다. 비록 집창촌에서 일하면서 혜련이는 종수를 아끼고 위해준다. 종수는 그녀의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에 이끌려 의지하고 따르면서 종수의 삶은 변화한다. 종수는 혜련이 누나와 독사형의 도움으로 검정고시 학원에도 다니게 된다. 어느 날 종수의 바라던 대로 혜련은 사창가의 생활을 끝내면서 집장촌 여성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일한다. 혜련의 그런 모습으로 인해 독사형은 물론 다른 형들도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화한다. 상인과 포주들의 갖은 방해와 반발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혜련을 사랑하는 독사형이 등장하여 해결해준다.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혜련은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되고 혜련을 친누나처럼 의지하고 좋아했던 종수는 통곡을 한다. 『나는 날고 싶다』는 세상에 홀로 된 열여섯 살 어린 소년이 구두를 닦는 찍새 일을 하면서 조직원들인 형들의 욕설과 구타, 그리고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살아가던 중 사창가 생활을 하는 혜련이를 만나면서 절망의 벼랑 끝에서 희망을 찾고 실천해나가는 감동적인 스토리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시게 된 동기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누나와 청량리에서 자취를 하면서 청량리의 인상이 기억에 남아 청량리를 소재로 꼭 한번 작품을 쓰고 싶었다 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과거보다 나약하고 의존적이다. 하지만, 종수와 같이 이 작품을 읽는 청소년들도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순수성을 훼손당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바람이 있다. 이상의 날개에서 날고 싶다는 의지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사회에 대한 모순과 그것을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에 대해 극단적인 돌파구를 선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에게 열여섯 살 꼬마 구두닦이 종수처럼 결코 허물 수 없는 무기력을 극복하고 보다 높은 곳으로 비상하기 위해 이상의 날개를 활짝 펴 미래로 나아가라는 메시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여, 이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 가보자 가슴속에 꿈을 안고서 미래를 향하여 젊은이여, 사랑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 가보자 가슴속에 꿈을 안고서 그대를 향하여 세상의 그윽한 향기 온몸으로 느끼고 그 꽃향기에 사랑을 담자 고운 선율 그대 노래 입술에 담고 미래의 꿈을 향하여 날아 가보자 세상의 그윽한 향기 온몸으로 느끼고 그 꽃향기에 사랑을 담자 고운 선율 그대 노래 입술에 담고 미래의 꿈을 향하여 날아 가보자 날아 가보자, 날아 가보자, 날아 가보자. 어차피 태어난 인생을 자기만의 온전한 삶을 만들고자 한다면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그리움과 향수를 느끼게 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세상에 모든 것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이 생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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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소년 성장 소설이기에 딸 부터 읽게 했다. 청소년들의 삶과 애완, 아픔과 사랑을 보게 했다. 딸이 그 시대의 아픔과 그 시대의 인물 구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은 이해한 듯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먼저 자기들과 색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내가 보았다. 내가 살아왔던 시대와 같은 시대이기에 조금은 공감대를 이루었다. 가난하고 힘든 시대적 배경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종수이다. 종수로 인해 주변 상황과 설정인물들이 그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종수는 홀로 남겨졌다. 종수 아버지는 죽었고, 종수는 고모댁에 맡겨졌다. 엄마가 다시 돌아온다는 애기를 남기고 재혼을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고모댁의 학대로 인해 참지 못하고 결국은 집을 뛰쳐나오게 되었다. 집을 나온 종수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형들을 만났다. 형들에게 수많은 구타와 고통을 당했다. 그는 맞으면서도 그들에게 정을 두게 된다. 그 고통의 세월속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자기보다 연상인 혜련이를 만나게 된다. 마치 그 여인에게서 모성을 찾게 되며, 혜련이에게 정을 구하고자 한다. 혜련은 창녀였다. 이 여인 또한 아픔이 많다. 종수는 혜련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기대고자 한다. 혜련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종수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여인이었다. 창녀라는 굴레속에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따뜻했다. 그 따뜻한 혜련이를 종수는 자주 찾게 되어진다. 종수와 혜련이의 관계속에서 힘들면서도 서로에 대한 따뜻함을 전해주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찡하게 전달되었다. 독사라는 삶의 난관이 있었지만 그 독사 또한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종수의 아픈 현장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일까? 독사와 혜련과의 관계를 지켜보는 종수의 마음 또한 이해하게 된다. 종수로 인해 저자는 현대의 암울한 시대를 재 해석코자 함이 보이며, 인간미가 넘치는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저자의 마음 또한 느껴진다. 어려웠지만 어려움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그 시대의 삶에서 사람들의 향기가 풍겨나오게 됨을 느끼게 된다. 서로에 아픔을 손가락질 하지 않고 품어주고 보듬어 주는 이들의 생활속에서 오늘의 우리들을 반성케 하고 있다. 요즘 우리 애들은 이 시대의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쉽게 정죄하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이들의 가치관으로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은 이해한 듯 하지만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못내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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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고 싶다
참 많이 울면서 가슴 아프게, 그러나 따뜻하게 읽은 책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딱 또래 나이의 아이를 키워서 인지 종수를 만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한참 사춘기 시기에 찾아온 불행한 가정환경은 다른 시기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이다.
마음 여리고 나약한 종수의 모습을 보면서 우선 잘 자라 주는 모습에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고, 같은 어른으로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는 모습에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부모로부터, 친척으로부터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한 종수에게 가출은 어쩌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참 예민한 시기에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이에게는, 마지막 피난처가 바로 거리의 아이가 되어 결국은 구두닦이를 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구두닦이를 하는 형들에게도 늘 구박만 받으면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종수에게, 혜련이 누나의 관심은 여리고 선한 마음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혜련이 누나 역시 천대받고 무시받는 창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마음만큼은 천사보다 더 예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든 아무리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든지 그 힘든 고난의 시간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종수에게 혜련이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비록 누구나 손가락질 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마음깊이 사랑이 넘치는 혜련은 주변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어주는 등대같은 사람이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 시간이었다. 종수를 괴롭히던 개남이 역시 종수의 진심을 알게 되고, 종수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사실에 결국은 마음을 고쳐먹게 된 것이다. 누구나 겁내는 무서울게 없었던 싸움 꾼 왕초 독사형까지 혜련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서, 사랑하는 감정을 알아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며 결국은 마음을 고쳐 먹고 새사람이 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알게 하는 마음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요즘 아이들이 참 나약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 것도 부러울 것 없이 자란 아이들 일수록 더 나약한 모습을 보면서, 이것저것 걱정이 될 때가 많다. 고생이 무엇인지, 어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성장기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종수와 혜련 그리고 힘든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 팍팍하다 살기 힘들다 생각했던 세상이지만, 아직도 세상을 여전히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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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들의 세상. 우리도 한번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보자 그런 마음이 가끔 생기지 않나요. 학창시절에는 부모님께 사춘기에 반발심에서 일부러 같이 많이 싸우기도 하고 가출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보다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아무런 희 망도 없는 하루살이에 불가합니다. 처음부터 나쁜사람 없고 희망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앞에서든 뒤에서든 밀어주고 끌어주는 가족 이 있기에 멘토가 있기에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편의 슬프면서도 감동적이 스토리가 저를 울리네요. 부모의 버림을 받은것이나 다름없는 구두닦이는 종수는 비록 588에서 일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혜련누나를 알게 됩니다. 그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던 종수에게는 누나가 엄마같 은 존재였습니다. 남자들만 사는 집에서는 대화보다는 주먹이 우선이고 쌍소리가 나오기 일쑤입 니다. 그런 그들도 차츰 변하기 시작합니다. 왕초 독사형은 차츰 누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통해서 이들은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기에 됩니다. 좋은일만 있는 것은 아닙 니다. 그들에게 변화된 삶을 주었던 누나가 아픕니다. 그래도 행복하기만을 바랬는데 마지막 편지 와 통장을 남기고 그녀는 죽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움만 남기고요.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것은 다들 마찬가지지만 다시 동기부여를 해서 희망을 가지는것은 그 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 그녀가 떠나고 남은 독사형을 비롯해서 종수, 석길이, 성길이, 문수, 개남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병랑끝이라고 말해도 좋은만큼 이들은 그 저 구두닦는 일이 전부였고 먹는것이 낚이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자신들도 뭔가를 할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이상 다 할수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혜련고 독사가 잘 되기만을 바랬는데 역시 소 설은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네요. 우리 청소년들이 이책을 읽고 자신과 종수를 비교하면서 얼마 나 자신이 행복한 아이인지 알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입니다.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모습이 왠지 숙연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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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울어 보았습니다. 그것도 청소년들을 위해 쓰여진 책을 읽다가 울다니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과 더불어 시작된 고모네 집에서의 힘겨운 생활, 그리고 가출. 70년대 경에 가출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을 터, 구두닦이 생활은 그나마 해 볼 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도 거친 형들 밑에서 쥐어박히며 살아가는 것은 종수에게도 힘든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터에 우연히 만나게 된 혜련이 누나는 종수에게 누나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종수를 위해 검정고시 학원에 다닐 기회도 마련해 주고, 마치 친누나와 같이 종수를 위해 이런 저런 신경을 써 주던 혜련이 누나의 죽음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나게 되는데,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혜련이 누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거친 구두닦이 형들의 마음에 숨겨져 있던 따뜻한 면모를 끌어내었던 것도, 또 구두닦이 형들 중의 왕초인 독사 형으로 하여금 그 거친 세계를 떠날 마음을 갖게 해 주었던 것도 바로 혜련이 누나였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종수가 아닌 혜련이 누나라고 생각되었을 정도로, 혜련이 누나가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습니다. 종수를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같이 몸파는 일을 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었던 누나들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던 혜련이 누나의 모습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자존감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던 그 모슥 속에서 과연 세상에 이런 삶도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안타까워 하던 혜련이 누나의 죽음을 보며 내 삶의 마지막에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와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누나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종수에게 전해진 누나의 편지와 통장은 종수를 향한 누나의 진실된 사랑을 드러내 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종수와 같은 또래의 동생을 잃어버린 과거라도 있는 것인지, 어째서 친동생도 아닌 종수에게 그와 같이 헌신하였던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그렇게 사랑하고 의지하며 지낼 수 있다면 힘겨운 이 세상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수의 나이를 열 여섯살로 설정해 놓았던 점은 이 소설의 내용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데에 약간의 방해가 되었습니다. 열 여섯살의 나이면 중학교 3학년 정도 되는 나이이고, 그 정도 나이에 그와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애가 어디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정도 나이라면 더 힘든 일을 시키지 겨우 찍새(구두닦이 무리에서 손님들의 신발을 모아 오는 일을 하던 사람) 일 정도 밖에 안 시켰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해 저 역시 그렇게 깊이 알 수 없었기에 아예 틀렸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목에 대해서도 살짝 아쉬움이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언제나 주도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것은 혜련이 누나이기 때문입니다. 종수는 결코 스스로 '나는 날고 싶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혜련이 누나가 '너는 날아야 한다'라고 했기에, 종수도 '그렇다면 나도 날아 볼까'라고 생각하고 따랐을 뿐입니다.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소설을 청소년 소설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이런 저런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약간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스스로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종수가 맞지만, 그러나 혜련이 누나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모성애와 같은 따뜻한 느낌이 이 소설을 참으로 의미있게 만들어 주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혜련이 누나의 모습을 보면서 참 천사같은 여자다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누나의 죽음을 확인한 병실에서 종수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 오열하기 시작했을 때,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참 따뜻하게 느껴졌던 소설이었습니다. 이런 소설이 그리웠는데 참 잘 만났다 하는 생각에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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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고 혼자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 할때 그 막막하고 힘들었을 종수에게 이미 어두운 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혜련누나는 무엇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고 동생같은 종수를 아껴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요 모든 사람들에게는 지금 현재 상황에 오기전부터 그 과정이 피치못한 일들이 많았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처지를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터라서 더 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친 남매 이상으로 위해주는 두 사람을 보면서 참 정이라는 것이 대단하구나 싶었고 가족보다 더 진한 사랑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서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아껴주는 마음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언지도 조금 알것 같았습니다 결국 혜련이 누나는 세상을 뜨게 되지만 우리 종수는 그런 따스한 사랑을 통해서 자신이 나아갈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평생 찍쇠일로 구두딱이나 하면서 뒷골목을 배회할것이 아니라 이젠 더 멋진 삶을 향해 달려갈것 입니다 모두 혜련누나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젠 종수 스스로가 개척해 나갈 길이기도 합니다 아직 꿈이 있고 젊은 나이이기에 우리 종수는 앞으로 아주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 도약하려고 합니다 분명히 멋지고 훌륭한 우리 종수가 될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삶일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노력하는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다고 지친다고 쓰러지지 말고 내가 가야할 길을 내다 볼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겠습니다 노력하는 자에게 그리고 늘 생각하는 자에게는 성공의 문은 항상 열려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