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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전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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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이해 불가한 구절들이 사방에서 나를 공격한다. 전쟁이다!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1905-1995)의 작품이 오랜만에 내게 치열한 두통을 안겨다 주었다. 그동안 내가 읽은 레비나스의 저작은 모두 네 권, 전공자가 아닌데도 이정도 읽었다면 기특한 편이 아닌가. 『시간과 타자』(1947),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 『신, 죽음 그리고 시간』의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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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이해 불가한 구절들이 사방에서 나를 공격한다. 전쟁이다!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1905-1995)의 작품이 오랜만에 내게 치열한 두통을 안겨다 주었다. 그동안 내가 읽은 레비나스의 저작은 모두 네 권, 전공자가 아닌데도 이정도 읽었다면 기특한 편이 아닌가. 『시간과 타자』(1947),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 『신, 죽음 그리고 시간』의 순으로 읽었다. 그런데 이 책『존재와 다르게』(인간사랑, 2010)가 가장 가독성이 떨어졌고 이해가 되지 않은 구절들이 수북했고 설상가상 역자들의 해제도 부재한 관계로 국역본이 어렵다면 영역본이면 좀 이해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고 괜스레 영어 원서를 찾게 만들었다.

 

무한과 유한, 존재와 존재자, 주체성과 주체, 실질과 본질, 동일자와 타자 등을 핵심어로 남발하면서 전개되는 레비나스의 담론은 각 핵심어의 관계도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하이데거에 무지한 것도 아니지만 담론이 너무 압축적이고 애매하다. 레비나스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고, 실체와 본질을 구분한다. 그리고 '존재의 본질', '본질 너머' 운운 하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특정한 의미 맥락을 담지한 개념어라서 초월의 영역 혹은 절대의 영역이라는 정도 외에는 파악이 곤란하다. 레비나스의 철학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동시에 사랑의 지혜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철학은 존재의 발견이며, 존재의 본질은 진리이고 철학이다. 존재의 본질은 동일한 것의 효소, 동일한 것의 재포착, 지각의 단위, 회상인 시간의 시간화이다."(63쪽)


존재의 본질이 뭔지 감 좀 잡았는가? 확실한 것은 존재 너머가 신의 영역이고 궁극적인 타자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레비나스에게 '초월'이란 비존재 너머의 양태이고, 비존재의 저편이란 '존재와 다르다는 것'이고, 존재와는 다른 것의 양태는 모호성 혹은 수수께끼이고, 궁극의 수수께끼는 일자, 다름아닌 신이다. 

 
솔직히 레비나스가 인간관계를 다루는 윤리학을 다지려고 하면서 이토록 난해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내가 보기에 레비나스의 윤리학은 살아숨쉬는 지상의 윤리학이 아니라 보다 초월적인 '본질 너머'의 윤리학에 해당한다. 세상에 떨어져 나온 우리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대상이 타자에 해당한다. 심지어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궁극적인 타자를 설정하면서, 우리 옆에서 살아 숨쉬는 피와 살을 가진 현상계의 존재자를 경시하는 것은 레비나스의 잘못이다.

 

세계적인 철학자들은 누구나 사상적 계보에 해당하는 족보가 있다. 레비나스의 이름은 헤겔, 후설, 하이데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레비나스의 가장 주요한 적수는 단연 하이데거이고 그의 추상적인 존재론신학에 반기를 든다. 그렇다고 해서 레비나스가 하이데거의 추상적 사변에 대한 말끔한 분석틀이나 간결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도 무척 추상적이고 신학적 색채가 농후하다. 아무래도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적 존재론 담론을 참조하다 보니 그 자신의 담론도 애매모호한 사변적 구성을 갖게 된다. 비록 그가 하이데거의 존재론 혹은 존재신학에 반대한다 해도 레비나스 발화의 상대자는 언제나 하이데거주의자들이기에, 그의 담론을 이해하려면 하이데거를 개념어사전처럼 활용할 수 밖에 없다.

 

"……철학은 철학자들의 상호 주관적 운동 사이에서 드라마를 유발시킨다. 상호 주관적 운동은 과학에서의 동료집단들의 대화와 유사하지 않으며, 플라톤의 대화와도 유사하지 않다. 플라톤적 대화는 드라마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드라마에 대한 어렴풋한 회상이다. 드라마는 다른 구도에 따라 그려진다. 경험적으로 이 드라마는 철학사로 정리된다. 철학사에서는 언제나 되풀이해서 말할 것을 가진 새로운 발화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제기한 해석들 속에서 그에 대해 대답해야 할 발화를 다시 시작한다."(47쪽)

 

레비나스에게 주체성은 동일자와 타자의 관계와 직결된다. 주체성은 동일자 안의 타자로서 구조화되지만 의식의 양태와는 다른 양태를 따른다. 의식은 언제나 주제에, 표상된 현재에, 에고 앞에 위치한 주제, 현상인 존재에 관련된다. 주체성은 존재와 존재의 타자의 매듭이고 매듭풀기이다. 본질은 욕심이고, 존재는 사이 존재이다. 욕심은 긍정적으로 존재자의 코나투스로 확인된다. 전쟁은 본질의 이익추구의 드라마 또는 몸짓이다. 존재는 전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z***a 2013.1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