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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름이 너무도 예뻐서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다. 두번째는 김도언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김숨 작가에 대해 더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다가 내게로 온 책. 작가의 많은 작품중에서도 <물>이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펴서 읽을때부터 무언가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보통의 작가와는 다른 글을 보며 작가의 독특함에 적응하느라 처음엔 좀 헤맸다. 몇 페이지 정도 읽은 후 작가의 묘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내용이 정말 재미있어 쏙 빠져드는 작가가 있는가하면 또 어느 작품은 다른 작가의 작품들 보다는 다른 생소한 느낌에 반가움이 생길때가 있다. 요즘엔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작가의 작품이 좋아진다. 처음 책을 읽었을때 물에 관련된 어느 사람의 이야기려니 했다. 물론 물과 관련된 소금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김숨의 소설은 심상한 것들을 심상하게 오래 바라보다가 그 심상함이 수상함으로 변하는 순간들에 대한 보고서다. 아니 보고하기보다는 포착하려 한다. 보는 행위가 놓치면서 보는 것, 촉감이 놓치는 느낌,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르쳐버린 욕망을 인간의 말로 쓰려 했으니 김숨은 얼마나, 늘 숨이 가쁠까. 김숨의 수심은 깊고 마음의 수심도 아득하다. 뒷표지에 보면 강정 시인이 김숨 작가에 대하여 말한 대목이다. 책을 몇장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도 어쩌면 그렇게 딱 맞는 표현인지 감탄을 다 했다. 심연속에 가라앉아 자신만의 말을 하는 작가인것 같다. 소설 또한 약간 추상적인 느낌이 강했다. 이혼을 하고 어머니에게 돌아온 소금이 물인 어머니를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물로 태어났지만 소금이 된 자신과 금이 된 쌍둥이 여동생, 그리고 공기가 된 여동생이 있는 집에서 기거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족관을 깨고 집을 나간 아버지 불도 소금이 들어오고 난뒤 돌아온다. 아버지 불이 지었던 그집은 3백만톤의 물이 있었던 저수지를 메워 아버지가 직접 바위와 모래를 가져다 부어 만든 집이다. 어느 날 소금이 상추를 씻고 있을때 갑자기 수도물이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 물은 얼음상태로 들어가 수족관에 누워있다. 그후 수도검침원이 찾아와 물이 나오지도 않는데 물을 너무 많이 쓴다며 많은 수도요금이 나올거라고 얘기한다. 물에 대해 이토록 깊게 얘기하는 작가는 드물거라고 생각된다. 물에 대한 고찰을 했다고 할까. 작가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수시로 쓰고 있는 물에 대해, 우리가 물에 비유되어서 표출될 수도 있다는 것. 불을 죽일 수 있는 물. 그 모든 걸 삼켜버릴 수도 있는 물보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불이 되고 싶은건 무슨 이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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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설이다. 그녀의 전작들을 만나지 못해서 처음에는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읽다보니 재밌다. 그녀의 표현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사를 사물에 빗대어 정말 잘 표현해 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엄마는 '물' 로 아버지는 '불' 로 장녀이자 15분차로 나온 그녀들은 각기 소금과 금으로 표현되고 마지막은 '공기' 로 표현을 했다. 가만히 읽다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다. '물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물이다.' 라고 했듯이 물인 엄마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들이 사는 집은 본래는 저수지가 있던 곳이었으나 삼백여톤을 물을 없애고 불인 아버지가 집을 지었다. 그들의 집을 얼기설기 감고 있는 수도관, 하지만 물이 나오는 수도관은 열아홉개중 세개밖에 없는데 엄마가 수족관에 들어관 후, 아니 엄마의 존재가 사라진후 그들에게 물은 정말 귀한 존재로 거듭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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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지는 건 자연입니다. 인간이 이기기 마련이죠." '아마존의 눈물' 제작진들의 말이다. 인간은 대자연의 신비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하는 한편, 정복하기 위해 그 속성과 성질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과 합집합이 되기엔 너무 대단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교집합으로 인간을 포함시켜 주는 너그러움을 가진것이 자연이다. 이런 위대한 존재를 인간에게 투영시켜 나타낸 작품이 나왔다. <물>
'물'은 포용한다. 그리고 너그럽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흘러흘러 소리없이 희생한다. 그리고 고요하다. '불'은 열정적이다. 의지를 발산한다. 하지만 그 의지가 너무 강해 닿으면 데일 수 있다. 위험하다. '공기'는 어질다. 조용하다. 존재를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없다면 삶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만큼 치명적이다. '금'은 화려하다. 모두가 탐내는 자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을 유혹하는 매력만큼 자신은 나약하다. '소금'은 모호하다. 필수적인 요소지만 지나칠 경우 해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모습 또한 모호하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런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을 지 모른다. 너그럽다가 다치게하고, 치명적이다가 화려하고, 간혹 모호하기도 한,,, 김숨의 <물>에는 이런 다채로운 모습이 담겨있다. 문명에게 항상 져주며 결국 인간으로 귀결대듯, 위대한 자연의 모습들이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색다르다.
<물>에는 삼백만 톤의 물과 한 방울씩 똑, 똑 떨어지는 물이 마치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는듯 하다. 넘치면 퍼내야 하고 모자르면 간절히 원하게 되는 물의 존재 때문에 나머지 요소들의 삶은 결정된다. 그 극단을 오가기 전의 '물'은 언제나 말이 없다. 위험하지도 간절하지도 않다.
저자는 <물>을 쓰는 동안 물에게 매료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을 숨기고 낮추어 존재할 수 있는 겸손과 한번에 발산해 내는 위험함을 동시에 지닌 그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양적'으로 표현되는 물이 <물>에 등장했던건 아닐까.
인간이란 존재를 카테고리로 분류하긴 힘들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반경을 결정하고 진짜 '사람'을 찾기엔 그런 인간 분류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숨의 <물>은 그런 분류법을 자연의 요소들을 이용해서 보여준다. 심플하고, 명확하게,,,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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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특이하다였는데 나역시 그렇게 밖에 말 할 수 없다. 기존에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소설이여서 그런지 흥미롭게 때로 숨을 죽이게 한다. 이 책의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아니 이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tv에 나오던 드라큘라 가족들이 생각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마치현실에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자못 흥미롭게 재미있었는데 이 책의 가족들은 나에게 그런 존재로 느껴진다.
물의 성질을 가진 엄마와 불의 성질을 가진 아빠. 그리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세자매인 소금, 금, 공기. 이것은 그들의이름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성격이고 성질이다. 이름처럼 그들은 그 물질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났다. 엄마는 물의 성질 처럼 얼음의 상태로도 수증기 상태로도 존재 할 수 있다. 얼음의 상태로 들어가면 그녀는 마비가 온 듯이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물의 상태로 될데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화자인 딸 소금도 자신을 알아보던 남편'혀'와이혼하고 엄마인 물에게로 돌아 온다. 소금인 내 육체와 정신은 사막 모래만큼 메말랐으며, 칼로 쪼갠 듯한 날카로운 각들로이루어졋다. 어머니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각들이 무디어지는 것을 느낀다. 메마른 내 육체와 정신이 눈처럼흐믈흐물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p 31 엄마인 물에게서 딸 소금은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자신의 날카로운 육체와 정신을 무디게 할 수 있다.
한때 잘나가던 보일러공이었던 불인 아버지도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온다. 불인 아버지의 불행은 그것이 무엇이든 욕망하는 순간,손아귀에 움켜쥐는 순간, 잃는다는 데 있다.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어도 아버지가 움켜쥐는 순간 그것은 잿더미로 변한다. 가치를 잃고 시커먼 가루가 되어 허무하게 흩어져버린다.p46 불의 성질을 가진 아버지가 어떻게 물인 어머니와 결합할 수 있었을까참으로 의문시 된다. 이 부부의 사이도 그들의 성질을 이용 작가는 잘 표현 하고 있다. 불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배하려 들 때는,어머니가 수증기 상태로 존재할 때이다. .. 잔잔한 물 상태로 존재할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가장 경외한다. 그리고 얼음 상태로 존재할 때 아버지는 어머니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꺼려 하며 피한다.p56
다른 딸 금은 모든이들의 시선과 질투를 한몸에 받는다, 누구나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곁에 두고 싶어한다. 그녀가 어렿을때 고모로부터 6개월간 유괴도 경험한다. 누구나 금을 좋아하듯 아버지도 집에 찾아와서 제일 먼저 찾는 이는 금이다.
그리고 막내 공기가 있다. 그녀는 유일하게 종교를 가지고 있고 이 집안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우리에게 공기는 꼭 필요하듯이이 집에서도 공기는 모든 가족간의 대화를 이끌고 소통하게 하는 자라는 생각이 든다. 소금인 나는 질량과 맛과 성분으로,금은 빛과 질량과 순도로, 물인 어머니는 부피와 움직임과 상태로, 불인 아버지는 온도와 빛과 열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 보인다. 무색무취할 뿐 아니라 아무런 맛도 지니지 못한 공기는, 움직임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인다.p61 그래서 그녀의 종교행위는 어쩜 이 집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공기의 방식이고,문제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세자매 중 공기뿐이다.
사실 이 소설의 사건은 집안에 물이 나오지 않으면서 시작되고 그러는 사이 어머니는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삼백톤의 물을 몰아내고저수지 위해 지은 집은 빚더미위에 있고 그러면서 집안의 배수관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등이다. 이 소설속에 움직이는 사건이나 내용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지만 이 가족을 대표하는 성질이 그 가족들의 성격을 말해주며 설명하는 작가의 설명이 자못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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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만났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움에도 홀딱 빠져 읽어 내렸다. 순전히 읽어 내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마치 평행선을 달려야 하는 운명에 처한 듯. 벗어날 수도 없어 앞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듯이, 그리곤 그렇게 휩쓸려버렸다. <물>이란 소설을 만나기 전에 <소현>(김인숙, 자음과모음)을 만났다. 한 등장인물을 ‘물’의 기운으로 풀이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아 그즘에 출간되었던 <물>이란 소설에 주목하였다. 어떤 이야기로 인간의 속성을 ‘물’이란 물질로 풀어낼지 사뭇 기대되었다. 물론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무미건조한 이야기, 그럼에도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과연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그녀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매료되었다.
일단 등장인물 아니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 괴기하다고 할까? ‘한 방울의 물’인 ‘어머니’와 ‘불’인 아버지, 그리고 한 방울의 물로 태어나 ‘소금, 공기, 금’이 된 자매들 그리고 금이 나은 아들 ‘납’으로 구성된 가족들은 삼백만 톤의 물을 몰아내고 아버지가 10년 동안 지은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별한 사건이라면, 물의 순환에 의해 ‘얼음’으로 결정화되어 의식을 잃기는 반복하는 어머니 물은 천천히 소멸에 이르는 동안, 수도계량기의 빠른 회전과는 달리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은 상황, 그리고 집 안을 휩쓸고 지나가버린 삼백만 톤의 물이 있다.
‘물’의 습성과는 달리 이야기는 건조하고 살을 에는 듯 날카롭고 차가웠다. 딱히 이야기라 말할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그 어떤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섯 가지의 물질(물, 불, 공기, 금, 소금, 납)의 속성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금, 모든 것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불, 그리고 금과 소금의 관계 등등 ‘김숨’ 그녀가 풀어낸 한 문장 한 문장 속에서 마음 한 구석이 ‘뜨끔’거렸다. 때론 서로 다른 속성들은 우리 안에 내재된 또 다른 우리들이었다.
또한 가족의 일원인 그들의 관계가 너무도 냉혹하였다. 서로와 서로를 수용할 수 없는 관계 특히, ‘물’과 ‘불’의 결합임에도 ‘물’로 태어난 자매들이 서로 다른 물질로 재탄생되는 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해하련다. 특히 한날한시에 태어난 금과 소금, 그럼에도 저마다 자신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결코 ‘따듯함’은 느낄 수 없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 외면 등 결코 애정을 느낄 수 없는 관계는 삼백만 톤의 물이 몰려올 거란 경고처럼 가족 해체에 대한 경고쯤으로 받아들여본다.
솔직히 저자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다. 괴기스런 분위기에 압도당하였고, 무미건조함 속에서도 ‘김숨’의 풀어낸 일명 ‘말빨’은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건조함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숱한 감정들을 자극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갈증을 일으키는 묘한 이야기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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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매의 일원이었던 나는 성장기를 거치며 가족들의 성품을,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로 동물에 비교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가족들의 고유한 12지중 자신의 띠 한계를 벗어나 다른 동물을 창조하기에 십대의 내 능력으론 힘에 딸리기도 했다. 가끔씩 자신의 띠보다는 12지에 없는 다른 동물이 더 나을 것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말하자면 나는 동물이 가진 일반적이나 상징적인 이미지를 연관시켜 가족의 성격분석가의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청소년기의 생각과 생활반경은 학교를 제외하면 가족이 전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욱하는 성질을 내붙이거나 어디가서 거짓말은 죽어도 못하고 살 성격이라든가 소심해서 상처되는 말을 용납못한다든가 살살 가족의 성격을 때때로 곱씹어보면서 소설 한 권 써낼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머니는 물, 아버지는 불, 쌍동이 동생은 금, 막내동생은 공기, 나는, 소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들과 자신을 이렇게 물, 불, 금, 공기, 소금으로 지칭한다. 처음부터 어머니를 물이라고 하며 수족관 운운하는 통에 독자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잠시 헷갈리고 만다. 작가는 가족을 돌보기보다 자신의 주장과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를 불로 상징했다. 권위적이고 아내를 위압적으로 다루는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물의 세가지 형태를 왔다갔다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내는 유약한 여성이다. 그녀가 얼음상태에 빠져 한달을 입원했다가 다시 물로 돌아와 정신을 차릴 때 독자는 수증기로 된 엄마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다. 수증기가 된 어머니는 아버지가 저수지를 메꿔 지은 새 집에 딸 셋과 자신을 불렀을 때 그때 한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시장에서 생선을 사다가도 순간 얼음으로 되어 버리기도 하고 저녁준비를 하다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얼음이 되곤한다. 어머니가 얼음이 된다는 건 유약한 상처받기 쉬운 마음이 얼어붙어 히스테리 상황이 되는 것일 게다.
불인 아버지가 항상 불의 모습으로 권위를 휘두르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물에게 흡수되어 물만이 불을 제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금은 나인 소금에 비해 언제나 질투심을 일으킬 정도로 외모에 뛰어나다. 아버지 불은 금을 연금술로 다스리러 매일밤 금의 방에 간다. 실제로 연금술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수도검침원 아줌마와 배관공, 그리고 빚독촉을 위한 은행직원의 등장은 가족외적 구성원으로서 어떤 연결고리를 내포하는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검침원 아줌마는 밀린 수도료를 독촉하고 은행직원은 새집을 지을 때 빚을 진 돈을 갚으라고 압력을 가한다. 아버지는 이러한 현실적인 삶의 현장에서 방관자로 일관한다. 이 두 개입자는 이 가족에게 닥치는 외부 현실의 복잡하고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배관공은 물이 말라버린 수도꼭지의 원인을 찾기 위해 벽을 헤집던 아버지 불을 대신해 해결사로 온 사람이었지만 그역시 닷새만에 사라지고 금에게 임신만 시킨다. 금은 열달이 지나 결국 납으로 판명된 아기를 낳고 사라진다.
납의 탄생과 더불어 소금인 나는 아버지 불과, 남겨진 납을 키우기로 하면서 함께 현실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런 이야기속에 동생 공기는 기독교 신자로서 때로는 가족의 위기를 감각적으로 헤쳐나가고 기도로서 무마하곤 했다. 결국 공기역시 금처럼 사라진다. 작가는 어머니 물의 죽음을 계기로 비난의 대상이던 아버지에 대한 편견이 감소되는 서술을 펼쳤다. 결말에서 어쩔 수 없이 화해를 모색하기 위한 방법이었겠지만 다소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 물과 아버지 불의 상극적 관계가 두 사람의 섹스에서 아버지 불이 약화되는 것으로 설명했으나 현실속에서 아버지 불이 어머니물을 수증기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물리적 사실을 망각한 건 아닐까 의심해 보았다. 불을 끄는 소화기능으로서의 물뿐 아니라 물을 가열해 수증기로 만드는 불의 힘을 상징의 고리속에 추가했다면 좀더 빡빡한 합리성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생각한다.
특히 검침원과 배관공의 등장은 마치 카프카의 소설속 등장인물같이 낯설게 하는 면이 있었다. 복잡하게 정신적으로 얽힌 심리적 환우들의 집에 등장한 외부인들은 집요하고 냉정하여 상처받은 주인공의 짐이되고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매개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사물의 중요 구성 요소들을 주변의 인물들에 대입해 하나의 가상현실 스토리를 개척한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얼마전 건축 설계수업을 듣기 시작한 딸아이가 수업 첫시간에 프린트물로 받은 프랑시스 퐁주의 시 '물'을 들고 한참 끙끙거리는 걸 보았다. 일주일을 버티다 결국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고 덕분에 나는 독특한 상징주의 시세계에 빠져드는 감흥의 기회를 얻었다. 이 소설에도 퐁주의 '물'이 인용되었다. 작가는 바슐라르를 읽은 것이 이 소설을 쓰게된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바슐라르를 알고 이 소설을 읽으면 왜 어머니 물이 수족관으로 자꾸 들어가는지 물음표만 던지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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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읽으면서 오후를 보낸다. 오후는 내게 물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어머니를 만나게 했다. 김숨의 소설은 재빨리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녀의 소설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들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더 가까이에서 그녀의 소설을 만나기 위해 발라드풍의 노래만을 선곡한 채 책을 읽어가는 것이었다.
들려오는 음악을 배경삼아 책장을 넘겼다. 예전처럼 매일매일 책을 읽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 그 안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선별하고 내게 주어진 역량 안에서 그저 읽고 느끼고 그리고 생각을 잠시 하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 작가 김숨이 그리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이번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것은 이전의 소설과 다르게 세심한 부분으로 영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물로 대표되는 어머니와 불로 대표되는 아버지. 어쩌면 동화적 상상력이 이 소설의 출발인 것처럼 욕망의 대립은 서로 소소한 것들부터 대립하게 만들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파고들게 만든다.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 빨리 끝내고 싶지만 쉽게 무언가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느낌의 대립은 언제나 욕망의 한계에까지 몰고 간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에 쉽게 노출되어 있던 것들을 소설 속에 등장 시키고 있어 읽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결코 만만찮은 느낌을 계속해서 마음에 안고가게 한다. 다른 일련의 젊은 작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그녀만의 독특한 문체는 이번 소설을 계기로 더욱더 보호되어지고 배울 것이 많아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서로 충돌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다시 발생하고 현실의 모습을 조금 더 타이트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것은 현실을 조금 더 메마른 것으로부터 촉촉이 젖게 만드는 힘을 갖게 한다. 어머니의 이미지가 물로 대표되는 느낌이어서 그러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기호처럼 등장하는 납과 공기 등 구체적인 기술을 통해 작가 김숨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질문이라기보다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줌으로써 그녀가 새로운 방식으로 내놓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막혀 있었던 것들을 조금씩 뚫어버리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해 새로운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작은 기호는 사람의 다른 표현이며 우리가 지금 아이콘처럼 사용되고 있는 일련의 방식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물과 불로 진술되어지는 부분들을 살펴보면 더 대립되어지고 견고해짐을 느끼게 된다. 가족의 모습이 어쩌면 이러할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처럼 느껴지고도 하고 어디에서부터 그만두어야할지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해 계속해서 소설을 읽어가게 만든다. 현실은 이러한 생산적인 부분과 얌체족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쓰러지고 사라지면 그 안에 다른 것이 채워지고 다른 것이 채워지다 또 넘치고 나면 또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제 자리인양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것이 우리의 생활 방식이다. 이 소설도 어쩌면 그러한 모습에 많은 부분은 닮아 있다. 불안하기 때문에 서로 대립을 하는 것이고 생산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고 생각한다. 물과 불, 어머니와 아버지. 이 둘의 모습은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영역이 더 크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이 둘은 공존한다. 그리고 쉽게 스러지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야기 하면 충돌은 서로 상대편에서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며 김숨이 그리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표현의 한 형태로 이 소설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제각각이면서 하나로 통합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며 더 나아가서는 얽혀있는 가족 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이러한 메시지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기보다는 얽혀있는 현상, 그 표면을 보고 세심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또한 의미가 있는 메시지를 던져준 소설이었다라고 짧게 평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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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조금 문단용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하는 소설은 아닌 듯 싶어서 말이죠. 대단히 패쇄적이랄까, 여하튼 평론가들은 좋아할 법한 소설이란 생각은 듭디다. 왜냐하면 소설 자체가 어떤 뚜렷함이 없이 모호하기 때문에 물은 베트맨을 상징하는 거고 공기는 원더 우먼을, 불은 짱가를 상징한다고 해설을 해도 말만 가져다 붙이면 그럴 듯 하게 만들수 있는 부류의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작품 소개에 이 책을 환상과 리얼리즘이라고 가져다 붙였던데, 거 보십시오. 뭥미스러운 내용에 뭔가 현실적이지 않으면 환상과 리얼리즘이라니까요. 라틴 소설의 특징인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소리를 어디서 듣긴 들은 거지. 그래서 대충 사람을 다른 생물체로 상징하여 글을 쓰면 다 카프카적이고 뭔가 조금 뜬금없으면 대강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가져다 붙이는, 캬하. 그 조악한 상상력이란.
사실 책만 보며 인생을 산 사람들이 좀 시야가 좁고 상상력이 부족하며 아집이 강한 면이 있습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렸듯이 이제까지 살아오며 만나보았던 집단 중에서 가장 대화가 되지 않는 집단이 철학이나 문학 전공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다 그럴리야 없을 거고 확률적으로 많은 수가 그랬다는 것이지요. 대단히 패쇄적일 뿐더러 그들은 일반 사람의 모임에는 잘 나오지도 않죠. 소위 매끄러운 인간 관계를 잘 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간혹 모임에 나와도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뒤에 가서 글로 끄적이는 인간들 참 많이 봤습니다. 그들은 뭐랄까, 어차피 세상 돌아가는 메카니즘을 글로 배운 터라, 마치 전자 오락기로 인생살이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실제 삶에는 처음 등장한 것처럼 집단에서 겉도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런 양반들이 등단해서 소설을 쓴다고 하니 한국 소설들이 대개 요 몬양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한 때는 들었었습니다. 부족한 상상력을 열등감을 발로인 냉소로 일관하는 류의 소설들 말이죠. 그래서 저는 시야 5도의 편협한 자가 쓴 소설을 참으로 싫어하는데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소설을 쓴다는 자체가 벌써 넌센스 아닙니까?
얘기가 딴 길로 좀 샜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면, 딱히 이 소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을 들게끔은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위의 문단을 내가 썼겠지? 여하튼 스토리랄게 전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묘한 건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계속 읽어나가게 되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참 신기했다니까요. 문장 때문인가 생각해보면 딱히 그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숨 씨의 문장은 말하자면 중간, 기본도 안 된 잡스러운 문장을 '하'라고 한다면, 잘 훈련 되었으되 문단에서 요구하는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그러므로 어, 문체는 그 작가의 문체인데 할 만한 개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문장-하지만 흠은 없는-을 '중', 이제 그것을 딛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장을 자랑하는 사람을 '상'이라고 한다면 김숨 씨의 문장은 정확히 '중'입니다. 흠도 없지만 개성도 없는 문장이랄까요? 성적도 중간이고 성격도 심심해서 같은 반에 있었던 아이인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 약간 있습니다. 물론 그녀의 그런 타입을 좋아하는 독자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아니면 저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녀만의 장점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어쨌거나 그런데 이 스토리 없는 패쇄적인 작품이 풍기는 묘한 매력이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네요.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하는 부분에서는 거의 하루키의 카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사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거든요. 수도 검침원이 등장해서 엉뚱한 얘기들을 늘어놓는 장면이나 배관공이 들어와 집에서 함께 살며 나누는 대사들은 딱, 전형적인 하루키 타입으로 거의 모방이라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싱크로율 99%인데 김숨 씨가 작정하고 스타일을 표절했을 리야 없겠지만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하루키를 따라한 소설 중에 이 소설이 가장 유사하게 따라한 것 같아요.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래서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하루키 타입의 상상력 전개를-물론 로맨틱한 묘사도 좋아하지만-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느닷없이 강치가 문을 두들기고 저기요, 7분 후에 지진이 일어날 것 같은데 잠시 이 집에서 쉬어가도 될까요? 하고 말하는 어처구니 없지만 어쩐지 귀여운 느낌이 드는 상상력이랄까. 또 다시 한 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만큼 하루키가 위대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인의 가문끼리 대결하는 구도를 처음 시도한 게 셰익스피어인데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멜로물이 많다는 점에서의 위대함이나, 제인 오스틴이 그린 오만과 편견 타입의 로맨스가 아직도 영향을 미치므로 그녀의 작품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처럼, 하루키의 작품도 그만의 그 황당하고 독특한, 하지만 뭔가 귀여운 상상력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에게 꾸준히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아마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하루키식의 상상력으로 쓰여진 소설이라 지루하지 않게 읽은 것도 같습니다. 리뷰를 쓰다보니 그런 것 같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물, 불, 공기, 금, 소금, 납 등으로 표현해서 그려나가는 이야기는 이야기랄 것도 없었습니다. 아무 이야기는 없는 소설이에요. 애써 의미를 만들자면 뭐, 옵티머스 프라임 저리가라 꾸며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평론가들의 몫이니 남겨두고.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싫어하는 소심한 여류작가들이 작품에서 아버지를 망나니로 몰아가는 셩향은 좀 안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게 편견에 의해 쓰인 건지, 아니면 하나의 캐릭터로서 공정하게 그린 건지는 독자가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를 까서 싫은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찌찔하게 글로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것 같은 치졸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싫은 겁니다. 개인적으로 비겁한 걸 대단히 싫어해서 말이죠.
끝으로 작품 소개에 이 소설이 그로테스크하다고 쓰여있던데 그로테스크 하지 않습니다. 그로테스크가 좀 기괴하고 잔인한 면에 대해 그리 표현하는 걸로 저는 아는데 이 작품에서 기괴한 느낌은 없었어요. 기괴함보다는 오히려 느닷없는 상상쪽에 가깝달까? 여하튼 몇 작품 더 읽어보면 답이 곧 내려질 작가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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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함에 빠져보려 집어들었던 이 책은 머리만 복잡하게 만들어놔버렸다. 물과 불의 자식인 소금, 금, 공기의 한 가족 이야기. 물이지만 인간이고 인간이지만 물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소금이자 인간이며 인간이자 금이고 그렇다. 성격이 물과 같아서? 아니면 은유적인 표현? 그걸 판단해 낼수만 있어도 당신은 성공한것이다.
김숨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이런 비슷한 류의 소설을 주로 집필하고 있는것 같다. '철'이란 소설도 그로테스크 하다고 하니 안봐도 대충 예상이 되려고 한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야하는것인가.. 인간세상과 상상의 나라를 넘나드는 내용에 머리가 아플지경이다. 그로테스크 하면 나는 '재와 빨강'의 편혜영이 생각나는데 편혜영의 소설엔 풍자가 있고, 깊이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주어 머리가 아프지만 남는것도 많은데, 김숨의 '물'은 단순히 물에대한 작가의 독특한 발상에 불과한것 같다. 작가는 으례 일반사람보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곤 하지만, 이건 도가 좀 지나친게 아닌가. 게다가 성기나 발기라는 표현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과거에 안좋은일을 당했었나..하는 생각마저 들게했으니까..
기대한만큼 나름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 머릿속에선 정리되는 줄거리가 없다. 물을 지배하기위한 불의 집요한 집착? 집을 차지하기 위한 자식들의 집착? 금을 사랑한 불의 집착.. 유난히 집착스러운 내용이 많다. 독특한 내용의 책임은 확실하지만 그게 다인듯 하다. 그냥 작가의 독특한 시각과 상상력을 전해주는것뿐.. 그게 다인 책이었다.
컬트적인 요소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는것도 좋겠다. 난 아직 대중적인게 좋으니까..패스! |