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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자고 고르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이 시인이 꾸는 꿈은 무엇이었을까. 제목을 보고 집어드니 파스텔톤의 옅은 하늘빛이 밀려왔다. 표지와 제목이 주는 부드러움과 달리 책이 품고 있는 내용은 강렬함이었다. 몇몇 시를 통해서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불의의 대상을 향해 적의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정지원 시인은 거짓과 억압과 기만을 뚫고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꽁초 비벼 끄고 돌아서는 아픈 걸음은 없는지' 돌아보고, '나지막이 사랑하려면 서너 발자국 뒤에서 등을 보아야하리'라고 말한다. 시인이 노래하는 함께하는 아름다움이 이 시집 전반에 깔려 있어서, 읽고 있는 나도 앞만 바라보며 걷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가 잊고 지내던 사람들을 돌아보아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인은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다. 잊혀지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건네며 그 외로움을 어루만진다. 아마 이 시인이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아파 보인다. 시 전반에 이별로 인한 아픔을 절절하게 담아낸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이제 그만 놓아줄 때가 되었다 선택은 버리는 거란 걸 겨우 알았다 함부로 사람에게서 위로받으려 하지 말아라 고문 같은 그리움으로 풀벌레들도 아프다 -깨어 있는 날들 中
시라는 것은 감정이 담겨 있어야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덧붙여 내가 쓴 시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시에 감정을 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시집의 시들에서는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서러운 세상살이 보다 못한 하느님이 집집마다 아기들을 보내셨나봅니다 -참 따뜻한 손 中
뿐만 아니라 시인이 노래하는 시들은 아름다웠다. 마음 한 곁을 따뜻하게 데우는 달콤한 코코아처럼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스히 감싸안는다. 또한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인생 살이 속에서 날카로웠던 신경을 긁는 자극들에 의해 닳아지고, 익숙한 피로에 무디어질 때 이 시가 위로하는 것 같았다.
불 꺼진 집
늦은 밤 내 발소리가 깨우지 않았다면 어둠만이 밤새 거인처럼 웅크리고 있겠다 돌아와 불이란 불은 죄 켜고 숨돌릴 때까지 벗어놓고 급히 나간 허물 같은 옷가지랑 던져진 신문은 무슨 말을 했을까 밥통에 말라붙은 밥알처럼 딱딱하고 씹기 힘든 하루도 겨우 넘겼구나 소라게처럼 나도 집 한 채 지고 살아간다 그러다 네가 오면 나를 위해 환히 불을 켜는 집 불안한 내 영혼의 집
김영하 작가는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책에서 겨울은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눈 내려 하얗게 덮인 풍경은 시리게 아름답기도 하지만 외롭고 고즈넉한 정경이 겨울의 감성을 우울함으로 채우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겨울, 우울함에 젖기보다 이 시집과 함께 한다면, 연대가 주는 따스함으로 영혼을 어루만지는 활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