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은 세 종류의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허물을 바로 잡았다고 한다. 즉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300번이나 간언한 위징(魏徵)이 질병으로 죽자 “거울 하나를 잃은 것이다”라고 애석함을 토로했다.
이렇게 세 종류의 거울을 근본으로 했던 당태종의 치세는 ‘정관의 치’로 널리 칭송되면서 제왕학(帝王學)의 전형이 되었다. 또한 당태종의 위대한 정치는 태평성태의 대명사가 되었다. 후대 사람들이 국가를 중흥하기 위해서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교과서로 삼았던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가령, 송나라의 개혁에 앞장섰던 신종(神宗)은 왕안석(王安石)에게 “그대는 위징이 되시게 나는 태종이 될 테니”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오긍(吳兢)은 측천무후(則天武后)의 혼란한 정치를 보면서 사관(史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관지치’를 그리워하면서 불후의 명작『정관정요(貞觀政要)』를 남겼다.
그러면『정관정요』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관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위지치(無爲之治)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무위지치는 상책이다. 군주의 덕이 자연스럽게 백성을 교화해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하여 자발적으로 군주의 미덕에 감화되어 따르는 것이 차선책이다. 반면에 창업할 때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궁궐의 화려함만을 쫓는 결과 군주의 미덕을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낮은 계책이다.
당태종의 무위지치를 살펴보면 첫째, 신하의 간언에 귀 기울이면서 편안함을 경계했다. 그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물고기와 물’에 비유하면서 국정을 살피는데 개인의 이해를 넘어 대의를 중시했다. 그는 ‘군주가 덕치를 하면 그 미덕을 도와서 일을 처리하고, 군주에게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 구해주어야 하오. 이것이 군주와 신하가 마음을 같이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조정에 나와서는 직언도 간언도 하지 못하면서 자손들에게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밝힌 신하를 현명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둘째, 신하의 행위를 육정(六正)은 장려하고 육사(六邪)는 경계했다. 육정이란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을 말한다. 반면에 육사란 구신(具臣), 유신(諛臣), 간신(奸臣), 참신(讒臣), 적신(賊臣), 망국신(亡國臣)을 말한다. 관리를 선발하는 데 있어 ‘다스림의 근본은 사람’이며 재능과 덕행을 모두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소한 이치도 꿰뚫어보았다. 가령 태종이 배를 타려고 하는 태자를 보고 ‘너는 배 타는 방법을 아느냐?’라고 하자 태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태종은 ‘배는 군주에 비유되고, 물은 백성에 비유된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또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고 염려했다. 또 태자가 굽은 나무 아래에 기대는 것을 보고는 ‘너는 굽은 나무의 이치를 아느냐?’고 하자 태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태종은 ‘이 나무는 비록 굽었지만 먹줄을 통해 곧은 나무로 가공할 수 있다. 군주 된 자는 설사 덕행이 없을지라도 간언을 받아들일 수만 성군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네 자신의 거울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넷째, 군주의 신중한 끝맺음을 책망하면서 받아들였다. 즉 아는 것보다 실천이 최우선이다, 조심하고 삼가라,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소인을 멀리하라, 근본에 충실하라, 감정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지 마라, 빈번한 사냥은 재앙을 부른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도 예와 충이 필요하다, 겸손만이 교만과 탐함에서 구해줄 수 있다, 군주의 정성 앞에서는 재앙도 무색해진다, 이것이 군주의 시종여일(始終如一) 10 가지 사항이었다.
이밖에도『정관정요』에는 백성들의 이익을 손상해가면서 욕심을 채우는 것은 마치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은 배는 부를지언정 곧 죽게 된다고 하면서 군주자신의 도리를 바르게 했다. 그리고 숲이 울창해야만 새가 깃든다, 고 하면서 인의(仁義)를, 백성은 흐르는 물이라고 하면서 도덕, 예의, 성실, 신용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또한 갑옷과 화살의 직무를 말하면서 형법의 관대하고 공평함을, 명주(明珠)로 참새를 맞추는 것을 아깝다고 말하면서 뇌물로 부귀영화를 얻을 수 없다는 등등 새겨들을 만한 대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정관지치의 실체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과연 어느 것이 어려운가를 이해하는 데 충분했다. 당태종의 리더십이 역사의 거울에 비춰지면서 수성이 왜 어려운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가깝게 현실의 정치를 보면 있으면 더욱 뚜렷해졌다. 오히려 ‘정관지치’를 백안시하는 위기감에 휩싸이게 했다. 이제라도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를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의 책들을 찾아 읽다가 생뚱맞게 수백 년이 흐른 뒤의 책인 <정관정요>를 읽게 되었다. 현암사에서 나온 책들이 전부 괜찮아서 읽다가 당태종 이세민을 다룬<정관정요>가 있어서 읽게 된 것이다. 정관정요에 대해 짧게 소개하자면 이 책은 당나라 때의 사관 ‘오긍’이라는 사람이 중종에게 바친 책이라고 한다. 측천무후의 통치를 겪은 오긍은 정관지치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이 책을 쓴 것 같다. 10권 40편으로 구성된 정관정요는 당 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국가 통치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나라 이후 여러 왕조의 왕들이 애독하였을 정도로 정관정요는 오늘날까지 제왕학의 표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수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그 시절에 20세의 청년이 강력한 정적들을 다 제압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결국에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세민은 굉장히 놀랍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황제에 오른 뒤에도 자만하지 않고,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올바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이다. 정관정요 내용 대부분은 태종의 그러한 노력들을 담아내고 있다. 창업과 수성을 동시에 이루어야 했던 이세민, 그의 탁월함은 개인에서 비롯된 것일까? 수나라를 포함한 당나라 이전의 중국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아서 백성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 왕조들처럼 했다가 뒤집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세민은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세민의 탁월함은 시대가 허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연회 중에 신하 위징이 태종에게 말한 것 중 일부인데 너무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아 발췌해 보았다. (전략) "과거 제환공은 일찍이 그의 신화 관중, 포숙아, 영척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제환공이 포숙아에게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나에게 건강과 장수를 축원하지 않소?’ 라고 하자, ‘군주께서 올해 거나라로 도망갔을 때의 일을 잊지 말며, 관중은 전쟁에서 패하여 노나라에 체포되어 곤욕을 당했던 일을 잊지 말며, 영척은 가난하여 수래 아래에서 소에게 먹을 것을 주던 때를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제환공은 포숙아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포숙아에게 감사하며 말하기를, ‘과인과 두 대부는 모두 그대의 말을 잊을 수 없소. 그렇게 하면 나라에 어떤 위험도 있을 수 없소’라고 했습니다." 윗사람 가운데 술자리에서 위와 같은 축배를 듣고서 기꺼이 감사할만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술 맛 떨어지는 소리나 한다며, 재수 없다고 여기지나 않으면 다행이 아닌가. 앞으로 사회에 진출해서 조직 생활을 해야 하는 예비사회인으로서 약간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제왕이 된다는 것, 그것은 기꺼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정관정요>를 통해 훌륭한 통치술을 얻고자 하는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단련시켜줄 거울이 있을 것이다. |
좋은책이다. |
1. 요약 。。。。。。。
폭정을 저지르고 있던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세워진 당나라의 일등공신은 초대황제인 고종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던 이세민, 태종이었다. 그는 ‘정관’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는데, 이전 세대의 황제들과는 달리 ‘정관의 치세’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로 유능한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만년에 고구려 정복하겠다고 헛힘만 빼지 않았더라도 그의 치세는 더욱 빛났으리라)
이 책은 그런 태종과 신하들이 남긴 통치의 모범에 관한 기록이다. 태종이 내린 지시사항, 신하들과의 토론, 현신(賢臣)들이 올린 각종 상소들 등이 주제별로 정리되어 실려 있다.
2. 감상평 。。。。。。。
고대로부터 제왕의 통치에 교과서처럼 사용되었던 책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 전제군주의 통치 같은 건 폐지된 요즘은 ‘리더십’에 관한 고전 정도로 인식되어 읽히는 것 같다. 원문의 구성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각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 읽기에 편했고, 가능하면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 번역되어 있어서 따분한 감은 없었다.
많은 부분이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사치나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좋은 신하들을 선발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식의 기본적인 정도(正道)에 대한 관점들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힘들고 때로 귀찮기 때문에 못하는 것들 말이다. 여러 신하들은 늘 고대의 성현들과 역사를 인용하며 바른 군주의 길에 대해 끊임없이 떠든다. 그 시대엔 황제 노릇 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책을 읽어가면서 특별히 와 닿는 포인트는 역시 인재에 대한 태종의 사랑과 좋은 인물을 얻기 위해 늘 목말라 했던 그의 열정이다. 마치 삼국시대 조조를 보는 듯 하달까. 뿐만 아니라 그는 그렇게 모은 인재들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때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상소문을 보면서도 태종은 분노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도리어 상을 내린다. 자신이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해 나가지 않으니 아랫사람들도 신이 나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왕을 도우려 한다. 뭐 이런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종이 모든 의견을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신하가 거짓으로 아첨하는지 혹은 어진 신하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거짓으로 화를 내 보라는 한 신하의 건의에, 군주로서 신하들에게 정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들의 정직을 바라겠느냐며 단숨에 물리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런 통치자라면 과연 진심으로 따를만 하지 않은가.
자연히 오늘의 리더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으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쁜 대통령과 자리보전이 전부인 정부의 고위공무원들, 국민의 삶 따위는 관심 없고 어떻게든 권력을 더 잡을까만 고민하는 잉여 국회의원들. 이런 사람들을 리더라고 뽑아 놓으니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법집행을 해야 할 경찰과 검찰은 권력자의 눈치 보기 바쁘고(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를 비롯한 각종 권력기관들은 도리어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나아가 위협하면서도 뭐가 잘못되었냐는 식의 적반하장이다.
물론 대통령 하나 제대로 뽑는다고 해서 단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기득권자들의 온 힘을 다한 저항을 뚫고 나가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좋은 리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가 아닐까. 우리에게도 태종과 같은 소통할 수 있는 리더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
제왕학이라 일컫는 정관정요는 역대 대통령들의 필독서였다고 한다.
한 달간에 걸쳐 읽어본 결과 왜 그런지 이유를 알거 같다. 다만, 정관정요의 주인공인 당 태종 조차도 정관의 치도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견지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마는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역대 통치자들 마찬가지, 자식, 부하직원등등 주변 관리감독 소홀과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국민은 고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어야만 했던 암울한 역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군주의 도리는 말보다는 실천,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천이 아닌 지속적인 견지가 가장 중요하단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