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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지나갔다. 내 생각에 저자가 얘기하는 것은 '공동체주의' 같은데, 맞다면, 우리는 다시 '공화국'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라는 개념은 유사성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얘기하느 것이 특별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내용이 나와있는 것을 안다면, 그 책 속의 내용은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 문제이다.
이 책은 18세기 19세기 영국의 공화주의론을 중심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많이 번역해 내고 있는 하이에크 같은 사람들의 반공화주의론이자 신자유주의 옹호론 비판으로 이어지며, 공화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18세기 19세기 영국의 공화주의론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저자의 전공 분야기기도 하지만, 이 시기가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자본이라는 놈이 시민사회와 국가에 침투하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를 좀 먹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이에크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얘기라는 '자유'라는 개념은 소극적 자유이다. 즉, 방해받지 않을 권리다. 노숙자들이 거리에서 얼어 죽는 것은 사회적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이에크 같은 사람들은 노숙자들은 충분히 일할 자유가 주어 졌는데, 왜 굶어 죽고 얼어 죽느냐고 비판한다. 다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나 국가라는 것은 인간 행위에 의해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인간 이성, 또는 혁명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특정한 생각을 가지고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이 전제가 된다고 말한다. 지금 현 체제가 최선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공화주의자들은 '적극적 자유'를 얘기한다. 즉, 자유라는 것은 단순히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다. 노예 주인이 노예에게 너 마음대로 하라고 말 하면, 그 때부터 그 노예는 노예가 아닌가. 여전히 노예다. 자유는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할 이상이다. 사전적 의민의 자유에 얽매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굶어 죽은 노숙자에게 제는 게을러서 죽었서, 라는 말 뿐이다. 국가라는 것도 경제라는 것도 있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방관했을 때, 그것이 남기는 결과는 기존 기득권층의 이익 유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적 참여이다.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자유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때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스의 폴리스와 같은 것도 적당한 예다. 그리스인들은 개인의 자아실현 자체가 공공선의 실현을 통해 완성된다고 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법치주의가 중요하지만, 시민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 지지 않은 법이 누구의 편인지는 현 사회가 잘 보여주고 있다. 공공선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개개인의 자유는 노예의 자유일 뿐이고, 언제든지 회수 가능한 자유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기득권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은 더욱 더 정교해 지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수단으로서 투표라는 수단을 사용하지만, 그리고 물론 투표 행위가 중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투표만으로 우리 시민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행위가 필요하다. 노예주인이 존재하는 한에서 아무리 자유로운 노예도 역시 언제나 노예일 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예 주인을 어떤 사람으로 결정해야 하느냐에 대해 다수 노예들의 참여에 의한 결정 방식이라도 필요하다. 대안이 부족하다고? 글쎄. 대안을 얘기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이기적이고 잃은 게 많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수 많은 대안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