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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상징. 그리고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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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위한 책이다. 114개의 개념이 "생각의 거울"을 통해 옷을 하나씩 벗는다. 미셸 투르니에는 처음 이 책으로 첫대면이다. 알지 못하는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기묘한 흥분이 내 심장을 사로잡는다. 그 다음 순서는 작가와 나의 대화─기싸움─에 따라 다르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얇은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지하철을 타고 가며 30분 내로 읽을 수 있는 ''간식용''. 하나는 문단
"기호와 상징. 그리고 유머." 내용보기
놀이를 위한 책이다. 114개의 개념이 "생각의 거울"을 통해 옷을 하나씩 벗는다. 미셸 투르니에는 처음 이 책으로 첫대면이다. 알지 못하는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기묘한 흥분이 내 심장을 사로잡는다. 그 다음 순서는 작가와 나의 대화─기싸움─에 따라 다르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얇은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지하철을 타고 가며 30분 내로 읽을 수 있는 ''간식용''. 하나는 문단 속의 문장, 문장 속의 단어, 단어와 행간 속에 숨은 이야기를 탐색해야 읽을 수 있는 ''우주 식량용''. 이 책은 지구에서 시리우스까지 놀러갔다가 와도, 넉넉한 ''우주 식량''이다. 이 책을 소개 받은 것은, 즐겨 찾는 카페에 올라 온 서평에서였다. 작가의 이력이 흥미로웠다. "철학 전공 교수 자격 시험에 실패하고 나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의 글. 번역자도 고백하고, 나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도 고백했다. 나도 고백한다. 철학에는 미안하지만, 문학─우리─에선 행운이다. 신나는 상상력 놀이를 마친 기분이다. ''이것과 저것''의 형태로, 화두를 삼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웃음과 눈물"에서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신과 악마, 존재와 무"의 세계로 올라간다. 투르니에의 이 책은 파로스의 등대를 오르는 원형계단이었다. 모두 57개의 디딤돌이 놓여있는 원형계단을 한 발자국씩 옮기다보면,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처음 글자를 보고 의미 해석이 시작되면,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덥친다. 마음을 비우고 눈걸음을 옮기다보면, 친절한 손을 만나게 된다. 투르니에는 철학의 길을 옆에 끼고, 문학의 길을 걸으며 웃음을 짓고 있다. 말끔한 포장도로를 걷는 길은 아니지만,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면 손을 내민다. "생각의 거울"은 철학이고, 문학이고, 신화이고, 기호의 열쇠였다. 소설을 읽어가면, 늘 나타나는 상징들. 거리를 걸어도 마주치게 되는 상징들. 생활의 주변에서부터, 철학 강의실을 지나 카페테리아에서 나누는 "대화"가 "생각의 거울"이 된다. [개, 지하실, 정착민, 오른쪽, 신 ]과 [고양이, 다락방, 유목민, 왼쪽, 악마]의 왼쪽 항과 오른쪽 항 사이의 유사성을 파악할 수 있을까. 투르니에는 이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유사성과, 깨달음을 찾는 숙제를 내준다. 점수에 연연할 필요도 없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 즐거운 놀이다. 일차적 인간과 이차적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일차적 인간은 직관을 따르며, "영원한 현재의 젊음에 매혹되어 있다." 이 인간형은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다. 지적인가, 관능적인가 하는 소소한 것과 관계없다. 이차적 인간은 계산을 따른다.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참조"하며 살아가는 인간이고, 성실함은 자유 위에 존재한다. 두 인간형을 읽어가며, "조르바"와 "사마천"을 떠올렸다. 디오니소스의 혼란과, 열정, 그리고 육체와 영혼의 자유를 타고 다닌 조르바는 현재의 인간이었고, 과거를 자신의 벽돌로 삼아, 영원한 미래를 만들어 낸 사마천은 마음 속으로 한 없이 숨어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일차적 인간과 이차적 인간은 서로 끝없는 애증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점이다. 생각하고 싶지만,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사전이다. 즐거운 놀이도감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랑과 우정을 비교해 보면, 처음에는 사랑이 우세한 듯하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랑이 우정의 면전에서 누려온 이점들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특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상호성이 없는 우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pp.22 "사냥과 낚시를 동시에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냥에는 뻐기는 행사를 통해 활짝 피어나는 공격성이 있다. 왕들은 모두 사냥꾼들이었다. 낚시는 신비와 침묵으로 둘러싸여 있다. 낚시꾼은 이차적인 사색적 인간이다."-pp.49~51 "스푼과 포크는 각기 다른 축제 전야를 가지고 있다. 스푼은 길고 빛나는 크리스마스 저녁을 상징한다. 포크는 짧고 시끌벅적한 망년회 저녁을 관통한다."-pp.90
YES마니아 : 골드 c***m 2006.09.1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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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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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울은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개성적 개념화의 산물이다. 이 철학 에세이는 제목처럼 서로 대칭되는 생각들을 '그럴듯하게' 정리해 내고 있다. 포크와 스푼과 같이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부터, 아름다움과 숭고함, 존재와 무와 같은 미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개념들도 아우른다. 이러한 개념들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정의해 나가는 과정과 방식 또한 아주 자유로워서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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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울은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개성적 개념화의 산물이다.

이 철학 에세이는 제목처럼 서로 대칭되는 생각들을 '그럴듯하게' 정리해 내고 있다.

포크와 스푼과 같이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부터, 아름다움과 숭고함, 존재와 무와 같은 미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개념들도 아우른다.

이러한 개념들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정의해 나가는 과정과 방식 또한 아주 자유로워서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언어학이나 철학 사유의 틀을 빌기도 하고, 신화 속에서 발견되는 집단적 무의식이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하기도 한다.

 

이것은 언어를 주된 분석의 대상으로 여기는 현대의 분석철학을 시도하되,

과학적인 엄밀함 보다는 고개 끄덕일만한 공감과 납득가능성을 추구하는 문학적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모던하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인식의 영역 밖에 있던 것들을 개념화하고, 

빈약한 사전적 의미만을 지니고 있던 개념들을 여러 근거들을 통해 풍부하게 만드는 작업은 훌륭한 가치를 지닌다.

더구나, 그 개념을 '생각의 거울'에 비추어 얻은 또 하나의 개념과 함께하며 일석이조 하고 있지 않은가?

(몇몇 개념들의 설명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잘 와닿지 않는 것도 있긴 했지만....^^)

 

너무 관념적이기만 하고 실제 손에 잡히는 내용없는 칭찬이 너무 길었다.

하얀 마음을 가진 109페이지 "쾌락과 기쁨"을 살펴보자.

 

모든 창조에 수반되는 감정은 기쁨이다. 그것은 창조적 행동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면모이다.

창조적인 일이 가져다주는 다른 보상(돈, 명예)은 비본질적이며 우연적인 것이다. 기쁨만이 창조의 고유한 속성이다.

(창세기 보면 천지창조가 이뤄지는 7일동안 매일매일의 창조가 "야훼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로 끝나는데 이 성경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쾌락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기쁨이 창조를 물들이고 있는 감정이라면, 쾌락은 파괴의 한가지 형태인 소비에 동반되는 감정이다.

과자를 만드는 법을 고안해서 과자를 만드는 제과공은 기쁨을 느끼지만, 배가 고파서 과자를 먹으면 쾌락을 느낀다.

그러나 과자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이다. (도덕주의자들이 쾌락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과 쾌락이 분리시킬 수 없는 형태로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바로 관능이다.

관능이라는 이 파괴적 열망은 창조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명쾌하고도 납득할만한 정의다.

우리는 투르니에의 창조적 사고를 통해 세가지 관념에 대한 그럴듯하고 풍부한 의미를 얻게 되었다.

읽은 나도 기쁘니, 만들어 낸 투르니에는 많이 기뻤겠지...?

하지만, 이 세가지 관념에 대해 또 다른 그럴 듯하고 풍부한 정의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해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잊으면 안된다.

창조의 기쁨이 투르니에만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조선의 선비들의 대부분이 주자가 명쾌하고 그럴 듯하게 해석해 낸 공자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면서 더 이상의 해석은 없다고 했을 때, 윤휴는 "주자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왜 주자만 맞다고 하고 나는 틀리다고 하는가?" 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윤휴는 기존 권위를 파괴한 자리에 자기 것을 창조하는 관능적인 사람이다.)

e*****w 2008.04.0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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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유쾌한 짝짓기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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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북라인, 김정란 역, 2003)을 읽다. 이 책은 철학 지망생이었던 한 작가가 써낸 흥미로운 철학 에세이다. 투르니에는 일상의 이런 저런 부스러기들을, 쌍(雙)을 지어 여러 개로 분류하고 그 짝패들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여러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사유의 음정(音程)은 와 같이 삶의 베이스에서부터 나 와 같은 추상(抽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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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생각의 거울="">(북라인, 김정란 역, 2003)을 읽다. 이 책은 철학 지망생이었던 한 작가가 써낸 흥미로운 철학 에세이다. 투르니에는 일상의 이런 저런 부스러기들을, 쌍(雙)을 지어 여러 개로 분류하고 그 짝패들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여러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사유의 음정(音程)은 <목욕과 샤워="">와 같이 삶의 베이스에서부터 <신과 악마="">나 <존재와 무="">와 같은 추상(抽象)의 소프라노까지 옥타브를 높여간다. 이 책을 다 읽는데 달포 가량 걸렸다. 그렇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이 책의 행간(行間)의 답답함이 아닌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나른한 봄날에 꽃놀이 나온 노인네 마냥 느릿느릿, 마주 서 있는 '개념'들의 사이를 거닐듯이 읽었다. 미셸 투르니에가 삶을 다루는 방식은 딱딱하거나 근엄하지 않다. 말랑말랑하고 유쾌하다. 미셸 투르니에의 '거울'은 라캉과 이상(李箱)의 것보다 얇고 하루키와 영화 <거울속으로>의 것과는 달리 발랄하다. 투르니에의 '거울'은 평범하다. 그의 거울은 우리가 매일 보는 그것과 상사(相似)하다. 그 거울은 '대칭'을 이루는 양편의 축이다. 사람들은 거울의 대칭성을 이용해 화장을 고치거나 머리를 매만진다. 투르니에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일상을 '상대화'하고 개념을 '상대화'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지성은 경험에 자연상태로 주어지는 절대적인 것들을 '상대화하는' 능력이다."(200쪽) 이 말에 따르면, 투르니에의 거울이 다른 사람들의 것이 비해 조금 더 지적(知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거울의 양편으로 각기 '대칭'인 개념을 위치시킨다. 각각의 개념은 실증적인 하나의 '반대 개념'을 통해 자신의 내적 면모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투르니에가 대립되는 짝패들만을 모아 놓은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유사성이 도드라져 보이는 사물들을 접근시켜보기도 한다. 그러면 막연하게 같은 구역에서 서식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서로 간섭하면서 색다른 의미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가령 트루니에는 '불세출의 바람둥이'들인 돈 주앙과 카사노바의 대비(對比)를 통해 이들의 동질성에 섬세한 균열을 내고 거기에 신선하고 유쾌한 의미를 채워 넣는다. 이것은 삶에 대한 통찰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삶을 바라보는 투르니에 눈은 날카롭다기보다는 섬려(纖麗)하고 심각하기보다는 사려 깊다. 그는 말하기보다 듣고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현대 프랑스 문인들 중 가장 앞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평에 걸맞게 트루니에의 문장은 군살 하나 없이 늘씬하다. 그리고 그 걸음걸이는 경쾌하다. 꽤 무거운 생각을 짊어졌을 때조차 그렇다. 읽어보시라. 종종대는 문장으로 인해 입이 즐거워질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와 더불어 오늘날 철학의 왜소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고 물론 그 중 우선은 천박한 세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몇몇 철학 전공자들의 문장에 대한 게으름 또한 그 한 까닭이리라 생각한다. 철학자가 꼭 문장가일 필요는 없겠지만 복잡하고 심오한 사유의 타래를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풀어 보여 줄 수는 철학자들이 있다는 건 썩 좋은 일이다. 투르니에의 글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 대해 말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이 책이 '김정란'에 의해 번역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문학동네, 1997) 번역으로 1998년에 백상출판문화상(번역 부분)을 수상한 바 있다. 말하자면 번역자가 김정란이라는 사실은 이 책의 프랑스어에 대한 한국어의 대응이 신뢰할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불어 원문을 볼 수 없거니와 설사 어떻게 볼 수 있다하더라도 읽을 수조차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의 번역이 잘된 것인지 못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영역에 속한 것이고 몇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김정란은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나는 6년 전 백상출판문화상(번역부분)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번역을 신뢰하는 것은 번역자의 수상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김정란이 언어를 통해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용기 있는 시인이자 일견 하찮아 보이는 쉼표 하나도 보듬어 이름을 붙여주는 평론가이기 때문이다. 시 평론집 <영혼의 역사="">(새움, 200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정란은 평범한 시어(詩語)들의 복중(腹中)에 새롭고 풍부한 의미를 점지(點指)하는, 삼신할미 같은 평론가다. 그만큼 김정란은 한국어의 결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불문학 전공자다. 명문장가로서의 투르니에의 명성이 한국에서도 여전하다면 그것은 대개가 김정란의 몫일 것이다. 투르니에는 운이 좋았다.
p*****s 2003.08.26.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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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또 다른 자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당신의 또 다른 자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용보기
거울은 자아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창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상반된 자아를 보여주는 창이다 우리가 알고 있고 또 크게 개의치 않지만 거울 속의 나는 항상 나와 반대로 움직인다 나에서 비롯되었지만, 나의 상반되는 나... 이런 모순은 많은 예술작품이나 중세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거울 밖의 내가 슬픔에 잠겨 동안 거울 안의 나는 교활한 웃음을 짓고 있다거나 또는 거
" 당신의 또 다른 자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용보기
거울은 자아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창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상반된 자아를 보여주는 창이다 우리가 알고 있고 또 크게 개의치 않지만 거울 속의 나는 항상 나와 반대로 움직인다 나에서 비롯되었지만, 나의 상반되는 나... 이런 모순은 많은 예술작품이나 중세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거울 밖의 내가 슬픔에 잠겨 동안 거울 안의 나는 교활한 웃음을 짓고 있다거나 또는 거울 밖의 순수함으로 가득할 때 거울 안의 나는 음험함을 꿈꾸고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생각의 거울은 아마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무의식이 지배해 온 생각들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생각하는지조차 모르는 건 인간이기때문에... 투르네에는 우주를 둘러싼, 인류를 지배해 온 사고의 개념을 나누고 상반개념을 통해 그 개념들이 인류에 미친 사고의 과정을 그는 때로 파괴적으로, 때로는 가볍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쉽게... 당신이 읽다가 맞아! 하길 원하듯 말이다 책을 넘기기 전에, 충고 한마디 하자면... 당신의 문명수련기간이 지나치게 길었다거나, 어떤 존재와 개념에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다면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책이라 생각된다 물론, 문명이 문화보다 우월하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려하는 것은 해석과 수용 과정에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테면, 당신이 알고 있던,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 충격을 감당해 낼 만큼의 용기가 있는가?
m***m 2005.01.31.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