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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입니다. 제목과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도널드 덕으로 대표되는 디즈니 만화가 어떻게 미국의 이익을 전세계로 전파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타국에 강요해왔는지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1971년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 하의 칠레에서 나온 책이고, 미국에 의한 아옌데 정권의 붕괴 이후 칠레에서는 분서를 당한 책이기도 하답니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디즈니의 저작권법 소송이 두려워서 제대로 출간하지도 못했다고 하는군요. 작년에 우리말 번역본이 나왔는데, 늦은 감이 상당히 많지만 이제라도 나온 게 다행입니다.
처음에는 저자들과 영문판 번역자(데이비드 컨즐)가 쓴 서문이 있습니다. 이 책이 왜 1971년 칠레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칠레에서 민중연합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민중연합정부가 추진했던 문화 개혁의 일환으로 기획된 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자본가들의 매체가 끊임없이 민중연합정부에 대해 공세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잡고 있었던 좌파들은 그들을 폐쇄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매체를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로 봐서는 아마 이 때의 칠레에서 디즈니 만화가 가졌던 영향력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제국주의 문화의 첨병인 디즈니, 그것도 동물와 어린이들의 동심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쓰고 비판에서 벗어나려하는 도널드 덕 류의 만화의 본질을 파헤치는 책을 쓴 것이라고 하는군요. 책은 크게 6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장은 동심을 상징하는 디즈니 세계의 어린 동물들-휴이, 듀이, 루이 등등-이 사실은 모습만 어린이일 뿐 어른들의 반영일 뿐이라는 점을 파헤칩니다. 에피소드 안에서 도널드가 승리하든 그 조카들이 승리하든 상관없이 승리하는 건 어른들의 이데올로기라는 거죠. 다만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린이라는 탈을 쓰고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장과 3장에서는 디즈니 만화에서 주인공들이 아닌 다른 이들, 즉 야만인으로 등장하는 이들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당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베트남이나 남미, 아프리카인으로 보이도록 그림을 그리는 건 둘째치고라도 그들이 도널드나 스크루지, 미키 마우스 같은 이들로부터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그들에게 바보같이 복종하는 모습을 통해 디즈니가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제 3세계 깎아내리기를 하고 있다는 거죠. 게다가 도널드 등은 비글 형제들 같은 '나쁜' 침입자를 물리쳐주고 그 대가로 보물을 받아감으로써, 그들의 착취가 착취가 아닌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걸 보면서 자란 제 3세계인들은 디즈니의 눈으로 스스로를 보게 되는 부가적인 피해까지 입게 됩니다. 4~6장에서는 디즈니 만화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하는 계급 갈등이 사실은 어떤 모습으로 숨어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즈니 세계에서는 직업이라고는 서비스업 밖에 안 나온다고 합니다. 무슨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법도 없구요. 스크루지나 도널드 덕이 돈을 벌어오는 방식 역시 일을 해서가 아닌 내기의 승리를 통해서거나 (대부분의 경우) 모험을 통한 제 3세계로부터의 보물(또는 금화) 습득이지요. 마치 도널드 덕이 노동 계급의 반영인 듯 하지만, 실제 도널드는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한다 하더라도 (사회 구조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수로 인해 바로 쫓겨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의 노동 계급이 실직하는 이유 역시 개인의 문제 때문이라는 걸 은근히 강조하는 것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디즈니 만화 세계 어디에서도 재생산에 관한 것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말이죠. 휴이, 듀이, 루이의 부모님들은 전혀 나오지도 않습니다. 디즈니 세계의 모든 어른-아이의 관계는 부모-자식이 아니라 조카-삼촌(이모)의 관계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노동에 의한 물자 생산이라는 사회적인 생산 역시 완전히 생략되어 있죠. 의도적으로 노동계급의 역할을 완전히 축소함으로써 이 세상은 그들 없이도 돌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거죠.. 한장한장 읽어갈 때마다 놀라움이 가득했습니다. 그저 재밌게만 봤던 그 만화 속에 이런 이데올로기 장치가 숨어있었다니.. 저자들의 논지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아 그들의 주장 대부분에 동의할 수 있었다는 점이 더 놀랍게 만드는 이유죠.
아쉬운 것은 번역이 그리 깔끔하지 않아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저자들은 서문에서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는 데 중점을 두었다라고 했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비단 디즈니 만화 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 별 느낌 없이 접하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 이데올로기적 도구를 포함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디즈니 세계에서 생산 과정은 자연적인 것이지 사회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술적인 것이기도 하다.
새물결, 아리엘 도르프만, 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309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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